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 일지매, 그리고 미네르바

허균의 텍스트에 나오는 홍길동과 이 텍스트가 오랜 시간을 통과하며 고전이 되는 와중 새로 의미가
덧붙여지고 해석이 풍부해지는 가운데 수정 보완된 홍길동, 아울러 이의 일환으로 결정적으로 작년 초 방영됐던 드라마 <쾌도
홍길동>의 결을 통과한 뒤의 홍길동은 좀 다르다. <쾌도 홍길동>에서의 홍길동은 처음에 본인이 대중의 영웅,
인민의 영웅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았고 자신이 지극히 사적인 이유로 행했던 어떤 일들이 민중들에게 의적행위로 ‘오해’를 받았고, 그 와중에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점차 사회에 눈을 뜬다. 그는 대중의 ‘호출’과 ‘요청’에 따라 점차 영웅이 되어갔고, 그는 그런 영웅이 될 만한
충분한 노력과 스스로의 존재증명을 하며 정말 영웅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지지한 이가 왕이 된 뒤에도(그를 왕으로 만드는 데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아예 왕정 자체를 비판하며 계속 싸우고자 한다.

일지매

드라마 <일지매>의 일지매에 투영된 작가들의 민중영웅관은, 좀 많이 허걱스러웠다.

이건 이준기가 나왔던 드라마
<일지매>와도 대조가 되는 설정이다. 이준기의 <일지매>에서 일지매는 순전히 개인적 필요에 의해 일련의
행동을 하면서 의적으로 오해받자 그 오해를 고스란히 자신의 명예로 취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사적인 복수에만 집착한다. 당시
벌어지고 있던 촛불집회의 이미지까지 끌어들인 항의집회에서 그는 민중들의 분노와 저항을 졸지의 자신의 영웅놀음으로 탈바꿈시키고 집회에 참여한 이들을 순식간에 영웅에 환호하는 구경꾼으로 전락시키는 놀라운
뻔뻔함을 과시하기까지 한다. 내가 배우들에게 느낀 호감과 별개로 이 드라마에 분노를 느꼈던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반면
<쾌도 홍길동>에서의 홍길동은 자신의 사적인 일련의 행동들이 의적의 정의로운 것으로 허구화되는 와중에도 무심하다가
각성을 거치면서 정말로 민중의 요구와 희망에 반응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왕의 위협에 겁을 먹은 민중들에게 얻어터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자신과 동지들이 건설한 꼬뮨의 이상을 지키기 위해 죽는다. 나는 여전히 홍자매가 만들고 강지환이 그려내 준 <쾌도
홍길동>의 홍길동이 진정한 의미의 모범적인 민중영웅이라 생각한다. 이는 심지어 원작의 홍길동의 한계까지 전복시킨 것이다.
원작에서의 홍길동은 자신의 지지자들을 이끌고 율도국을 건설한 뒤(홍길동이 실존했으며 율도국의 지리적 위치가 일본이라는 설이
있다) 거기서 왕이 되지 않았는가. 극본을 썼던 홍자매의 지적대로, 신분제에 저항한다면서 또 다른 신분제에서 자신이 왕 자리를
먹은 홍길동이라는 건 역시 양반 출신인 허균의 한계다. 결과적으로는 민중을 팔아먹고는 이씨가 아닌 자신이 왕이 된 것이니.

<쾌도 홍길동>에서 드라마 말미에 가면, 홍길동은
죽었지만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언제 어느 시대에나 홍길동은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영원히 죽지않고
계속 되돌아오는 민중영웅’을 직설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사실 그 드라마에서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들이 건설한
꼬뮨(=산채)에서 관군의 불화살에 육체적 목숨을 바친 홍길동도 진짜 영웅이지만, 활빈당 식구들 모두가 멋진 영웅들이었다.
홍길동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며 가장 나이어린 곰이를 굳이 밖으로 내보내는데, 연씨는 곰이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희생한다. 허이녹은 왕의 아내가 될 수 있었음에도 홍길동 곁에서 함께 싸우기를 ‘스스로 선택’한다. 이들은 모두가 산채를 끝까지
지키며 죽음을 맞지만, 그 죽음은 비참하고 아픈 죽음이 아니라 관군의 불화살을 밤하늘에 가득 핀 불꽃으로 치환시키면서 기쁨과 설레임으로
가득한 또다른 시작이자 꼬뮨의 완성으로 묘사된다.

쾌도 홍길동

마지막을 맞는 활빈당 식구들. 하늘에 가득 쏟아지는 관군의 불화살을 불꽃놀이 보듯 하고 있다.

