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스코시지 | 성난 황소 (2)

다시 본 성난 황소, 내 인생의 영화로 등극하다


부산에서 불과 얼마 전에 <성난 황소>를 봤던 터라, 이번 서울행에서 내가 그토록 단단히 기대하고 갔던 우디 앨런의 영화들이나 <비열한 거리>에 비하면 <성난 황소>를 보고자 하는 절박함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다시 보지 않았다면 땅을 치고 후회할 뻔했다. <성난 황소>의 열렬한 팬이자 서울아트시네마의 열혈관객이라는 분이 보내준 ‘완전 뜯어고친 버전’의 자막으로 상영된 이번 <성난 황소> 때문에, 그토록 짧고 그토록 업데이트되는 일이 거의 없던 나의 “내 인생의 영화” 리스트에 또 한 줄이 추가되었을 정도다. 조금 과장을 섞어 말하자면, 서울에서 새 자막으로 본 <성난 황소>는 부산에서 본 <성난 황소>와 또다른 영화였다. 훨씬 더 섬세하고 정밀한 자막 덕에 훨씬 더 냉철한 영화가 되었다. 영화가 끝난 후 류승완 감독의 대화 시간도 별 기대 없었던 것에 비해 상당히 즐거웠다.

* 이 자리를 빌어서… 뉘신지 모르오나 자막을 고쳐주신 그 열혈팬이자 열혈관객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어느 분이신지 안다면 찾아가 넙죽 절이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

사실 부산에서 볼 때, 중간에 잠깐 졸았다. 5분? 그러나 명장의 영화는 그 5분 내에도 참 많은 걸 얘기하는 법이다. 게다가 자막도 다르다. 그리하여 나는 제이크가 코치 품에 안겨 어린애처럼 엉엉 우는 장면이, 챔피언 타이틀 방어 실패가 아니라 뒷돈을 받고 일부러 져준 ‘부정 경기’에 응한 것에 대한 후회 때문이라는 사실을 새로 알았고, 그가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횟수가 꽤 많았다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되었다. 이렇다면 원, 이전의 감상문은 완전히 폐기할 수밖에. 내가 컥컥거리며 울음을 쏟아낸 장면이 제이크가 감옥에 갇혔던 장면에서 동생을 뒤따라가 서투르게 화해를 시도하는 장면으로 바뀐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정말 멋진 영화라는 감탄을 하고 말았던 정도를 넘어서 경배하고픈 마음조차 들게 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제 나는 제이크 라모타가 세상살이에 지독히도 미숙했던, 잘 하는 게 그저 주먹 내지르는 것밖에 없었던, 그렇기에 미들급 권투선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나 그 후 그토록 빠르게 추락할 수밖에 없었던 이 미숙한 인간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마틴 스코시지는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훌륭한 연출 솜씨를 보여주는 한편, 제이크 라모타라는 인간의 궤적을 냉철하게 훑어나가면서 한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하는 그윽한 시선을 동시에 보여준다. 섣불리 동정하지도, 연민하지도, 미화하지도 않는 그는 한 인간을 총체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하나의 훌륭한 사례를 제공해 준다. 우리는 그를 섣불리 좋아할 수도, 영웅 취급할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그저 경멸할 수만도 없다. 그는 고지식하리만치, 심지어 세상살이에 필요한 최소한의 타협과 조화도 거부한 채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려 하였으며, 가장 좋지 않은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깨기도 했다. 이것은 삶을 살아나가는 방식의 미숙함 탓이다. 무조건적인 반항기에, 남편이라고 혹은 형이라고 혹은 챔피언이라고 거들먹거리긴 해도 그 속은 바보스러울 정도로 세상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이 인간이 겪는 추락은 일찌감치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그는 권투선수로서 가장 기본적인 자신과의 싸움 – 즉 체중조절에서 실패하면서 본격적으로 나락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한다.

미성년자 매춘 알선 혐의로 감옥에 갇히고서야, 그는 비로소 자기 탓을 한다. 그 뒤의 그의 삶은 초라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멋모르면서 혈기만 방장했던 이전의 모습은 아니다. 한껏 풀이 죽어 있는 그는 서투르고 우악스러운 방식이긴 해도 동생을 찾아가 용서를 빌기도 하고, 파트너쉽을 이룬, 그럭저럭 애인 아니면 새로운 부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여인에게 나름 자상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그가 무대에서 펼치는 유머는 여전히 공격적이지만 적어도 제이크 라모타 클럽 시절의 거만한 자태는 찾을 수가 없다.

마지막 장면, 거울을 향해 그가 <워터프론트>의 장면을 인용하는 것은 얼핏 그가 자신의 추락에 대해 여전히 남탓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워터프론트>에서 찰리에게 부정경기를 권했던 것은 그의 형이었으며, 제이크는 그 스스로 부정경기를 선택했다. 따지고 보면 제이크의 몰락은 바로 그 부정경기에서 시작한다. 그가 그토록 혈기방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자존심 때문이었다. 마피아와 엮이지 않겠다는. 자신의 실력으로 챔피언 벨트를 따겠다는. 부정경기는, 그 스스로를 부정하며 선택했던 결정이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결국 그는 챔피언 벨트를 땄지만, 그것은 진정으로 그의 것일 수가 없다. 미성년자 매춘 알선 혐의로 기소되었을 때 그가 미련없이 그 챔피언 벨트를 부서뜨려 보석을 전당포에 맡기려고 했던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스포츠를 둘러싼 부정거래가 오직 그의 문제만은 아니었을 터, 다른 선수들 역시 알게 모르게 부정거래에 응했을 터이고, 그리하여 챔피언 벨트를 땄을 것이고, 제이크가 그 사건을 기화로 추락하게 된 것은, 그가 세상살이에 대책없이 미숙하고 서툰 인간이기 때문인 것도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나한테 맞지 않는다고 짐짓 큰소리를 쳐대며 잘난 척은 하지만, 실은 이 세상에서 제대로 살아갈 능력도 의지도 그렇다고 혁명을 꿈꿀 주제도 못 되는 바로 나같은 무능력자, 패배자의 초상이 바로 제이크 라모타가 아닐지. 그리하여 이 영화는 또 한편으로는, 내 앞으로의 삶의 한 가지 가능성을 미리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래 나는 저런 식의 추락을 면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떡해야 한단 말이냐.

ps. 영화 뒤 류승완과의 대담이 너무나 즐거웠던 것이, 그가 ‘영화감독’으로서 ‘강의’를 한 것이 아니라 영화를 너무나 사랑하는 ‘팬’으로서 다른 관객들과 ‘교감’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나는 인터메조가 흐르는 가운데 제이크가 쉐도우 복싱을 하는 이 영화의 오프닝을 놓치고서는 영화를 다 봤다고 할 수 없다는 그의 말에 100% 공감하며, 그 밖에도 그 대담 시간에 그가 했던 말들에 대부분 동의한다.

* 이 영화는 4월 30일부터 5월 5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류승완의 액션스쿨” 프로그램에서 상영되었습니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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