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삼 | 영웅본색 英雄本色 (1986)

英雄本色 / A Better Tomorrow

각기 다른 스타일의 영웅들, 주인공은 적룡.

<영웅본색>을 둘러싼 담론은 주로 장국영과 주윤발을 주인공으로 ‘홍콩누아르’의 특징을 서술하는 방향으로 진행돼 왔다. <영웅본색>이 처음 개봉했을 당시 이 영화가 주로 어필한 대상이 지금은 중, 장년층이 된 당시 10대와 20대들이었고 이들이 감정이입한 대상이 장국영과 주윤발이었기 때문일 터이다. 뒤이어 제작된 무수한 홍콩누아르는 홍콩 무협영화와 함께 홍콩영화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됐다. 확실히 <영웅본색>이 갖는 위치는 각별하다. ‘홍콩누아르’라는 장르 신조어가 생긴 계기가 된 작품이 바로 <영웅본색>일 뿐만 아니라, 지금의 오우삼을 만든 시작점에 있는 영화이자, 한때 홍콩누아르가 홍콩과 한국은 물론 동남아시아 전체에서 한 시대를 풍미하며 심지어 미국의 일부 감독들, 대표적으로 쿠엔틴 타란티노와 같은 이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한 대표주자가 바로 <영웅본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봉 당시의 북경어 더빙 버전이 아닌 본래의 광둥어 버전으로 재개봉되는 <영웅본색>을 극장에서 필름으로 보노라니, 이제껏
일반적으로 이 영화가 소비되었던 방향과 실제 영화에 약간의 괴리가 있어 보인다. 먼저,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장국영이나 주윤발보다 적룡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 둘째, 이 영화는 홍콩 누아르의 뿌리가 홍콩 무협영화임을 밝히며, 과거 홍콩영화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홍콩무협영화에 애정이
가득담긴 고별인사를 하는 한편 새롭고 젊은 영화에 주도권을 이양해줄 것을 선언하는 과도기 단계의 젊은 영화(였)다. 과연 <영웅본색>
이후로 홍콩영화는 과거의 무협영화와는 차별화된, <소오강호>를 위시한 신 무협과 홍콩 누아르가 양분하게 된다.
<영웅본색>은 그렇게 홍콩영화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작품 중 하나였다. 한편으로 <영웅본색>은 ‘누아르’라는 새로운 외피
안에 무협영화의 본질을 계승하고자 하는 시도를 담고 있다.

무협영화가 배경으로 삼는 전근대 시대에 있어 강호는 (봉건적인)
국가 체제와 별개로 존재하며 나름의 법칙과 윤리에 의해 유지되는 독립적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근대국가가 형성되고 난 뒤, 합법적 국가질서에
포섭되지 않는 공간은 범죄의 공간으로 여겨질 뿐이다. 즉 강호는 더 이상 국가와 별도로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게 된 것이다.
적룡이 연기하는 송자호는 외견상 범죄조직의 수장이지만, 일반적인 조직 폭력 영화들에서 그려지는 보스와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그는 현대적인 조폭
조직의 보스가 아니라, 사제들을 거느리고 보살피는 무협영화 시대의 큰사형과 같은 존재다. 말하자면 송자호(적룡)와 마크(주윤발)는 강호가 불법시되는
근대국가에 남은 마지막 강호인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조직이 바로 ‘위폐 제조’ 조직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자본주의 사회가 운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 단위가 화폐인 만큼, 그가 위폐를 만든다는 것은 곧 자본주의 질서의 근간을 뒤흔드는 존재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英雄本色 / A Better Tomorrow

적룡 : 나도 잘나가던 스타였어! / 이자웅 : 맞습니다, 맞고요.

그런데 적룡이 누구인가? 쇼브라더스 영화사가 무협영화들을 양산하던 시절 강대위, 라열, 왕우 등과 함께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그는 실제 무술 고수이기도 했으며, 호방한 말타기와 힘이 넘치면서도 우아한 봉술과 검술(이는 주로 남방계 무술의 특징이기도
하다)을 선보였던 무협영화 최고의 스타 중 하나가 아닌가. 오우삼 감독이 적룡을 불러들여 송자호의 역할을 맡긴 것은, 서극 감독으로 대표되는 신
무협이 아닌 홍콩누아르야말로 기존 홍콩 무협영화의 적자임을 선언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송자호가 법질서의 수호자라 할 수 있는
‘경찰’인 동생 송자걸과 갈등을 빚는 것은 결국 전근대 시대의 유습이 근대사회에서 범죄로 여겨지는 상황에서의 갈등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송자호 역시 이 근대의 기준을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위와 조직이 범죄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송자호는 복역 후
새 삶을 살고자 택시회사의 일개 택시기사, 즉 노동자로 신분을 바꾸게 된다. (그와 달리 마크는 끝까지 법질서적 가치가 아닌 강호의 정의관으로
선악을 판단한다.) 그런 그가 자신의 자리를 꿰찬 이자성으로부터 범죄에 가담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말하자면 이자성은 구시대 질서의 상징과도 같은
송자호의 ‘승인’과 정식적인 ‘승계’의 절차를 밟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자성은 송자호와 달리 근대 자본주의 체제 내의 전형적인 범죄조직의
두목으로, 돈을 위해서라면 신의나 가족 등은 손쉽게 내팽개쳐버릴 수 있고, 모든 가치의 기준을 돈으로 삼는다. 송자호의 조직이 위폐 제조 하나에
매진했던 것과 달리 이자성은 자신의 조직을 돈이 되는 각종 범죄로 확장시키는데, 근대 법치국가적 기준이 아닌 강호의 정의관으로 보더라도 악행이라
할 수밖에 없는 행위들을 포함한다.

