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 | 맨하탄

연애란 게 다 그런 거라지만…

Manhattan, the Lovly Chattering

20대때, 나는 우디 앨런의 영화가 웃기지도 않았고 좋지도 않았다. 재작년 광주영화제에 가서 대형화면 70mm의 극장에서 시네마스코프 필름으로 본 <맨하탄>도, 귀엽고 즐거운 영화이긴 했지만 그리 대단한 영화 ‘경험’은 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그땐 안토니오니 영화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는 기쁨이 더 컸다.) 마침 <매치 포인트>도 개봉해서 잘 봤겠다, 내 서울행 일정이 필름포럼의 우디 앨런 특별전 마지막 이틀과 겹치길래 가기 전부터 퍽이나 기대를 하며 다섯 개의 영화를 내리 보고 왔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본 <맨하탄>은, 그저 눈물을 펑펑 쏟을 수밖에 없었던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 중 하나.

남녀가 사귀고 사랑하고(사귄다고 꼭 사랑하는 건 아니니까) 헤어지는 건 한 사람 일생에서도 몇 번이나 반복되는 바. 머리와 따로 노는 이 감정이란 놈은 때로 가장 똑똑한 사람마저 가장 바보같은 짓거리를 연달아 하도록 만든다. 아니면, 그 사랑이란 놈을 핑계삼아 그간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해보는 것이거나. 아이작(우디 앨런)의 연애는 매리(다이언 키튼)와의 것이 가장 아름답고도 서정적으로 표현되지만, 아이작이 ‘아름다운 것’ 리스트의 목록으로 떠올리고, 자기가 한 말을 모두 하나하나 뒤집으며 매달리고, 돌아가고자 하는 건 결국 트레이시(매리얼 헤밍웨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성숙하게 사랑하는 것 역시, 인생의 삼십대, 사십대 혹은 오십대에 있는 아이작이나 매리나 예일이 아니라, 아이작한테서 말끝마다 어리다고 타박받는 트레이시다. (그녀는 17살, 여고생.)

눈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게 사랑이라지만, 나는 생각한다. 6개월 혹은 1년의 공백만에 멀어질 사랑이라면 어차피 가까이 있어도 멀어질 사랑이라고. 그 멀어질 시점을 그저 조금 늦춰줄 뿐이라고. 사랑이란 이유로 인생의 중요한 결정에 대해 발목을 잡는 것, 상대에게 찾아온 더없는 기회를 가로막는 건 그리하여 어리석은 것이라고. 상대에게 그 기회를 잡게 하는 대신, 내가 그를 다시 만날 방법을 찾으면 된다. 사랑은, ‘희생’으로 지속되는 게 아니다. 희생은, 피차 발목잡는 행위이다. 상대에게 부채감을 주는 것으로써, 혹은 상대의 앞을 가로막음으로써. 트레이시는 그것을, 그저 두어 마디의 말로 아이작에게 설득시킨다. 난 변하지 않을 거라고, 여전히 사랑한다고. 그토록 자신에게 상처를 준 아이작에게 그녀는 그렇게 말한다. 그녀의 말을 들은 아이작의 얼굴에 퍼져나가던 그 오묘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아마도 결국엔 영영 이별을 예감하는지, 아니면 안도를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건 트레이시보다 아이작이 먼저 새로운 상대에게 집적거릴 것이라는 것. (하하.)

계속해서 하지만, 할 때마다 미숙한 것이 사랑이고 연애인 듯. 더없이 미숙한 사랑을 해왔고, 나이가 이렇게 든 지금도 여전히 미숙하게 사랑하고 있다. (그래서 항상 상대에게 미안해 한다. 지금은 J.에게 그렇다.)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보고 있자니 앞으로도 – 내 삼십대 중반이건, 사십대건, 오십대건… – 그럴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에서 묘사되는 완숙하고 어른스럽고 성숙한 사랑… 그걸 해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란 인간이 계속해서 나이는 먹되 여전히 어린애같은 사람일 거라면, 그건 꽤나 요원한 일이 될 것같다. 위로가 되는 건, 그런 성숙한 사랑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많은 사람 중 경험하는 사람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는 것. 인간이란 게 원래 치사하고 유치한 존재라 그런가. 다만, 나이 먹으면서 되도록이면 스스로와 상대에게 상처를 덜 주는 방법은 익힐 수 있겠지. (… 아직도 요원해 보이긴 하지만.)

ps. 우디 앨런의 우상이 아이작의 입을 통해 나열된다. 페데리코 펠리니, 그루초 막스, 그리고 잉그마르 베르히만. (그밖의 몇 명 더.) 베르히만은 나에게도 특별한 사람이다. 그리고… 우디 앨런 역시 특별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ps2. 조지 거쉰의 음악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영화가 또 있을까.

* 이 영화는 4월 21일~27일, 5월 1일~2일까지 필름포럼에서 열린 우디 앨런 특별전인 “우디가 말하는 앨런” 프로그램에서 상영되었습니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