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티크베어 | 인터내셔널 The International (2009)

The International

구겐하임 박물관 구조를 활용한 포스터.

클라이브 오언에 나오미 와츠라니, 포스터 이미지에서 그 둘의 사진이 따로 있었음에도 처음 본 순간부터 “그 엄청난 화학반응” 때문에 무지 기대를 했던 터였다. 게다가 두 배우 모두 내가 무척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둘 다 연기도 잘 하고 이미지도 근사하지만 무엇보다도 외모들이 다 내 이상형이라는. (게다가 난 그 둘의 목소리와 액센트도 굉장히 좋아한다!) 그러나 얼마나 기대를 했겠는가. 그런데 언론시사회는 어처구나 없이 놓쳐버리고는, 일반시사회는 딱 한 번 있는데 하필 내가 도저히 볼 수 없는 시간대에 한다고 하지, 그래서 개봉하면 봐야지 이러고 있다가, 영화가 의외로 평이 안 좋은 걸 보고 갸웃하다가, 어느 평일 회사 퇴근 직후와 9시에 잡혀있던 시사회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그다지 멀지 않은 극장에 상영시간대가 있는 거 보고 회사 퇴근 후 전속력 질주해서 영화 봄. (참고로 끝나고 다시 시사회장으로 전속력 질주.) 그리고 감상은…

재밌두만. 아 최고였어~~~ 라고 말은 못 하겠지만 그 정도면 꽤, 꽤 맘에 들었다고 할 수 있어. 평이 안 좋은 이유도 이해는 가. 아마 이 장르들 특유의 조미료들이 별로 안 들어가서였겠지. 서브 플롯이랄 거 하나 없이 그냥 목적지를 향해 외길로 쭈욱 가버리는 플롯이잖아? 설탕은 싹 빼고 아주 담백한 맛의 음식을 먹는 듯했어. 심지어 이런 남녀 주인공 스릴러라면 의례 있을 ‘주인공끼리 붙어먹기’도 없으니. 역으로 난 그런 담백함이 마음에 들었어. 게다가 사람들은 엔딩에서 많이 깬 듯한데, 난 그 엔딩 맘에 들두만. 물론 “난 헐리우드 식의 그딴 엔딩 안 한다능, 우리 유럽인들은 좀 지적이라능” 식의 잘난척이 보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엔딩이고.

개인적으론 난 둘이 안 붙어먹어서 훨씬 좋았지만. 왜냐면… 그게 더 섹시했거든. 물론 <X 파일> 시리즈에서 멀더와 스컬리가 연애하지 않는 관계가 성공을 거두면서 그런 식의 관계가 그리 드물지 않은 것이 된 건 사실이다. <콘스탄틴>에서도 키애누 리브스와 레이첼 바이스는 서로 키스를 하려다 말지 아마? 그런데 <X파일>의 그 ‘서로 호감과 신뢰와 애정이 있지만 그것이 애정으로 발전하지 않는/못하는 관계’의 정석이라는 걸 가장 잘 재현해낸 게 <인터내셔널> 같아. 이 영화에서 둘은 동지의식에 기반한 애정과 신뢰도 있지만, 실은 ‘채 애정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애정’이 분명 보이기도 하거든. 루이 살린저 요원(클라이브 오언)이 엘레노어 휘트먼 검사보(나오미 와츠)한테서 단 한 시도 눈을 안/못 뗀달지, 엘레노어가 택시에서 타고 내릴 때, 건물을 들어가고 나올 때 루이가 언제나 먼저 문을 열어준 뒤 나중에 문을 닫고 들어가는 철저한 기사도 매너랄지. 난 매번 그렇게 문 열고 닫아주는 클라이브 오언 보고 혼자 킥킥댔다고. 결정적으로 루이가 구겐하임 박물관에서 나온 뒤 건물 사무실 안에 혼자 쳐박혀 있을 때 엘레노어가 찾아왔다가 클라이브 손을 한번 잡잖아. 그때 손을 어찌나 애절하게 잡는지, 그 손 잡는 것도 그렇지만 그런 나오미를 그 이글이글 타는 눈으로 클라이브가 보는 장면도 그렇고, 섹슈얼한 텐션이 차고 넘치는데 내가 가슴이 다 콩당콩당하더라고. 둘이 은근히 시선이 얽히다 엇갈리다 하는 장면들이 꽤 있어. 아웅, 정말 섹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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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린저 요원, 자꾸 엘레노어 쳐다볼 거야? ㅋㅋ 엘레노어도 웃잖아.

