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 박은옥 – 92년 장마, 종로에서

… 그리고 16년이 지났다.

이것이 매우 감상적인 마스터베이션, 혹은 감상의 소비에 불과함을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지금 광장에 서야 시민이라는 누군가의 호소력 강한 설득을 보고 들으면서도, ‘노동자이자 시민’이 아닌 ‘노동자의 계급성이 거세된 시민’으로서 그 광장에 서고 싶지는 않다고 여전히 고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아프다.

다시는 시청광장서 눈물을 흘리지도,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던 다짐, 그 약속. 16년간 참으로 많은 이들이 참으로 꾸준히도 피눈물을 흘리고 경찰의 곤봉에 맞고 방패에 찍혀왔다. 그리고 16년이 지난 오늘, 이제는 거리에 나올 일이 한번도 없었을, 저 16년간 방패에 찍히고 경찰의 곤봉에 맞는 사람을 과격하고 정신나간 사람들이라 생각했을 사람들마저 다시 물대포에 쓰러지고 군화발에 짓밟히고 있다.

이 나라 이제 그만 뜨고 싶다는 생각, 그러나 뜰 돈도 여유도 없으니 결국 죽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요즘 자주 든다. 결국 빚을 지거나 남에게 사기를 쳐서라도 돈을 모아 이 나라를 떠야 하는 걸까, 아니면 신경정신과라도 찾아가 하다못해 플라시보 약이라도 처방받아야 하는 걸까. 살아남으려면, 차라리 죽고싶다는 생각을 떨치려면 대체 어째야 할까. 암만, 우울증은 사회적 질병이 맞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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