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봉준호 이력의 전환표가 될까

<마더>는 아직 국내에서 상영된 적은 없다. 공식 언론시사는 내일이고 아마도 매체마다 기자들이 미어터져 나올 것 같다.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지는 가운데 현재 칸영화제에 가 있는 듯한 씨네21 김도훈 기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간략한 소개글을 올렸다. 벌써 어제 얘기다.


일련의 386 감독들이 만든 영화들에서 그 기저에 공통적으로 “애타게 아버지를 찾고 있다”고 일전에 이곳 어느 글에 쓴 적이 있다. (찾아보니 최양일 감독의 <수> 리뷰 본문과 댓글에 주루룩 있다. <괴물> 간단 감상문에도.) <괴물>은 그 정점이었다. 나아가 나는 그 괴물이 <괴물> 속 가정에 결여되어 있는 어머니의 이미지라 보았다. 사실 이건 너무나 직접적으로 제시된다. 그 가족에 어머니는 없고, 괴물의 입속에서 끈끈한 점액질의 타액으로 뒤덮여 있던 아이들을 송강호가 끌어내는 장면은 딱 자궁에서 아이를 끄집어내는 이미지이지 않는가. 거기서 폭압적이고 강한 어머니 / 여성에 대한 공포를 읽었다. <괴물>의 가족에 만약 어머니가 존재한다면, 서울을 풍비박산내는 괴물의 이야기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봉준호는 <괴물>을 아들이 아버지가 되는 – 성장하는 – 영화로 만들어야 했고, 괴물과 대적하는 것 역시 그런 덜떨어진 아들이자 아버지, 즉 송강호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어머니를 등장시킨다면 바로 그 어머니가 아들/아버지의 자리를 대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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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여성의 성기 상징인 동굴과 아이들.


봉준호가 그려내는 (성인)여성들은 대체로 남자들보다 강하다. 육체적으로 강한 것이 아니라 그냥 우월한 존재,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대상으로서의 존재다. 그런데 내게는 봉준호의 그런 강한 여성에 대한 편애와 더불어 공포가 강력하게 읽힌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이성재를 언제나 주눅들게 만드는 잘나가는 아내도 그렇고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의 귀를 파주며 마을의 야매 의사 노릇을 하던 송강호 아내 전미선도 대체로 주인공 남자보다 우위에 서 있는 존재들이기도 하지만, <괴물>에서 ‘괴물’은 아무리 봐도 암컷이자 어머니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괴물>은 아들이 아버지로 성장하는 이야기이자 동시에, 자신을 폭압하는 어머니에 대적하는 영화가 된다. 이는 아버지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어머니는 자식을 폭력적으로 억압하다 아들의 칼을 맞는 거라면, 살부(殺父) 의식 및 아들의 아버지 권력 탈취라는 전형적인 신화 모티브에서 부모의 성을 역전시킨 것이라 더욱 흥미롭기도 하다. 대체로 강한 아버지와 여기에서 이도저도 못한 채 자식을 아버지로부터 적절히 보호해주지 못하거나 아버지의 폭력의 희생자로 존재하는 어머니, 라는 게 훨씬 전형적이고 공식적인 틀 아닌가. (근데… 나는 왜 이런 이야기를 여기에다가는 쓴 적이 없더라? 아, 생각났다. 나는 이런 내용으로 당시 씨네21 평론가 공모에 응모하려고 했다. 그리고 결국 글을 완성하지 못했다. 헐…)


그런데 <괴물>이 상영될 당시에 그 영화를 그런 식으로 읽는 평이 별로 없어서 좀 놀랐다. (그랬으니 평론가 공모에 그런 내용으로 응모하려 했던 거지만.) 심지어 내가 그 얘기를 당연한 듯 했을 때 두 사람으로부터 “그것 참 놀랍고 참신한 해석”이라는 경탄까지 들었다. (반면 전현직 기자인 한 명은 “그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라고 반응했다.) 그런데 그 바로 다음 작품으로 <마더>가 제작될 것이란 소식을 들었으니, 내가 얼마나 더 놀랐겠는가. <괴물>에선 빠져있던, 오히려 ‘괴물’로 표현되었던 어머니를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라. 나는 봉준호가 과연 어떤 식으로 <마더>를 만들지 궁금해죽을 지경이었다. 내가 <괴물>을 그리 읽은 결과에 의하면, <마더>는 ‘무시무시하고 무서운 어머니’에 대한 얘기여야 했다. 사실 <마더>의 시놉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나왔을 때 <괴물>에 대한 내 독해가 완전히 허방다리를 짚은 것 아닌가, 싶어 불안하기도 쪽팔려하기도 했다. 언론이 전하는 ‘이런 내용이라 카더라’ 통신은 주로 눈물겨운 모성애 쪽에 맞춰져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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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에서 영화를 본 듯한 김도훈의 글을 보노라니, 내가 생각했던 방향이 맞는 거 같아 또 다시 살짝 놀랍다. 역시, 그런 거였군. 그러고나니 이제 궁금해지는 건, 과연 <마더>가 봉준호의 이력에 어떤 터닝포인트가 될까, 하는 것이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극히 절제돼 있거나 억누르고 있던 봉준호 특유의 썰렁한 블랙유머 코드가 <괴물>엔 다소 이질적으로 여기저기서 스멀대며 나오고 있는 걸 보면서, 그리고 <괴물>이 대중적이고 전형적인 장르영화로서의 괴수영화의 문법을 상당히 비트는 것을 보며 예상한 바가 있다. 아마도 다음 작품에선 자신의 본색을 완전히 드러낼 것이며, 그 작품은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만큼 흥행하진 못할 것이라고. 나아가 자칫하면 논란만 불러일으키다 완전히 쫄딱 망할 수도 있겠다고. (사실 나는 자기 색을 살짝 입힌 장르영화를 장르적으로 잘 만드는 사람이 그걸 포기하고 자꾸 예술하려 드는 것은 좀 못마땅하다. 봉준호 감독도 자기 색깔을 적절한 선에서 좀 조절하고 절제하면서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싶은데, <괴물>에서 이미 선을 조금 넘었기 때문에…)


