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 다크 나이트 The Dark Knight (2008)

The Dark Knight

'속편의 법칙'이 또 깨졌다.

히스 레저에게 내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주어야 한다는 미국의 일부 히스 레저 팬들의 주장을 열렬한 팬들의 과장된 애정과 무작정 생떼라고만은 할 수 없다. <다크 나이트>는 배트맨보다는 조커의, 조커에 의한, 조커를 위한 영화다. 물론 이것은 팀 버튼 감독이 일찌감치 배트맨 시리즈를 유쾌하고 익살스러우면서도 어두운 웃음이 가득한 슈퍼히어로물로 만들었던 것에 도전해, 새로운 배트맨 시리즈를 볼거리가 가득하면서도 진지하기 짝이 없는 도시범죄물이자 나아가 좀더 원초적인 선/악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담긴 영화로 만들고자 했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야심의 결과다. 하지만 히스 레저의 열연이 없었다면 감독의 그 야심이 과연 구체적인 비주얼로 눈앞에 현현할 수 있었을까. 생전에 히스 레저가 보여줬던 연기를 고려했을 때, (<브로크백 마운틴>을 제외하고) 이 영화에서 조커를 그려내는 히스 레저의 연기는 매우 뜻밖의 것이다. 히스 레저가 이 캐릭터를 잘 연기하기 위해 남은 인생 전체를 담보로 악마와 거래라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망상마저 들었을 정도다.

재벌 갑부 집안의 유일한 상속자인 20대 애송이 브루스 웨인이 어떻게 배트맨이 되었는가를 다루었던 게 놀란 감독의 전작 <배트맨 비긴즈>의 내용이었다면, <다크 나이트>는 완연한 성숙미가 풍기는 30대 청년 실업가 브루스 웨인이자 동시에 범죄와 싸우는 괴짜-무법자 히어로 정도로 여겨진 배트맨이 어떻게 공식적인 ‘안티 히어로’의 자리를 획득하게 되는가를 다룬다. 그리고 그가 사람들에게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 되는 ‘안티 히어로’로 자리를 굳히게 되는 절대적인 계기가 바로 조커의 출현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조커는 그저 어둡고 머리가 좋은 악당 정도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다. 조커의 악행은 인간사회의 법과 윤리의 차원에서 악이라 부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교적, 신학적 의미에서 ‘악’으로 분류할 만하다. 조커를 움직이는 동력은 돈에 대한 탐욕도, 악명을 떨쳐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인정 욕망도 아니며, 도시를 두렵게 만드는 갱들의 우두머리가 되거나 도시 전체를 지배하고자 하는 권력욕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조커에게서는 모든 인간이 내면에 가지고 있는 어두운 본성과 악에 이끌리는 성질을 눈앞에 명시적으로 끌어내는 것, 그리하여 인간의 악한 본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증명하는 것에 더욱 관심이 있어 보인다. 산처럼 쌓아올린 돈다발에 불을 지르며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조커의 이미지는 가히 충격적이다. 영화사(史)를 통틀어 도시 전체를 범죄와 파괴로 물들였던 그 어떤 악당도 이토록 돈에 초연한 적이 거의 없다. 조커가 걸친 낡고 허름하며 ‘아무 상표도 붙어있지 않은’ 옷들, 심지어 간호사복은 브루스 웨인이 시종일관 입고 있던 맵시있는 아르마니 수트의 아름다움을 강조해 주는 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놀란 감독은 영웅의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활약보다는 조커의 매혹적이면서도 공포스러운 절대악을 보여주는 데에 훨씬 공을 들이고 있다.

The Dark Knight

Why so serious?

