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레슬러 단평

애초 이 영화가 그토록 회자된 것도 대런 아르토프스키나 마리사 토메이나 내용이나 소재 기타 등등 모두 다 제낀 채 오로지 ‘미키 루크’ 때문이었다. 그래서 딱 그걸로만 말하자면.

The Wrestler
그의 진짜 세계는 링 안, 그의 진짜 인생은 온몸으로 피를 뿜어내는 상처에 쏟아지는 환호의 영광이다.

맙소사, 눈물이 난다. 미치도록 눈물난다. 현실에서 마주친다면 결코 좋아할 수 없는 이 무식하고 육중하고 때로는 두렵고 때로는 경멸스러운 이 사내가, 미치도록 안쓰럽고 눈물난다. 그리고 거기에 실제 미키 루크의 삶이 겹친다. 그러다보니 현실에서 마주친다면 결코 이해할 마음도 없었을 이 사내의 그 주름지고 얼룩덜룩한 인생에 다시 한번 눈이 가고, 마음이 간다. 나아가 그는 내가 결코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그러나 종종 악몽 속에서 보았던 나의 루저로서의 미래를 눈앞에 고스란히 펼쳐내고 있었다. 머리에 뭐 좀 든 인간이라면 다들 암흑기로 기억할 레이건의 80년대를 그리워하고, 철지난 그 시대의 헤비메탈과 디스코를 틀어놓고 “이게 진짜 음악”이라고 중얼거리는 이 촌스런 사내, 그 몸 구석구석에 새겨진, 저마다의 사연과 인생을 기억하고 있을 상처가, 온몸으로 흘려대던 피가, 아무리 참고 또 참으려고 해도 누선을 쑤셔댄다.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딸래미조차 벌레보듯 하는 이 실패한 인생의 사내가, 결코 동정할 마음이 없는데도, 그 모든 게 자업자득이라는 걸 나도 알고 심지어 그 자신도 아는데도, 그런데도 아프고 안쓰럽다. 심지어 마지막 링 위에서의 그는 마치 제왕같다.

결코 그를 사랑하게 되었노라 말할 순 없지만, 실패로 얼룩져 과거의 영광만을 그리워하는 그의 삶이 결코 후지다고, 더럽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 모든 과거의 영광도, 지금의 오욕도, 모두 오롯이 그의 것. 이 세상 모든 루저와 실패자와 패배자들을 위한, 찬가도 아닌, 마지막 장송곡. 그게 바로 <더 레슬러>다. 그의 연기에 대한 그 모든 찬사에 그저 묵묵히 동의할 뿐이다. 그 모든 게 ‘진짜’임을, 분명히 알겠다.

ps. 2/21 4:24am 추가 : <록키 발보아>와 비교할 것.

Author: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14 thoughts on “더 레슬러 단평”

    1. 중반은 살짝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저 포함해서) 인생의 쓴맛을 아직 제대로 못본 사람은요. 하지만 엔딩 10분만큼은, 그 어떤 영화와도 바꾸고 싶지 않더군요.

  1. 세상에, 스크린샷 한 장이 저렇게 처절하게 느껴질 줄이야… 5초간 깜짝 놀랬습니다.
    이건 뭐 무조건 봐 줘야 하는 영화로군요. 잘 봤습니다 :-)

    1. 영화 자체가 워낙, 처절한 인생에 대한 처절한 보고서이라서요. 나중에 영화 개봉하면 보시고 리뷰 남겨주세요. 저도 다른 분들 감상이 궁금합니다. :)

  2. (붐붐형 블로그 링크 타고 왔습니다)
    저 사진이 정말 미키 루크인가요?? 약간 이기 팝 같아 보이는군요… 보고 싶네요.
    마리사 토메이도 좋아하는데… 스프링스틴이 부른 주제가 좋던데요.

    1. 안녕하세요. 성함과 닉네임은 익히 알고 있었슶니다. 라커스 멤버시죠? :)

      미키 루크 맞습니다. 그간 많이 망그러지고 가까스로 세우고를 반복한 얼굴이라, 젊었을 적 그 꽃미남 얼굴과는 차이가 많이 나지요. 온몸에 피범벅이 돼서 처절하게 링 위에서 분투하는 모습에 실제 미키 루크의 삶이 많이 겹쳐서 보는 내내 울컥하게 되더군요. 마리사 토메이도 아, 나이가 들었구나, 싶긴 한데, 참 매력적으로 나옵니다.

      스프링스턴의 주제가 좋지요. 영화에선 맨 마지막 자막 나올 때 깔리는데, 영화 전체를 감싸안는 듯한 느낌입니다.

  3. 마리사토레이 연기는 어땟나요?
    은근히 좋아하는 배우인데^^

    워낙 미키루크에 이목이 집중되서 ~~

    영화도 꽤 잘만들어졌나 봅니다.. 여기저기 평도 좋더군요~

    1. 마리사 토메이가 너무 이른 나이에 경력이 어중간할 때 아카데미상을 받아버려서 오히려 꼬인다 싶어 좀 안쓰러운 배우였는데, 여기서 연기 참 좋아요. 그리고… 과감한 노출연기를 좀 했어요. 여전히 아름다우시더군요. 얼굴에 주름이 많아졌는데, 그게 자연스럽게 나이 먹으면서 생긴 주름이라 보기가 좋더군요. 사람이 품위있어보인달까. 젊었을 땐 사실 ‘품위’ 쪽은 아니었잖아요.

  4. 미키도 미키지만,마리사 토메이에게 놀랐어요.두 사람..마음을 아프게 하더군요..

    1. 스트립쇼가 그렇게 슬프게 보일 수 있다는 거 처음 알았어요. 마리사 토메이 덕에. < 내 사촌 비니>로 너무 이른 나이에 아카데미상 받고 어중간하게 스러진 배우라 좀 안타까웠는데, 나이가 드니 연륜이 보이는 게… 젊었을 땐 별로 예쁘단 생각 못 했었는데, < 더 레슬러>에선 너무나 아름답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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