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 펜 | 인투 더 와일드 Into The Wild (2007)

Into The Wild

자연 속으로, 혹은 야생 속으로.

도시인들에게 ‘자연’은 도시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는 안식처로 미화되기 쉽다. 그렇기에 자신이 살고있는 도시는 보다 편리한 문명의 이기로 무장되기를, 그리고 ‘가끔 찾아가는’ 농촌과 같은 곳은 자연 그대로 보존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건 도시인들의 섣부른 낭만의 착각이요 이기심이다. 인간의 문명이란 어떤 식으로든 약자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식으로 고안되었고, 도시는 그 문명의 총체다. 도시인들이 바라는 자연 역시 인간의 편의대로 다듬고 손이 간 자연이기 쉽다.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이 지배하는 야생의 자연 속에서 인간은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럼에도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급진적인 반-자본주의적 실천의 의미를 갖는다. <인투 더 와일드>의 주인공 크리스 맥켄들리스(에밀 허쉬)가 보여주는 삶이 바로 그러하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의 모든 재산인 2만 달러를 옥스팜(런던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국제 빈민구호단체)에 기부한 뒤 2년간 미국 전역을 떠돌며 방랑한다. 그리고 특히 산업선진국에는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야생의 자연이 있는 곳, 알래스카로 들어간다. 영화는 알래스카에 처음 들어가는 크리스의 모습으로 시작해 그의 9주간에 걸친 알래스카 생활과 2년간의 미국 방랑생활을 시간순과 상관없이 다소 혼란스럽게 오가며, 그 사이에 그의 대학시절과 어린시절의 에피소드를 필요한 부분만 플래시백으로 삽입한다. 이 장면들을 이끄는 것은 크리스와 그의 여동생 캐린(지나 말론)의 목소리로 보이스 오버된 내레이션이다. 유복한 부르주아 가문의 아들인 그의 가정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고, 그가 유일하게 마음을 줄 수 있는 상대는 캐린뿐이었다. 크리스는 알렉산더 슈퍼트램프(‘트램프(tramp)’는 방랑자, 뜨내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며 잭 런던과 헨리 데이빗 소로우 등을 즐겨 읽고 인용한다. 그는 단순히 자연을 그리워한 낭만적인 도시인이 아니라, 현대의 대량생산과 소비의 쾌락으로 점철되면서 정작 지구 반대편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은 도외시하는 현대 자본주의 문명을 반대한 급진적 사상가였다. 그리고 그것을 직접 실천에 옮긴 행동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도시와 인간문명에 익숙한 그의 몸은 야생의 알래스카에서 도저히 버텨내지를 못한다. … (하략)

Into The Wild

아름다운 자연풍광... 그러나 냉혹한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기도 하는 곳.

마저 읽으려면 : 프레시안무비 기사 본문으로 가기,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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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션 펜의 네 번째 연출작인 <인투 더 와일드>는 저명한 저널리스트 존 크라카우어가 크리스의 실화를 기록한 동명의 책을 원작으로 스크린에 옮긴 영화다. 아마도 크리스의 삶이나 세계관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은 그의 선택을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치기어린 반항쯤으로 평가절하할지도 모르고, 23살에 알래스카에서 마감된 그의 삶과 죽음은 한편으로 속절없고 어이없어 보이기도 한다. 다소 무모하고 극단적일 수도, 혹은 현실에서의 무책임한 도피일 수도 있는 크리스의 선택을, 션 펜은 섣부른 판단이나 선동적인 미화, 혹은 편견에 찬 비난 없이 사려깊고 담담하게 화면에 펼쳐보인다. 비록 사람들이 세간에서 말하는 ‘성공’ – 적어도 그것이 알래스카에서 오랫동안 살아남는 것 정도를 의미한다 할지라도 – 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의 삶이나 깨달음이 어리석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지극히 아름다운 자연풍광 속에 펼쳐지는 그의 여정을 그린 이 영화가 현대 자본주의 도시 문명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관객에게 던지는 충격의 크기는 절대로 적지 않다. 그것은 말하자면, 영화 <매트릭스>에서 제시된 ‘빨간 약과 파란 약’의 의미를 보다 노골적인 모습으로 형상화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장관으로 가득한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오싹한 공포를 느낀 사람이라면, 우리가 매트릭스의 세계에 얼마나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이 환영의 세계를 포기하고 싶지 않으며 진실을 직시하기를 두려워하는지 새삼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 (하략)