그렇다, 이 영화에서 조커는 절대악이며, 악을 행하는 범죄자 악당이 아니라 순수한 악 그 자체이다. 그는 드높은 이상을 저돌적으로 실천하고 있던 이상주의자를 타락시키고, 평범한 사람들을 ‘죽음 혹은 악행’의 선택지 안으로 몰아넣는다. 그는 좌절하고 분노한 인간, 혹은 죽음의 공포 앞에 선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알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인간의 본성은 결국 어둠이자 악일 수밖에 없다는 신념을 공식화하고자 한다. 조커의 카리스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총을 갈겨대고 사람들을 죽이는 냉혈한의 모습에서가 아니라, 이렇게 다른 이로 하여금 악으로의 타락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악의 길을 열어주는’ 모습을 통해서 드러난다. 조커가 관객인 우리에게 새삼스럽게 확인해주는 무시무시한 사실은 이것이다. 세상의 ‘착한 인간들’은 정말로 착해서 혹은 적극적으로 선을 선택했기 때문보다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사회적으로 교육, 학습되어 온 데다 적극적으로 악을 선택할 만한 상황에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는 것. 하지만 이것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통찰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다크 나이트>에는 불신과 증오와 공포의 순간에 오히려 자기희생을 선택하는 고귀한 인간들 역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조커는 그것에 대해 ‘악이 발현할 기회가 유예된 것일 뿐’이라며 낄낄대긴 하지만.

The Dark Knight

소년들의 로망, 배트카에서 분리된 배트바이크.

이런 면에서 이 영화는 기독교의 ‘시험받는 예수’의 에피소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청년 예수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를 한 후 악마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은 사건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자세히 기록돼 있는데, 이런 관점에서 <다크 나이트>가 성경의 모티브를 활용하고 있는 방식도 매우 흥미롭다. 기독교의 ‘신화화’ 및 ‘종교 시스템화’ 과정에서 일종의 산뜻한 해프닝 에피소드 정도로 전해지는 ‘악마와 예수의 대결’ 에피소드가 숨기고 있는 이야기란, 본래 <다크 나이트>가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격렬하고 무시무시한 파괴와 공포의 살육전이 아니었을까. 예수가 사람들의 박해 속에 결국 처형을 당하는 것처럼 배트맨 역시 결국은 사람들의 증오와 공포의 표적이 되며 고독 속에 박해받는 안티 히어로가 되는데, 이는 기독교의 빛나는 흰옷을 입은 낮의 예수를 검은 박쥐의 옷을 입고 밤의 어두움 속에서 활약하는 배트맨으로 치환시키는 듯 보인다. 관객에게 극심한 피로감을 안겨주는, 다소 무리수를 둔 듯한 후반부의 이야기에서 굳이 ‘투페이스’가 등장하는 것도 결국은 악마의 시험에 진 ‘배트맨의 얼터-에고’를 보여주려는 의도로 읽힌다. (하지만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을 언급하며 배트맨보다 투페이스를 훨씬 인간적으로 묘사한다.) 결국 <다크 나이트>는 ‘시험 받는 예수’가 아닌 ‘청년을 시험하는 악마’를 다루며 악 그 자체를 탐구하는 ‘종교에 관한’ 영화이기도 한 셈이다.

ps. Wed. July 24, 2008, 2:00pm, CGV용산, 기자시사

ps2. 프레시안에 기사로 올라감

ps3. 영화본 바로 그 날 기사를 써본 게 어언…? 영화에 너무 압도돼서 우울하고, 슬프고, 그랬다는. 나에게 가장 무서운 호러영화는 <대부>인데, <다크 나이트>를 보고 나오며 동행인에게 가장 먼저 한 말도 이거였다 : “<대부> 저리가라 할 호러영화다…”

ps4. 대중영화-블록버스터도 이렇게 심오할 수 있다. 이렇게 심오해도 재미있고 쾌감 극대일 수 있다. 대중을 고려한답시고 내러티브를 지저분하게 만드는 선택을 한 <놈놈놈>이 새삼 아쉬워지는 순간이다.

