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단평

억울한 역사의 피해자가 있다. 그런데 그는 전형적인 피해자의 모습과 다르다. 불쌍한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아닌, 자기 인생의 주체로 오히려 다른 이들을 끌어나가는 대상이다. 그때의 한과 상처가 너무다 아파 가끔 눈물을 흘리기는 하지만, 그 과거에 종속돼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삶’을 힘차게 살아나가는 사람, 그렇기에 더이상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인 사람을 볼 때 과연 당신의 반응이 어떨지, 나는 매우 궁금하다.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시리즈가 차마 공론화되지 못했던 상처와 통한을 드러내며 기록하는 영화였다면,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공론화된 그 상처와 통한을 ‘치유해나가는’ 과정을 기록한 영화다. 이 영화 속의 주인공 송선도 할머니는 투쟁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갈 뿐 아니라, 놀랍게도 그를 돕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아픔은 물론, 영화를 보고있는 불특정 다수의 상처까지 치유해준다. 이건 송 할머니가 부처님의 미소를 가진 천사표 성인군자여서가 아니라, 오히려 송 할머니가 말하자면 ‘욕쟁이 할머니’기 때문이다. 그녀가 어제의 그 엄청난 상처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삶을 열심히, 그리고 충실히 살아나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돕는 사람들에게 마냥 고마워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100% 헌신을 ‘요구’하는 할머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와 함께 했던 사람들은, 죄의식에 송구스러워하는 빚진 자들이 아니라 비로소 당당한 ‘동지’가 된다. 또한 이를 지켜보는 우리 역사 과거 역사의 희생자들을 볼 때 느꼈던 마음의 답답함과 역사에 대한 부담감 대신, 함께 싸우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것인지 새삼 들여다보게 된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는, 우리가 역사의 피해자라는 사람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생각할 때 흔히 생각하는 장면들, 그러니까 억울한 사정의 피해자가 통한을 쏟아내놓고 그걸 지켜보는 사람이 함께 비통한 마음이 되며 까닭모를 죄의식을 느껴야 하는 장면이 없다. 무엇보다 영화를 통해 몇 번이고 반복되는 송 할머니의 주장, “두 번 다시 전쟁은 안 된다”는 말이 얼마나 생생한 감동을 주는지, 이 상식적이고도 명료한 주장이 얼마나 큰 울림을 주는지,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할머니야말로 그 주장의 가장 설득력있는 ‘산 증거’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 영화의 제목이 진정 무슨 의미인지, 얼마나, 얼마나 감동스러운 문장인지 새삼 느끼실 수 있게 되실 것이다. 오늘은 ‘리뷰어’의 입장에서 한 발짝 살짝 나가서 기꺼이 이 영화를 위한 ‘삐끼’가 되겠다. 개인적으로는, <워낭소리>보다 훨씬 재밌고 즐겁고 감동적으로 본 다큐멘터리였다. (나 변태 아니라능. 정말로 영화가 재밌고 즐겁고 감동적이라능.) 꼭 한번 이 영화를 보시기를. 2월 26일 인디스페이스, 미로스페이스, 시네마상상마당 등에서 개봉.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2 Comments

  1. 글 참 잘 읽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느낀 것을 그대로 표현하셨는지 존경스럽네요~~
    블로그에 올릴 수 있다면 정말 강추하겠습니다!!!

    • 영화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할머니의 삶이 워낙 에너제틱해서, 보는 사람도 그 에너지를 함께 나눠받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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