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 레비 | 핑크 팬더

오리지널이 궁금하다.

Pink, Pink, Pink!

서구문화 및 미국문화를 열렬히 신봉하는 골빈 문화사대주의자 darth.vedder가 <핑크팬더>의 예고편을 보는 순간 “보러 갈 거야!”를 외치며 주먹을 꼭 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이 영화가 극장에서 3일만에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도, 그래서 <크래쉬>를 보러 가려던 계획을 수정해서 부랴부랴 서둘러 극장으로 달려간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죠. 물론 darth.vedder는 헐키도 충키도 아닌 탓에 블레이크 에드워즈의 <핑크팬더> 시리즈를 한 편도 못 봤습니다. 그러니까 그랬겠죠.

일단 오프닝 애니메이션은 근사했습니다. 음악도요. 하하, 역시 문화 식민지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저답게 <핑크팬더> 시리즈를 잘 모르면서도 이 음악은 익숙합니다. 드디어 오프닝이 끝나고, 파리 에펠탑이 보이는 가운데 오만방자한 자세로 파리 시내에 등장한 스티브 마틴의 클루조가 우스꽝스러운 불어 액센트로 영어 발음을 하는 모습은 ‘에그, 그럼 그렇지’ 싶더군요. 하지만 스티브 마틴의 그 불어액센트요. 영화 중간에 몇몇 단어는 불어로 하기도 하고, 특히 ‘프랑스 액센트’를 고치겠다고 발음 교정 선생과 씨름하는 장면에서 그가 ‘굳이굳이’ 고집하는 불어식 액센트(의 영어)는, 정말로 불어스러웠습니다. 사실 놀랐다니까요. 웬만해선 미국인들한테 그런 발음 나오기 힘듭니다. 하물며, 정말 불어를 하는 것도 아니고 불어식으로 영어를 하면서 정말 불어식 발음을 내다니요.

사실 영화는 씨퀀스마다 늘어지고 늘어지고 하여 좀 지루합니다. 그럼에도, 꽤 여러 장면에서 배를 잡고 웃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겠네요. 역시나 압권은 스티브 마틴과 장 르노가 괴상한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장면. 아아, 그 장면 내내 미친 듯이 큰소리로 웃어버릴 수밖에 없었는데, 뭐, 장내가 워낙 단체관람 온 여중생들의 웃음소리로 뒤덮였기 때문에 제 웃음소리는 가볍게 묻혔습니다. 사실 재미없는 영화도 여럿이 깔깔대며 웃으면 유난히 재밌게 느껴지잖아요. 바로 이 영화가 그랬달까.

처절하게 망가지는 미스터 레옹.

프랑스 사람에 대한 미국사람들의 놀려먹기 유머는 대체로 그런 것인 듯해요. 쥐뿔도 알지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 요란스레 떠벌떠벌 잘난 척과 거만은 혼자 다 떤다는. 이 영화에서 딱, 스티브 마틴이 맡은 클루조가 그렇습니다. 전 원래 ‘너무 선하게 생긴 얼굴’ 때문에 스티브 마틴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데, 스티브 마틴이 그리는 클루조는 별로 좋아하기가 힘들었어요. 막판에 가서 기가 한껏 죽은 클루조를 보면서는 연민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면서, 그의 그 근거없고 끝간 데 없는 잘난척과 거만이 그냥 이해가 가버리긴 했지만. 사실 남 뒤통수나 칠 궁리를 하는 경시청장(케빈 클라인)보다야, 잘난척은 해도 잔머리 굴리거나 남 이용해 먹을 생각은 하지 못하는 클루조가 훨씬 낫긴 하죠. 그런데 옆에서 듬직하게 서 있는 장 르노는, 저런 식의 ‘프랑스 사람 놀려먹기’의 전형과는 완전히 반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영화 중간에 잠깐 클라이브 오언이 006으로 등장하시는데, 아아아아, 차기 제임스 본드는 걍 클라이브 오언이 했으면 좋겠어요. 웃긴 캐릭터인데도 한껏 풍겨나오는 그 우아한 품위와 섹시함이라니. 게다가 그 목소리는 또 얼마나 중후하고 멋지신지… 한참 제임스 본드 설 돌 때 어울릴 거라고 막연히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은 몰랐어요. 역시 오언은 양복발…;;; 만약 클라이브 오언이 제임스 본드가 된다면, 단박에 한번도 좋아해본 적 없는 007 시리즈의 팬이 돼버릴 겁니다.

(사진을 붙이고 싶은데, 없네요. 사실 오언은 이 영화의 크레딧에도 안 올라 있답니다. -_-;;)

영화 보는 내내 핸리 맨시니의 음악 때문에 OST를 사야겠군, 이라고 생각했는데, 막판에 비욘세가 노래 부르는 장면에서 그 생각을 싹 지웠습니다. 뭐, 제가 비욘세 같은 팝스타를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지만요. 솔직히 핸리 맨시니의 곡들 및 다른 곡들과 비욘세의 노래, 특히 마지막 엔딩 타이틀 때 흐르던 노래는 정말로, 정말로 안 어울립니다. 확 깨더군요.

스티브 마틴은 아예 제작과 라이팅에 재미를 들린 듯, 이 영화에도 각본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감독도 <열두명의 웬수들>의 그 감독이죠. 미국에서 흥행 1위를 했음에도 평이 지독히 나빴던 건, 역시 그가 피터 셀러스(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의 핑크팬더 시리즈 8편 중 6편에서 클루조 역할을 맡았던, <닥터 스트레인즈 러브>에서 1인 3역으로 유명한)의 발끝도 못 따라갔기 때문이라는군요. 그리하여 제 결론은,

원래 시리즈를 보고 싶어요. ….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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