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호 | 정 (1999)

정

포스터 이미지는 초반에 등장하는 아역배우.

아마도 스폰지 배급라인을 타고 개봉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개봉 당시에 저 영화를 보러 가지 않은 이유는 또 한 편의 ‘한많은 여인네의 청승맞은 한풀이 영화’가 나온 걸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자감독이다. 대체로 한국의 남자 예술가들은, 고난의 세월 속에서 특히 소위 일제 혹은 전후 시기, 격동의 가부장제 근대화 사회의 그 끔찍한 폭력을 온몸으로 당해온 자신의 어머니가 그럼에도 얼마나 곱고 반듯하며 특히 아들인 자신을 얼마나 끔찍히 위해주는 ‘착한 여자’였는지 신화화하곤 한다. 그 신화화가 자신의 어머니인 여성에게 그 끔찍한 폭력을 휘두른 가부장제의 또다른 얼굴임을, 그리고 그를 통해 장래 자기 자식의 어머니가 될 혹은 자신의 딸이 될 여성에게 또다시 폭력을 계승하는 것임을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아들에게 저토록 천사요 성녀인 어머니가 딸에게도 똑같이 그랬을지 아닐지는 아웃 오브 안중이며, 이에 대해 말을 꺼내는 여성들은 그저 어머니의 희생을 이해 못하는 철없고 이기적이며 싸가지없는 현대 여성들이라 매도하는 게 다반사다. 그래, <정> 역시 그 정도까진 아니라도, 그 연장선상에서 벗어나진 못한 영화일 거라고 너무 선뜻 편견을 가졌다.

하지만 만들어진지 9년, 2008년 배창호 특별전에서 드디어 만난 <정>은 그런 영화가 아니었다. <정>은, 참으로 아름다운 작품이다. 물론 영화의 줄거리를 ‘글’로 요약하자면, 이 영화는 흔하디 흔한 ‘여인수난사’의 다른 영화들과 별다른 점이 없어 보이긴 한다. 꽃다운 10대 나이에 꼬마신랑에게 시집가서 성격 꼬일 대로 꼬인 엄한 시어머니 밑에서 호되게 시집살이를 하며 살다보니 성인이 된 남편은 냉큼 바람이 나버리고, 그래 집을 나와 혼자 살다 따뜻하고 헌신적인 성격의 홀애비와 부부를 이루고 좀 행복하게 사나 했더니 냉큼 그 남자 죽어버린다. 그래 또 혼자 살다가 이번엔 못된 남편한테서 도망친 애딸린 여자와 한 지붕 밑에서 아기를 함께 기르게 살게 되는데, 이제야 평화를 좀 누리나 했더니 이번엔 그 여자를 쫓아온 못된 남편이 그 여자를 끌고간다. 그리고 그녀에게 남은 삶은 아들에 대한 헌신. 반듯하게 자란 아들에게 효도받으며 비로소 평온한 노년을 보낸다. 그나마 다른 흔한 여인수난사 영화보단 그래도 좀 무난한 건지도 모른다. 그런 영화들은 또 키워놓은 아들이 데모 하다가 죽어버리거나, 며느리 데려와서 대판 싸우게 되거나일 텐데, 그래도 공부 열심히 하고 반듯한 대학생이 된 걸로 영화가 끝나니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렇게 멋없이 글로 요약해 놓은 줄거리가 아니라, 순이의 나름 곡절 많고 사연많은 삶을 과연 “어떻게” 보여주는가다. 사실 <정>이 그렇고 그런 한풀이 영화와 다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것은 영화의 초반에 이미 제시된다. 가부장의 권위주의만 흉내낼 줄 아는 철딱서니 없는 꼬마신랑이 ‘엄마한테 이른다’며 순이를 협박할 때, 순이는 꼬마신랑의 입을 틀어막으며 ‘역’협박을 하는 것이다. 정서적인 측면에서 ‘반전’이라 할 만한 이 장면이 영화 조장부터 제시된 후, 영화는 그녀의 삶이 얼마나 고된 시련과 역경으로 점철되며 기막힌 운명을 점지받았는가가 아니라, 삶의 구비마다 이 여자가 그것을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며 어떻게 헤쳐나가는가를 중심으로 진행돼 나간다. 그렇기에 한많은 여성의 한풀이를 해준다며 고난을 강조할수록 여성을 둘러싼 폭력이 오히려 강조되며 여성은 주체가 되지 못한 채 객체로 떨어져 버리는, 그 사이를 남자 예술가의 목소리가 치고 올라와 영화 전체를 압도해 버리는 기존의 이런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나 소설과 달리, 이 영화는 얼마나 고난이 거세고 격동의 세월이었건 간에 결국 주체는 순이가 되며, 영화 역시 순이의 영화가 된다.