나도 불만이 없진 않아. 적어도 남녀 주인공에 나오미 와츠급 배우가 여주인공으로 나온다면 클라이브 오언과 나오미 와츠간 활약의 균형이 잘 맞아야 했는데, 이 영화에선 나오미 와츠를 주연으로 등장시켜선 조연으로 활용해 버리고 말아. <21그램>이나 <킹콩>에서도 이미 충분히 확인됐지만, 나오미는 섹스씬이든 액션씬이든 코미디든, 몸을 사리는 배우가 아니야. 게다가 몸을 굉장히 유연하게 사용할 줄 아는 배우라고.  섬세한 심리 묘사는 어떻고? 그런데 어버버버하다가 차에 치이는 걸로 액션을 뗌빵하고 캐릭터는 그냥 단순하고 말잖아. 아니 이게 말이 되냔 말이지. 그마저도 영화 막판에 가면 나오미는 그냥 사라져 버리지. 이건 범죄 수준의 낭비야. 아니, 나오미 와츠 같은 훌륭한 배우를 데려다가 이게 뭐하는 짓이냔 말야~~~!!!!!

영화를 보면서 남녀 커플의 스릴러/액션이라는 점 때문에 아무래도 조지 클루니 – 니콜 키드먼의 <피스메이커>가 떠올랐는데, <피스메이커>가 재미있었던 건 남녀 주인공의 균형도 잘 맞았지만 두뇌-여자와 몸빵-남자 구도인데 경험은 남자쪽이 많고 정작 계급은 여자쪽이 더 높은 데에서 오는 그 불균형을 아주 섹시한 매력으로 잘 살렸다는 데에 있었지. 니콜 키드먼은 그런 고위 작전에 처음 투입된 좀 매뉴얼 타입의 초짜 장교요 클루니는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고 느물느물하고 유들유들한 만년장교라는 차이가 있는데, 문제는 키드먼 쪽이 계급이 더 높았다는 거야. 그래서 자신없어하는 키드먼한테 클루니가 이래저래 조언도 주고 알아서 키드먼을 리드하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의 판단은 결국 키드먼의 몫이 되고 말지. 그렇게 키드먼이 확고한 확신으로 명령 내리면 클루니도 결국 따를 수밖에 없었거든. 이게 우리나라에선 번역이 경악스럽게도 키드먼이 클루니한테 존대말을 하는 어이없는 설정으로 소개돼 버렸지만 말야. <인터내셔널>에서 엘레노어와 루이는 사실 계급상으로 누가 더 위거나 아래는 아니야, 소속도 국적도 다르니까. 루이는 인터폴 소속이고 엘레노어는 미국 맨해튼의 검사보니까. 하지만 이 커플도 분명 두뇌-여자와 몸빵-남자의 구도를 따르고 있지. 그런데 루이가 뉴욕에 왔을 때 엘레노어가 능숙하게 경찰들 배치하고 업무 분담해주고 지시하고 하는 것에서 카리스마를 드러내긴 하지만 딱 그 장면빼고는 딱히 ‘활약’이라고 할 만한 뭔가를 보여주진 않아. 차에 치이는 것도 어버버하다가 치어버리잖아. 그게 무슨 짓이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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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초췌한 몰골에 노타이와 구겨진 와이셔츠와 구겨진 코트 차림이 오히려 섹시한 남자도 드물지.

