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니 모레티 | 4월 Aprile (1997)

Aprile

너무 귀여우신 난니 옵빠.

<4월>은 <나의 즐거운 일기> 속편쯤 되는 영화다. <나의 즐거운 일기>에서처럼 난니 모레티가 자기자신으로 등장해, 우파 정치인이자 방송국 세 개를 모두 소유한 미디어 재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그예 총리로 선출된 그 암울한 시기에 대한 사적인 영화일기를 찍는다. 물론 특유의 그 정신 산란한 수다 및 유머, 그리고 종종 그의 발이 돼주는 베스파 스쿠터와 함께다. 이 영화일기는 그가 자신의 제작사의 동료들과 함께 좌파와 우파 양쪽의 선거운동을 다큐멘터리로 찍는 과정을 종으로, 아들 피에트로를 낳아 기르는 과정을 횡으로 교차한다. 그래서 그 결과는? 트로츠키주의자인 요리사가 등장하는 뮤지컬을 찍는 현장에서 영화가 끝이 난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그 종과 횡이 교차하는 지점에 놓인 존재이자, 다시 이 모든 것을 통합하는 존재인 ‘미디어’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사실은 난니 모레티가 아니라, 난니 모레티룰 둘러싼 그 수많은 종류의 미디어들, 그리고 난니 모레티와 그 환경을 그대로 담고 있는 그의 카메라 자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이 영화에서 미디어는 ‘매개자’ 혹은 ‘매체’라는 그 단어 본래의 뜻 그대로 난니 모레티의 가족과, 그가 살고 있는 나라의 정치를 연결해주는 존재다. 애초 영화의 시작 장면부터가 TV에서 베를루스코니가 선거에 승리하는 것을 난니 모레티가 보는 장면이 아닌가. 그는 이 사태에 대해 속사포 같은 속도로 불만들을 쏟아내고 화를 내다가 급기야 “오랜만에 마리화나나 피워야겠어!”라고 외친다. 영화는 중간중간 그가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정보들을 모으는 과정, 특히 신문을 스크랩하고 잡지를 오리는 장면들을 자주 보여주는데, 그가 이렇게 스크랩한 신문조각을 퀼트로 잇자 다시 거대한 크기의 신문 더미가 된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난니 모레티의 직업이 영화감독이라는 점, 그리고 그가 노상 카메라를 들고 그 과정들을 찍었으며 이것을 다시 촬영감독의 카메라를 통해 찍은 화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새삼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즉, 그는 찍는 주체인 동시에 찍히는 피사체로 카메라 안에 드러난다. 그가 온갖 미디어가 전해주는 정보에 노출돼 있으면서도, 그 자신이 미디어를 다루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 그는 미디어가 전해주는 이미지들을 수동적으로 그저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서, ‘작가의 주관이 개입한’ 또 하나의 2차 미디어로 만들려 한다. 더욱이 그는, ‘창작자’이자 ‘예술가’다. 그런데 그의 영화 만들기를 막는 외부의 힘은 크게 둘이다. 하나는 복잡한 정치상황, 그리고 또 하나는, 아들의 탄생. 애초 난니 모레티는 트로츠키주의자인 요리사가 등장하는 뮤지컬을 찍으려 했고, 캐스팅에 촬영 세팅도 끝내지만 그는 결국 영화를 진행시키지 못하고 엎어버린다. 그의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몇 년간 다른 작품을 마다하고 춤도 따로 배웠다는 배우가 아무리 열을 받아 항의를 해도. 결국 그는 극영화보다 좀더 직접적인, 다큐멘터리를 만들려 하는데, 이 선거 기록 다큐멘터리가 졸지에 출산 및 육아 다큐멘터리가 되고 만 것이다. 아들이 태어나면서 난니의 모든 작업이 중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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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미디어와 메시지에 둘러싸여 있는 난니와 피에트로 부자.

