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와 나 단평

사랑에 빠져 결혼한 신혼부부가 우연히 개를 키우게 된다. 그런데 이 개가 또 유독 지독스럽게 말썽과 사고만 치는 개다. 도저히 적응 안 되는 이 개한테 그래도 정 붙인답시고 온갖 고생을 다 하는 와중에 부부는 수많은 일을 겪는다. 아이를 사산하기도 하고, 진로를 바꾸고, 직장을 옮기고, 임신에 성공해 아이를 낳고, 또 낳고, 실수로 하나를 더 낳고, 이사도 한다. 그렇게 서로 나이를 먹어가며 ‘가정’을 이루고, 함께 살아가고,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이야기. 그리고 사람보다 빨리 늙는 개를 보내며, 죽음도 함께 하는 가족의 이야기다. 

<말리와 나>는 그렇게 제니와 존 부부가 세 아이를 낳고 기르고 나이가 들어가는 아웅다웅 살아가는 일상을 ‘개 키우기’라는 소재를 통해 펼쳐놓는 얘기다. 말썽쟁이 개 때문에 벌어지는 코믹한
에피소드는 주로 영화의 전반부에 포진돼 있고, 그 사이사이 부부의 일상사가 끼어들더니, 어느새 부부의 가족 이야기가 전부를 차지한다. 하긴, 그게 맞을 것이다. 이들의 말썽쟁이 개, 말리는 그저 개가 아니라 함께 지낸 시간이 쌓일수록 점차 이들 가족의 한 구성원이 되어가니까 말이다. 때로 힘들고 어려워 화를 내고 싸우고 울고 하더라도, 이들은 ‘가족’이기에 어려운 시간을 함께 도우며 헤쳐나간다. 그래, 결국 ‘가족’ 이야기고, 보통 사람들의 평범하고 소소한 이야기이다. 다만 유머감각과 글줄 쓰는 능력을 가진 사람의 손에 의해 맛깔나는 이야기로 씌여졌다가, 솜씨 좋은 감독의 손에서 다채로운 희로애락의 삶의 빛깔을 가진, 재미있고 웃기며 찡한 ‘영화’가 됐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함께 시간을 견디어 가며 나이를 먹고 서로 성숙해가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그것이, 여신보다는 이웃집 소녀 같았던, 그리고 이제 우리처럼 얼굴에 주름살을 하나둘 새긴 제니퍼 애니스톤과, 불미스런 사건 이후 한결 순하고 차분해진 표정으로 돌아온 오언 윌슨의 모습이어서 더욱. 그들을 개인적으로 아는 게 아닌데도, 어쩐지 역경과 시련을 헤치고 함께 시간을 지나온, 함께 나이를 먹고있는 동지와 같은 느낌이 든달까. 영화의 마지막 엔딩에서 동물을 전혀 키워본 적이 없는 나도 눈물이 찔끔, 났다. 아마도 동물을 키워봤고, 특히 죽음을 겪었던 이들이라면 이 영화가 더욱 남다르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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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동물을 키워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길에서 유기견이나 유기묘를 봤을 때 반응이 다르다. 예컨대, 몇 년 전에 알던 어떤 사람은 자기 아파트 근처에서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았을 때 도저히 그냥 지나치지 못해 며칠 음식을 챙겨 갖다주더니, 그예 새끼묘 한 마리는 집에 가져가고, 자기 직장 동료들에게 말해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의사를 밝힌 사람들에게 나머지 새끼묘들을 키우도록 나눠주었다. 그는 이미 당시에 한국에도 출판된 [말리와 나]를 읽으며 펑펑 울곤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우연히 길에서 상처입은 유기견을 발견하곤 일단 병원에 데려가 치료부터 받게 한 후 집으로 데려갔다. 자신이 키울 처지는 아니었기에, 열심히 주변 사람들을 수소문하여 개를 맡아줄 사람을 찾아냈다. 내게는 그런 감정이나 행동이 경이로운 종류의 것이다. 만약 내가 조그마한 아이들이 꼬물락대는 걸 봤다면 안됐다 여기기는 해도 음식을 챙겨다 줄 생각까지는 아예 못했을 것이다. 아니, 그런 불쌍한 동물 자체가 내 눈엔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저 지인들의 행동을 목격한 이후 동물에게 관심을 아주 조금 갖게 된 게 변화라면 변화일까. 결국 그런 감정도 ‘학습’을 통해 배우고 고양이 가능한 듯하다. 물론 확실히 배우기 위해서는 결정적이고 실제적인 경험이 필요하겠지만. 어쩌면 우리가 싸이코패스라 부르는 사람들 중 일부도 실은 사람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감정을 배울 기회가 아예 없었던 건지도, 어쩌면 나중에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5 Comments

  1. 좋은 글 밑에 뜬금없는 댓글이긴 하지만. 우리집에는 개가 두번 있었어. 첫번째 개는 그냥 누런 개. 현관 옆에 묶여 있는 개가 무서워서 나는 외출도 못했고, 집에 돌아오는 것도 무서워서 엄마가 개를 잡고 있어야 들어오곤 했어. 전혀 난폭한 개가 아니었고 착한 개였어. 하지만 나는 무서웠어. 동네 쥐 잡는 날 쥐약을 먹고 개가 죽었는데 나는 홀가분한 기분이었어. 집에 마음 껏 드나들 수 있게 되었으니까. 두번째 개는 하얀 품격있는 말티즈. 동네 살던 엄마 친구네가 아파트로 이사가면서, 고모네가 주택으로 이사간 다음에 데려간댔다고 2주만 맡아달라고 한 거였어. 근데 그게 꼬이면서 우리집에 서너달을 살았지. 나는 개가 무서웠고, 매일 집에 가는 게 무서웠어. 엄마한테 개 좀 어디 가둬달라고 부탁했어. 드디어 개가 떠나는 날 나는 너무나 안심이 되었어. 아마 내가 사람이 아니고 개로 태어났으면 개싸이코패스가 되었을거야. 나는 개가 무서워. 개가 하는 모든 행동들이 다 무서워서 격리시키고 싶어. T_T. 학습이 되는 종류의 감정이 아닐꺼야.

    • 음. 왜 그럴까. 개가 너무 크게 느껴져서는 아닐까. 난 확실히 개보다 고양이에게 더 관심이 가지만, 그렇다고 개가 무섭진 않은데…

    • 코딱지만한 개도 무서운 걸. T_T

  2. 저도 수니를 키우니까, 이제 밤골목의 길고냥이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구요.
    그전까지는 불쑥 튀어나오는 놈들 말고는 본 적이 없는데….
    그리고, 그놈들을 보는 마음도 예전과는 되게 달라요.

    반대로,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마음 또한 학습되는 것 맞는 것 같아요. 많이 맞고 자란 아이들은 동물들한테나 힘이 약한 또래들한테 되게 잔인하거든요.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 이런거 없는 아이들도 있구요. 그런 아이 뒤에는 그런 폭력을 아이에게 함부로 휘두르는 어른이 있죠.

    • 네, 폭력도 학습의 결과인 듯해요. 보통 난폭한 애들은 폭력을 당하면서의 분노와 무력감 같은 걸 다른 이들에게 투사하는 경우가 많죠. 폭력남편들도 보면 폭력아버지 밑에서 큰 경우가 대다수라고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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