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크 리 | 인사이드맨

역시 당신, 솜씨 좋아!

포스터 정말 마음에 듭니다.

본지는 한참 됐는데 어쩌다보니… 가 아니라 실은 영화가 꽤나 마음에 들어서 한번 더 보고 써야지 했다가 영화는 영화대로 다시 못 보고, 이제서야 기억을 더듬습니다. 아무리 훌륭해도 외화라면 무시되는 작금의 분위기 덕에 저 같은 게으른 영화관객은 외화를 극장서 다시 보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스파이크 리 감독은, 딱히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감독은 아니지만 그의 재능에 대해서는 꽤나 신뢰를 하는 편입니다.  게다가 자기 스타일이란 거 별로 없이(하긴 개봉되는 영화들의 90%가 신인감독들 데뷔작인데 스타일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하죠.) 대강 비슷비슷 안전빵으로 비슷비슷하게 찍어내는 작금의 한국영화들 분위기가 외화개봉에도 적용되는 건지, 최근의 <매치 포인트>를 제외하곤 대부분 낯선 감독들의 영화라, 간만에 극장에서 보는 스파이크 리의 영화, 반가웠습니다. <24시> 같은 건 비디오로 그냥 직행해 버렸잖아요. 뭐, 이 영화는 어쨌건 은행강도 얘기니까요. 게다가 배우들도 큽니다. 덴젤 워싱턴, 조디 포스터! 거기에 클라이브 오웬까정!

자,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 지뢰밭입니다.

요즘은 이상하게 ‘완전범죄’를 다룬 영화들이 좋습니다. 나이를 먹고 점점 보수화되는 대신, 도덕 의식도 함께 쇠퇴해 가나 봅니다. 인질과 범인을 뒤섞음으로써 완전 범죄에 성공하는 이 영화,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게다가 그 스타일은 어떻고요. 러닝타임 대부분이 인질을 잡고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인 데다 이것이 지적이고 매력적인 강도 리더인 달튼(클라이브 오웬)과 껄렁한 니고시에이터 형사인 프레이저(덴젤 워싱턴)의 대립으로 표현되는데, 전혀 지루함이란 게 없습니다. 사실은, 경찰들이 은행 앞에 충돌하는 장면에서 저는 후와! 소리를 냈고 같이 본 동행은 엄지를 치켜들었습니다. 정밀하게 계산되어 들어오고 나가는 그 미장센이라니. 전체적으로 컷 낭비 같은 거 없이 정말 매끄러운 연출입니다. 씬과 씬이 척척 붙어요. 역시 스파이크 리구나, 싶을 정도입니다. 영화 중간 삽입되는 인터뷰 – 이 인터뷰는 강도들이 철수한 이후의 인터뷰를 중간중간 말하자면 플래시포스(Flashforth)로 집어넣은 것입니다 – 는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더 긴박하게 만들어 줍니다.

게다가 이 영화가 내세우는 뻔뻔함, 정말 마음에 들어요. 달튼이 완전범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인질로 하여금 일정 부분 범인을 돕게 했기 때문이고, 또한 인질들과 범인들의 경계를 지워버렸기 때문이죠. 게다가 그가 턴 은행, 그가 턴 보석들의 소유주는 나치에 부역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동족들을 팔아먹고 그 돈으로 자본을 축적한 파렴치한입니다. ‘은행강도’라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 혹은 그들로 대표되는 공권력, 그리고 은행 이사의 부탁을 받고 (막강한 연줄과 막후의 “실질적” 권력을 통해) 해결사로 개입하는 매들린(조디 포스터)의 입장은, 명목상 흉악 범죄에 대처하는 입장이지만 실질상으론 그런 파렴치한의 재산을 보호해야 합니다. 프레이저 형사나 매들린이나, 아무리 자기 입장에 최선을 다한다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자신의 입장에 혐오감을 느끼죠. 달튼은 이들까지도 심정적 동조자로 끌어들여 버립니다. 그리한 매들린이나 프레이저나, 적당한 선에서 자기 일을 끝내곤 그냥 묻어두게 되죠. (뭐 물론 프레이저에겐 다이아몬드 하나를 찔러주기도 했습니다만.) 정의의 편에 서서 끝까지 악의 무리를 추적하고 어쩌고, 그딴 거 없습니다. 아니,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란 말입니까.