<마더>의 경우 칸영화제 초청이라는 변수 때문에 한껏 주목과 기대를 받고 있는 상태니 흥행도 <살인의 추억>만큼은 되거나 그렇지 않다 해도 그보다 그저 조금 못한 수준일 것이다. <괴물> 같은 흥행은 힘들 듯. 그러나 감독의 영화적 경력과 미학적 프레임에서는 충분한 터닝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모처에서 진행하고 있는 밀착취재 건을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내일 꼭 <마더> 시사회를 가야겠다. <박쥐>처럼 개봉 전 일반시사는 거의 없을 듯하니.



ps. J.는 방금 <마더>에 있다는 반전에 대해 좀 놀라운 추측을 했는데, 나는 그 추측이 거의 맞겠구나 싶다. 그게 뭐냐면… 직접적으로 쓰진 않겠고, 다만 그 추측이 맞다고 생각한 이유를 밝혀보려 한다. 다만 정말 맞을 경우 원치않은 스포일링, 게다가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스포일링이 될 수 있으므로 이 뒷부분을 화이트로 가려놓겠다. 궁금하면 긁어보시라. 위에 <괴물> 사진에서 보면 아이들이 괴물을 피해 동굴에 숨어있는데, 캡션에도 썼지만 동굴 역시 여성의 자궁과 질을 상징한다. 자궁의 이미지는 양면적이다. 더없이 안전한 공간, 더없는 보호를 제공해주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이것을 미끼로, 그러니까 어머니가 보호욕을 내세우며 이미 세상에 나온 자식을 자신의 자궁으로 넣으려 하는 순간 그곳은 더없이 폭압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 <괴물>을 보며 내가 추측한 봉준호의 어머니에 대한 근원적 공포란 결국, 자식을 제손아귀에 쥐고 흔드는 폭압적이고 권위적이며 강력한 어머니인데… 그렇다면 ‘지능이 모자란 아들’이란 설정은 실은 아들이 정신적으로 미발달한 것이고, 이는 어쩌면 어머니의 권위적인 과보호와 소유욕, 그러니까 아들을 제 자궁에 여전히 (안전하게) 가둬놓고 싶은 어머니의 양육의 결과일지도. 그렇다면… ^^ 그런 엄마들은 자신이 얼마나 헌신적이고 좋은 엄마인지 증명하지 못해 안달이므로… 게다가 다른 여자에게 수작질을 걸었다면 더욱…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19 Comments

    •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트랙백 주셔도 좋았을 것 같은데요. ^^ 제 트랙백 보냅니다.

  1. 노바리님 저를 제자로 받아주시와요.. ㅡㅡ;;

    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박찬욱 보다는 봉테일 감독이 저랑 코드가 잘 맞는것 같아 이번 [마덜~] 초기대중입니다^^

    • 하하 왜이러세요;;;;

      저도 박찬욱 <<< 넘사벽 <<< 봉준호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인가는 봉준호 < 최동훈, 입니다. ^^;;;

  2. 섬뜩!하군요. 특히나 동일 감독이 만든 다른 영화들과의 관련성 내에서 생각해 보면 그 ‘괴물’ 해석도 매우 타당해 보입니다. 재미있네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

    • < 물> 바로 다음 작품이 < 더>라는 게 더 재밌더라고요. 보통 이런 건 텀을 둘 수도 있을 텐데… 어제 < 더>를 (앞대가리 30분을 잘라먹고) 보긴 봤는데, 제 예상은 반만 맞고 반만 틀렸네요. 자식이 심지어 오줌누는 모습까지 물끄러미 가까이 가서 보는 어머니인 건 맞지만, 그러나…

  3. 앗, 그리고 ‘풍지박산’과 ‘殺夫’가 살짝 눈에 걸리네요. ^^; ‘殺夫’는 오타인지 아닌지 확신이 안 섭니다만… (가이아를 염두에 두신 건가 해서..)