애초 미네르바는 sonnet님이 지적한
바로 그 이유
, 그리고 2071님이 언급하셨던 비슷한 이유로 나의 영웅이 아니었기에 별 관심도 없었고 잡힌 사람이 진짜인지 아닌지도 관심이 없지만, 직업상
대중문화/대중예술이라 할 만한 분야를 다루고 있는데다 누구의 말을 빌면 사회학적 더듬이와 상상력이 발달해있는 편인 나한테
흥미로운 건 이런 물음들이다 : 왜 사람들은 미네르바를 이토록 숭앙하고, 잡힌 그를 보며 가짜라고 확신하는가. 여기에서 감지되는
대중들의 욕망은 무엇이며 이 현상에서 정작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반-이명박 전선으로 대동단결이라도 해야
할 것처럼 모두가 말하는 근래, 사람들은 경제에 대해 특히 이명박 반대의 입장에서 뭔가 그럴 듯해 보이는 글을 연거푸 쓰는 몇몇
사람을 스타로 만들었고, 그들이 자신들이 바란 욕망을 대변해주는 영웅이 되길 바란 듯 보인다. 그 중 미네르바는 심지어
‘인터넷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렸다는데, 결국 주식과 재테크로 요약되는 글을 써온 그가 대중들의 영웅이 된 데에서 그 욕망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대한민국은 전통적인 부자가 아니라 졸지에 부자가 된 사람들 천지인데, 일확천금을 꿈꾸는
게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닌 시대가 된 건가? 그런데 그가 잡혔고, 신상이 공개된다. 음모론이 만개한다. 그 와중에 우석훈은
미네르바를 홍길동이라 추켜세운다
. 다만 우석훈의 홍길동은 율도국에서 스스로 왕이 된 홍길동이다.

사실 <쾌도 홍길동>의
홍길동의 경우는 대중이 영웅을 호출해내고 거기에 욕망을 투영한 뒤 거기에 선택된 이가 대중의 호출과 욕망에 걸맞게, 그리고
영웅의 이름에 걸맞게 성장한 아주 해피한 케이스에 속한다. 현실 속에서 그런 해피한 케이스는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니까 대중/민중의 영웅이라는 것이 탄생하는 과정은, 그가 워낙 대단하고 뛰어난 영웅이기에 대중이 그를 영웅으로
인정하고 떠받들게 되기보다는, 대중들이 끝없이 영웅을 갈망하고 호출하고 있으며 그렇게 호출된 ‘가상의 영웅’에 자신의 욕망을
투영시키고, 거기에 일견 조건이 맞아들어가는 것 같은 후보를 골라 그 후보가 자신들이 바라는 바로 그 영웅이 되기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지금의 이 난리법석은, 대중이 그렇게 만들어놓은 허상의 영웅 미네르바와 검찰에 잡혔다는 사람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일 터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결국 지금 잡힌 미네르바는 아무리 진짜라도 당연히 가짜일 수밖에 없고(아니
가짜여야만 하고), 앞으로 그 어떤 누가 진짜 미네르바라 나오거나 잡힌들 진짜가 될 수 없다. 결국 모든 미네르바는 가짜일
수밖에 없으며, 뒤집어 말하면, 진짜 미네르바는 없다.

그렇다면 더욱 중요한 건, 결국
미네르바를 통해 대중들이 이루고 싶어했던 그 욕망이 무엇인가, 가 아닐까. 그리고 왜 미네르바 현상이 발생했는가, 가 아닐까.
사실 ‘미네르바 현상’은 이름과 인물만 조금씩 달라졌을 뿐 근래들어 계속 반복해 일어나고 있다. 황우석, 심형래, 신정아,
미네르바를 가로지르는 공통점은 그들이 실제 권위에서 출발했건 허상의 권위에서 출발했건, 사람들의 영웅 취급을 받았으며 그 뒤
그들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노력과 경력과 성과를 통해 권위를 부여받고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날조한 권위를 스스로에게 덧칠하는 형식으로 이들은 점차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만들어나갔고, 어느 순간 그 거품이
터지자 대중의 격렬한 반감과 지지/연민의 충돌점 한가운데에 놓이게 됐다. 날조와 기반의 바탕 위에서 진짜 경력을 만들었거나
만들려다 실패한 이들을 영웅으로 만든 대중의 욕망은 왜곡된 영웅에 대한 욕망, 현실을 도피하려는 욕망이며, 대단히 잘난 누군가가
우리의 꿈을 이루어주기를, 그리하여 그 떡고물이 나한테도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그런 욕망이기도 하다. 좀더 노골적으로 얘기하자면, 주로 백인들의 나라인 세계 선진국들로부터 별로 꿀리지 않을 정도로 고개를 빳빳이 세울 수 있는 나라에서 어깨에 힘줄 수 있는 정도의 돈벼락을 어느 날 맞게 되는 것. 이를 위해 잘난 누군가가 내게 그 정보를 아무 조건없이 그냥 풀어주는 것.

