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미 | 미쓰 홍당무 (2008)

미쓰 홍당무

생각과 감정을 못 숨긴다 = 사회성 제로

어디서 이런 괴상한 코미디가 뚝 떨어졌나. 영화가 좋았든 아니든, 이 영화를 본 대다수 사람들의 첫 반응이 이것일 것이다. 독특한
캐릭터의 힘으로 드라마를 끌고나가는 영화가 그리 드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독 <미쓰 홍당무>가 특이하다고
느껴졌다면, 바로 독특한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 감독이 그를 그려나가는 시선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코미디라
는 장르가 원래 어떤 유형의 사람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주변화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세부장르가 어떠하든, 대체로
웃음의 시작은 영화에서 코미디를 주로 책임지는 사람이 일반적인 사회적 코드를 따르지 않는/못 하는 소수자를 다수의 관객이 우월한
위치에서 내려다보는데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그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인간적이고 따뜻한 면을 끄집어내며 관객들에게 “그도 우리와
별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설득하려 드느냐, 아니면 그를 계속해서 곤경에 빠뜨리면서 대상화시킴으로써 웃음을
이어나가느냐에 따라 영화의 성격과 분위기가 갈린다. <미쓰 홍당무>의 주인공인 양미숙(공효진)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결코 가지 않은 길만 골라서 가는 전형적인 코미디 주인공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독특한 것은 양미숙에게 카메라가 줄곧 유지하고 있는 거리다. 이 영화는 양미숙에게 섣불리 접근해 바로 우리
모습의 일부분임을 애써 설득하려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수세적 열세로 그녀를 몰아가기만 하지도 않는다. 일반적인, 특히나
한국에서 더욱 흔한 코미디의 주인공들과 달리, 양미숙이라는 캐릭터가 유발하는 웃음은 그녀가 사회성 제로의 인물이면서도 알아서
구석 자리로 숨으려 드는 소심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인물이라는 데에 있다. “우리같은 사람일수록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양미숙의 격언에서도 드러나듯, 사회성 제로의 행동만 골라하면서도 그것을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그것도 아주
열심히 한다는 것이 바로 양미숙이란 캐릭터의 가장 큰 특징이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적당히
걸러내거나 숨길 줄 모른다. 자신의 콤플렉스와 생각, 느낌과 취향, 성격을 누구에게나 날 것 그대로 표출한다. 그렇기에
콤플렉스와 패배감, 특히 예쁜 여자들에 대한 열등감은 매우 공격적인 형태로 표출된다. 이런 특징은 ‘안면홍조증’이라는 그녀의
신체적 특징으로 간단히 요약된다. 적당히 감추거나 거르고 싶어도 얼굴에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버린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러한
그녀의 행동과 그로 인해 빚어지는 일련의 소동들을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도 결코 ‘위에서 내려다보는’ 위치로 비추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양미숙은 자신의 일련의 행동들을 “사람이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땐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라며
자신의 나름의 이유와 사연을 보는 사람에게 설득시켜 버린다.

미쓰 홍당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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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따지고 보면, ‘양미숙스러운’ 단점들을 누구든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 다만 우리는 사회생활을 보다 원활히 하기 위해 그것을
적당히 감추거나 포장하는 테크닉을 익힐 뿐이며, 나아가 이것을 ‘사회화’라 부르기도 한다. 양미숙이 드러내는 공격성과
악착스러움은 그녀처럼 여러 모로 미성숙할 수밖에 없는 20대, 특히 그리 예쁘지도 호감을 받을 만한 성격도 환경도 갖추지 못한
젊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특징들이기도 하다. 다만 양미숙은 그것을 좀더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을 뿐. 그녀의 소동극을
보며 한참을 웃던 관객들이 어느 순간 그녀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고, 영화 말미에 이르러서는 그녀에게 (약간의 동병상련과
연민이 뒤섞인) 응원과 격려를 보내게 되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비록 나이차이가 난다고는 해도 그녀에게 둘도 없는 단짝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다. 야유와 휴지와 각종 쓰레기가 쏟아지는 무대에서 새뮤얼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대사를 읊조리는 그녀들의 얼굴이 그토록 밝은 이유다. 영화 중반까지 계속해서 짜증내고 소리를 지르고 찡그려져 있던 양미숙의 얼굴이 이 새로운 친구, 서종희와 함께 하며 종종 활짝 웃는 얼굴을 보인다는 것이 이 영화가 상영되는 시간 동안 양미숙에게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 변화에 열심히 응원하고 격려할 수밖에 없다.

<미쓰 홍당무>로 데뷔한 이경미 감독은 캐릭터의 독특함에 영화 전체가 오히려 눌려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고, 다소 비현실적이고 ‘황당한’ 상황, 예컨대 축제 때
다른 아이들의 공연 씬이나 어학실습실 씬 등의 장면들을 영화 군데군데 넣으면서도 이것을 매우 솜씨좋게 요리해 끌어간다. 관객들이
충분히 그 장면들을 즐기고 참여할 수 있도록, 그리고 어느새 인물들에게 한걸음 쓱 다가설 수 있도록 리듬감을 탁월하게 조율해
나가는 솜씨를 자랑한다. <미쓰 홍당무>가 올해 나온 가장 훌륭한 작품은 아닐지라도, 가장 주목해야 할 작품인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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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One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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