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용재 오닐 + AMK의 바로크 콘서트 <미스테리오소>

현악기를 좋아하지만 비올라는 상당히 낯설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에서 비올라란 게 얼마나 치이는 악기입니까. 예술의전당의 장소 문제일 수도 있겠어요. 제 자리는 E열 사이드 쪽이었는데, 비올라 다감바나 비오른첼로 소리가 좀 뭉치긴 하더군요. 예당에서 하는 콘서트는 처음 간 거라… 리처드 용재 오닐의 연주를 CD로라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그저 저는 이토록 유명하고 인기를 끄는 사람이라면 연주도 기본은 하겠지라고 생각했죠. 요즘이야 클래식 계도 아이돌 스타 시스템이 안착되지 않았습니까? 전세계적으로 워낙 젊은 천재들이 쏟아져나오고 있고, 이들이 ‘천재’ 소릴 듣는 데에야 이유가 있는 거죠. 저야 어차피 아직은 막귀인 데다 콘서트 자체를 그리 많이 다녀보지도 못했고요.

그런데 좀 많이 실망했습니다. 게다가 그 자리에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던 헨델-할보르센의 파사칼리아를 연주할 때, 아이러니컬하게도 제 실망은 극에 달했습니다. 아마 이 곡 자체를 요 두어 달간 워낙 열심히 들어서기도 하겠죠. 주로는 카퓌송 형제의 바이올린-첼로로 들었고, 이자크 펄먼과 핀커스 주커만의 바이올린-비올라로도 들었어요. 리처드 용재 오닐은 AMK의 젊은 여자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틴 록스와 연주했는데, 일단 호흡도 미묘하게 어긋나고, 어설프게 들떠있는 느낌이었고, 특히나 아마도 비올라라는 악기의 특성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리처드 용재 오닐은 음과 음 사이 공백이 보이며 툭툭 끊어집디다. 거기에 그가 회심의 곡으로 준비한 듯한 마지막 곡 솔로, 비버의 파사칼리아를 연주했을 때는 “… 지금 학예회하나?”라는 생각까지 들어버렸으니. 음, 저의 ‘기본’이라는 기준이 영 이상한 건가. 제 취향이 영 이 사람하곤 안 맞는 건가.

동행한 분은 “이자크 펄먼과 핀커스 주커만을 줄창 듣고 있었다면 만족 못 할 만하도 하죠.”라고 하셨습니다만. 역시 오닐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펄먼-주커스와는 다른 스타일로 카퓌송 형제가 연주했을 때도 전 극도로 흥분해서 눈물을 쏟아내며 어쩔 줄 몰라했었는걸요. 이 곡 자체가 사람을 업시키는 면이 있고, 워낙 한국사람들 감성에도 잘 맞고, 펄먼-주커만 같은 슈퍼스타의 엄청난 듀엣 연주도 이미 존재하고 있고, 그러니 한편으론 만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욱 까다로웠을텐데, 글쎄요. 전 예당을 가득 메운 팬들의 그 열혈한 팬심엔 도저히 감정이입을 못 하겠더군요. 제 귀엔 연주가 영 만족스럽지 않았으니까. 텔레만의 곡 중 비올라협주곡 G장조의 경우 1, 2악장에선 좋아서 눈물이 나기도 했어요. 하지만 3악장에선 그 눈물이 급짜게 식더군요. 2부는 헨델 신포니아에서 비탈리 샤콘느로 넘어가는 때에는 그냥 자버렸고.

얼마 전 출시된, 이날 연주한 레퍼토리가 들어가 있는 바로크 CD를 미리 들었다면 과연 이날의 이 재난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까요. 실황과 CD는 느낌이 매우 다르니까, 아마 꼭 그렇진 않았을 거예요. 안타깝게도 오닐은 전혀 제 취향쪽이 아니었네요. 게다가 바로크에 대한 도전은… “아가, 욕심이 너무 과했구나”라고밖에 못 하겠다능. 사실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에서 치이는 비올라라는 악기의 솔로악기로서의 가능성을 계속 모색하고 확장하고 있는 오닐이니만큼, 아마도 익숙하고 친숙한 완숙함보다는 낯선 신선과 모험심, 그리고 치기 쪽을 더 고려해야 할 거고, 그게 오닐의 매력이기도 할 거예요. 하지만 애초에 오닐의 유명세보다는 ‘바로크래…’라며 끌렸던 건데, 일단 제 귀는 툭툭이 끊어지는 그 음 사이 공백들에 너무 민감하게 굴어서 말이죠. 사실 원래의 제 취향으로 하면, 찢어지고 가는 바이올린보다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비올라 소리를 더 좋아하는 게 맞거든요. AMK 멤버들의 소리가 훨씬 더 좋기도 했고요. 하긴, 젊은 연주자들의 경우엔 뭐 완벽한 연주를 기대하기보다 같이 응원하고 같이 커가고 같이 모험하는 맛 쪽이 더 방점일 거예요. 그러니 팬심 가득한 팬들이 객석을 채워야 하는 것일 테고. 그렇다면 전 장소를 잘못 찾아간 셈이겠죠.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6 Comments