그런데 잠깐, 아버지가 미디어를 다루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아들 피에트로는 태어난 직후부터 미디어에 담기고, 미디어에 둘러싸인다. 갓난아기로 난니 모레티의 영화에 담기는 것은 물론이고, 난니 모레티가 스크랩하고 정리하는 잡지들의 이미지 사이에 둘러싸여있고, 난니 모레티가 틀어놓은 라디오의 음악을 함께 듣는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명실공히 미디어는 ‘환경’이 돼버렸다. 그렇다면 그 ‘환경’에 있어, 좌파 아버지이자 그 환경의 일부를 만들고 있는 작금에 대한 난니 모레티의 대답과 선택은? 바로 ‘뮤지컬 만들기’!. 이미지와 노래, 춤, 거기에 메시지와 심지어 아버지 난니의 열정과 괴팍한 유머와 개성까지 들어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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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포스터. 표정도 깜찍하시지 >.<

난니 모레티가 거대한 점처럼 보이도록 카메라를 극단적으로 뒤로 뺀 장면에서 끝날 줄 알았던 영화가 다음 장면, 난니 모레티가 영화를 찍고 있는 장면으로 넘어가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이다. 이 마지막 장면은 ‘사족’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난니 모레티가 이 거대한 미디어란 환경에 둘러싸인 아들에게 절박하게 주고싶은 ‘선물’인 셈이다. 아들은 그의 영화작업을 중단시킨 장본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그가 만들려다 결국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뮤지컬 만들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해준 창작의 원천이자 원동력이 된 셈이다.

이 촬영현장을 지휘하고 있는 난니 모레티는 우비를 쓰고 그가 애용하는 베스파 스쿠터용 헬멧을쓴 차림으로 손에 스피커를든채 희미하게 웃으며 노래의 박자에 맞춰서 춤을 추고 있다. 그러니 그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절박할수록, 우리는 여유를 갖고 웃으며 춤을 춰야 한다. 어두운 시기를 통과할 수 있는 힘은 웃음이고, 유머다.

ps. 이 영화는 서울아트시네마 친구들영화제 2009에서 상영됐습니다. 물론 거기서 봤습니다!

ps2. 난니 모레티는… 굉장한 미남이지 않나요. 이제껏 난니 모레티를 본 게 그가 직접 연출한 영화 두 편, 그가 출연만 한 영화 한 편이이지만, 이 사람의 그 극강의 괴짜 유머감각이 더 웃긴 이유는 그가 상당히 잘 생긴 미남이기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참 이태리 남자답게 시끄럽고 소란스럽고 말도 많고, 게다가 행동도 웃겨요, 표정도 웃겨요. 그런데 ‘우습지는’ 않아요. (수줍게 고백하자면…) 사랑스럽습니다. 아이잉~

ps3. 친구들영화제에서 “적어도 딱 이것 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 회사 땡땡이치고 중요 약속을 다 뽀개더라도 – 본다” 리스트에 넣어뒀던 거의 유일한 영화. 이유는 오로지 ‘난니 모레티’라는 이름 다섯 자 때문. 근데 말이 씨가 됐는지, 이번 친구들영화제에서 본 영화가 다섯 손가락을 꼽는다능. 흑흑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4 Comments

  1. 지난 2월 28일에 있던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토론회에서 들은 이야기를 정리하는 글을 적었는데 프레시안 무비의 사진을 갖다 썼습니다. 말씀드리고 글을 쓰면 좋았을 것을, 순서가 좀 바뀌었네요. 뒤늦게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

    http://flyingpink.tistory.com/484

    • 에고, 죄송하실 것까지야… ^^;; 게다가 어쨌든 그 사진의 저작권자는 ‘프레시안’인지라, 제가 뭐라 말씀을 드릴 수가 없어용.

  2.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나니 모레티 생일날 장면에서
    친구가 자를 1미터 빼게 한 다음 당시 나이인 44센티 정도 줄인 뒤,
    나니 모레티에게 네 인생이 이것 밖에 남지 않았으니,
    영화에 보다 더 집중해라고 충고하는 부분이었고요,
    끝날 무렵, 나니 모레티가 그의 베스타 위에서 자를 가지고 자신의 남은 인생을 이미지화 시키는 장명이었습니다.

    • 그 장면 인상적이죠. 뭐 다른 장면들도 그렇지만, 심각하고 진지한 메시지도 특유의 유머를 통해 전달하고, 웃기는 장면도 뼈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곤 하는, 난니 모레티다운 장면이었다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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