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쇼스키 형제 | 스피드 레이서 Speed Racer (2008)

Speed Racer

포스터부터 전통과는 거리가 먼.

<매트릭스> 트릴로지를 좋아하며 워쇼스키의 차기작을 기다렸던 사람들은 <스피드 레이서>가 추억의 일본 만화/애니메이션
<달려라 번개호>를 실사로 옮긴 것이라는 사실은 알았다 해도 설마 이것이 ‘아동영화’로 만들어졌으리라곤 짐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한국의 ‘비'(정지훈)가 워쇼스키 형제의 ‘간택’을 받은 사실에 그저 황송해하면서 개봉 직전에는 심지어 이 영화의 연출이 워쇼스키 형제란
사실조차 묻힐 정도로 철저히 정지훈 중심의 홍보로 나아갔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이해가 된다. 수입사부터가 이 영화를 보고 당황했음에 틀림없고,
<매트릭스>만큼 영화계의 폭풍의 핵이 될 거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접었을 것이며, 다수의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자신감 자체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피드 레이서>는 여러 모로 흥미로울 뿐 아니라 오히려 내게는 <매트릭스> 트릴로즈보다 더
진보적인 영화로 보인다.

물론 이것은 상당부분 이 영화가 보이고 있는 기술적 성취와, <매트릭스>와는 완전히 구분되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영상 때문인
게 사실이다. 유치하고 촌스러운 원색과 과도한 비주얼이 잔뜩 과장되어 남발되는 이 영화는 심지어 실험영화의 전통마저도 끌어들이고 있고, 상당수의
장면들이 마치 영화보다는 3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게임 동영상을 보는 듯하다. 만화적인 느낌 외에도 게임과 같은 느낌을 한껏 살린 장면들,
더욱이 도저히 국적도 장소적, 시간적 현실성도 전혀 보이지 않는 이 영화는, 결국 의도적인 키치의 극단을 달리는 작품이 되었다. 화려한 레이스
장면들은 거의 실사영화보다는 애니메이션 느낌이 훨씬 강해서, 이 영화는 3D 애니메이션 배경에 실사배우들을 합쳐놓은 듯한 느낌까지 제공한다.
(의도적으로 아이맥스를 고려해 만든 화면들도 보인다. 정말 아이맥스로 봤으면 거의 오바이트 쏠릴 수준의 휘황찬 볼거리가 됐을텐데, 안타깝게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촌스럽고 유치한 화면들을 이어붙이는 솜씨는 매우 완숙하다. 시퀀스와 시퀀스를 연결하는 것뿐 아니라
하나의 시퀀스에서 씬을, 그 하나의 씬을 다시 어떤 컷으로 어떻게 붙이는지 자세히 보다보면 이건 완전히 타짜의 솜씨다.

Speed Racer

영화인지 게임인지 애니메이션인지...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매트릭스> 트릴로지에서 게임의 매체적 속성이 더 잘 접목돼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매트릭스를 부유하는 그들은 전형적인 해커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캐릭터 혹은 아바타를 플레이하는 게임 플레이어와 똑 닮아있다.
네오(키애누 리브스)가 점점 능력이 세지는 단계는 게임 안에서 아이템을 얻고 일정 점수를 넘기면서 점점 공격지수나 레벨을 올려나가는 과정과
닮아있다. 단적으로 ‘쇼다운’ 게임을 그대로 닮은 화면이 영화에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스피드 레이서>는 비록 비주얼은 그 어떤
영화들보다 게임 애니메이션을 닮아있다고는 해도, 게임 플레이어와 캐릭터간 양방향 상호관계가 노골적으로 반영돼 있던 <매트릭스>와
달리, 기존 만화나 소설, 혹은 영화와 같은 전통적인 일방향 서사방식을 따른다. <스피드 레이서>는 악당들의 유혹과 역경에 맞서 옳은
길을 선택하고 그것으로 결국 승리를 성취해내는 전형적인 ‘소년 스포츠물’의 문법을 따르고 있다.

시각효과가 쓰인 장면들 말고도 많은 장면들이 만화적 과장 기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것뿐 아니라 더욱 흥미로운 건, 이 안에서 미국의
아동영화 특유의 전통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제목에서도 보이듯 레이서 집안의 둘째 아들 스피드(에밀 허쉬)이고 심지어 철저히
스피드 중심으로 내러티브가 전개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정말로 염두에 두고 있는 건 바로 스피드의 어린 동생 스프라이틀이다. 형 렉스가
스피드에게 영웅이자 역할모델이었듯, 말하자면 이 영화는 스프라이틀 또래의 관객들에게 스피드를 통해 모범적인 역할모델이자 영웅을 제공해주려는 것이
제1 목적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단적인 증거가 우리의 주인공이 어려운 순간에 빠질 때마다 그 상황을 처음 발견하고 달려오는 게 언제나
스프라이틀이라는 사실에서다. 닌자가 습격할 때에도, 죽음의 코스에서 암살자들이 나타났을 때에도 그렇다. 로열튼 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던
스피드가 로열튼 사장의 본모습을 보게 될 때, 굳이 로열튼 사의 기밀구역을 돌아다니며 사고를 치는 스프라이틀의 장면이 교차편집되는 것 역시 이
영화가 스프라이틀 또래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드러내준다.

