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볼루셔너리 로드 단평

한줄평 : 베티 프리단의 역저 [여성의 신비]가 나온 배경을 생생히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중산층’이란 말이 내포하는 의미는 단순히 사회계층을 지칭하는 것 이상이다. 포디즘(포드주의)이 정점을 찍으면서 가져온 물질적 풍요와 소비의 증가를 통해 노동자들이 중산층으로 안정을 누렸던 시기는 포디즘이 처음 등장한 1910년대가 아니라 1950년대에서 60년대였다. 그러나 이 때가 과연 행복한 시대였냐 하면, 그건 아니다. 재즈의 시대(Jazz Age : 1920년에서 1929년까지, 혹은 세계1차 대전 직후부터 뉴욕 증시 폭락까지)에 반짝 등장했다가 대공황과 전쟁으로 잠시 유예됐던 물질주의와 소비 향락 속에서 중산층은 안정과 함께 권태와 무력감을, 그리고 지리멸렬한 자기혐오 등을 경험하게 된다. 자본과 물질과 소비에 대한 정신의 패배, 라고 해야 할까. 이를 풍자한 조지 로메로 감독의 좀비 3부작, 그러니까 <리빙 데드> 혹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X> 시리즈의 첫 작품인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처음 나온 게 바로 이 영화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해로부터 13년 후인 1968년이다. 참고로 미국의 50년대를 대표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를 고르라면 ‘매카시즘’이 될 것이다. 매카시 광풍은, 또 한편으로는, 노동자 계급 출신이 중산층 혹은 그 위로 계급이동을 하기 위해 소위 애국심을 무기로 기존의 기득권자들에게 도전했고 이를 일정 정도 성취했다는 측면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특히 이 시기는 소위 ‘현모양처’로서 가정에만 충실하던, 그러나 제대로 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수많은 중산층의
여성들이 이유없는 무력감과 우울증, 히스테리를 호소하던 때였다. 물론 당시는 이것이 그저 개인의 특성처럼 치부되었지만, 이
현상을 연구하던 한 심리학자는 이것이 그저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중산층 여성 일반에게 나타나는 대단히 공통적이고 사회적인
현상임을 밝혀내는데, 그 학자가 바로 베티 프리단이고 그 연구의 결과서가 바로 미국에서 제2의 페미니즘 운동을 일으켰다고 평가받는
[여성의 신비]다. 그리고 이 시기의 불안하고 어두운 면들을 속속들이 잡아내고 묘사해낸 영화가 바로 <레볼루셔너리 로드>다. 영화 안에서 이 작품의 배경이 1955년이라고 명시되고 있기도 하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사랑에 빠져 결혼한 프랭크(리어나도 디카프리오)와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이 교외에서 살며 지리멸렬한 ‘현실’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는다. 둘이 처음 만나던 순간을 묘사하기는 하지만, 영화는 이들의 만남과 사랑, 결혼 등에 관해 별다른 시간 할애 없이 곧장 아이 둘 낳고 살고 있는 7년 후를 보여주며, 이들의 과거는 간간히, 극히 짧은 대사나 플래시백으로만 제시될 뿐이다. 적당히 바람을 피우거나 성질을 내며 싸우는 이 부부가 연애 시절의 불꽃을 되찾는 것은 파리행을 결심하고서다. 에이프릴의 열정적인 제안에 설득당한 프랭크는 에이프릴과 함께 잠시잠깐의 행복과 혼연일체감을 느끼는데, 이들의 짧은 행복은 승진을 제안받은 프랭크의 망설임과 에이프릴의 임신 앞에서 사라지고 만다. 프랭크는 에이프릴의 임신을 ‘무기’로 사용하며 파리행을 포기할 것을 에이프릴에게 설득하고, 심지어 에이프릴을 비난하며, 그들이 함께 꾸었던 꿈을 삽시간에 짓밟는다. 낙태를 고려하는 그녀를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사람으로 모는 심중엔, 정말로 생명에 대한 배려가 있다기보다는 물질적 성공과 사회적 출세에 대한 욕망과, 그녀를 지배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모든 윤리적, 도덕적 판단과 그에 대한 책임까지도 에이프릴에게 미루는 비겁한 면모를 보이면서까지 그가 지키고 싶었던 자존심과 권위란, 지금 우리들의 눈에는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당시에는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것이었을 것이다. 가부장으로서의 권위란, 남자들에겐 목숨을 내놓고서라도 지켜야 할 신성한 무엇이다. 여자가 아름다움과 사랑받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든다면, 남자는 가족을 부양하는 경제력과 가장으로서의 권위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 그것이, 오랫동안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로 통제되던 사회에서 일반적인 남녀의 모습이다. 그는 자신이 몇 가지 잘못을 저지르긴 했지만 그래도 아내를 사랑하는 좋은 남편이라 스스로 생각했을 것이고, 그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적대시하는 에이프릴에게서 정말로 상처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지금의 눈으로 프랭크를 일방적으로 손쉽게 비난하기보다, 당시의 기준을 고려해 프랭크의 심리를 추측해보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그럼에도 프랭크는 여전히 속물적이고 비겁하고 나쁜 놈이긴 하지만.

Revolutionary Road

지나치게 과시적이라 짧게 끝날 수밖에 없는 부부간 행복과 일체감.

