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호 | 젊은 남자 (1994)

젊은 남자

당시 화제가 됐던 이정재의 복근.

<천국의 계단>이 1991년작이었으니 <젊은 남자>는 고작 3년만에 나온 셈인데, 어쩐지 <천국의 계단>은 오래 전 영화 같고 <젊은 남자>는 근작처럼 느껴진다. 이건 내가 그 사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갔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실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젊은 남자>가 배창호 감독이 당대에 새로이 주목받기 시작한 소위 ‘신세대’ 젊은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워 작업한 영화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이 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야망을 좇다가 추락하는 인물을 다루며 인간의 어두운 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적도의 꽃>과 <깊고 푸른 밤>의 계보를 잇는 영화로 볼 수 있고, 주인공인 이한(이정재)은 젊은 육체를 무기로 치명적인 매력을 드러내는 ‘젊은 남자’란 점에서<깊고 푸른 밤>의 백호빈(안성기)의 후예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한은 백호빈보다 훨씬 순진하고 순박하다. 여러 여자들을 후렸던 백호빈의 매력이 치명적인 옴므 파탈의 것이라면, 이한은 그저 놀기 좋아하고 ‘가는 여자 안 잡고 오는 여자 안 막는’ 스타일에 불과하다. 그가 진이(진미선)와 어떤 관계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재이(신은경)와 차승혜(이응경) 사이에서 양다리는 걸치는 건 킹카이니만큼 제 또래의 비슷한 여자친구를 사귀면서도 미모와 돈과 권력을 갖고있는 매력적인 연상녀에게 ‘매혹되는’ 전형적인 젊은 남자의 특징이다. 게다가 이한은 순박하면서 꽤 단순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한의 캐릭터가 재미있는 것은, 그 강렬한 남성적 육체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여성적인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건 이한이 예컨대 판검사 지망의
법대생이거나 의사를 지망하는 의대생이 아닌 모델 지망생이여서일 것이다. 자신의 젊고 싱싱하며 매력적인 육체를 전면에 내세워 이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고, 나이든 권력자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기존 영화들에서는 전적으로 여성의 몫이었다는 점을 상기해 보자. 물론 기존 영화들에서 야망을
가진 남자들 역시 자신의 육체적 매력을 십분 활용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서브 매력이거나, 오히려 육체 그 자체는 감춘 채 야성이나 같은 코드로
변형해서 어필하곤 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한은 젊은 육체의 매력 그 자체를 앞에 내세운다. 이한은 그 매력을 전면에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이로 인해 나이든 권력자의 유혹을 받으며, 이를 거절하며 번번이 불이익을 당한다. 그리고 또다른 나이든 권력자를 자발적으로 사랑하고, 그녀를 매혹시킨다.

남성의 육체가 그간 전면에 드러나기가 힘들었던 것은 남자 주인공이 ‘남창’
이미지로 어필되는 순간 남성 관객들의 외면을 받기 마련이고 여성 관객들의 동경 빠진 탐닉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니얼 헤니가 <안녕 프란체스카>에 찬조출연을 했을 무렵, 카메라가 대니얼 헤니의 벗은 상체의 근육을 샅샅이 더듬는 장면에서 어떤 TV 평론가가 “드디어 우리의 공중파 방송이 남성의 육체를 소비의 대상으로 탐닉하기 시작했다”고 평한 바 있는데, 이런 흐름은 영화에서 그 효시를 <젊은 남자>에 두고 있고, 이것이 당시 사회적으로나 시대적으로나 아주 빠르고 선구적인 것이었음을 짚을 수 있을 것이다. 선구적이라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겠고, 나는 남녀를 막론하고 육체가 그런 식으로 소비되는 것에 대해 여전히 당황하는 편이지만, 이정재의 육체적 매력이 정말 제대로 평가받기에 1994년은 너무 이른 시기였고, 그 시기는 그런 식의 과시는 경멸적인 외면을 받기가 훨씬 쉬웠다.

젊은 남자

이한과 재이, 혹은 이정재와 신은경.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들이었다.

그러나 이한 역을 맡은 이정재는 이 아슬아슬한 이미지 조율을 꽤 잘 해낸다. 특히 그의 어린아이와 같은
해맑은 미소와 야수성이 남창 이미지를 약화시키고 오히려 남성 관객으로부터 동경과 질투의 시선을 얻어낸다. 영화 바깥에서 이 영화는 실제로 이정재의 젊은 육체를 전면에 내세워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했다. 이정재의 복근을 강조한 저 위의 저 포스터는 사실 메인 포스터가 아니라 티저
포스터였다고 기억한다. 내가 기억하는  메인 포스터는 신은경과 이정재가 바닥에 누워 한껏 즐겁게 웃고 있는, 신은경의 발이 포스터 전경에
이따만하게 나오는 것인데, 지금 인터넷을 찾아봐도 이 포스터는 그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다.

모든 게 어그러지는 것은 자신의 길을 가로막는, 그리고 그를 욕망했던 나이든 권력자 여성의 돌발적인 죽음에서부터다. 윤리적 책임과 현실적인 유혹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는 후자를 택하는데, 문제는 운명이 그의 성공을 최종적으로 승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이 남자가 강릉을 45km 앞둔 도로변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장면을 영화 오프닝에서 잠깐 배치한 뒤 영화의 마지막에서 다시 장면을 보여준다. 뒤집힌 차에서 기어나와 비틀거리며 걷던 그는 쓰러지고서 필사적으로 자켓 앞주머니에 꽂아두었던 썬글라스를 꺼내 껴고서 죽음을 맞는다. 죽는 순간에도 폼나게. 이 남자의 그 절박한 몸짓을, 십 수 년 전 비디오로 이 영화를 보았을 땐 그저 코웃음을 쳤다. 필름으로 다시 보니 그 장면의 이 남자는 참 아리기도 하고, 내가 아는 수많은 내 또래 혹은 그 남자 또래의 아이들의 모습 그대로다.

