배창호 | 안녕하세요 하나님 (1987)

안녕하세요 하나님

<고래사냥>의 변형, 혹은 진정한 속편.


특별전에서 배창호 감독은 <안녕하세요 하나님>을 만들 때 가장 행복하고 가장 즐거움이 충만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남자 둘 여자 하나로 이루어진 세 명의 아웃사이더 팀이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의 로드무비는 <고래사냥>과 같고, 영화를 보다보면 <고래사냥2>가 아닌 이 영화야말로 <고래사냥>의 진정한 속편의 자격이 있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배창호 감독은 이 영화의 주인공들에게 <고래사냥> 때의 캐릭터 이름을 그대로 부여했다. 지체부자유장애인으로 어느 날 갑자기 경주로 홀홀단신 여행을 결심하는 주인공은 병태(안성기)이고, 그가 우이동에서 우연히 만난 자칭 시인은 한민우(전무송)이며, 이들이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나 이후 길벗이 되는 여인은 춘자(김보연)다. 안성기가 연기했던, <고래사냥>에서 거지왕초와 <고래사냥 2>에서 도사의 본명이 바로 한민우였던 사실을 기억해낼 수 있다.


안성기가 이번엔 병태의 자리로 옮겨온 것이 눈에 띄는데, <고래사냥> 시리즈에서 병태가 소심하고 자기 삶의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는 어벙한 캐릭터였다면,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병태는 몸은 부자유스럽지만 여행을 처음부터 계획하고, 영화의 진행을 추동하는 적극적인 인물이다. 그는 비록 버스를 잘못 타서 서울역이 아닌 우이동으로 오게 되는 실수를 저지르지만 이는 그가 거의 방안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이다. (흔히 비장애인들은 신체에 장애 정도가 심한 경우 지능이나 정신적으로도 장애가 있을 것이라 착각하곤 한다.) 그는 시를 읊을 줄 알고 그림을 그리며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되 자신의 존재 역시 있는 그대로 드러낼 줄 아는 매우 당당한 사람이다. 그러나 병태가 가족들과 함께 사는지 어쩐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는 여행을 위해 집을 나설 때와 마치고 집에 들어올 때 마치 집안의 다른 식구들을 깨우치 않으려는 듯 개를 조용히 시키며 바닥을 긴다. 여행 중간중간 집에 특히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며 위기에 빠졌을 때 집(아버지)에 전화를 걸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병태가 아버지를 언급하는 방식은 어쩐지 회고조인지라, 돌아가신 분께 부치는 ‘부치지 못할 편지’처럼 보인다. 그가 가출을 하며 우체통에 넣은 편지에는 우표가 붙어있지 않았고 수신인도 ‘아버지’라 써있었던 걸로 얼핏 기억한다. 여행을 마치고 그가 다시 거실을 기어서 몰래 방안에 들어가는 장면도 좀 기묘하게 느껴진다. 가족들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던 건가? 저 집의 거실은 어쩜 저리 평온하고, 그가 여행을 하러 가출하던 때와 아무런 차이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툭하면 ‘전화교환수에게 유명 시인 한민우를 찾으라’고 말하는 한민우는 겉으로 좀 괴짜긴 해도 멀쩡해 보이기는 하지만, 영혼에 커다란 상처를 입고 현실을 도피하는 인물로 제시된다. 이들이 여행중 하룻밤 신세를 진 어느 시골 분교의 선생님(최주봉)이 들려준 이야기가 바로 한민우의 속사정일 것임을 관객들은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고, 병태 역시 관객들과 마찬가지의 추측을 한다. 만삭이 다 된 춘자는 뻔하고 흔한 사연, 즉 남자 잘못 만나 처녀 몸으로 임신하고 남자한테선 버림받은 청승의 여인일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영화는 소위 ‘뻔한’ 사연들을 저 혼자 몰랐다는 듯 혹은 저 혼자 너무 슬프고 가엽다는 듯의 과장은 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자연스럽게 플롯에 용해시킨다.


안녕하세요 하나님

우연히 길벗이 된 세 사람.


