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해기스 | 크래쉬

누군가의 외로움 때문에, 누군가는 죽는다구!

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나의 사건을 중심에 놓고 그에 연관된 사람들의 사연을 직조하는 이른바 ‘옴니버스 식’ 구성은, 한때국내의 드라마에서도 대단히 인기를 얻었는데, 우리는 그걸 하루키 식이라고 불렀던 것같습니다. 아니면 포스트모더니즘틱한 구성?어쨌건 이런 구성은 그와 연관된 여러 사람들의 사건 사고를 친절하게 다 보여주고픈 욕심에 종종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되기도 하고,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각각의 사연은 피상적으로만 훑게 되기도 하는 위험에 빠집니다. 지명도 있는 배우들을 많이캐스팅했다, 하면 위험은 더 커지죠. 배우의 스타파워에 따라 이 사람 사연도 키워야 할 것같고, 저 사람 사연도 키워야 할 것같고, 또 각 배우의 스타파워에 따른 존재감의 차이가 분명 있기 때문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선 오히려 어떤 배우의 비중을 줄이게도되고, 그런 사정들 때문에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에피소드는 너무 돌출되고, 어떤 에피소드는 너무 겉핧기고, 어떤에피소드는 너무 맥아리 없기 마련이죠. 각본가와 연출가가 균형을 잘 잡아야겠죠. 이 이야기를 통해 정말로 내가 하려는 것이무엇인가를 확실히 하고, 이를 위해 냉정하게 배치하고 잘라내야 합니다. 배우들도, 자신 몫의 연기만 똑 따먹고 빠지는 게아니라, 그것이 영화 전체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며 전체 앙상블 캐스팅에 자신의 크기를 맞추는 노력을 잘 해야 하고요.

외로워서 서로 상처주는 거예요…

<크래쉬>는 이러한 면에서 놀랍도록 균형적인 감각을 자랑합니다. 영화는, 형식상으로는 그레이엄 형사(돈 치들)가 맞닥뜨린새로운 살인사건의 현장에서 시작해 과거를 한 바퀴 돈 후 다시 처음의 그 장소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된 110여 분동안의 이야기를 보고 나면, 그 현장은 단순히 그레이엄 형사의 새로운 사건 장소가 아니라, 보다 복잡하고 가슴아픈 장소가 되죠.그리고 그와 연관된 수많은 사람들의 에피소드는, 아마도 현재 미국에서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일 인종문제를 보다다층적이고 총체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도와 성공 결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만, 적어도 이 영화는 그리야심이 크지 않은 대신, 자신이 애초에 설정했던 시도의 영역 범위 안에서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습니다.

서울도 그렇지만 LA같은 대도시에서는, 아마도 세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일 겁니다. 온갖 사람들이 모여 앉아 지지고 볶고싸우고, 때로는 극단적인 범죄도 일어나는 그곳에서, 우리는, 그레이엄 형사 말대로, ‘외롭기 때문에’ 악다구니를 쓰며 상처를냄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표현하곤 합니다. 이 영화가 그리는 LA를 보면서 저는 서울을 참 많이 생각했는데, 그 살벌하고 삭막한정조란 사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아니 그렇기에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외로움과 공포 때문일 겁니다. 혐오의 본질은사실 공포죠.

자, 여기에서부턴 스포일러 만땅.

옴니버스 구성의 영화들이 보통, 차근히 쌓아올렸다가 마지막 한 큐에 매듭을 확 푸는 시도를 하는 (그래서 그만큼 실패의 비율도높은) 반면, 이 영화에는, 말하자면 클래이맥스가 적어도 세 번, 혹은 네 번 있습니다. 라이언 경관(맷 딜런)이 크리스틴(탠디뉴튼)을 구하는 장면, 파해드(숀 타웁)가 대니얼(마이클 페냐)을 향해 쏜 총을 대니얼의 어린 딸이 맞는 장면, 그리고 핸슨경관(라이언 필리피)이 피터(라렌츠 테이트)를 쏘는 장면. 테렌스 하워드의 놀라운 연기에도 불구하고, 핸슨 경관이 캐머론(테렌스하워드)을 구하는 장면은 아무래도 긴장감이 묘하게 떨어지는지라… 그리고 그 외에도 각종 크고 작은, 에피소드의 마무리들이있죠.

