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하워드 | 프로스트 vs. 닉슨 Frost/Nixon (2008)

‘혁명으로 건설된’ 나라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미국(미국의 독립전쟁은 영어로 The Revolutionary War라 표기된다)의 정치 역사상 가장 절망적이었던 때는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졌던 때가 아니라 닉슨이 사임했을 때가 아니었을까. 대체로 미국민들은 자기들의 자랑스런 정치 역사에 ‘쪽팔린 순간’이 추가되는 걸 극도로 꺼리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부시가 당선됐던 바로 그 대통령 선거 때도 고어는 ‘미국 역사에 쪽팔린 순간’을 공식적으로 하나 더 추가하지 않기 위해 패배를 수긍하지 않았던가. 어쨌든 그렇게 사임한 닉슨을 두고 영국 출신의 예능계 MC인 데이빗 프로스트(우리나라로 치면 야망에 불타는 김구라 버전이라 해야 할까)가 출세욕과 시청율 욕심에 불타 닉슨을 인터뷰할 계획을 세운다. 당연히 닉슨은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그 완숙한 정치인의 능구렁이 기질로 별것도 아닌 만만한 놈 하나 놀려먹으며 50만 달러나 되는 거액의 출연료를 챙길 생각으로 이 인터뷰에 응한다. 그리고 결과는? 역사에 공식 기록된 대로, 그리고 사람들이 알고있는 대로다.

론 하워드 감독은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이 드라마를 매우 경쾌한 코미디를 섞어 ‘못난 놈이 유능한 놈 엎어메치는’ 1:1 스포츠영화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상업적 영화에 매우 능한 솜씨를 부리는 감독인 만큼, <프로스트 vs. 닉슨>은 매우 흥미진진한 극적인 게임을 보는 듯 재미가 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평생 닉슨 연구를 하며 저술을 한 지식인이나 정치와 시사에 능한 일급 지적인 방송인이 아니라, 예능계를 떠돌며 예컨대 ‘달인을 소개하고 연예인 가쉽을 다루던’ 바람둥이 연예인(인터뷰어나 저널리스트가 아니다)이다. 그들은 철저히 프로스트를 빛내주기 위해, 그러니까 프로스트가 닉슨을 제대로 공격할 수 있도록 각종 자료조사와 예상질문과 가상 인터뷰 훈련을 도와주는 조력자들로 등장한다. 사임하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거나 사과하지 않은 뻔뻔한, 그러나 심리게임과 정치싸움에 매우 능한 거대한 산 하나를, 그런 연예인 하나가 어느 한 순간 클로즈업 하나로 패배를 시켜버린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호동이나 유재석이나 김구라 같은 이가 전세계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전두환을 무장해제버린 사건이라 해야 할까. 그러니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지 않을 수 있을까.

Frost/Nixon

하지만 론 하워드는, 애초 프로스트가 이 거대한 싸움에 도전한 동기와 과정인 ‘시청율 만능주의’과 ‘선정적인 돈 잔치 미디어 전쟁’에 대해선 어물쩍 넘어간다. 프로스트의 조력자였던 저술가이자 지식인인 짐 레스터의 입을 빌려 미디어의 클로즈업이라는 것이 어느 한 인물의 인생 전체를 단지 하나의 컷으로 압축시켜 버린다는 것을 언급하면서도 이것의 놀라운 힘에 그쳐 경탄을 바치고 있을 뿐, 성찰이나 경계 같은 걸 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천하의 그 닉슨을 한순간에 무릎꿇린 바로 그때 그 사건의 승리감에 너무 도취돼 있는 듯 보인달까, 그래서 그 수단의 위험성이나 껄끄러움 따위는 성공이라는 결과 밑에 그저 자연스럽게 묻어버려도 된다 여기는 듯 보인달까. 나를 포함해 미디어를 다루는 이들, 그 중에서도 특히 영상 미디어를 다루는 이들이 언제나 자신의 무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하며 성찰해야 하는 미덕과 윤리라는 게 있는 법인데,  이 영화에선 그게 잠시 잊혀진 듯하다. 하긴, 이 영화는 미디어의 바로 그 순간을 통해 승리를 쟁취한 순간, 그걸 그리고자 했던 영화니까, 하긴 그러니까 론 하워드지, 싶기도 하지만. (거기에, 론 하워드답게 ‘감동의 화해’ 사족까지.)

캐스팅이 매우 화려하다. 일단 닉슨으로 나온 프랭크 란젤라는 온갖 영화들에서 주로 뚱하고 무서운 아저씨로 나왔던 바로 그 아저씨로, 오랜만에 영화의 주인공을 맡아서인지 신나서 날아다니신다. 닉슨의 무섭고 육중한 그 무게감을,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 그 클로즈업의 그 표정을 제대로 구현해주고 계신다. 프로스트로 출연한 이는 <더 퀸>에서 토니 블레어로 출연했던, 얄쌍하게 생긴 바로 그 아저씨. 짐 레스터로 출연하는 샘 록웰은 여전히 그 반짝반짝거리는 섹시한 눈으로 내 가슴을 설레게 만들어 주셨고, 프로스트의 친구이자 PD로는 새로운 미스터 다아시 매튜 맥페이든이 아주 ‘귀엽게’ 출연해주고 계시고, 역시 프로스트 팀에서 함께 조사를 했던 ABC사의 방송인으로 올리버 플랫 출연. (이 아저씨 진짜 오랜만에 얼굴 보네.) 그리고 레베카 홀… 아니 이 언니는 대체 그간 어디서 뭐하고 돌아다니다가 이렇게 오랜만에 얼굴을 비추싱겨? 30대가 되더니 아주 완숙하고 섹시해지셨군. (역시 30대에 더 빛을 발할 외모일 줄 알았다.)

Frost/Nixon

이 아저씨 볼 때마다 너무 이쁘고 섹시한 거, 내 눈에만 그런 거야?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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