 ps5. <배트맨 비긴즈> 개봉 당시 영화에 아쉬워하던 어떤 이가 ‘배트맨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고 썼던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브루스 웨인은 대기업을 이끄는 자본주의의 화신이자 상류층으로 항상 아르마니 수트를 착용하며 부자스러운 ‘얄미운’ 대사도 서슴치 않는다. (“내가 후원회 조직하면 평생 선거자금이 없어져요.” “여긴 어차피 내 소유 식당인데요 뭐.”) 감독도 배트맨/브루스 웨인에게 배알이 꼴려있는 게 분명하다. (ㅋㅋ) 반면 돈이 목적이 아니고 아예 돈을 종잇장 보듯이 하며 ‘아무 상표도 달리지 않은’ 옷을 입은 조커는 현대사회의 자본주의적 가치를 한참 초월해 있는 존재.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56 Comments

  1. 조커의 즐거운 장난질에 배트맨이 많은 것을 잃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런 모습이 배트맨을 더욱 영웅적으로(고담에게는 아니지만..)만든다는 것이 참… 배트맨이 있어야 자기가 완벽해진다는 조커의 말처럼, 조커가 있어야 배트맨이 더욱 완벽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둘이 몇십년동안 최고의 숙적으로 있는 것이겠지만요.

    • 신이 있기에 악마가 있고, 악마가 있기에 신이 있듯…
      배트맨과 조커도 마찬가지겠죠.

  2. Pingback: 감성 일기
  3. 기대하고 있었는데, 글 보니 엄두가 안 난다. -_-;

    • 꼭 그렇지는 않아요. 조커의 광기는 좀더 은근하게 절제돼 있어요. 아무래도 국내에서 처음 본 사람들이야 조커한테 확 가서 조커 얘기만 하게 되기 쉬운 게 사실인데, 시사회 후폭풍이 좀 가시고 그 소란을 충분히 보고 난 사람들은 첫 관람 때 다른 캐릭터들도 눈에 더 잘 보이면서 이보다 더 할 얘기도, 희망도 많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도 다시 보러 가려고요. 처음 봤을 땐 조커가 워낙 존재감이 커서 배트맨은 보이지도 않았는데, 다시 보면 영화가 또 달리 보일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눈물을 글썽이며 감동한 장면도 있답니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글에 쓰진 않았지만요.

    • 보고 나서 해야 할 이야기겠지만, 난 그래서 배트맨에 대해 궁금하고 기대하는 부분이 있어. 일단 조커는 알겠는데(워낙 폭발적 반응들이라), 그 순수 악에 마주한 ‘인간’은 어떠냐는 거지. 배트맨이 대단한 영웅이기는 해도 인간이니까. 그의 변화나 몰락, 다시 그 뒤의 변화. 뭐 이쪽을 생각해도 엄두가 안 나긴 마찬가지지만, 일단 《씨네21》만 잠깐 언급하고 말아서 말야.

    • 음… 내용상 여기에 댓글을 달아야 할 듯해서.
      어제 넌 내가 정보를 가지고 영화를 보기 때문에 다른 면을 볼 수 있다고 했지만, 그건 다른 영화도 마찬가지야. 다크나이트에 특별히 공을 들여 평을 찾아본 것도 아니고. 시사회에서 본 사람들도 해외평 정도는 대충 듣고 갔을 거잖아. 비슷해, 어느 누구나, 어떤 영화도.
      여기에서 썼듯, 애당초 난 조커의 시험에 드는 배트맨에 초점을 두고 있었고, 조커는 워낙 말이 많으니 어떨까 하는 정도였어. 하지만 조커가 배트맨에 더 마음을 두는 내 시선을 앗아가지는 못했다는 거지.

    • 사람에 따라. 누구는 투페이스에 마음을 주기도 하더군요. 제가 어제 그리 대답한 건, ‘심각한 조커 편향’에 대한 분석의 부분이 더 컸지요.