그래도… 확실히 두 배우는 매력이 철철 넘쳤어. 클라이브 오언은 말끔하게 수트를 차려입었을 때도 멋지지만, 며칠 낮 며칠 밤을 자지도 먹지도 않은 초췌한 얼굴에 피로를 가득 담고는 눈에 핏발이 잔뜩 서서 노타이에 구겨진 와이셔츠와 코트 차림으로 나다닐 때도 멋지고, 더욱이 그 한 손에 총을 들었을 땐 그 장면이 지나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극강의 매력을 발산하지. 나오미 와츠는… 아마 긴 생머리를 늘어뜨려도 지적이고, 그 머리를 고무줄로 질끈 묶어도 품위있고 우아하게 아름다운 매력을 발산할 줄 아는 사람이고. 다른 금발의 예쁜 여배우가 검사보나 경찰이거나 하면 “저런 여자가 뭐한다고 저런 데에 있겠어?” 싶지만 나오미 와츠라면 웬지 그런 데에도 나름의 이유로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엄청난 지적인 면모와 고집스러움이 보인달까. 그러면서도 언제 봐도 아름답고 말이지. 다만… 이 감독은 나오미 와츠의 매력이 정말로 어떤 것인지는 잘 몰랐던 듯해. 내가 감독이었다면 원래 각본을 고쳐서라도 나오미 역을 더 키워줬을 것 같아. 오히려 극을 클라이브가 아닌 나오미가 끌고가는 형세가 됐어도 재미있었을 거야. 클라이브는 충분히 선이 굵은 배우기 때문에 오히려 그랬을 때 나오미와 균형이 잘 맞춰졌을 거 같은데… 톰 티크베어 감독은 그런 식의 ‘언발란스한 섹시미’와 ‘섹슈얼 텐션’에 대해선 좀 둔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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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모습도 섹시하지. 안경마저도 섹시하다...

그렇다고 티크베어 감독이 영 싫었다는 건 아냐. 영화가 처음 시작하자마자, 자신의 파트너가 쓰러지는 걸 보고 건너편에 있던 클라이브가 놀라서 달려가다가 결국 차와 부딪히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헉’하고 감탄을 내뱉을 정도로, 그 장면은 멋졌어. 거기서 일단 뿅 갔기 때문에 영화 끝까지 그래도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이고 말야. 하여간 프랑스 리용부터 독일 베를린, 터키 이스탄불, 미국 뉴욕 맨해튼, 이탈리아 밀라노까지 정신없이 오가느라 고생은 꽤 했겠어. 그리고 누구나 얘기하는 그 구겐하임 총격씬은 당근 멋지고 말야.

근데… 쓰다보니까 역시 아쉬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걸. 나쁜 놈 쳐넣겠다던 인터폴 요원이 어느 순간 법 위에 서게 될 결심을 하게 되는 그 심리적 갈등이란 게 너무 급작스럽게 휙 지나가 버려서, 후반 이후로부터 기계적으로 보인다 싶긴 하더라. 그렇게 집요한 강박으로 조나스 스카센을 쫓는 것 자체는 충분히 이해가 됐는데 말야, 그래도… 에잉, 아무래도 <피스메이커>나 다시 봐야 할까? 어쨌든 가능하면, 내일 – 그러니까 오늘, 일요일 J.와 다시 한 번 볼 수 있기를 빌고 있다능.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2 Comments

  1. 아 ㅋ 클라이브 오웬은 인사이드 맨에서 너무 간지나게 나오셔서 이것도 봐야 하나 하고 있었는데 리뷰 보니까 꼭 가보고 싶어지네요 ㅋㅋ

    • < 사이드맨>에서 정말 간지 폭발이셨죠! 전 이번에 이 < 터내셔널> 때문에 < 침없이 쏴라 슛뎀업>과 < 스포드 파크>를 챙겨보고야 말았습니다. < 뎀업>은… 아주 웃기는 영화더군요. ㅋㅋ < 크 팬더>에서도 눈치 챘지만, 이 분은 가끔 좀 괴상한(물론 제가 매우 좋아하는 종류의) 유머감각을 발휘하시는 듯합니다.

      < 터내셔널>은… 저는 마음에 든 편이었는데, 이게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거라고는 말을 못 하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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