이러한 장면들이 응축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인종 갈등이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말하듯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겁니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사람 차별하지 말자, 같은 진부하고 쉬운 말로 해결될 수 있는 말도 아니죠. 게다가 이 영화가보여주는 것은, 인종이라는 것을 중심축으로 그 인종문제란 것이 실제 현실에서 젠더와 국적, 계급의 차이와 얼마나 긴밀하게연결되며 복잡다단한 양상들을 만들어내는지입니다. 이 영화에서 라이언 경관의 인종차별적 태도가 드러나는 것은 묘하게도 흑인 여성을대할 때입니다. 의료보험 수퍼바이저에게는 흑인이 어떻고, 하면서 말로 끝내지만, 자신의 관할 하, 즉 경찰관으로서 알량한 권위를부릴 수 있는 상황에서 그는 크리스틴을 성추행합니다. 라이언 경관의 그러한 행태에 욕지기를 느끼는 핸슨 경관은 캐머론을 설득해보내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그리고 그 친절함과 자신의 소신에 의해 피터를 차에 태우지만, 그의 행색에서 공포를 느낀 그는 피터가총을 꺼낸다는 공포에서 결국 피터를 쏘고 맙니다. 하지만 피터의 손에 들려있던 건 부두상이었죠. 파해드와 대니얼의 에피소드는어떤가요? 대니얼은 ‘말도 못 알아먹는’ 파해드에게 짜증을 내고, 파해드는 자신의 몰락의 책임을 대니얼에게 화풀이하려 합니다.이들은 모두 이 인종 문제에서 밑바닥에 위치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가 하면 지방검사 릭(브렌단 프레이저)의 백인 아내진(샌드라 불럭)은 자신들이 당한 강도에서, 말하자면 백인의 고충을 토로하며 언성을 높이지만 결국 라티나인 가정부 마리아와 깊은포옹을 하게 됩니다. 흑인인 그레이엄 형사는, 푸에르토 리코와 엘살바도르 계인 여자친구를 ‘멕시코계’라고 부릅니다. 심지어는”남미 동네는 하나같이 사는 꼴이 다 그러냐”라는 말도 덧붙입니다. 잘 나가는 TV 방송국 프로듀서인 캐머론 역시, 그 계급에도불구하고 인종차별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 인종차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핸슨이 그를 구할 수 있었던 건 그의 계급 덕일지도모릅니다.

사회의 모든 차별 문제는 이토록 복잡하고, 복합적인 양상을 띕니다. 흑인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흑인 쿼터제를 실시할 때 소외되는백인 하층은 “흑인이 득세하는 시대”라며 떠들어댈지 모르지만, 여기에는 인종차별과 계급차별이 동시에 관통하고 있습니다. 최근한국에서 급격하게 신장되고 있는 여성의 권리와 관련해 찌질이들은 “여성 상위 시대”라며 마치 이제 여성이 더이상 차별을 받지않는 듯 재랄을 해대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그리고 갈수록 교묘해져 가는 여성 차별과 계급 차별이 섥히는 지점일 따름입니다.(성공한 흑인의 예가 흑인상위시대를 증명해 주지 않으며, 성공한 여성의 예가 여성상위시대를 증명해주지 않습니다.) 사회의갈등은, 우리가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가 될 가능성을 기반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 역시 그러합니다. 다양한정체성 하에 우리는, 가해자이기도 하고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라이언 경관이 앙상한 의료보험에 기댈 수밖에 없는 빈곤한 화이트하층민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데에서 드러나듯 말입니다.