  4. 후…무척 기대하고 보고 싶던 영화였는데 갈수록 엄두가 안 나요. 총질이나 폭력적인 장면, 그런 건 한번 눈 깜박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아무리 감수성 예민한 배우라 해도, 한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몰아넣은 캐릭터를 직면했을 때의 그 충격과 부담을 과연 감당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이 들어요. 리뷰들은 다들 칭찬 내지는 영화를 보고 난 후의 심리적 충격에 대해서 언급할 뿐 임산부가 봤을 때의 후유증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능;; (당연한가;;:) ㅠ_ㅜ

    • 히스 레저의 조커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오히려 그가 무작정 광기를 과장하고 쇼를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영화를 이미 본 사람들이 (저를 비롯해) 말로 떠들어대는 것보다 오히려 차분한 지점들이 있어요. 히스 레저도 ‘오바’를 하지 않고, 카메라도 그를 다소 왜소하게 보이도록 잡는 편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한 템포 절제하고 숨기기에 조커가 더욱 무서운 면이 있는데, 그게 밖으로 드러나는 카리스마보다는 ‘미스터리’ 쪽에 가깝지요. 즉, 저 놈은 대체 뭐냐, 누구냐, 에서 오는 공포도 있고, 이게 오히려 조커의 카리스마를 돋우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임산부에게 추천의 문제에 있어선… 흐, 좀 난감하긴 하군요. 러닝타임도 긴 편이라서(2시간 30분), 적극적으로 추천하지는 못하겠는 게 사실이에요. 그러나 딜레마는, 이런 영화는 역시 큰 화면에 소리 쾅쾅 잘 나오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거죠. 일부 액션장면들은, 극장에서 저도 모르게 박수와 탄성을 내뱉었는데, 작은 화면으로 보면 애들 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재개봉관이 없는 한국에서의 비극적 현실인 셈이네요.

      뭐 저같은 경우… 기계, 특히 탈것들(vehicle)에 대한 ‘소년들의 로망’을 이해해버리면서 저도 슬쩍 동화가 됐달까… 싶은 면이 있지요.

  5. 순수한 악으로서의 조커… 너무 멋졌습니다.
    그만큼 히스 레저라는 배우를 잃게 된게 아쉽구요.

    • 그러게요. 참 아쉽고 섭섭합니다. 히스 레저의 생전 출연작들이나 다시 봐야지 싶네요. 전 사실 그가 새파란 시절에 나왔던 < 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를 무척 좋아한답니다.

  6.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정말 잘 쓰셨네요. 마치 영화를 보는 듯 했습니다.

    영화 제작 소식을 접하고부터 예고편을 보고 님의 리뷰를 보고 매 번 소름의 연속이네요. 정말 기대됩니다.

    • 이런, 스포일러를 피하려고 노력했는데 ‘영화를 보는 듯’ 했다고 말씀하시면… 하하 농담입니다. 영화에 대해 쓰면서 실은 영화에 대한 정보를 숨겨야 하는 글쓰기는 항상 어렵네요.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는 영화입니다.

  7. 벽을 이용해 한바퀴 턴 후 세우기….

    어? 머지? 어떻게 한거지? 하면서

    다시 보고싶은데 했지만, 이미 현실은 극장안…

    dvd도 필구겟군요.

    • 저도 그 장면 후덜덜했어요. 그 장면, 트럭 뒤집히는 장면 등에선 정말…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치면서 탄성을 내뱉었어요. 제가 원래 영화 볼 때 아무리 웃기거나 감탄할 만하거나 한 장면에서도 꽤 조용히(!) 보는 편의 사람인데 말이죠.