길에서 만난, 모두다 하나씩은 어떻게든 어려움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도우며 길을 나아가는데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경주다. 애초에 병태가 가고자 했던 곳. 민우야 처음부터 ‘가고 싶은 곳은 가봐야만 한다’며 병태의 경주행에 동참했지만, ‘애 낳으러 친정에 간다’던 춘자는 실은 반겨줄 이가 없기에 얼결에 병태의 경주행에 합류한다. 하지만 실제로 경주에 도착하게 되는 건 병태와 춘자뿐이다. 과연, 경주에서 이발을 하고 말끔한 옷을 입은 채로 아이들에 둘러싸여 전자올갠을 연주하며 이들을 맞은 건 진짜 민우일까. 아니면 이들이 본 환상일까. 첨성대 앞에서 벤치에 어색하게 혹은 좌절해서 앉아있던 병태와 춘자를 잡은 컷이 이상하게 머리에 오래 남는다. 아마 이 장면에서 줌인앤트랙아웃이 사용된 것도 같은데, 그렇게 병태와 춘자의 뒤로 보이는 첨성대는 너무 왜소해 보인다. 밤도 아니라서 그 위에 올라가 별을 볼 수도 없다.


경주를 바로 눈앞에 두고 춘자가 마치 성모 마리아처럼 헛간에서 아이를 낳는 씬. 나는 그 장면에서 혹시나 춘자가 죽으면 어떡하나, 너무 조바심을 내면서 봤는데, 배창호 감독이 설마 춘자를 죽일 리가 없다고 믿었음에도 그랬다. 까무룩 자꾸 정신을 잃어가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춘자가 혹여나 의식을 잃지 않도록, 병태와 헛간 주인집의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행진을 하던 모습도 어떻게 잊으랴.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헛간을 풀숏으로 잡는데, 롱테이크로 아이들이 사다리를 타고 헛간 2층에 올라갔다 내려왔다, 춘자의 주위를 돌면서 행진을 하고 노래를 부를 때의 그 절절한 마음, 그 간절한 소망이 화면을 타고 그대로 흐른다. 영화를 보며 눈물이 났던 장면이다. 예수의 탄생을 배창호 식으로 재해석한 장면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영화 전체가, 요셉과 마리아가 예루살렘으로 예수를 낳으러 갔던 여행과 비슷하게 보이기도 한다. 기독교 내부에서는 동정녀이지만 항간에선 로마군인의 강간으로 임신했을 거라 조심스럽게 추측되기도 하는 마리아와, 아이의 생부는 아니지만 끝까지 마리아를 보살피는 요셉. 경주에서 민우와 아이들이 이 두 사람을 그토록 환호성으로 맞는 것은, 아마도 목동들과 동방박사들의 경배인 것이겠지. 그러고 보면, 결국 어떻게 태어나든, 비록 사회에서 손가락질하는 미혼모의 사생아이건 뭐건, 모든 생명은 그토록 소중하고, 탄생만으로 박수받아야만 한다.


안녕하세요 하나님

유난히 비도 많이 오고, '물'의 이미지도 반복되고.


독실한 기독교인인 배창호 감독은 이 영화가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말했지만, 실은 ‘비교인을 위한 기독교 영화’라고 불러도 될 듯하다. 그리고 종교영화가 이 정도 퀄리티로만 나와준다면, 종교영화에 대한 반감과 선입견은 가뿐하게 내려놓고 얼마든지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러 갈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고래사냥>에서의 날카로운 사회적 감수성 대신 지극히 개인적이고 종교적인 감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고래사냥>과는 또다른 면에서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작품이다.




ps. (토요일) May 31, 2008, 오후 1:30, 서울아트시네마


ps2. <고래사냥>에서처럼, 여기에서도 그냥 정지컷으로 얘기가 제시되는 장면들이 있다. 아름답다.


ps3. 여기에선 360도 회전이동씬 대신, 카메라가 360도 패닝을 해서 시간적 변화를 보여주는 씬이 나온다.


ps4. 김보연은 어쩜 그리 청승맞으면서도 구성진 사투리를 구사하는 시골 아낙네 연기를 그렇게 잘 하나? <젊은 남자>에서는 그렇게 세련되게 나오는 언니가…


ps5. 이 영화에서의 안성기의 모습은 어쩐지 진중권과 많이 닮았다. (;;;;)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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