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치맨 단평

잭 스나이더, 만세!!!!!  (당신이 <300> 바로 다음 작품으로 사고 한 번 칠 거라고, 난 이미 그때부터 알고 있었다규!)

2시간 41분. 길다 =.= 어쨌든 잭 스나이더는 드디어 <왓치맨>으로 자신의 정체 증명을 했다. 영화 <왓치맨>은 만화 원작에 매우, 매우, 매우 충실하게 만들어졌는데, 항간에 보니 제작사가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영화로 만들’자는 걸 잭 스나이더가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고 한다. 감독은 영화로 말하는 법이라는데, 나는 이 감독이 <300>에 쏟아졌던 그 온갖 오해에도 불구하고 뚝심있게 그저 다음 영화로 자신의 정체를, 존재를 증명해 버린 것에 대해 존경과 흠모를 바칠 뿐이다. <300>이 미 제국주의와 이라크 침공을 합리화하는 영화라고 굳게 믿으며 불편해하던 분들이
<왓치맨>을 보고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 죽겠다. 이분들은 사실 <새벽의 저주>부터 다시 보며 잭
스나이더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완전히 뒤집는 힘든 작업을 하셔야 할 듯? 하지만 이것은 <새벽의 저주>부터 그를 지지해온 나같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왓치맨>을 계기로 그의 영화들은 다시 한번 해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왓치맨>을 본 후에도, “잭 스나이더를 알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제껏 그가 연출한 영화 세 편은 모두 원작이 있는 작품들이었고, 그는 자신의 세계관이나 가치를 그렇게 간접적으로만 드러내왔다. 거기에, 단 세 편이다. 다만 그 세 편이 모두 어느 한 쪽으로도 도저히 감정이입을 할 수 없는 두 진영의 지옥같은 대립과 전쟁들을 다룬 영화들이라는 점을 조금 되새겨볼 필요는 있을 듯하다.

Watchmen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나?'

아 그래서 <왓치맨>이 어떠냐고?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릴 것 같다. 나는 매우 좋아한 쪽이었다. 사람들이 슈퍼히어로물에서 바라고 기대하는 것을 이 영화는 주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이 슈퍼히어로물을 보면서 잊거나 숨기고자 했던 주제들을 눈앞에 까발려버린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보며 심지어는 ‘매우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을 것 같다. 예컨대 슈퍼히어로들이 ‘작전’을 나가 사람들을 구하는 장면이, 소영웅주의에 입각한 ‘영웅놀이’처럼 보이는데다 정치적으로도 위험한 짓이고, 나아가 감독이 그들을 놀리는 듯한 뉘앙스까지 깔려있다. 그들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왜 여자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여자 슈퍼히로인이라고 해야 하려나)가 하위문화에서 포르노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사실 영화 초반에 여자 슈퍼히어로 포르노 만화에 대한 농담이 삽입돼 있기도 하다. (이것은 원작에서도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이 영화가 함의하고 있는 사회, 정치적 맥락은 심지어 <엑스맨>에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둡고 정치하며 복잡하다. 이 감독, 실은 알고 보니 대단히 지적인 사람이었다 @.@!! 아무리 원작에서 이미 다 다뤘던 주제라곤 해도, 그에 대한 감독의 이해가 떨어진다면 영화에서 이 정도로까지 일관성있게, 체계있게 풀어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원작을 안 봤지만 원작을 ‘아주 잘’ 옮겼다는 건 알겠다. 원작이 있는 작품들 특유의, 어딘가 배분이 이상해지고 이야기가 비어있는 듯해 원작을 찾아 확인해보고 싶어지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아마도 그래서 러닝타임이 이렇게 길어진 것이겠지만.

영화 속에서 악당과 주인공들이 드디어 맞붙게 됐을 때, 악당은 “야… 내가 무슨 코믹북에서나 나오는 슈퍼악당인 줄 알아?”라는 대사를 친다. (번역자막으로는 아마 ‘내가 그렇게 시시한 악당이냐?’ 정도로 나왔던 듯?) 굉장히 진지한 농담인 셈인데, 맞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대사를 통해 “야… 현실이 그렇게 만만하고 단순하고 이분법적인 줄 알아?”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영화 속에 깔린 그 정치적인 콘텍스트 – 단순히 닉슨이 3선에 성공하고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했다는 가상역사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 를 따지고 든다면, 영화의 본격적인 리뷰도 길어질 수밖에 없겠다. 단적으로 얘기하면, 슈퍼히어로는 본래 민주주의의 적이다. 영화가 까발리는 건 그거다. 거기에 그 슈퍼히어로가 스스로 법의 집행자를 자처하고 나설 때 정치는, 세계는 완전히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슈퍼히어로의 법 집행과 통치에 거기에 박수를 치는 건 파시즘에 대한 동조다. 우리가 허구화된 슈퍼히어로물을 즐기고 있기는 해도 이게 현실에서 절대로 슈퍼히어로를 중심으로 한 정치가 일어나선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이 영화는 설파한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의 슈퍼히어로는 노골적으로 ‘미 제국주의’ 그 자체다. 이건 비유고 뭐고 할 필요없이 눈앞에 직접 보여준다. 그러니 경찰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이라는 제국이 완전히 풍자되고 야유를 받는 건 당연하다. (이건 감독이 <300>에서도 했던 짓이다. 미국인이 감정이입할 스파르타 놈들은 골빈 머슬에 야만인들이 아니었던가.) 일단 단평은 여기까지.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12 Comments

    • 일반시사는 거의 안 하는 거 같더군요. 하여간 영화가 아주 빡세고, 관객들 사이에서 고르게 지지를 받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만, 전 매우 맘에 드는 쪽이었습니다. 나중에 영화 보시고 리뷰 써주세용 :)

  1. 무척 기대하게 만드는 단평이네요.
    그나저나 2시간 41분! 정말 길군요.
    예전 같았음 영화관에서 온전히 보기 힘들 정도의 러닝타임인데요?
    삼성영상사업단에서 히트 수입해다가 다 잘라서 개봉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

    • 으… 히트! 정말 국제적인 망신살이 뻗치는 개봉이었죠.
      그래도 피터잭슨의 < 지의 제왕> 이후로 긴 러닝타임이 문제가 되진 않는 것 같아요. 국내에서도 영화 짜른단 소문 나면 바로 ‘이 뭥미?’ 하는 분위기가 충분히 조성됐고요. 정말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2. 아.. 진짜 기대중인 작품입니다 ㅠㅜ
    근데 일반시사를 거의 안 한다니, 당연히 하지 않을까 했는데요. 어차피 떴어도 시간이 애매했겠지만…
    – 개봉 전날 심야시사가 한 번 있기는 하네요 : )

    • 네, 개봉전날만 일반시사를 한다고 하더군요.

      워낙 원작에 충실하다고 하더군요. 일반 영화팬이었다면 굳이 원작을 찾아볼 마음이 안들 정도로 영화가 깔끔하게 만들어졌는데, 직업이 직업이다보니 제 경우는 개봉 전까지 원작을 확인해야 할 듯합니다.

  3. 원래 원작도 이런 분위기였던걸로 기억나네요^^

    • 안그래도 원작을 입수했습니다. 원작 읽었다는 J. 말로는 ‘어쩜 만화 이미지 그대로냐’라며 감탄하더군요.

  4. Pingback: redpixel's me2DAY
    • 아뇨, 이건 좀… 영화 보고 첫 인상을 그대로 갈겨쓴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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