  8. Pingback: Happy Ray in NY
  9. 정말 리뷰 너무 잘 읽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읽어서 더 감동.
    제가 놓친 것이 이렇게 많았나 싶습니다;;
    한 번 더 보러 갈 참인데, 그때 이 리뷰를 돌이켜보며 보려고 합니다.
    위의 트럭 뒤집히는 장면, 영화관 전체에서 헉! 소리 나고 박수소리도 났습니다^^

    아 트랙백 해갈게요:)

    • Raylene님의 리뷰도 잘 봤습니다. 간만에 참 흥분되는 영화를 봐서 참 좋았어요. 이렇게 다양한 리뷰들이 쏟아지고 다들 입을 모아 감탄을 하는 영화도 오랜만인지라 참 즐겁습니다.

    • 간만에 영화보는 재미가 참 남달랐던 영화였습니다. 흐흐

  10. [배트맨]의 조커가 ‘강력한 악당’이었던 것에 비해, [다크 나이트]의 조커는 ‘순수한 악마’라고 생각되더군요.
    영화 자체의 수준도 물론 최강이었지만, 조커의 대본과 연기 모두 엄청난 수준을 보여주었습니다.

    • 네, 그냥 악당이 아니라 악 그 자체, 악마 그 자체로 생각되어 소름이 끼쳤어요. 그렇기에 과장스러운 몸짓과 웃음이 아니라 꾸부정한 외모에 왜소해 보이도록 카메라로 잡아도 그토록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이겠지요. 돌이켜보면 하비덴트를 비롯해 우리의 알프레도 아저씨와 레이첼 등 이 영화에 참 많은 사람들이 나오고 그들이 각자 자신의 몫을 충실히 해내고 있음에도 당장은 조커 외에는 생각도 안 나고 말이죠. 크리스천 베일의 배트맨 / 브루스 웨인마저 존재감이 없게 느껴질 정도니… 사실 몇몇 장면에선 지나치게 뻣뻣하기도 했고요. (전 “누구 구할래”의 그 사건 벌어지고서도 브루스가 일말의 감정적 동요를 안 보이는 게 너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다시 보면 조커들 말고 다른 요소들도 골고루 눈에 들어올 거라 생각하는데, 오늘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과연 제가 이 영화를 다시 보러 갈 수 있을지… 한편에선 “엄두가 안 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11. 안녕하세요. 워리넷 남명희입니다. 저번에 연락주셨던 .. ^^;; 엑스파일 시사회가 내일인데 정말 따라가도 되는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 확인차 비밀글 올립니다. 14일 단체관람 이벤트를 추진중이다보니 그 동안 연락을 못 드렸어요. 내일 4시 대한극장에서 뵈면 될까요? 일정변화 등이 있으면 연락주시면 고맙겠습니다. (_ _)
    011 763 6685 남명희입니다. (_ _)

  12. Pingback: .
  13. 어제 용산 아이맥스에서 봤는데요..이건 정말 아이맥스로 봐야할 영화더군요. 몇몇 장면도 아이맥스 카메라로 찍었다니..영화 다 보고나서 자리 뜨는 사람들이 적은 편이었어요. 모두 자막 올라갈때까지 무심히 앉아있더라구요.(혼이 나갔나?^^)

    • 오, 용산 아이맥스는 일찌감치부터 매진이 됐던데, 일찍부터 예매를 서두르셨나 봅니다. 확실히 그렇더라고요. 전 어제 일반극장에서 다시 봤는데 아무래도 감흥이 덜합니다.

  14. 오늘 봤는데 한번 더 보고싶네요.블록버스터를 한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 처음했어요.전 첫장면에서 빌딩을 건너갈때 움찔했어요.고소공포증이라^^;

    • 저도 < 크 나이트>는 앞으로 아이맥스로 두 번 정도 다시 볼 예정입니다. 원래 블록버스터들 극장에서 다시 보는 거 좋아라 하지만, < 크 나이트>는 한편으로 무척 힘들고 지치기도 하더군요.