신정아는 실패했지만 나머지 셋은 강한 권력자로부터 핍박받는 순교자, 그럼에도 불의의
권력에 항거하는 투쟁자의 이미지를 지닌다. PD수첩이라는 언론권력과 나아가 제국인 미국, 돈 많은 유태인 지배자들으로부터
핍박받고 협박당한 황우석. 영화권력 충무로로부터 왕따당한 심형래. 그리고 극악한 독재정부로부터 탄압당하는 미네르바. 나는 미네르바가 긴급체포가 된 것에도, 구속영장이 떨어진 것에도 매우 비판적이긴 하지만, 미네르바로 상징되는, 그리고 계속 반복되는 것 같은 어떤 일정한 경향이 더욱 우려스럽다. 단적으로 말해, 파시즘보다도 포퓰리즘의 위험이 더 커보이고 무섭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택광도 히틀러가 등장할 만한 시기로 지적하고 있고, 나는 미네르바 현상에서도 그 흔적을 본다. 쟁가님 역시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고 있다.

다시 드라마로 돌아가면, 시청율에 있어 <쾌도 홍길동>은 <일지매>의 적수가 못 됐다. 물론 드라마의
시청율을 좌우하는 것은 매우 다양한 요소들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한국의 대중들에겐 쾌도 홍길동보다는 용이 일지매가
훨씬 더 친숙한 영웅 이미지라는 것이다. 그 영웅은 철저히 사적인 복수만을 진행시키는 가운데 가끔 떡고물로 돈을 던져주고, 민중
앞에서 쇼를 하며 환호를 챙긴다. 그래도 영웅이라는데. 자기 복수만이 관심사이건 말건 어쨌건 우리한테 가끔 돈을 던져주는데, 정부에 저항하는 것 같은데. 바야흐로 사짜가 횡행하는 세상, 그리고 그 사짜가 정말 사짜가 아닐 것이라는 간절한 믿음과
기대가 정부에 항거하는 민주주의 투쟁으로 둔갑하는 시대가 왔다. 이는 앞으로 더해질 것이다. 향후 10년간, 사짜들이 더욱
횡행할 것이라는 게 내 예상이다. 그럴 수밖에. 지금의 대한민국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기는커녕 다 날리고, 아예 20대가
열심히 일해서 일관된 자기 경력 하나 만들기가 대단히 어려운 시대가 됐으니까. 사짜 경력 만들고 가짜 권위를 만들기라도 해야
사람들이 비로소 눈 한 번이라도 봐주는 시대인데, 재주 좀 있는 놈들이 그런 식으로 가짜 권위를 만들어내려 하는 것도 다
살아남기 위한 투쟁으로까지 보일 정도다. 이건 벌써 일부 20대들도 재빨리 받아들여 활용하고 있는 처세술이기도 하다.

애초 글을 시작했던 며칠 전의 의도와 달리 글이 지나치게 시니컬하게 돼버렸는데, 이렇게까지 깝친다 해도 아마 단 한 마디 문장만 마지막으로 덧붙인다면 무수한 미네르바
지지자들로부터 이 글이 돌 맞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마지막 문장이란 이거다.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다.”

ps. 미네르바 잡혔단 얘기에 가짜란 소리까지 돌면서 쓰기 시작했는데 결국 다 지난 떡밥이 됐다. 뒷북글을 굳이 올린 건, 쓴 게 아까워서.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5 Comments

  1. 고개를 끄덕이며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링크된 우석훈의 글에서 그가 미네르바를 홍길동으로 ‘추켜세운’ 것이 맞나요? 저는 이 글에서 보여지는 뉘앙스와 비슷한 느낌으로 읽었는데……

    • 제 글과 우석훈의 글은 교차하는 곳이 없진 않지만 방향은 정반대인데요. 제 글을 어떤 뉘앙스로 읽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2. [가짜대통령 이명박 사형 결정 전문] 미ㄴㅔ르바? : 官error안봐??

    [百姓有過 在여一人]< ㅓ ㅛ曰>

    대통령 스스로가 법을 존중하고 준수하지 않는다면,
    다른 공직자는 물론,
    국민 누구에게도 법의 준수를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 습헌법? 대통령(노무현) 탄핵 결정 전문> / 가짜대통령 이명박 사형 결정 전문!
    / 관습헌법사항 한 줄조차 몰라서~? 미네르바에게 무슨 법의 준수를 요구하겠답시고??

    의법, 무효대통령! 위헌대통령! 위법대통령! 불법대통령! 사기대통령! 대통령직장물대통령! 사이비대통령! 비합법대통령! 부적법대통령! 가짜대통령! 이명박을 사형으로 처단하라!~@!!
    dead line(2009.02.09.)day
    [명령章!] 이명박을 사형으로 처단하라!~!!.hwp
    대역죄인대통령 치하의 국민들은 다 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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