크리스의 삶이, 그리고 숀 펜의 영화 <인투 더 와일드>가 전해주는 감동은 바로 거기에 있다. 그가 온몸으로 실천하며 보여줬던 사상과 힘든 여정 끝에 마침내 얻은 깨달은 “행복은 나눌 때에만이 가치가 있다”는 교훈은, 무한 생존경쟁의 사회에서 정신없는 속도로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에 급한 우리에게 한번쯤 걸음을 멈추고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을 찬찬히 둘러볼 것을 권한다. 필요한 것 이상의 탐욕을 부리며 소유를 늘려가고, 이를 위해 대량생산을 해야 유지되고 작동되는 자본주의 속의 우리의 삶이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크리스의 여정을 좇는 이 ‘영적인 여행’의 영화가 일깨우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아울러 물질문명으로 황폐해진 미국사회의 위기를 그려내면서도 이것을 직설적인 언어로 비판하는 대신 연민을 담은 카메라로 훑어낸다. 게다가 이 영화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은 영화 전편을 수놓는 에디 베더의 야성 가득한 목소리다. 이 영화에 쓰인 곡들 중 7곡을 수퍼밴드 펄 잼의 프론트맨인 에디 베더가 노래했으며, 그 중 ‘Guaranted’는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연을 맡은 에밀 허쉬 역시 작년 전미비평가협회가 수여하는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크리스의 부모로 출연하는 윌리엄 허트와 마샤 게이 하든, 크리스와 우정을 나누는 웨인 역의 빈스 본, 론 역의 할 홀브룩, 잰 역의 캐서린 키너의 연기도 매우 훌륭하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 아름다운 걸작이 국내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통로가 좁다는 것. 미국 본토에서는 작년 9월 개봉됐던 이 영화가 국내에서는 올해 충무로영화제에서 깜짝상영작으로 단 한 번 상영됐을 뿐, 국내에 모 영화사를 통해 수입되기는 했지만 개봉 여부가 아직까지도 불투명한 상태다. 부디 이 영화가 보다 많은 관객들과 조속히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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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4일 목요일 오후 9시, 대한극장, 2008 충무로영화제(CHIFFS2008) 깜짝상영작.

– 음악 정말 좋다. 에디 베더와의 작업이 결정된 후 숀 펜은 일부러 음악을 위해 각색본의 여백을 많이 비워뒀다고 한다.

– 내 옆에 앉은 여자관객 둘은 시작부터 끝까지 틈만 나면 미친 듯이 깔깔대며 웃어대더라… 이 영화가 웃겨? 그렇게 웃겨? 미친 거 아냐?

– ‘귀농한 인간들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인간들’이라고, J.와 얘길 나누곤 했다. 이 영화의 크리스가 가장 급진적이고 가장 무서운 실천을 보여준다는 바로 그 의미에서.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2 Comments

  1. 어제 프레시안에서 읽었던 바로 그 글이로군요, 숙현님^^;.
    두번째 사진과 비슷한 풍광을 쉬이 볼 수 있는 바닷가 소도시에 사는 저가 이 영화를 접하기는 아무래도 힘들겠지요. 비록 나는 볼 수 없더라도 이런 영화 많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묵직하게 다가오는 어떤 느낌이 있어요. 역시나 숀펜은 ‘괜찮은 배우’, 그 이상이 맞는거 같군요.
    개인적으로 ‘자연’이나 ‘자연스럽다’라는 말을 매우 두려워합니다. 너무나 큰 의미이기 때문이죠.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말이 저에겐 쉽지 않아요. 흔히 말하는 ‘적극적’이거나 ‘능동적’이라는 말을 넘어선 의미라고 생각하거든요. ‘자유’라는 말도 ‘자연’에 비하면 훨 가벼워보입니다. 끊임없이 철썩이며 부딪혀 시퍼렇게 멍이 들었지만 스스로 ‘그렇게’ 살아 있는 바다가 그렇고, 온갖 만고풍상 다 견디며 의연히 ‘거기’ 그 자리에 서 있는 산이 또한 그렇구요. 어쩌면 도시냐 농촌이냐는 하는 것은 그저 옵션 사항일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자기결의나 결사, 의지(자연스러움)를 무력하게 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야성’을 무력화 시키는 것이기도 하구요. 이상주의자로 살다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살다 간 사람들이겠죠.
    켄로치의 영화 또한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워요^^; 건강하시고, 건필하세요.

    into the wild!!

    • 프레시안에서 영화기자로 일하기 전부터 이 블로그를 운영해왔던지라, 지금은 기사를 먼저 프레시안에 노출시킨 후 이곳에 올리고 있습니다. 가끔은 프레시안에 싣지 않은 리뷰를 올리기도 하고요.

      말씀하신 대로 ‘자연스럽다’는 말, 찬찬히 생각해보면 참 무서운 말이 아닌가 합니다. 공자가 말한 “마음대로 행동해도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았다”는 일명 ‘종심’의 경지가 바로 ‘자연스럽다’는 말이 아닐까 싶은데, 공자의 그 종심의 나이가 70세였지요. 종심은 고사하고 그냥 작은 양심 하나 건사하고 살기도 무척 어렵네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요.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주는 편리와 문명의 이기를 거부할 용기는 또 없고요…

      방문 감사드립니다. 켄 로치의 영화도, 숀 펜의 이 영화도 언젠가 날 님을 꼭 찾아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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