  15. 조커의 캐릭터를 생각하다보면 < 크 나이트>가 종교적인 메타포를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문제는 그 반대편에 선 인간의 모습은 있되 절대선의 역할을 하는 반대편 상징이 없다는 것이 걸림돌이
    됩니다. 조커의 절대악도 결국은 궁극의 선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했던 것이다, 뭐 그런 결말로 가줘야
    맞을 것 같은데 말이죠. 너무 < 트릭스>적인 사고인가요? < 크 나이트>에서 고담 시티는 하나의
    지옥도이고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의인들의 이야기라는 정도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조커라는 절대악, 혹은 악마는… 신일 수도 있지요. 어차피 이 영화가 선악을 섞고 있는 바, 광야의 예수는 악마에게 시험을 받았지만, 욥은 야훼에게 시험을 받기도 했죠. 신과 악마는 한 존재의 다른 이면일 수도 있지요. 예수가 죽은 건 당시 신의 뜻을 대리집행한다는 성직자들에 의한 것이기도 했고요.

    • 조커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존재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저는 신과 악마가 한 존재의 다른 이면이라고 보기가 어렵다는 쪽이라서요. 욥의 일화는 신과 악마가 늘상 대립관계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긴 하지만 여전히 신의 허락을 받고 악마가 욥을 테스트하고 있거든요. 악마의 짓거리들이 종국에는 절대선인 신의 뜻을 이루고 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이 신학적인 관점인데 < 크 나이트>는 조커를 통해서 정의가 바로 세워진다거나 선을 회복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에(또는 안하고 있기 때문에) ‘종교적’이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다 갖추지는 못한 영화라고 보는 거죠. 반면 < 트릭스>는 동양 철학도 좀 섞이긴 했지만 그 자체로 성서를 카피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종교적인 영화가 되겠고요.

    • < 트릭스>야 워낙 기독교 상징을 노골적으로 가져온 케이스지요. 아예 여주인공 이름이 ‘삼위일체’기도 하니까요. < 크나이트>을 처음 봤을 때 저는 마지막 엔딩에서 광야에서 시험받는 예수의 일화를 떠올렸는데요. 투페이스는 그러니까 악마의 시험을 견뎌내지 못한 케이스를 ‘만약에’ 식으로 보여주는 캐릭터가 되겠고요. 영화의 후반부를 늘어지게 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투페이스 이야기를 다음 편으로 미루지 않고 이 영화 뒤에 붙인 건 그 대비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두 번째로 볼 땐, 조커가 악마이자 동시에 신으로 보이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욥의 일화도 본래 선이자 악일 수도 있는 두 얼굴을 가진 신을 인간의 이야기 속에서 두 인격체로 분리해놓은 것이 아닌가 싶고, 여기서의 조커 역시 마찬가지란 거죠. 우리가 이해하는 빛과 선의 얼굴을 가진 신은, 실은 후대에 종교라는 시스템 안에서 인간이 신의 모습을 신과 악마로 분리해버린 것이 아닌가, 신에게서 그 다른 얼굴을 지워버린 것이 아닌가, 라는 거죠. 예수 이전, 그러니까 구약의 여호와 기준으로 보자면 예수 시대에 바리새파나 사두개인들은 신의 대리자이기도 했고, 그들에겐 자신들이 선, 예수가 이단 내지 사람들을 혹세무민하는 가짜 선지자였고요.