도대체 희망이란 없는 걸까요? 감독은 희망의 증거로서 대니얼에게 ‘망토’를 주기 위해 뛰어나간 어린 딸아이의 용감한 모습,”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캐머론의 모습, 그리고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해준 라이언 경관을 고개 뒤로 돌려보는 크리스틴의 모습,사려깊게 ‘공포탄’을 넣어둔 엘리자베스의 모습, 그레이엄 형사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리아(제니퍼 에스포지토)의 모습, 그리고밀입국한 동양계 사람들을 풀어주는 루크라디스(크리스 루크라디스 브릿지)의 모습에서 실날같은 희망을 주려는 것같습니다. 정말이지,사실 대니얼의 딸이 죽었다면 전 감독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지만, 의연한 그 아이의 표정,그리고 아무 상처가 없다는 걸 발견했을 때의 안도는, 눈물을 펑펑 흘리게 만들기에 충분했으니까요. 크리스틴과 라이언의 에피소드도그렇고요. (사실 전 “당신은 싫어! 내 몸에 손대지 마!”라고 비명을 지르는 크리스틴에게 너무나 절절하게 감정이입을했습니다만.) 그럼에도 삶의 딜레마는 항상 존재합니다. 이 영화에서, 남은 일생동안 가장 큰 짐을 진, 가장 큰 고통을 당해야할 이는 결국 올바르고자 했던 핸슨 경관이 되었습니다.

사실 폴 해기스 식의 접근은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신파적입니다. 말쓰걸님은 이 영화를 “인종차별하지 말자는 세련된 공익광고 같다”고 표현하셨는데, 영화가 주는 감동과 아픔, 성숙하고 총체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저 역시 말쓰걸님께 일정부분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은이런 감상적이고 신파적인 접근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속시원한 해결책 따위 없다는 것 잘 알고있고, 한 명의 영화감독이 취할 수 있는 태도란 그런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영화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실을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저 현실의 단면을 보여주고, 우리의 꿈을 공감가게 표현해주는 것일 뿐입니다. 그 꿈이 행복한 것이건,기괴한 것이건, 죄책감 어린 것이건. 하지만 감상적인 접근을 때로 본질을 가려버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의 기적을 간절히바라지만, 너무 쉽게 일어나는 기적은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감성적 신파야말로 사실은, 수위를 잘 조절해야 더욱 파워풀한것이 됩니다. 사실 전 감상적이고 신파적인 접근 자체를 싫어하지 않아요. 폴 해기스의 수위는, 실패라곤 할 순 없지만 좀아슬아슬한 것도 사실이군요.


Dave Matthews Band – Crash into Me

ps.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좋지만, 돈 치들이야 언제나처럼 훌륭하지만, 특히 테렌스 하워드가 너무나 빛납니다. 탠디뉴튼도 그렇고요. 라이언 필리피는 나이 먹더니 얼굴이 둥글, 둥글, 해졌군요. 의외로 샌드라 불럭조차 존재의 불안에서 영문을모른 채 히스테리컬하게 굴 수밖에 없는 상류층 여성을 아주 근사하게 표현해냈는데, 라이언 필리피는 역시 표현의 면에서 딸린다는느낌입니다. 에헤라, 우리의 아도니스 청년이여, 세월의 힘이란…

ps2. 각본, 정말 훌륭합니다. echobelly양은 다른 영화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역시 잘 나가는 각본가가 연출한 영화를 보며 “역시 연출이… 아쉬워…”를 연발하게 되는 건, 한국영화나 미국영화나 비슷한 듯해요.

ps3. 이 영화의 미국 및 인터내셔널 배급사인 Lions Gate Films의 로고가 바뀌었더군요. 전 이전 로고가 더 좋은데…

ps4. 어떤 분께서 이 영화에 대해, 사회 시스템적 문제를 개인 알아서 할 일로 푼 것에 대한 불만을 쓰셨던데, 거기에 동의합니다. 제가 ‘신파적, 감상적’이라고 느꼈던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겠죠. 얼렁뚱땅 덮고 가려는 느낌이 지나친 신파적 접근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모든 이(어떤 계층, 어떤 인종이든)에게 죄책감과 동시에 면죄부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나란 생각이 듭니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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