  1. 그게 바로 내가 클래식 콘서트 안 가는 이유. 비올라 전공하는 학생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잘 하는 연주겠지만, 세계 정상 연주가들의 연주를 듣고나면 영…. 불편한. 예전에 클래식동호회에서 조수미 계속 음 나간다고 말했다가 완전 미친X되었던 과거가 생각나는 구료.

    • 헐, 그런가. 그래도 국내에 요즘 세계 정상 연주자들이 자주 내한하더라. 키신도 오고 누구도 오고… 조수미는.. 난 여자 성악가 목소리 듣고 좋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어서 거의 안 들어봤다. 남자 목소리만 좋아해 =.=;;

  2. 가끔 매너놈 글에 등장하는 P선배의 은혜를 입어 지난 가을에 용재 오닐의 공연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비올라라는 악기를 꽤나 좋아하는지라 기대했었는데, 결론은 P선배는 실망, 매너놈은 보류였지요. 생각보다 대단히 쇼맨쉽이 강해 놀랐구요, 과도하게 음 끌어주고 끊어주어야 할 곳도 어지간하면 레가토로 다 이어주는게 귀에 꽤 거슬렸어요. 생각보다 음량이 작았던 것도 한 몫 했지 싶습니다. 뭐랄까. 몰입해서 잘하긴 하는데 별로 공감이 안 간다고 할까요. 공연은 당연히 열광적인 반응속에 마쳐졌고. P선배와 나가면서 “이 공연 별로였다고 큰소리로 말하면 우리 다구리 당하겠죠?” “그러겠죠?” 이러면서 나왔습니다. ㅋㅋㅋ

    헨델의 파사칼리아, 최근에 하이페츠/피아티고르스키를 구해서 들었는데, 생각보다 의외로 덜 가파르더군요. 이 감정과잉덩어리를 냉철하게 풀어나가는데 감격했습니다. =)

    • 확실히 쇼맨십은 강하더라고요. 근데 제가 들은 공연에선 웬만하면 좀 이어줬으면 좋겠는 부분에서도 음을 다 톡톡 끊어 연주를 하더군요. ㅎ사이페츠와 피아티고르스키라, 좀 궁금하긴 합니다그려. 냉철하게 풀어나가는 연주라니…

  3. 오랜만에 리플 남겨주셨길래 N. 님 댁 와봤더니 이런 글이 있었군요! 좀 되긴 했지만…. 먼저 전 용재 오닐의 Lachrymae 씨디를 사서 듣고 있는데 오히려 이런 계열의 컴필 음반은 듣기 좋더군요. 물론 저건 세미 클래식에 가까우니 용재 오닐의 클래식 공연에 대해선 전 암것도 모른다고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그런데…. 예당의 관중들이야…… 특히나 유명한 사람이면 그냥 무턱대고 박수를 날리는 게 전통 아닙니까???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전 예당에서 유명한 사람 연주 들으면 항상 관중들의 박수소리가 ‘이래도 앵콜곡 안 내놓을테냐’로 들립니다. orz 그런 면에서 저번에 아쉬케나지의 EUYO와 함께 공연했던 임동혁 씨는 쿨하고도 쉬크쩔게 들어가 버렸지요. (본공연은 최고는 아니었으나 홈이란 걸 감안할 때 그 정도 갈채는 받을 만 했습니다만….) 제가 최근에 지금 있는 캘거리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바이올리니스트의 공연을 들었는데 그 때 확실히 가장 좋은 공연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용재 오닐의 이름값에 굴하지 않고 그냥 반짝거리는 건 좋다고 말하면 되는 걸 거에요. 무 물론 한국 클래식의 아이돌 of 아이돌 앙상블 디토는 소중합니다 ㅠㅠㅠㅠ

    뭔가 많이 어긋난 것 같은데….. 아무튼 결론적으로! 저도 펄먼-주커만의 파사칼리아를 구해서 들어야겠다는 것. :)

    • 제가 예당의 클래식 공연은 처음 가봐서요. 근데 용재 오닐이 예당은 물론 전국 콘서트가 다 매진이었다고 하더군요.

      펄먼-주커만 연주도 좋고, 카퓌송 형제들 연주도 좋습니다.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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