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 | 고고70 (2008)

고고70

70년대 고고음악, 혹은 70년대로 고고씽~

영화 <고고70>은 유신헌법이 막 발표된 72년 말에서 시작한다. 최신 ‘양키 음악’을 가장 발빠르게 접할 수 있었던 미군부대 근처, 혹은 기지촌 동네에서 밴드를 하던 대구의 일군의 젊은이들이 ‘데블즈’라는 소울밴드를 결성하고 서울의 밤을 휘젓게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 눈으로 보기에는) 촌스러운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하고 70년대를 마냥 낭만적으로, 혹은 마냥 희화화해서 향수하고 있지만은 않다. 상규(조승우)가 이끄는 밴드 데블즈가 마침내 성공의 정점에 서는 과정이 영화의 한 축이라면, 그 영광이 유신헌법 시대 권력의 통제로 어떻게 망가지는가, 그로 인해 한국의 대중문화가 어떻게 뿌리까지 뽑히고 암흑을 맞게 되는가의 역사적 맥락을 다루는 것이 이 야심찬 영화가 진정 다루고자 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축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한 판 잘 놀아보는 게 심지어 ‘목숨 내놓는’ 투쟁이 돼버리는” 참 이상하고 암울했던 시대에 대한 낭만적인, 그러나 뼈아픈 회고인 셈이다.

전면에 ‘음악영화’임을 내세우고 연주 장면이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는 영화답게, 이 영화는 ‘귀호강’이라 할 수밖에 없는 사운드를 들려주고, 그 사운드가 가진 파워와 에너지를 그대로 스크린에 그려낸다. 영화와 뮤지컬 양쪽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조승우는 말할 것도 없고, 실제 밴드 멤버(과거 ‘노브레인’ 및 현재 ‘문샤이너’의 멤버인 차승우) 혹은 뮤지컬 배우(홍광호, 최민철 등 뮤지컬계의 스타들)를 영입해 만든 사운드는 배우들이 그저 입을 벙싯거리고 기타치는 흉내나 내는 립싱크 수준이 아니라 진짜 노래, 진짜 연주의 맛을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소위 ‘날라리 딴따라’가 갖고 있는 특유의 에너지와 파워가 영화에 고스란히 살아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가진 진정한 미덕은, 촌스러운 정치 과잉으로 흐르지 않고 오히려 정치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도 근간에 나온 한국영화들 중 ‘진정으로 정치적인’ 영화라는 점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데블스’의 성공과 슬럼프와 해체의 과정은 우리가 ‘락밴드’라 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전개를 그대로 밟아나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 중 일부는 대단히 안이한 방식으로 어물쩍 넘어가고 있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특별한 빛을 부여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상처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들이 대체로 시대의 무게에 짓눌리며 지나치게 경직되거나 먹물 티를 내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명 ‘딴따라’의 시선을 견지하면서도, 여느 영화들이 쉽게 도달하지 못하는 지점에 가뿐히 도달한다. 보다 미시적인 차원, 즉 정치와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은 일상과 놀이의 차원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억압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데에 성공하고 있는 동시에, 이를 놀이정신으로 위장한 먹물근성으로 우회하거나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딴따라의 놀이정신’으로 정면돌파를 해버리고 있는 것이다.

고고70

데블스가 처음으로 '소울음악'을 선보이는 일명 해골댄스씬.

예를 들어 옛 TV 화면에서 그저 우스꽝스러운 회고의 프레임 안에만 갇혀 있던 장발 단속과 같은 역사가, 이 영화 안에선 코미디의 요소로 쓰이면서도 보는 사람에게 새삼 ‘역사의 폭력성’을 효과적으로 환기시킨다. 중정에 끌려갔다 나온 밴드멤버들이 소위 ‘단정한 머리’로 그들 생애 최고의 공연을 하는 마지막 장면이 그토록 감동적인 것은, 지금의 미적 관점으론 분명 훨씬 세련된 그 짧은 머리가 영화 속에서는 그들이 당한 폭력과 억압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종의 ‘상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늘 한번 제대로 놀아보자!”라고 상규가 외칠 때, 이 외침은 적어도 그들의 입장에서는 ‘죽도록 투쟁하자’는 구호가 그리 다를 바가 없는 실존적인 저항의 외침이 된다. 이 장면은 마치 성경에서 머리 잘리고 눈까지 뽑힌 삼손이 생애 마지막 괴력을 발휘하며 죽음으로 향하는 장면을 대할 때와 같은 장엄한 감동을 준다. (…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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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대한 ‘검열’을 위한 단계가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는 ‘포르노 규제’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사회 전반에 대한 억압은 ‘놀이문화 규제’에서 시작한다. 이유는 풍기문란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며 근검절약으로 조국 근대화를 달성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라고 설파하던 근엄한 분들에게야 밤새 춤추고 노는 젊은 청춘들이 한심한 철딱서니로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그걸 풍기문란이라며 금지했던 바로 그 분들이 술판에 젊은 여자가수를 불러들여 술시중과 밤시중을 들게 하는 아이러니, 혹은 머리를 기르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입영통지서를 찢어버리고 밤새 춤추며 놀고자 하는 욕망까지도 투쟁으로 만들어 버리는 폭력의 시대, 바로 그것이 70년대 억압과 금지의 시대의 본질이다. 이 영화는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 <고고 70>은 철저히 대중음악, 그것도 한국에서 한창 화사하게 꽃봉오리를 만들다 그대로 뿌리가 뽑혀버린 한국 록의 궤적을 통해, 그리고 ‘뽀대나게 음악하고 놀고 싶었던’ 청춘들을 통해 일상을 억압하는 거대권력을 드러낸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뒤 약간의 씁쓸함을 느낀 사람들이 있다면, 그 중 일부는 어쩌면 영화 속 바로 그 시대에 그렇게 젊음을 불살랐던 청춘들이 이후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된 뒤 그런 억압을 스스로 자식세대에 고스란히 되풀이했다는 사실을 떠올려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청소년들의 두발자유화 운동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기 시작한 해는 불과 2000년이었다.) 그 흔적은 나와 내 조카뻘 되는 아이들의 몸에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이들일수록 더욱, 이 영화를 박제된 과거의 낭만적 추억담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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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9일 2시, 메가박스 코엑스, 기자시사