정

보쌈을 '당한' 순이가 오히려 우위에 서서 이후 부부관계를 주도해나간다.

사랑하는 다른 여자를 데려온 남편을 두고 자신이 떠나는 설정을 생각해 보자. 기존의 이야기에서라면 그건 명백히 ‘본처가 첩한테 밀려나는’ 것이었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순이의 주체적인 결단일 뿐만 아니라, 가부장제 사회의 혼인이라는 것이 직접적인 피해자인 자신은 물론, 그것의 혜택을 받고 있다 여겨지는 남성과 그의 다른 여성 역시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는것을 깨닫고 그 악순환을 가장 직접적이고 큰 피해자인 순이 자신이 스스로 끊어버리는 순간인 것이다. 밤에 몰래 집을 나서는 여자의 뒤를 따라나선 순이는 바람이 심하게 부는 새벽녘의 들판에서 남편과 여자가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본다. 이 순간 순이의 내레이션이 삽입되는데, 순이는 그걸 보고 화가 나고 억장이 무너지기보다 그들의 사랑이 너무 간절하고 안쓰러워 보였다고 서술한다. 이것이 가능할까? 가능할 것 같다. 그건 순이가 특별히 너무나 착하고 바보같은 여자여서가 아니다. 말하자면 그녀는, 삶을 추동하는 가장 큰 힘인 에로티시즘의 강력한 힘을 목격하고, 그것에 매혹돼 버리고,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닌가 싶다. 자신이 어쩔 수 없는 그 힘을, 순순히 인정하고 순리에 따르는 결정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배창호 감독은 흔히 한국인의 정서라 얘기되는 ‘한’에 대해, “그것은 오히려 일본의 정서다. 한국인의 정서는 한이 아니라 ‘정’이다”라고 말하며 이 영화의 변을 밝힌 적이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에서 또 하나의 특징, 즉 모든 것을 ‘순리에 맡기고 그에 따르는’ 삶의 양태를 목격한다. 이것은 삶이 살아지는 대로, 상황이 펼쳐지는 대로 그것에 수동적으로 따라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 순이는 그 누구보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 악한 힘에 대해서 거칠 것 없이 싸운다. (“난 원래 밥은 굶어도 구두는 여러 채 신고 사요!”라는 명대사를 날리며.) 옹기쟁이 남편을 단단히 단도리 시키고, 심지어 ‘세일즈 비결’을 가르쳐 주는 것도 순이다. 그런데 순이의 삶은 악다구니 투쟁이라기보다, 그것을 넘어서는 ‘순리에 따르는’ 삶의 양식이 보인다. 억지로 되돌리려 하지 않고, 억지로 막아서지 않는 그녀의 삶이, 소위 그 ‘순리를 따르는’ 삶이, 결코 수동적으로 다른 이에게 결정을 떠맡기는 것도, 그렇다고 투쟁하지 않는 삶도 아닌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 바로 그것이 ‘정’이라고, 배창호 감독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배창호 감독이 말하는 ‘정’은, 삶의 순간순간을 빛나게 하는 기지와 재치(좀더 익숙한 말로 표현한다면 ‘유머감각’)를 당연히 포함하고 있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순이의 소박한 기지와 재치가 빛날 때마다 여지없이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순이의 기지와 소박한 유머감각도 더욱 늘어나서, 사실 이 영화, 굉장히 웃기다! 뒤로 갈수록 더 웃기다!