Speed Racer

실은 주인공보단 미스터 X가, 미스터 X보단 트릭시가 더 좋아효.

여기에서 우리는 이 영화가, 기술적인 부분들 외에도 내러티브와 장르의 면에서 실은 얼마나 야심이 큰 영화인지 눈치챌 수 있다.
<스피드 레이서>는 현재 헐리웃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 최대의 물량을 동원할 수 있는 가장 몸값 비싼 감독들인 워쇼스키가 자신들의
영화적 본령을 대놓고 직설법으로 선언하는 영화다. 각종 비디오게임과 만화와 애니메이션들과 B급 액션영화들이며, 이들이 대규모의 물량을 투입해
만들어낸 영화 역시 엄청난 스펙터클을 자랑하는 영화라기보다는 매체 자체를 혼성시키는 매우 비싼 키치물이다. 새로운 뉴미디어들의 개발과 발전,
그리고 매체간 혼성은 워쇼스키 형제가 처음 시도한 것도 아니며, <매트릭스>가 명백히 성인들 취향이었으며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보다
널리 먹힐 수 있었다면, 이 영화는 성인들뿐 아니라 조금 더 매니악한 키덜트들, 특히나 이제 부모가 되어 아이의 손을 잡고 극장을 출입하는
키덜트 부모라는 좀더 특화된 대상을 주요 타겟으로 하면서도, 그들 주변의 아이들뿐 아니라 일반 성인들까지 자신의 특정한 취향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그런 주제에 이 영화의 내러티브와 플롯은, 보다 일반적이고 대중적이면서도 <매트릭스>에서 드러냈던 주제의식을 조금도
훼손시키지 않은 채 유지하고 있다. 아니, 훼손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일반적이면서도 대중적인 버전으로 제대로 각색해 놓고 있다.

네오가 메시아로 그려지며 <매트릭스> 시리즈 전체가 일인 영웅주의로 오해받았던 것과 달리(아마도 워쇼스키가 진짜 전하고자 했던
것은 ‘그 누구나 네오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겠지만),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원과 도움을 받으며 특히 영웅적인 형의 숨겨진 활약의 도움을 받는
스피드는 평범한 틴에이저에 불과하며 그의 활약은 특출난 한 명의 영웅주의로 오해받기 힘들다. <매트릭스>에서 어깨에 잔뜩 힘을 준 채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갖가지 철학 떡밥을 던지며 폼을 쟀던 것과 달리, 이 영화는 보다 소박하고 쉬운 속세 버전으로, 그러나 여전히 열정적으로
혁명을 이야기하는 영화인 것이다. 아마도 영화평론가들은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했던 대로 보드리야르나 시뮬라크르 따위를 인용하며 이
영화를 떠들지 못하겠지만, 보다 단순명료해진 내러티브 속에서 관객들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선택과 적극적인 실천, 그리고
그것으로 세상은 결국 변화할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여전히, 그리고 더욱 구체적인 형태의 이야기로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ps. 5월 10일 토요일, 대한극장

ps2. 5월 12일날 써둔 글인데 끝을 못 내고 있다가 다듬어서 이제야…

ps3. 스토리가 ‘원형적’이면 무조건 퇴행이라느니 퇴화니 하는 거 정말 웃긴다고 생각한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3 Comments

  1. Pingback: Plan9 Blog
  2. 정말로 화려번쩍하게 소박한 이야기라고 봤어요. 일찍 나와서 손해본 영화 리스트에 올라갈 거란 생각도 들었고요. 스피드의 형아가 학교 앞에서 차에 기대 선 장면 본 순간 – 그 포토샵 원색 하늘색 찍어 바른 듯한 색감에 뿅 갔어요. ^^;;

    • 사실 이 영화의 요란번쩍한 색감과 마치 무중력 상태인 듯한 자동차의 질주가 일반 관객들에게 광범위하게 먹히긴 좀 힘들 거라 생각은 했지만, 저 정도로 처참하게 흥행이 안 될 거라곤 생각 못 했죠. 뭐 흥행 안 된 거야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라, 이 영화가 특별히 한국관객들에게 소화가 안 되는 영화라 할 수도 없고요. 하지만 전 이 영화가, 앞으로 다양한 뉴미디어를 통합하는 영화에 있어 하나의 모델을 제시해준, 상당히 진보적인(정치적인 진보 말고, 원래 뜻에서의 진보) 영화란 생각이 들어요. 그런 진보가 과연 바람직한가 아닌가는 별개의 논의 대상이지만요. :)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