– 그러니까 이 영화의 기본적인 정치태도는 신좌파의 그것과 비슷하다. 실제로 담는 지향은 굳이 따지자면 좌파보다 리버럴이겠지만. 처음 영화 보고 나오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게 “씨바, 머리도 맘대로 못 기르게 하는 참 좆같은 시대”라는 거였는데,… 사실 머리를 내맘대로 기른다는 그거야말로 지극히 근대적인, 근대 이후의 얘기. 조선시대의 상투나 지금도 영국의 의회에서 착용하는 가발 같은 걸 생각해 본다면, 의외로 복식과 두발의 엄격한 형식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대 이전까지도 당연한 얘기였단 사실을 생각할 수 있다. ‘조국 근대화 프로젝트’가 근대의 이념 중 하나인 개인주의, 자유주의에 제재를 가한 아이너릭한 사건이 장발 단속이 될 것이다.

– 조승우보다 홍광호가 더 빛나더라… 아주 귀여웠다. (홍광호가 누구냐면, 색소폰 불던 청년.) 첫 영화데뷔에 엉덩이까지 깐 홍군.

– 한동안 ‘춤추기 좋은 음악’으로 소비되던 소위 ‘고고음악’ 중 실제로 노래는 후덜덜한 것들이 좀 있다. 예를 들어 CCR의 곡들의 경우. (영화 속에 삽입된 CCR 곡은 Proud Mary인 듯.) 이쯤에서 CCR의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인 Have You Ever Seen The Rain?을 들어보자. 이 Rain은 베트남전 당시 비처럼 뿌려진 고엽제 혹은 폭탄을 비유한 것이라 한다. 개나소나(… 여기에 REM 옵화와 보니 타일러 언니도 들어간다능) 리메이크를 하고 때로 댄스곡으로 불러제끼기도 하지만 실은 70년대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반전곡 중 하나다.


CCR – Have You Ever Seen The Rain?

-사실 신민아가 연기한 영화 속 미미가 처음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데블즈의 음악 궤적은 살짝 바뀌는데, 이들이 원래 지향하던 노래들이 딱 내 취향 곡들이다. 80년대에 고고음악이 고고장에서 놀이음악으로, 춤추기 위한 음악으로 소비됐던 현상의 주범은 바로 신민아였던 것이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8 Comments

  1. 영화 자체의 대한 평가보다는, 실존하는 데블스와 와일드 캣츠의 소송건에 휘말려 좀 더 제대로 된
    평가가 나오기도 전에 얼버무려진 점이 개인적으론 아쉬웠습니다.
    차승우를 좋아하는터라 그를 스크린으로 보는 것도 색다른 감흥이 있었구요~ ^^;

    • 그러게요. 좀 아쉽습니다. 영화 외적인 것 때문에 이렇게 어이없이 주저앉아 버리다니… 단점도 많긴 하지만 분명 참 매력적인 영화인데요.

      전 노브레인도 문샤이너스도 제대로 밴드를 몰랐던 터라 만식이 차승우가 어떤 사람인지도 영화를 보고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뮤지컬 < 왓 아이 워너 씨>에서 참 묘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홍광호가 계속 눈에 밟히기도 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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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안녕하세요, 프레시안의 김숙현 기자님 맞으시죠?
    저 저번에 부산에서 도훈이랑 얘기하고 계실 때 뵈었던 조이씨네의 장병호라고 합니다 ^-^;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그때 프레스 센터 앞에서 인사드렸었는데 말이죠.
    블로그 트랙백 남겨주신 거 보고 찾아왔는데 프레시안 로고 보고 기억이 났어요.
    트랙백 남겨주신 거 감사드리고, 저도 트랙백 남겨 놓고 갑니다ㅋ

  4. 전 차승우씨보려고 본 영화인데요…워낙 차승우씨의 팬이라
    영화 보는 내내 눈은 차승우씨에게로ㅋㅋ
    차승우씨도 영화 첫출연인데 엉덩이 깠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화 괜찮았는데 생각보다 흥행도 못하고…
    지금의 차승우씨 모습도 좋지만 사실 2001년 쌈싸페에서의 차차의 모습이
    제게는 깊이 각인되어 있네요.
    아무래도 그때는 20대 초중반의 젊은 혈기가 넘칠 때였으니까요.
    아무쪼록 차승우씨가 앞으로 나이가 40,50을 넘어가더라도
    최고의 인디 뮤지션으로 길이길이 남기를…

    • 저는 아예 차승우라는 사람을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를 봤는데, 존재감이 좀 특이한 느낌이었어요. 사실 옆에 있는 조승우는 워낙 일찌감치 스타의 길을 걸어서 약간 ‘닳은’ 느낌이 있는데, 차승우는 그렇질 않더라고요. 꺼끌꺼끌하면서 약간 치받는 느낌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은근히 선이 곱게도 느껴지고요.

      좋아하는 배우/뮤지션이 아름답게 나이먹고, 그러면서 성장하고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건 당대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꽤 큰 축복인 듯해요. 뭐랄까, 함께 세상을 살아나가는 동지의식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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