정

두 여자간의 아름다운 '연대'로 삶이 지속된다.

영화의 장면들이 너무나 아름답다. 영화가 잡아낸 풍광과 그 안에 어우러져 있는 사람의 모습, 그 미장센도 그러하지만, 카메라가 움직이고 컷이 나뉘고, 이것이 연결되는 장면들 하나하나, 그리고 그것이 기반해 있는 호흡 하나하나가 문자 그대로 ‘유려한 장인의 솜씨’다. 배창호 감독은 <황진이>와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 극도의 롱테이크를 실험하고 난 이후, 이제는롱테이크로 길게 가는 컷과 짧게 끊어서 가는 컷들을 영화에서 자신이 이끌고자 하는 호흡에 딱 맞게 황홀할 지경으로 유기적으로 배합한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저 그저 이 능수능란한 예술가가 이끄는 대로 가기만 하면 된다. 보따리짐 하나만 가지고 길을 나서는 순이의 이미지는 영화 속에서 두 번 나오는데, <황진이>에서 팔도강산을 유람하며 길을 걷는 진이보다도 훨씬 더 구도자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삶 자체가 끝없는 구도의 과정이고, 윤회와 환생이 이 구도의 길을 계속 걷는 것이라는 불교식 가르침은 이 영화에서 순이의 삶과 정확히 겹쳐지는 듯하다. 그렇게 ‘순리’대로 맡기며 열심히 일하고 먹고 오순도순 알콩달콩 살면서 길가던 배고픈 여자에게 죽을 주고, 아이를 입히고, 자신을 보쌈한 순박한 남정네와 살을 섞고 밥을 해먹으며 살고, 그렇게 사는 것이 바로 도를 향해 가는 것이라는 것… 그렇게 나이가 들고, 자식에게 한없는 사랑을 주면서 그렇게 사는 것, 그렇기에 일상에서의 희극과 비극은 언제나 같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게 삶이라고, 그리고 그게 구도라고, 영화가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정>을 통해서 배창호 감독은 비로소 자신이 이제 더이상 그저 흥행감독도 그저 중견감독에 불과한 것도 아닌 경지에 오른 ‘예술가’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정

두고두고 회자되는 메밀밭 장면. 너무 아름다운 장면이다. 해외에 수출될 때 포스터 이미지로 쓰이기도.

ps1. 5월 29일 목요일 저녁 7:30, 서울아트시네마

ps2. 영화 상영 전 영화소개를 했던 <원스 어폰 어 타임>의 정용기 감독, 알고보니 <정>에서 연출부 막내 출신이었다는.

ps3. <젊은 남자>를 비롯해 배창호 감독의 ‘근래 영화들’을 다 봐야겠다 결심하게 만든 게 <정>인데, 결국 특별전 마지막 날 <길>을 놓친 것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ps4. 참 길게길게 썼지만 사실 다 필요없고 <정> 정말 짱이다. 사람이 이런 영화를 보며 살아야 한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2 Comments

  1. 어헛…노바리님 글 읽으니까 이 영화 보고싶어지네요^^

    순리를 따르면서 또 주체적으로 사는 것, 참 어려운 일이지 싶어요.
    내면의 힘이 왠만하지 않은 사람은,,그리 살기 힘들더라구요.

    요즘 아이들 만나면서, 그리고 그 아이들과 만나는 일을 하는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무언가 똑똑한 채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고, 논리로 무장하는 것 만이
    잘 사는 방법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배우고 있어요

    • 정말 괜찮은 영화입니다. 혹 기회가 되실 때 꼭 한번 보시길…

      순리대로 따르면서도 주체적으로 사는 거, 정말로 어렵지요. 저도 도무지 답이 안 나오는걸요. 다만 그게,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닌갑다 싶은 걸 저 < >이라는 영화가 보여주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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