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단평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박용우는 자신이 맡은 역에 대해 ‘감정노동자’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도시에서 사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정노동자가 아닐까, 라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감정노동자에 해당하는 바로 그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도시 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직군이 낮고 밑바닥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굳이 지적하고 싶다. 그렇게 본다면 ‘장르영화적 재미’를 기대하고 본 관객에겐 썰렁하고 낯선 이 영화, 실은 도시에서 벌어지는 계급전쟁에 대한 영화라 할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이 그랬던 것처럼.) 연예인이라는 자산을 (일시적으로나마) 소유한 소자본가와, 가진 건 몸뚱이에 심지어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최소한으로나마 존중받을 권리마저 임노동에 저당잡혀버린, 우리 시대 새로운 최하층 노동자인 서비스업 종사자의 극대극 대결. 게다가 이들을 둘러싼 각종 첨단 통신기기들, 특히 ‘핸드폰’의 주요기능과 부기능이 개발해준 일련의 새로운 환경들은, 천박한 자본주의적 욕망이 꾸물대는 이 서울, 멀쩡한 사람들마저 분노 발작으로 또라이와 미친년으로 만들어버리곤 하는 이 서울이라는 저주받을 도시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어떤 다른 영화들도 감히 따라오지 못할 만큼 생생하게 까발리고 있는 셈이다. 혹자들은 이 영화의 ‘지나친 PPL’에 눈쌀을 찌푸리기도 하지만, 글쎄, E마트야말로 대형화, 기업화가 가속화되고, 유통이 콘텐츠의 질마저 결정해버리는 이 기형적인 자본주의의 심장 서울을 드러내는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상징적이고, 가장 대표적인 공간이 아닌가. E마트야 이 영화에 자기네 이름을 대거 노출시키게 됐다고 좋아했겠지만, 감독은 이 E마트야말로 우리의 더러운 욕망의 집합체이자 이것이 체계적으로 어떻게 착취되고 관리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시스템의 대표명사로 사용해 버렸다. (자본주의를 이용해 자본주의를 공격하는, 일반적이면서도 꽤나 영리하고 효과도 높은 방식이라 해야 할까.) 그리고 이 공간의 ‘고객관리팀’에 일하는 감정노동자야말로, 그 시스템 안에서 이미 분노 바이러스에 단단히 감염된 좀비들의 분노 배설구로서 좀비 흉내조차 내지 못 하고 다른 좀비들에게조차 착취되는 최하층 좀비들인 셈이다. 그러니까 박용우가 우는 장면에서 실소를 터뜨린 관객들이라면, 대체로 조직 내에서의 밥벌이의 더러움과 서러움, 특히 3D나 비정규직, 혹은 알바인생의 피맺힌 한을 아직 채 못 겪었을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난 도저히 못 웃겠던데… 오히려 눈물이 나던데.

그렇다면 김한민 감독은 이런 사회고발적 성격을 애초에 의도하고 영화에 공을 들여 집어넣은 걸까, 그저 이야기에 치중하다 보니 소 뒷걸음치다 쥐잡은 격일까. 나는 전자라고 생각한다. 전작 <극락도 살인사건>에서도 그는 거대 제약기업(우리 실제 현실에서 이는 대부분 재벌에 속해있다)의 탐욕에 의한 착취라는 코드를 슬쩍 집어넣은 바 있다. 다만 <극락도 살인사건>이 장르영화적 코드에 지나치게 충실하며 그 코드를 감추려 애썼다면, 그 영화에서의 성공에 자신감이 붙어서인지 <핸드폰>에선 좀더 노골적으로, 때로는 촌스럽게 직접 드러내는 부분이 많아졌다는 것인데, 영화의 아쉬운 부분은 바로 이 부분, 그러니까 직설법으로 소통의 도구는 발달했으나 정작 소통의 방식은 후퇴한 아이러니나 감정노동자가 당하는 착취의 부분을 고발하면서도 이에 대한 내용은 다소 붕뜬 면이 있으며, 이것이 다시 장르영화로서의 미덕과 살짝 겉도는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극락도 살인사건>에서도 그랬지만 인간에 대해 애초 전제돼버린 냉소, 그로 인한 무자비한 피범벅의 역겨움이 여전히 매니악하게 드러나 버린다. (님하 호러 코드는 그리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게 아니라능. 그런데 두 영화 다 스릴러로 시작해 호러로 맺다니, 댁도 고집 좀 센 사람이겠다능.)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의 러닝타임이 2시간 20분이나 된다는 걸 극장에서 나와 시계를 보고서야 알았고, 이 정도면 사회고발 영화로서 충분히 점수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좀더 지적인 내공이 있었다면 영화도 한결 세련돼지면서 더욱 엣지해졌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지만은… 뭐 아직 젊은 감독이니까… 평자들 사이에서 평이 엇갈리는 것도 바로 이 지점 때문이 아닌가 한다. 영화를 ‘읽는’ 사람들이 이 부분을 충분히 제시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ps. 그런데… 이런 영화를 보고나오는 와중에 사람이 너무 많아 정체되는 걸 ‘빨리 가라고’ 밀치는 간이 배밖에 나온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겁이 없는 작자들인지 모르겠다. 에스컬레이터에서 그렇게 밀침을 당하고 넘어질 뻔하는 와중 새치기까지 당한 뒤에, 새삼스레 엄태웅에게 잔혹하게 복수하는 박용우로 나도 변신할 뻔했다능. 가뜩이나 분노 바이러스를 잔뜩 자극받고, 그럼에도 그거 함부로 분출하면 안 되겠다 교훈을 얻고 나온 직후에…