    • 조커를 통해서 배트맨이나 하비 덴트 뿐만 아니라 고담 시 사람들 모두가 시험에 빠지게 된다는 건 저도 동감을 하는 부분인데, 저는 역시 신이라고 하면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절대선을 이루는 존재라는 생각이 강해서… 말씀하신 “후대에 종교라는 시스템 안에서 분리된 신과 악마”의 개념을 벗어나기 힘드네요. 선과 악이란 것이 상대적이라고는 해도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란 건 있다고 보거든요. 예를 들면 생명을 살리는 것과 죽이는 것의 차이 같은 것들요. 파괴나 죽음은 악이고 탄생과 소생은 선이라는. 이러다 보니 < 프닝> 생각도 나네요… 이런 고정 관념을 한번 뒤집어서 생각하게 해주는 참 좋은 영화라능. 암튼 조커를 굳이 신이라고 한다면 그 혼자 잘난체 하는 유일신은 아니고 하데스였나… 파괴와 죽음의 신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럼 생명의 신도 있어야 하는데 < 크 나이트>에선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암흑 뿐이었다능. 암튼 이런 얘기까지 가능하게 해주는 조커는 한니발 렉터 이후 가장 강렬한 캐릭터라고 해줘야 할 듯 싶습니다. 렉터는 그나마 사람이기라도 했지 조커는 사실상 인간의 범주에 해당되지 않는 존재예요.

    • 사실 신의 존재란 인간의 선악 개념을 훨씬 넘어선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인간에게 악으로 보이는 면도 얼마든지 신의 속성일 수 있겠죠. 기독교의 ‘사랑의 신’ 어쩌고도 예수 이후에나 그렇지, 구약 시대의 여호와를 보면 이건 공포정치의 절대군주보다 더 무시무시하거든요. 유목민이었던 유태인들의 신답게 전쟁의 신, 군대의 신의 면모가 아주 강해요. 종족, 도시, 성 하나 전체를 쓸어버리는 것도 예사고, 노아의 방주 사건도 따지고 보면 세계 전체를, 노아 가족만 빼고 인류 전체를 쓸어버린 사건이잖아요.

      서양의 기본적인 정신 문화가 기독교 뿌리이긴 한데, 근대 이후론 워낙 기독교에 대한 반발 때문인지 이런저런 다른 종교에 대한 탐구도 많아요. (그 기독교도 워낙 이교적 전통을 기독교 패러다임 안으로 녹여낸 것들을 포함하고 있고.) 60년대 당시 비틀즈의 크리슈나 타령도 그 일환이고요. 미국 대중문화에 일부러 영향을 끌어온 힌두신화만 해도 생명의 유지를 관할하는 비쉬누(크리슈나로 현현하기도)나 파괴를 관장하는 시바가 중요시되지요. 파괴와 소멸이야말로 또다시 생명창조의 원동력이라, 동양에선 꽤 중요하게 다뤄지는 게 사실이죠. 식물도 겨울에 이파리 다 떨궈야만 봄에 다시 새싹을 틔우듯, 아버지 세대가 죽어야 아들 세대가 다시 아버지 세대가 되듯… 신화도 실은 이것에 대한 거대한 은유의 이야기… 신화를 끌어오는 건 요즘 영화들의 아주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고요.

    • 저도 개인적으로 참 흥미진진하게 생각하는 주제인데요 그런 관점이 작품에 형상화되었다고 생각하는 건 < 반게리온> 정도? < 보이>는 또 조금 달랐던 것 같고요. < 크 나이트>는 여전히 그런 정도의 세계관을 피력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던데요. < 크 나이트>가 시험받는 예수를 연상케한다는 부분은 동의(넘어오지 않는 배트맨에게 짜증내던 조커는 참 ㅎㅎ), < 크 나이트>의 조커를 통해 관객들이 악 그 자체와 종교에 관해 이야기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도 좋은데(실제로 이 댓글들이 그렇죠) 그렇다고 < 크 나이트>가 스스로 악 그 자체를 탐구하는 종교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네요. 물론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문제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도 두번째 감상을 하면 그런 관점에서 영화를 다시 볼 수도 있을려나요. ^^

    • 종교적 관점에서 영화가 실제로 다루는 것보다 좀더 멀리 나간 건 제 개인적 취향(? 관심?)에 기반한 면이 좀 큰 거 같기도 합니다. 아시는지 모르시겠는지 모르겠지만 저 어릴 적부터 교회를 꽤 오래, 열심히 다닌 전과(?)가 있거든요.

