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프리미어 선정 최고의 드라마 배우들 중

<베토벤 바이러스> 강마에 (김명민)

강마에는 2008년 드라마들에 나왔던 캐릭터 중 가장 엽기스러운 인물이다. 그의 독설은 듣는 사람이 기어이 울면서 뛰쳐나가게 만들고, 안하무인과
독선과 거만함은 하늘을 찌른다. 그런데도 그의 막가는 말은 무지막지한 설득력을 주고,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느새 절대적인 충성과 애정을
자발적으로 바치게 만든다. 급기야는 드라마가 덜컹거리고 주변 캐릭터들이 다 망가지는 와중에도 드라마 전체를 구원해 버린다. 이건 모두 김명민
때문이다. 김명민 덕에 강마에는 사악하고 교활한 악당으로 등장한 뒤 혐오 대신 환호를 받았다. 결국은 속 모르고 어리석은 주변 중생들의 부당한
비난과 배신을 묵묵히 감수하고 홀로 십자가를 지며 중생을 구원하는 예수가 됐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의 마력에 아무도 저항할 수 없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그렇게 뛰어난 미남은 아니다”라고 애써 강변하며 그를 깎아 내리려 해봤자 소용없다. 그는 손 한 번 잡는
것으로도 처녀를 잉태하게 만들만한 남자다.

<달콤한 나의 도시> 오은수 (최강희)

베스트셀러였던 정이현의 동명소설이 드라마화 되면서 주인공으로 최강희가 낙점 됐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의 우려는 그녀가 너무 예쁘다는
거였다. 털털하고 엉뚱한 개구쟁이 소년과 더없이 귀엽고 낭만적인 소녀의 이미지를 함께 가진 그녀의 독특한 매력은 30대에 진입해도 철이 없다거나
주책으로 비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에선 어른으로 대접과 기대를 받지만 자신은 스스로를 여전히 10대의 ‘애’처럼 여기는 30대 여자들의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심리를 가장 적절하게 드러낼 수 있는 특징이 된다. 과연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오은수가 된 최강희는
지금의 30대를 사는 여자들의 가족과 일, 사랑에 대한 고민을 대변해줬다. 이선균과 지현우를 오가며 30대 여자들의 연애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대신 충족시켜 줬고, 성격이 극단적으로 다른 친구들인 진재영과 문정희 사이를 적절히 조율하며 ‘여자들의 우정’에서 의리의 축을 받쳤다.
그러면서도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놓치지 않는다. 참 사랑스러운 그녀다.

<그들이 사는 세상> 정지오 (현빈)

현빈은 여느 귀공자 타입의 미남들과 달리 이상스러운 현실감이 있다. 그렇기에 브라운관이 됐든 스크린이 됐든 언제나, 반쯤은 허구와 판타지의
세계에, 반쯤은 현실 세계에 어정쩡하게 발을 걸친 듯 불안해 보였다. 여자들의 욕망과 환상을 체현해 주는 비현실적인 기표로 소비되는 와중에도
다른 뉘앙스를 만들어내곤 했다. 단순히 ‘대상’으로만 남는 걸 완강히 거부하는 듯한 고집스러운 면모를 종종 내보였다. 게다가 타고난 목소리와
또렷한 발성 덕에, 입만 열면 ‘깨는’ 다른 젊은 배우들과 더욱 달랐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야 현빈은 마침내 현실에 착지해 땅에
굳게 발을 붙이고 섰다. ‘주준영(송혜교)의 성장담’이기도 한 이 드라마에서 현빈이 연기한 정진오정지오는 준영의 ‘롤 모델’로서 여전히 ‘대상’이자
기표로 존재하면서도, 이상적인 면모들 속에 지극히 인간적인 약점과 한계를 함께 가진, 정말로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 보인다. ‘배우 현민’의
앞으로의 모습이 더욱 기대가 되는 건 이 때문이다.

http://premiere.elle.co.kr


1. 작년 드라마 결산 최고의 캐릭터/배우에 대한 글 중 내가 쓴 것들. 어쩌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쏙쏙 골라 쓰게 됐다.

2. <그들이 사는 세상>의 현빈 캐릭터 이름이 ‘정진오’라 돼 있는 건 아무래도 편집상의 실수… 인 줄 알았는데 보낸 원고 확인해보니 어머나! 오타 낸 게 그대로 실렸어! 이런 민망할 데가!! ‘정진오’가 아니라 ‘정지오’가 맞다. ㅠ.ㅠ

3. <베토벤 바이러스>가 탄탄한 작품성을 자랑하는 드라마라는 데에 전혀 동의할 수 없지만, <달콤한 나의 도시>는 충분히 사랑스러웠고 <그들이 사는 세상>은 (아마 가장 최근 방영됐단 이유가 크긴 하겠지만) 작년 드라마 중 나의 베스트이기도 하다. 노희경 식 내레이션은 이제 너무 넘친다 싶어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생생하게 손에 잡힐 듯한, 정말 내 옆에 살고있는 사람들인 것만 같은 그 진한 사람냄새에 진심으로 감동하고 울고 웃었다. 그래, 모름지기 드라마란, 이래야 한다.

4. 김명민 글 마지막 문장에 대해 디씨 김명민 갤 사람들 일부가 열광적으로 반응해줬는데, 사실 강마에가 두루미의 손을 잡았던 그 씬에 대한 나름의 오마쥬이다. 물론 팬들이 그걸 모를 리는 없을 거고, 그 반응들 보니 너무 재밌고 즐겁더란.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가 공식 매체에서 칭찬이나 찬사를 듣는 걸 싫어할 팬이 어디 있으랴.

5. 수많은 배우님들, 올해도 수많은 작품들로 우리를 웃기고 울려주세요.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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