이렇게 도덕/윤리적 가치관이란 게 탁 뒤집혀 버리는 건, 물론 스파이크 리가 뭐 대단한 정치 영화를 만들려고 해서는 아닙니다. 하지만 확실히 현대 관객들이 느끼고 요구하는 것을 정확하게 찔러주는 핵심이기도 하죠. 또한, 바로 이 점 때문에 스파이크 리는 관객들마저도 그 ‘적당한 타협’에 지지를 하게 됩니다. 요컨대 달튼이 인질들과 심지어 프레이저마저도 원치 않은 공범자로 끌어들여버린 것처럼, 관객들까지도 자기 편으로 끌어들어버린다는 것이죠. 어설픈 도덕 강의로 마무리짓기보다는 이 현실, 꼬여도 한참 꼬이고 부조리한 이 현실을 그대로 탁 드러내고 걍 끝까지 가버리는 게 훨씬 재미있습니다. 게다가, ‘나 지금 이런 거 한다~’면서 개폼도 안 잡습니다.

이 달튼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해낸 클라이브 오웬의 매력은, 단순히 캐릭터의 매력을 바로 눈앞에 너무나 생생한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확실히 클라이브 오웬의 달튼은 지적이고 우아하면서도 자신만의 도덕적 기준이 확고한, 매우 매력적인 강도입니다. 적어도 ‘그런 인간의 보석 몇 개 훔치는 것이 뭐 어때’란 식에 동의할 순 없더라도, 캐릭터 자체가 너무나 매혹적인 데다가 클라이브 오웬은 이 캐릭터를 한층 더 신뢰감있고 아찔하게 섹시하게 만듭니다. 죄없는 사람들을 잔뜩 겁에 질리게 만들며 은행강도를 저지르고 있는 와중에 인질 중 하나인 어린 소년의 폭력적인 게임기를 보며 ‘니네 아버지 면담 좀 해야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확실히, 아이러니한 웃음을 주려는 본래의 목적에도 성공하지만, 이 강도의 매력, 이 사람의 ‘나름 일관성 있는 도덕율’를 설득시키는 목적에도 훌륭하게 성공합니다. 클라이브 오웬의 얼굴의 깊게 골이 팬 주름, 그리고 그 울림 좋은 저음의 목소리가 한몫 단단히 하죠. 물론 이 사람의 ‘원체가 품위있는’ 연기력(물론 그는 지극한 속물연기도 너무나 훌륭하게 해냅니다. <클로저>가 생각나는군요.)이 주요 공신이긴 하지만요.

정말 오랜만에 본 탄탄한 연출력의 영화라 기분이 정말 좋았는데, 이런 쾌감을 안겨주는 영화가 다시, 잘 안 보이는군요. 스타일리쉬하면서도 영화의 정석을 꿰고 있는 그런 연출의 영화가 요즘은, 너무나 그립습니다. -_-;;;

ps. 영화의 오프닝과 클로징에 쓰였던 음악, 혹시 아시는 분 계십니까? 분명 볼리우드 영화들 몰아볼 때 들었던 음악인데, 어느 영화에 나왔던 영화인지 기억이 안 나요. <딜세>인지, <까삐꾸씨 까삐깜>인지… 이 노래, 저 분명 알고 있었다구요우우우우우~~~~~ ㅠ.ㅠ  (그나저나 헐리웃 영화에서 볼리우드 영화음악을 듣게 되다니, 기분이 정말 묘하더군요. 새삼, 전세계, 심지어 헐리웃마저 매혹시켜 버린 볼리우드 영화에서 드물게 독립되어 있는 한국 영화시장이 신기하기도 하고요.)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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