英雄本色 / A Better Tomorrow

강호가 아무리 불법화 됐어도 강호의 의리는 소중한 거여! 계승해야 헌다고!

그렇기에 영화의 중반 이후는 한편으로는 송자호가 경찰인 송자걸과의 화해로 향하는 긴
여정이자, 기업형 범죄조직이 돼버린 이자성의 조직과의 대결이 된다. 이는 결국 전근대적 무협영화의 영웅이 근대의 자본주의 / 법치국가 체제의
품에 안기기 위한 통과의례가 된다. <영웅본색> 이후 홍콩누아르에서 종종 등장하는 삼합회는 원래 중국에서 전근대 시대라 할 수 있는
청 말에 만들어진 비밀결사의 의적단체로, 손문을 돕기도 했으나 근대국가의 확립 이후 결국 범죄조직으로 타락하고 만다. 이자성의 조직에서 삼합회의
흔적을 읽어내는 것, 그리고 마지막 강호인이라 할 수 있는 송자호와 마크가 이자성과 대결을 펼치고 결국 죽거나 경찰의 손에 체포되는 결말은, 한
시대가 마감해 가는 것에 대한 쓸쓸한 고별인사를 바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마크가 송자걸에게 신의와 의리를 그토록 강조하고 송자걸이 이에
설득되는 것은, 근대 사회가 잊거나 부정하기 쉬운, 그러나 꼭 구습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옛 가치를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 설파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영웅본색>은 전근대적 가치가 근대의 옷을 입고 새로 계승되는 과정을 다룸과 동시에 결국 (옛) 무협영화가 누아르로 전승되는 과정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기념비적인 영화인 셈이다.

ps. 7월 22일 화요일 2시, 허리우드 극장, 기자시사

ps2. 프레시안무비 기사로 올라감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9 Comments

  1. 기자님. 그림 뽑고 캡션 뽑는 센스 죽여요! 저 엄청 웃었어요.

    • 흐, 빅웃음 드렸다니 저도 기쁩니다, 라이 동상.

    • 개봉년도 쓰려던 것 맞습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수정했어요. :)

  2. 멋진 글이네요. ^0^
    영웅본색에 관한 평중, 제가 이정도로 음미하면서 재밌게 읽어낸 글은 몇 안됍니다. 역지 멋지십니다. 북경어버젼과 광동어버젼의 느낌까지 설파하시다니 우리 바리님도 홍키 다됐어. 실제로도 북경어버젼이 좀 진중한 면이 있고 광동어버젼으로 보면 좀 가벼운 대신 날카롭운 느낌을 줍니다.

    사실 영화의 주인공은 분명 ‘송자호’이나, 바리님 평대로 우리나라에선 주윤발에 감정이입이 더 많이 되어 있습니다. 이건 우리뿐 아니라 중국인의 정서와 문화에 완전히 익숙하지 못한 모든 국가에서 마찬가지로 받아드렸졌습니다. 하여간 그런측면 때문인지, 주윤발의 그 뒷 명성은, 비교적 덜 평가 받으며 조용히 지내는 적룡의 그것과는 큰 차이를 보였죠.

    중요한 거 하나^^
    북경어버젼에 익숙한 극장판 세대에게는 ‘마크’보다 ‘소마’로 주윤발을 인지합니다. ‘소마’라는 이름은 당시 홍키세대들에게, 자기자신들에겐 이상적 ‘형님’이자 스스로도 되고싶은 ‘자아’로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호칭이 되었죠.
    허무적이면서도 낭만적이며, 그러면서도 졸라 강한 사나이로써의 모든 잡동사니같은 궁극형 남성형(^^ 쓰고나서도 좀 웃기네요. 그런 점에서 영웅본색은 무협지이자 만화입니다.), 그게 ‘소마’입니다.

    참고사항
    주윤발의 극중 본명이 ‘마극례’라서 , 중국의 호칭습관에 따라 애칭’소마’ (‘손아래 마씨”마씨성의 동생’ 정도의 의미^^,반대로 송자호는 끝자리 이름에 형님의 “꺼”를 붙혀 “호꺼”입니다. 송자걸은 “아걸”이구요.) 로 불리었 습니다. 다른 버젼들에선 ‘성’만 따서, 미국식 별명처럼도 들리는 ‘마크’라고 칭했구요.

    • 그쵸? 소마라고 안하고 마크라고 하니 좀 어색.

    • 저도 ‘소마’가 더 익숙한데, 이번에 본 게 계속 ‘마크’라고 부르더라고요. :)

      글 써놓고 J.가 은둔고수들한테 잔뜩 까일 거 각오하라고 그랬는데, 은둔고수 버디님한테 칭찬들었으니 이제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호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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