    • 으하하 미치겠다. 살부가 저게 뭐야. 풍지박산은 맨날 풍비박산쪽이 맞다는 거 알면서도 깜빡잊고 쓰곤 하는데요, 살부는… 아무생각 없이 써놓고는 틀린 줄도 모르고 있다가 응? 하고선… 제가 심지어 예전에도 저리 써놓고 태그도 저리 달아놓았다는 거 아닙니까. 근데 살부가 殺父인 건 너무 당연한 거잖아요. 저도 이제 진짜로 늙나봐요. 에구…

    • ;ㅁ; 아니에요, 아니에요. 벌써 늙으시면 어떡해요! ;ㅁ;…

  4. 오늘 (이젠 어제군요) 시사회를 갈 예정이라서 일부러 흰 부분을 안 읽고 갔다가 돌아와서 바로 긁어봤는데, N.님의 생각이 맞으신 것 같아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듯해요. 어쨌거나 봉준호 감독이 그저 ‘닥치고 모성 찬양’을 할 건 아닐 거라 생각했고, 그게 사실이어서 기쁩니다.

  5. 저도 괴물 보면서 ‘감독이 여자를 느무 대단하게 보는 거 아녀?’ 이러고 봤어요. ^^;; 엄마 없다고 집안 콩가루, 활 잘 쏘는 딸, 괴물과 다다다다 맞장을 뜨는 막내!(실패하긴 했습니다만) 게다가 여성형이 분명한 괴물!!!! (전 당연히 괴물 성별이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 다시 보니 왜 그리 본 걸 까요 ;;; 뛰댕기는 모습이 이단평행봉 하듯 유려해서 그랬던 걸까요 -_-) 다부진 남자는 그 꼬맹이 형 말곤 한 명도 안 나오는 거 보면서… 여자한테 쫌 과도한 기대를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사실 이번 영화 ‘마더’에 그닥 기대를 안 했는데, 흠… 봉테일 기대치가 올라가네요. ^^;;;

    • 여성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실상 성녀 마리아를 보는 시선과 그렇게까지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여성적이다 마초다, 이런 식으로 가치판단부터 하기 전에(별로 그런 식으로 하고 싶지도 않고요), 그 토대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분석하는 건 필요할 듯해요. 과연 어머니란 존재, 그리고 보편으로서의 여성이란 젠더를 향한 양가감정은 남성들만의 것은 아니니까요. 봉준호는 그걸 굉장히 세련되고도 정직하게, 그러면서도 윤리적인 균형감각은 잃지 않으면서 드러내는 감독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건 봉준호 ‘감독’이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주는 원초적인 매력과도 무관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박찬욱에 대한 호오가 갈리는 건 봤어도, 봉준호에 대한 호오가 막 갈리는 건 별로 본 적이 없는 듯. 작품에 대해서도 그렇고, 감독에 대해서도 그렇고요.)

  6. 제가 내일 이택광 교수님 인터뷰 할때 이 부분을 여쭤봐도 될까요?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ㅠㅠㅠ

    안그래도, 내일 오전에 확인 전하를 드리겠지만 안된다고 하시면 여쭤보지 않겠습니다.T^T

  7. N님 안녕하세요. 예전에 번역하셨던 게 생각이 나서요 ;;; 이번 충무로 영화제 번역가를 구한다는 얘기를 들어서요, 제가 아는 분들께 연락을 드리고 있어요. 요즘에 프레시안 영화 기사는 다 쓰시는 거 같기는 하지만;;;; N님이 혹시라도 ;;; 가능하신지 여쭤보려고요.
    딕테 아니고 영화랑 스크립트 있고요. 건당 30만원. 7월에 시작하고 끝내는 거고요. 한 사람이 10편~ 능력자라면 20편까지도 가능이라고 합니다 ;;; 예전에 주셨던 연락처가 갑자기 찾으니 안 보여서 일단 여기에 비밀글로 남깁니다. 가능하시다면 제게 연락해주시면 정말로 고맙겠습니다. (_ _) 아시는 분이 있다면 소개해주셔도 정말로 좋고요. 오랜만에 갑자기 이렇게 연락드려 죄송해요 ;;;
    (저.. 같은 글을 네이트 메일로 보낼게요. T_T 바이트 낭비를 하는 거 같네요 ;; )

    • 낮 언론시사회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8. 영화 공부 한참 더 하셔야겠군요. 아마 지금쯤 진짜로 쪽팔려서 쓰신 이글을 “망각”하셨을지도..

    • 영화야 보면 볼수록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더 어려운 게 사실이고, 아마도 평생동안 계속 공부할 예정입니다. 보름달만 달인가요, 초승달도 달이랍니다.

      하지만 이 글은 별로 쪽팔리지 않습니다. 어차피 블로그에 쓰는 글, 더욱이 이 글처럼 메모 형식으로 급하게 휘갈긴 글이란 좀더 큰 글의 일부이고, 보완할 것은 많으나 기본 방향은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준비하고 있는 책 원고의 일부 베이스로 삼고 있기도 합니다.

      어쨌든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평생 죽을 때까지 계속, 지금보다 더 많이, 영화를 보고 공부하고 글 쓰고 사는 게 소망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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