중산층의 이런 신기루같은 일상은 두 부부를 통해서만 드러나는 건 아니다. 다른 이에게 호들갑스럽게 친절하고 소위 교양있는 젊은 부부에 대한 동경심을 드러내며 남편을 휘두르는 헬렌(캐시 베이츠의 놀라운 연기!)은 실제로 남편에게 무시를 받으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병 때문에 ‘현모양처로서의 실패감’을 컴플렉스로 안고 살아간다. 프랭크-에이프릴 부부와 친구로 나오는 셰프-밀리 부부 역시 겉으로 금슬좋고 평화롭지만 공허한 가족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건 마찬가지. 밀리는 남편도 자유를 꿈꾸며 자신을 낯선 세계로 데려가려 할까 봐 겁을 내고, 그러면서도 남편의 눈치를 보기에 바쁘고, 셰프는 자신의 꿈과 소망을 속으로만 은밀히 판타지로 남겨둔다.

아마도 영화를 보는 이의 성별에 따라 아마도 감정이입의 대상이 다를 것이다. 샘 멘데스 감독은 프랭크(리어나도 디카프리오)와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그 둘의 꿈과 사랑과 갈등과 대립을 묘사해 내는 듯하다. (남자 관객의 반응을 듣고 싶다.) 여자 관객인데다 삼십대 중반이 되도록 여전히 소위 ‘철없이’ 살고있는 나로서는 아무래도 에이프릴에 전적으로 감정이입해서 보았고, 에이프릴의 꿈과 희망이 다소 몽상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은 십분 인정하더라도, 그녀에게 파리가 구체적인 지명이라기보다는 중산층의 현모양처라는, 그 보이지 않는 유리벽의 갑갑한 굴레를 벗어나 도달하고픈 곳의 일종의 ‘상징’이었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한다. 직설법 대사로도 드러나 버리기는 하지만. 이후 그녀를 집에 잡아두려는 프랭크의 설득과 위협이 과연 어떻게 에이프릴을 ‘정신병자’로 만드는가. 그 패턴은, 베티 프리단이 연구했던 주제를 그대로 눈앞에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결국 에이프릴이 선택한 위험한 행동 역시, 2세대 페미니스트들이 가장 격렬하게 외쳤던 권리와도 명백한 연관이 있다. 

둘이 직접 맞붙어 (원래대로라면) 불꽃같은 전쟁을 벌이는 장면도 나오는데, 케이트 윈슬렛의 포스에 못 미치는 리어나도 디카프리오 연기가 좀 안타깝다. 케이트 윈슬렛은 역시, 가슴 속에 불꽃을 안고 살아가며 시대와, 혹은 주변과 불화하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에 가장 빛나고 에너제틱하다. 사실 데뷔작 <천상의 피조물들>부터 그녀가 맡았던 역은 거의 언제나 그랬다. 심지어 <센스, 센서빌리티>에서도 그녀의 마리앤은 ‘여염집 규수’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조신한 행동거지 대신, 사랑하고 느끼는 대로 거침없이 행동하는 캐릭터이지 않는가. 겉모습은 단아한 옷차림의 중산층 주부지만 가슴 속에 천불을 안고 사는 열정적인 에이프릴은 케이트 윈슬렛에게 그야말로 적역의 캐릭터다. 반면 ‘두 딸을 거느린 아버지’ 리어나도 디카프리오는 어쩐지… 좀…

샘 멘데스의 연출은, 아무래도 그가 연극연출가로서 더 명망이 높다는 사실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장면 장면이 어쩐지 대단히 연극적으로 보인다. 심지어 거실과 식당을 유려하고 요란하게(…) 그리고 컷 없이 오가는 카메라 워킹에서도, 나는 어쩐지 프로시니엄 아치를 벗어나지 못 하는 갑갑함을 많이 느꼈다. 이건 한편으로는, ‘중산층의 집’ 안에 갇힌 주인공들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더없이 어울리는 연출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영화로서의 미덕이나 장점이 상당 부분 무시되는 듯한 느낌이기도 해서 뒷맛이 개운하지도 못 하다. 연극을 그대로 영화로 옮겨온 듯한 느낌이 드는 수많은 영화들, 예컨대 최근에 본 <다우트>의 경우에도 그런 연극적인 특징들이 개운치 못 하다거나 답답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느껴지진 않았는데, <아메리칸 뷰티>에서도 그랬지만 샘 멘데스의 연출엔 어딘가 모르게 사람 참 깝깝하게 만드는, 그리고 인공적으로 갈등이 압축된 듯한 느낌이 좀 있다. 하지만 이건 <로드 투 퍼디션>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단정지어 말하기에는 좀 위험한 점이긴 하고…

그런데 이 영화가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에 대한 굉장한 해설서 기능을 하기는 하지만, 역시 만든 이가 남자라는 점은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서 에이프릴의 열정을 이해하거나 존중하는 사람들은 어째 모두 남자들뿐이란 게, 내게는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는데, 만든 감독 입장에서는 전혀 어색하거나 걸리는 점이 없었을 듯.

(근데 무슨 단평이 이리 기냐능? ㅋㅋ)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4 Comments

  1. 나 이거 보고 싶더라. 예고편만 보고도 막 울었잖아.

    • 영화 잘 만들긴 했는데, 보고나면 가슴이 깝깝~해서 한숨만 나올 수도. 케이트는 정말 짱이라능.

  2. 영화평이 어쩨….
    사회나 가정에서 아픈기역들이 많은 분이 쓰신 것 같은데…
    영화를 받아들이기에 두터운 장벽이 평쓰신분에게 있어서
    평쓰신분의 과거에 덧칠한 느낌이듬니다.
    따뜻하고 평온한 치료를 먼저 받으심이 어떨지…

    그리고 영화 다시 한번 보세요…발가벗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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