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드랜드>에 대한 반쪽자리 수다

어제월요일 밤에 <타이드랜드> 일반시사회에 참석을 하기는 했는데, 일단 시작을 놓쳤고, 앉은 자리가 스피커 때문에 화면이 가려져서, 자포자기하고 그냥 자버렸다. 하여 리뷰도 단평도 아직은 쓰기 어렵고, 그저 반쪽자리 수다나 떨어볼까 한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게 화요일이라 요일 표기에 문제가 있었다.)

1. 적어도 내가 확인한 장면들에만 의한다면 <타이드랜드>를 표현할 한 단어는 바로 이것이다, 밑을 긁어보시라.

똘.끼.충.만

도중에 사람들이 나가버리고, 끝나고나서도 여기저기서 한숨과 원망의 짜증이 들린 게 당연했다. 판타지인 줄 알고 애를 데리고 온 부모나 월요일부터 회사에서 퇴근하고 눈썹을 휘날리며 달려와 피로한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고자 했던 직장인들에게 이 영화는 거의 악몽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12 몽키스>의 브래드 피트나 <브라질>의 조너선 프라이스한테서 엿보이듯 원래 테리 길리엄 감독한테 똘끼가 좀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독이 오를 대로 올라 작정하고 똘끼를 끝까지 밀어부쳤다고.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아빠가 애 앞에서 버젓이 마약주사를 준비하고, 그걸 열두어 살짜리 애가 ‘숙달된 조교’의 손놀림으로 아빠 팔뚝에 놔준다고 생각해보라. 심지어 그애는 편하게 취해있으라고 아버지 팔도 머리 위로 올려주고 옆에 거슬리는 물건도 치워주고 다리도 의자 위로 펴준다. 기겁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정신지체인 성인 남성과 어린 여자아이 사이에 성적인 코드가 묘사된다고 할 때 그걸 마음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애가 보는 앞에서 사람 시체, 그것도 애 아버지의 시체를 박제로 만들기 위해 배에 칼을 꽂는 건?  이 정도면 법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정신적으로는 거의 아동학대 수준이지 싶다.

2. 그래서 이 영화가 완성도가 이상한 졸작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과잉’의 측면이 없지 않지만, 내용 자체가 애의 기괴한 현실과 더 기괴한 판타지가 섞여들어가는 내용이고 그걸 표현해내는 수단으로 ‘과잉의 비주얼’을 선택한 거라면, 그 선택은 충분히 존중받을 만하다. 이 스타일에는 나름의 일관성과 원칙이 보이고, 보기에 따라서 사람 억장을 무너뜨리게 만들 수도 있다. 반토막만 보고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내가 본 부분들은 이 아이가 아무리 끔찍한 상황에 처했다 한들 그것을 아이다운 천진난만함과 상상력으로 돌파하고자 하는, 의지가 보이니까. 그러니까 우리에겐 악몽일지 몰라도 제대로 보살핌받지 못한 데다 사회로부터 격리돼 있는 이 아이에겐 총천연색의 천진난만한 꿈의 세계이자 현실인 셈이다. 이 아이의 현실과 꿈을 우리가 ‘악몽’으로만 인지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또 다른 편협함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그것을 ‘악몽’으로 느낄 수밖에 없으며 이를 통해 드러나는 우리의 편협함이야말로 테리 길리엄이 그토록 드러내고자 한 대상, 목적하고자 한 대상일 수도 있다.

Tideland

3. 사람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그 성적코드에 대해 말하자면, 이건 정신지체인을 등장시키고 성을 다루는 텍스트들이 응당 주기 마련인 익숙한 그 혐오감을 주면서도, 동시에 그 혐오감을 떠올리며 몸을 떠는 관객들을 멋적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유는 주인공인 여자아이 질라이자 로즈와 정신지체인 딕킨스, 두 당사자들은 너무나 순수하고 천진난만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의 동물적 본능이 순수하게 발현되는 형태도 아니고, 그렇다고 되지않게 어른의 세계로 아이의 세계를 억지 흉내를 내는 형태도 아니다. 이들은 분명 자기 인생의 어른들의 행위를 모방하고는 있지만, 그 행위는 채 사회화된 방식(그러니까 관습을 인지하고 그것을 좇는 방식)이 되지 않은 형태로 자신들의 진심을 순수하게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된다. 어린아이의 (덜 억압된) 무의식적 성의 측면과, 성인이지만 정신지체를 겪는 억압된 성의 측면이 충돌하여 어느 한 지점으로 수렴된 형태,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은 형태로 드러나는 측면이 있다.

4. 영화의 분위기가 급반전되는 건 영화의 말미, 기차사고가 나서다. 처음으로 소위 ‘정상적인’ 어른이 등장하면서, 아이의 몸을 한 여신은 비로소 아이로 돌아간다. 여기서 ‘정상적인 어른’이라 함은, 아이를 보았을 때 당연히 그 아이를 걱정하고 보살필 줄 아는 어른을 말한다. 이 아주머니는 손지갑에서 귤을 꺼내 그냥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 까서 건네준다. 아이는 아주머니의 품에 안겨 귤을 먹으면서, 대규모 기차사고로 탈선이 된 그 지옥의 현장에서 비로소 평안을 찾는다. 물론 그래서 앞으로 그 아이의 삶이 비로소 제 궤도를 찾을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지만.

5. 제니퍼 틸리와 제프 브릿지스가 각각 아이의 부모로 짧게 출연한다. 주인공을 맡은 조델 펄랜드는 <사일런트 힐>에 나왔던 지금 15살의 소녀인데 연기가 아주 섬뜩할 정도다. 아이의 외모에 아이와 어른의 분위기가 같이 있으면서 너무나 아이스러운 천진함을 그대로 표출하는, 아주 신기한 아이다. 다코타 패닝이나 엘 패닝이 ‘더없이 사랑스럽고 깜찍한’ 분위기로 천재 소리를 들었다면, 이 아이는 그 예쁘고 사랑스러운 외모 안에 그로테스크하고 미스테리한 매력으로 천재 소리를 충분히 들을 만하다.

결론 : 영화 개봉하면 반드시 제대로 다시 보자.

기타 : 미치 컬린의 원작소설이 국내에 출간돼 있다. 참고로 이 작가는, 홈즈 트리뷰트 소설로 늙고 연약한 홈즈를 등장시켜 홈즈 팬들로부터 어마어마하게 욕을 들어먹은 [셜록 홈즈, 마지막 날들]을 쓴 바로 그 사람이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4 Comments

    • 엥, 그랬어요? 전 처음 듣는 얘기인데요.

    • 윽… 길리엄 영감님 보면서 전 계속 그런 느낌 받았는걸요. 도대체 보는 사람 고문하는게 즐겁나 싶을 화면들을 12마리 원숭이와 브라질에서 봤던 기억이… ㅠㅠ

    • 글에서도 썼듯 말씀하신 그 작품들에서 특히 똘끼가 엿보이긴 하지만, ‘공인된 가학성애자’라면… 뭔가 공식적인 고백이나 뭐 그런 게 있는 건 줄 알았지요. 두 작품 다 매우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납니다만 본지도 오래되어… 이참에 다시 볼까 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이 작품에선 완전 똘끼충만인데요, 어제 < 터 파나서스의 상상극장> 예고편(메인 예고편은 아닌 것 같고… 촬영 도중 공개하는 홍보영상인 듯합니다만)을 봤는데, < 이드랜드>는 < 터 파나서스...>의 예고편에 불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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