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단평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케마님 만세여요 ㅠ.

F. 스콧 핏제럴드와 데이빗 핀처라니 이게 대체 어떤 조합이야, 가능하기는 한 조합이냐, 이러면서 궁금해 죽을 지경으로 두근대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드디어 시사회를 가서 봤는데, 어머나, 전날 밤에 imdb 찾아보고 조금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원작에서 그냥 80세 노인의 몰골로 태어나 나이를 거꾸로 먹다가 갓난아기로 죽는 벤자민 버튼, 이라는 설정만 딱 가져오고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다. 주요 기둥은 그가 데이지([위대한 개츠비]의 여주인공 이름이 바로 데이지다. 물론 영화에서의 성은 책과 달리 뷰캐넌이 아니라 풀러이지만)라는 여자와 평생에 걸쳐 나누는 사랑 이야기인 셈인데 이 사랑 이야기가 나는… 미칠 듯이 좋았다! 그러니까 이건 영화나 이런 데에서 그냥 피상적으로 다루는 일생의 단 한 명의 영원하고 절대적인 사랑 운운이 아니라, 가장 완벽한 형태의, 서로 완전히 신뢰하고 아끼며 우정에 기반하면서도 불꽃을 가진 바로 그런 사랑이다. 그래서 이들이 사랑의 절정을 맞는 것도 20대가 아니라 40대가 되어서고. 하지만 뭐 어린 데이지가 침대 밑에서 노인 몰골의 어린 벤자민의 뺨을 만지던 그 짧은 순간도 무지 로맨틱하고 예뻤다. 늙은 데이지가 갓난아기 벤자민을 품에 안고 있는 장면도, 그 갓난아기 벤자민이 할머니 데이지 품에 안겨 생의 마지막 눈을 감는 장면도 눈물이 절로 나왔다.

이 영화의 색채는 사실 내가 핏제럴드의 소설들을 읽으며 느끼고 그렸던 색과는 많이 다른 편인데,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풍겨나오는 그 빛나는 로맨티시즘은 핏제럴드의 로맨티시즘에서 속물성과 시니컬함을 살짝 뺀 버전과 똑 닮았다. 그래서 더 빛나고, 아름답고, 황홀하다. 성인이 된 데이지가 처음 등장하는 데에서 데이지는 영락없이 [위대한 개츠비]의 그 속물적이고 얄팍한 데이지와 똑 닮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달라진다. 핏제랄드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묵직한 진지함이 벤자민과 데이지에게 스며든다.

당연히도, 이 영화가 말하는 건 사랑만은 아니고, 실은 삶과 죽음의 교차이다. 원작과 전혀 달리 벤자민 버튼은 친부한테서 버려져 양로원에서 자라게 되는데, 이크 양로원이 어딘가. 인생의 황혼기에 있는 사람들이 죽음을 맞는 곳 아니던가. 애초 영화의 시작부터 죽음을 눈앞에 둔 데이지의 회상으로 시작하면서 이 영화에는 끊임없이 삶과 죽음이 교차하며 죽음이 삶의 일부임을 조용히 웅변하고, 그리고 인생의 이런저런 순간들이 얼마나, 정말 얼마나 빛나는 순간들인지 절절하게 그려내는지라, 이 영화만한 ‘삶의 찬가’도 보기 힘들겠단 생각이 든다. 실제로 벤자민 버튼은 나이를 먹으며 점점 빛나는 젊음을 얻어가고 그간 인생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를 바탕삼아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낸다. 반면 데이지는 교통사고 이후 꿈을 접고, 한없이 빛나는 육체를 가진 벤자민 앞에서 자신의 늙은 육체를 부끄러워 하는데, 아이고, 그 절절함과 애잔함이 못내 마음 아프면서도, 원숙하게 나이를 먹어가는 데이지의 모습이 또 너무나 아름답게 빛나면서, 치매를 겪으며 ‘아이’가 된 벤자민을 거두는 그녀의 손길의 그 따뜻함이 스크린을 보는 나한테까지 온몸으로 전해지면서, …

사실 나는 퀴니가 처음 등장해 벤자민을 향해 첫 대사를 칠 때부터 그냥 눈물 펑펑펑이었는데, 퀴니 역의 타라지 P. 헨슨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고 백배 동감을 했다. 그냥 퀴니 언니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완소 감동 대사들이라능. 2시간 46분, 꽤 긴 러닝타임에 중간에 살짝 지루한 부분도 없진 않지만, “내 인생은 소설로 쓰면 대하소설”이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데, 말그대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그깟 세 시간에 보는 거면, 짧게 보는 거지. 그냥 이 영화는 논리적으로 어쩌고 저쩌고 떠들기보다 그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느끼는 수밖에 없는 듯. 큰일이다, 리뷰를 쓰려면 아무래도 개봉 전에 한 번 더 봐야겠다. 하여간에 결론은,

핀처행님 만세! 케마님 만세! 핀처행님 짱이에요 케마님을 이토록 아름답게 그려주시다니 엉엉엉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5 Comments

  1. 전 원작도 안 보고, 영화도 안 봤지만. “어린 데이지가 노인 벤자민을 쓰다듬고, 아기 벤자민이 노인 데이지 품에 안겨 죽는다”는 말이 왜 부모자식간에 서로 양쪽 역할을 다 해보는 사랑이 생각이 날까. 그니까 저 커플은 부모심정, 자식심정, 부부심정 다 아는 커플인건가.

    • 응, 아마도 그래서 ‘완전한’ 사랑… 제 감정에만 취해 눈멀게 미쳐 날뛰는 사랑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현실적이고도 실현 가능하면서도 서로 노력해서 아름답게 가꾸어나가는 사랑… 이었어. 하지만 그것말고도, 영화가 좀 심오하더라. 생각할수록 좀 어렵기도 하고.

      원작하곤 거의 상관이 없음. 나이를 거꾸로 먹어가는 남자, 라는 설정 외에는 원작과 전혀 관련이 없으니까. :) 영화 아직 개봉 안 했는데, 러닝타임도 길고 해서 좀 어렵겠지만, 그래도 볼 수 있는 기회를 잡길.

  2. 나도 중후반부터는 거의 속으로 엉엉 울면서 봤네그려.
    피츠제럴드의 원작은 안 읽어봤다만, 상실한 것에 대한 처연한 동경이라는 측면에서 피츠제럴드의 정서 그대로 같더만.
    역시 핀처 짱.

    • 피츠제럴드와 완전히 다른 길을 감으로써 오히려 피츠제럴드적 정서를 재현해냈달까. 원작은 일종의 풍자 캐리커쳐 단편이야. [위대한 개츠비] 같은 빛나고 허망한 로맨티시즘은 별로 보이지 않더군.

  3. Pingback: 잠보니스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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