성공과 화려한 삶을 꿈꾸는 젊음이 뭐가 죄인가. 근면하고 성실하며 검소하게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우리는 ‘공식적으로’ 교육을 받지만, TV에서는 24시간 내내 그렇게 살아서는 결코 획득하지 못할 부와 화려함과 사치를 누리는 인물들로 넘쳐난다. 이름도 외기 어려운 각종 명품 옷과 패련소품을 두른 주인공들이 당당하고 아름답게 거리를 활보하며 마치 꾀죄죄한 단칸방에서 싸구려 옷을 걸친 채 추레하게 소주나 홀짝이는 나를 비웃고 있는 듯한데. 게다가 외모만 받쳐준다면, 이런 식으로 살지 않아도 될 것만 같은데. (물론 그런 삶은 그런 삶 나름대로 엄청난 근면과 피로와 희생을 요구하겠지만.)

젊은 남자

이한과 차승혜, 혹은 이정재와 이응경. 야심찬 젊은이와 후원자, 혹은 내연의 관계.

이 남자의 운명이 더욱 비극적인 것은, 그가 실상 어린아이같은 나이브한 순진함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일 거다. 하긴, 그 덕분에 그는 그토록 ‘인생이 안 풀렸던’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차승혜(이응경)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겠지만, 그는 교통사고라는 운명적인 사건을 당하지 않아도 비정한 그 사회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별로 머리가 좋거나 수완이 좋은 편은 결코 아닌 사람이며, 정치나  파워 게임 같은 건 절대로 하지 못했을 타입의 사람이다. 자신 주변에 있는 힘을 통제할 수 없는 이런 순진한 남자에게 화려한 육체는 오히려 불행의 씨앗에 불과하다.

이 영화의 제목이 정말 근사한 것은, 야망과 열정은 크지만 수완은 별로 없어 서투른 존재일 수밖에 없는 딱 ‘젊은 남자’ 특유의 특질을 이한이라는 캐릭터 안에 매우 집약적으로, 또한 설득력있게 묘사해냈기 때문이다. 휘둘리거나 이용 당하거나. 휘둘리지도, 이용 당하지도 않으려 몸부림쳤던 이 남자가 결국 운명의 노리갯감이 되는 걸 지켜보는 마음은 참 착잡하다. 배창호 감독도 특별전에서 말했듯 어느 시대에나 젊음은, 청춘은, 구체적은 디테일을 다를지언정 본질은 비슷하고, 그 비극은 끊임없이 반복되기 때문에. <젊은 남자>의 이 ‘젊은 남자’ 역시 바로 그 길을 그대로 걸었기 때문에. 마치 토마스 하디의 ‘테스’를 연상시키는 이러한 숙명적 비극을, 배창호 감독은 매우 솜씨좋게 만들어나간다. 다소 뜬금없고 촌스러워 보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한들, 당대에 가장 트렌디한 감성을 묘사하는 장면이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촌스럽게 보이기 일쑤다.

하지만 배창호 감독은 <젊은 남자>에서 단지 당시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던, 막 미친 듯이 쏟아져나오고 있던 소비자본주의의 ‘쿨해 보이는’ 포장을 따라가는 데에만 급급하지 않았다. 패션이 어떻게 바뀌었던 어떤 바에서 어떤 술을 마시고 어떤 춤을 마시게 됐든, 젊음이 갖고 있는 그 미숙한 열정과 고독, 그리고 그에 대해 잔인하게 구는 세상과 운명을 근사하게 그려냈다. 십 수 년 전 이 영화를 봤을 때, 이 영화가 묘사한 소위 ‘신세대’의 나이에 속해있던 나는 “내 주변 사람들 아무도 이렇게 살지 않아!”라고 외치면서 나이든 꼰대가 젊은 애들의 감수성을 따라잡으려 오바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 다시 필름으로 보니 그때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얼마나 ‘젊은’ 여자 특유의 오만과 무지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알겠다. 나는 푸른 바다 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림을 만들어내는 알랭 들롱을, 그리고 그런 그림과 근사한 이야기를 솜씨좋게 담고 있는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를 무척 좋아하지만, <태양은 가득히>를 가진 프랑스 영화팬들이 마냥 부럽지만은 않다. 나에겐 배창호 감독의 <젊은 남자>가 있기 때문이다.

젊은 남자

이 사진 큰 게 없다... 그리 찾고 또 찾았건만. ㅠ.

ps. (금) May 30, 2008 저녁 7:30, 서울아트시네마

ps2. 배창호 감독이 직접 설립한 배창호 프로덕션의 창립작품 되시겠다.

ps3. 이한이 죽으면서 썬글라스를 끼는 장면은 실은 배창호 감독의 파트너이자 배우인 김유미 씨의 아이디어였다고, 배창호 감독이 이번 특별전에서 처음으로 밝혔다.

ps4. 이 영화에도 360도 회전이동씬이 나오는데, 카메라가 360도를 몇 번이고 도는 내내 이정재는 카메라를 직시한다. 찍은 방법이 이번 특별전에서 공개됐다. (ㅍㅎㅎㅎ)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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