ps2. 제일 놀란 건 역시 박용우였는데, 이 사람… 어째 주연급 된지 오래인데도 본인이 조연급 캐릭터에 더 만족하는 것 같아. <원스 어폰 어 타임> 때도 ‘자뻑 장면’에서 영 스스로 민망해하는 것 같더니만. 하여간 이 사람의 필모그래피를 보다보니, 참 재밌는 행보를 가고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ps3. 2월 19일 목요일 오후 3시, 추가 : 이 영화에서 영상통화니 녹음이니 하는 핸드폰의 각종 부가기능들을 척척 사용하는 주인공들이 조금 경이로웠고, 20대 때만 해도 새로운 기계들의 기본적인 기능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어른들을 살짝 비웃은 적도 있었는데,… 방금, 30분간에 걸친 중요 통화를 하면서 그 전에 녹음 기능을 분명 확인했음에도, 통화 끊고 보니 전혀 녹음이 안 된 것을 발견… 나 녹음되는 거 믿고 메모도 안 했단 말이다! ㅠ.ㅠ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6 Comments

  1. 노바리님 역시 참 글 잘쓰세요. (기자분한테 이런 말씀 드리는게 넌센스지만.. 죄송)

    단평이라지만 [핸드폰]에 드러난 단점과 장점을 분명히 짚어낸 리뷰라는거….

    저 역시 감독의 오바질에 살짝 눈쌀이 찌뿌려졌지만 나름 영화의 구성이 근래 한국영화들에서는 보기 드문 다중 구성이었다는거…

    그렇지만 역시 치정극 코드를 사용한건 내 취향에는 안맞는다는 거..

    결론은 난 이 영화 리뷰 포기했다는 거…

    • 흐, 결국 포기시라니…;;; 다른 분들 리뷰가 좀 궁금했었는데 말이죠.

  2. 전혀보고 싶지 않은 영화였는데 언니 리뷰 보니까 보고 싶다. 멀쩡한 인간이 어떻게 한 순간에 빡이 돌고 눈이 뒤집히는 지 알지. 암. 알고 말고.

    • 응, 게다가 각종 전자기계 문명과 자본주의적 소비문화가 어떻게 우리 환경을 철저히 둘러싸고 있는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주더라고. 박용우 캐릭터가 처음엔 악당이라 소개됐었는데, 충분히 이해도 가고… 오히려 아주 평범하고 소심한 사람이야. 소심해서 더욱 그렇게 미치게 된 걸지도.

      참고로 박용우는 이 영화를 일컬어 나쁜놈(박용우)과 더 나쁜놈(엄태웅)의 대결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더 뽐뿌질이 되지 않나? 근데 후반부의 피범벅은 좀, 과하더라. 라이라면 오히려 좋아할 수도? ㅋ

  3. 저는 영화 주인공이 당연히 박용우 씨일 거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화면에는 엄태웅 씨가 훨씬 많이 나오셔서 좀 놀랐어요 ㅋㅋ

    안으로 끌어안고 사는 인간이 속으로 뒤틀리다 빡 부러져버릴 때는 정말 소름끼치는데… 박용우 씨 캐릭터가 마지막에 어머니 전화 받으면서 죽으시겠다는 말에 “네.. 그러세요. 이제 돈도 없어요.” 하는데 울컥. 여린 사람들이 돌아버려서 시니컬하게 내뱉는 말들이 그래야 하는 상황이 사실 내뱉은 그 사람한테 그대로 상처로 돌아가는데, 자기도 이 말이 얼마나 스스로 파고 드는지 알면서도 내뱉어 버리는 그런 정말 ㅈ같은 상황. 나중에 그대로 후회할 건 아는데도 세상이 무엇보다 자기가 혐오스러워서 그렇게 말을 쏟아버리게 되기까지 정말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힘든가 생각하면 그게 진짜 소름끼쳤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감독님은 유머는 정말 구사 못하시는 것 같아요. 그 핸드폰 추적 해주는 심부름 센타 사람들 계속 ~다는, ~라는 하는 것도 그냥 안 웃기고 유머스러한 장면들 의도하신건 보이는데 웃을 수는 없는 그런 씬들이 꾀 있더라구요. 뭐 웃자고 했던 영화는 아니니까 그게 흠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시종일관 지속되는 긴장을 조금 풀어주시려고 간간이 넣어두신 것 같은데 그 목표는 전혀 달성되지 않으신 것 같아서..

    끝으로 가면서 일을 너무 키워서 우리의 행태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가 제공하던 현실감이 묻히는 것 같아서 아쉽더라구요. 갑자기 박용우 엄태웅이 옆에서 볼 수 있던 혹은 쉽게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던 사람들에서 너무 드라마틱한 인물로 나가버린 느낌이 들었어요. 일상 내의 일탈에서 일상 밖의 일탈(이건 말이 안되나…)로 가버린 뭐 그런…

    아 극장에서 시간은 정말 빨리 가던데 보고 나오니까 머리가 띵 하더라구요. 어찌나 몰아치던지 ㅠㅠ

    • 박용우 씨가 그 캐릭터의 그런 면들을 굉장히 잘 살려줬다고 생각해요. 참, 자칫하면 정말 이해 안 가는 또라이 새끼로 보일 수밖에 없는데도, 그 얼굴에 켜켜이 앉은 피로하며, 참 절절했죠.

      흐, 그 ‘~다능’은 너무 썰렁했죠. 말씀하신 대로 확실히 감독한테 코미디 감각은 없는 듯해요. 끝으로 갈수록 너무 드라마틱한 인물이 됐다는 말씀에도 동감합니다. 매우 현실적으로 시작해 정말 리얼하게 가다가 갑자기 ‘악몽’의 세계로 확 에스컬레이팅돼버린 것도 조금 아쉬운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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