      다만 제가 처음 봤을 때 배트맨 vs. 조커 = 예수 vs. 악마로 봤던 것에 비해, 두번째 볼 때 저렇게까지 나간 건 예수가 처음 제자들을 모으고서 했던 말이 또 떠올랐기 때문이에요. http://vedder.tistory.com/299 예수는 “나는 이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분쟁과 싸움을 주러 왔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형제가 서로 반목하게 될 것이다.”라는 요지의 말을 해요. 목사님들이 설교할 때 의도적으로든 아니든 잘 안 다루는 에피소드 중 하나죠, 아마? 반면 파졸리니가 만든 < 태복음>에선 아마 예수의 첫 대사가 아마 저거일 겁니다만. 예수의 이미지가 배트맨뿐 아니라 조커한테서도 발견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

      게다가 < 크나이트>가, 자막이 아무래도 상업영화인 데다 글자수 제한상 상당히 유화되거나 의역된 부분이 있는데, 추락이란 게 가속도가 붙어서 어쩌고 하는 대사가 원래 직역하면 대충 “추락이란 건 중력이 만드는 거야, 나야 그냥 슬쩍 한번 밀었을 뿐이거든.” 이런 식이에요. (요건 영어 리스닝 약한 저는 어림없고 같이 본 사람이 말해준 것.) 그러니까 조커는 자신이 사람을 직접 타락시킨다기보단, 선택지를 주고 니가 선택해, 이러는데 이 선택지란 게 ‘악해지거나, 덜 악해지거나, 죽거나’예요. 선하게 살아남는 방법이 안 보이죠. 이런 면에서 저는 그가 ‘인간’ 차원을 넘어선 ‘신’으로 자꾸 보이는 거죠.

  16. Pingback: 강정훈닷컴
  17. 솔지히 전 영화볼줄 잘 몰라요

    그래서 이런 댓글 남기는걸지도 모르는데

    다크 나이트의 조커에 대해서 굉장하다고 여러 곳에서 평을 하시는데

    조커랑 쏘우의 직쏘와 다른점이 뭘까요?

    극한 상황을 만들어서 ‘봐 인간들은 다 이래..”

    전 조커의 괘변이 너무 평면적이였다고 생각합니다만

    • < 우> 시리즈를 하나도 안 봐서, 직쏘와 어떻게 비슷하거나 다른지는 저도 드릴 말씀이 없네요.

      선악의 날카로운 경계선 위에서 갈등하는 인간보다, 확고하게 한편에 서 있는 사람이 일견 더 ‘평면적’으로 보일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입체적’인 캐릭터가 ‘평면적’인 캐릭터보다 언제나 우위다,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조커에게 이토록 홀리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건, 조커가 내뱉는 대사들이 실은 우리가 평소에 불경스럽게 생각해본 것들을 눈앞에서 툭툭 내뱉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조커의 속삭임이 그만큼 유혹적이란 건데, 그게 그토록 유혹적이라면, 소위 ‘평면적’인 그 캐릭터가 얼마나 개연성있고(떡칠한 외모를 보면 개연성 따위하곤 삼만 광년 정도 떨어져 있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신뢰감이 있는가… 가 문제겠지요.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이야 언제나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하면서 살고 있으니까요.

      그건 영화를 볼 줄 아느냐/모르냐의 문제보다는, 그런 식의 악의 유혹에 취약한가, 자신의 취약함을 아는가, 그런 경험의 문제란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많이 보고 체계적으로 훈련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남들이 놓친 것들을 붙잡는 게 ‘조금 더 많을’ 뿐이겠지요. 저도 영화를 오랫동안 좀 봤다면 봐온 사람이지만 영화는 갈수록 어렵습니다.

    • 쏘우따위랑 비교하다니 웃을께요 ㅋㅋㅋㅋㅋㅋㅋ

  18. Pingback: 임시 개장
  19. Pingback: 잠보니스틱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