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 & 고티에 카퓌송 듀오 리사이틀

바이올리니스트인 르노 카퓌송과 첼리스트인 고티에 카퓌송의 듀오 리사이틀이 최근 호암아트홀에서 열렸다. 76년생인 르노와 81년생인 고티에는 각자 내한을 한 적은 있지만 한국에서 한 무대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로 개성이 다르면서도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었던 이 날의 연주는 지적이면서도 단단한 열정을 뿜어낸 명공연이었다.

애초에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주곡이 별로 없기도 하지만, 이 날 프로그램은 일반적인 청중에게는 난해할 수밖에 없는 현대음악들로 구성됐다. 슐호프와 라벨, 그리고 코다이의 이중주 곡들이 그것이다. 불협화음의 충돌과 혼란 속에서도 은은한 열정을 감추고 있는 이 곡들은 클래식 매니아가 아닌 일반 청중들에겐 낯설고 난해하기 짝이 없는 데다 정교한 테크닉을 요하는 작품들이다.

바이올린과 첼로가 거의 대등하게 겨루는 슐호프의 작품에서 바이올린과 첼로는 무림의 최고 고수 둘이 서로 대결을 하면서도 하나의 우아한 춤을 이루는 광경 같은 소리를 들려줬다. 첼로가 두드러지는 라벨의 곡은 원래 드뷔시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곡이다. 르노의 바이올린이 진중하고 이지적인 차분함으로 한발 물러선 듯했다면 고티에의 첼로는 마치 젊음의 격정으로 질주하는 듯했다. 만약 라벨의 곡만 들었다면 엄격한 절제미와 수줍음이 르노의 연주 스타일이라고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터미션 후 2부에서 코다이의 곡이 연주되자, 르노의 바이올린은 진중하게 받쳐주는 고티에의 첼로를 타고 마치 하늘을 나는 듯 우아한 열정을 뿜어냈다. 호흡과 조화는 완벽했고 끊어질 듯 말 듯 피아니시모로 악장을 마무리할 때마다 객석의 숨소리마저 쥐고 흔들었다.

Capuçon Duo

르노 카퓌송과 고티에 카퓌송의 리허설 모습.

하지만 이들의 연주가 무작정 격정을 터뜨리는 식은 아니다. 얼핏 듣기엔 엄격하고 정확한 테크닉에 타이트하고 차분한 절제미로 격정을 한 번 누르는 듯하다. 그러나 계속 듣다보면 그 밑에 마치 드글드글 끓어오르는 용암과 같은 열정이 느껴진다. 칼주름을 세운 하얀 와이셔츠에서 단추 둘만 푼 조각남을 볼 때 느껴질 법한 섹시함이 카퓌송 형제의 음악에 있다. 한 꺼풀 가려져 있기에 더욱 뜨겁게 느껴지는 열정인 셈이다. 그러면서도 무겁거나 부담스럽지 않고 젊은 생동감과 경쾌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형인 르노는 좀더 이성적인 면모에 수줍으면서도 완숙한 열정의 스타일로 바이올린을 연주한다면, 고티에는 젊음을 과시하듯 질주하면서도 이를 사려깊은 진중함으로 감싼 듯한 스타일로 첼로를 연주한다. 형이 차가운 불꽃이라면 동생은 뜨거운, 펄펄 끓는 얼음이다. 그렇게 다른 스타일이 완벽한 호흡으로 음을 주고받으며 연주하자 마치 하나의 악기가 동시에 두 가지 소리를 내는 듯한 음악이 된다. 이들의 연주는 노장의 깊이와 통찰을 갖추진 못했다 해도 젊은 연주자답지 않은 노련함을 패기와 함께 드러냈다.

객석은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고, 형제는 헨델-할보르센의 파사칼리아 사단조를 앵콜곡으로 연주했다. 본 프로그램의 연주가 숨겨진 열정에도 불구하고 지적인 면에 더 호소했다면, 앵콜연주는 여전한 절제미에도 불구하고 애절한 격정이 폭발했다. 그예 기립박수가 나왔다. 바로크 음악이나 낭만파의 곡 등 국내 청중들에게 좀 더 익숙한 곡을 이중주곡으로 편곡해 들려줬다면 과연 어떤 연주가 나왔을지, 이 앵콜곡 하나로 기대와 호기심을 폭발하게 만들었다. 두 카퓌송의 듀오 연주는 이렇게 객석을 흥분과 열광으로 몰아넣은 채 막을 내렸다. 앞으로 듀오의 연주를 다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간절하게 기대하게 만든 공연이었다.

프레시안 기사로 올라감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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