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일 감독 인터뷰 (2008. 3. 24)


2008년 3월이니 벌써 일 년 반 전이다. 내 생애 처음으로, 신동일 감독을 만나 단독 인터뷰란 걸 했다. 그간 누군가의 인터뷰에 따라가거나 한 적은 있었어도, 내가 내 이름을 걸고 혼자 인터뷰를 해서 기사를 쓴 건 처음이다. 무척 많이 떨렸고 긴장했다. 인터뷰는 두 시간이 넘게 진행됐고, 그걸 풀어서 기사로 쓰는 데만도 몇 일이 걸렸다. 그나마 “너무 길고 지루하다”고 1/3 가량이 잘렸다. 제목도 내가 아닌 데스크에서 붙인 것. 당시 신동일 감독은 두 번째 영화인 <나의 친구, 그의 아내>를 만들어놓고 1년이 지나도록 개봉 날짜를 못 잡고 있었다. 우연히 모니터링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후 만나서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반 년도 더 지나서야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잠깐 극장에 걸리는 둥 마는 둥한 모습으로 개봉했다. 그리고 신동일 감독은 세 번째 영화 <반두비>를 내놓았다. 약간 다른 이유, 좀 슬픈 이유로 화제작이 됐지만 흥행에선 여전히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만든 영화 세 편이 모두 우여곡절을 겪었고 고난의 시간은 길었다. 그러나 나는 이 고난들이 감독에게 오히려 큰 자산이 될 거라고 믿는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그 사이 신동일 감독은 스스로 ‘독립영화 감독’이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갖고 사회적 사안들에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그가 차기 한국영화가 가장 주목해야 할 감독 중 하나라고 믿는다.

이 기사가 실린 프레시안 페이지는 여기다.



 2005년 첫 데뷔작 <방문자>가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된 뒤 영화계의 기대를 한몸에 모았던 신동일 감독은 2006년 두 번째 영화 <나의 친구, 그의 아내>를 내놓았다. 이 영화는 2006년에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극찬을 받았고 크고작은 해외 영화제에 연달아 초청됐다. 그러나 <방문자>는 관객들의 자발적인 DVD 출시 청원운동이 벌어졌음에도 아직까지 출시되지 못했고,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개봉날짜를 잡지 못한 채 1년이 넘도록 표류하고 있다. 감독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잃어버린 1년’이 지나고도 구체적인 개봉 준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 다만 지난 2월말 서울 시내 한 극장에서 한정된 관객들을 대상으로 모니터 시사회가 열렸을 뿐이다. 평단과 영화제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음에도 극장 개봉이 이토록 어렵고 DVD 출시조차 용이하지 않은 바로 이 현실이야말로 ‘한국영화 위기론’의 진정한 본질이 아닐까. <나의 친구, 그의 아내>의 모니터 시사회장에 참석했던 프레시안이 신동일 감독을 따로 만나 비교적 긴 대화를 나눈 이유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어떤 영화?


명문대를 졸업하고 잘나가는 펀드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예준은 군대 시절 알게 된 재문과 그의 미용사 아내 지숙의 뒤를 봐주고 있다. 이들 부부는 예준의 도움을 받아 미국 취업이민을 준비하지만 재문이 삼촌에게 맡겨둔 이민비용을 날리게 되면서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한편 지숙이 미용박람회 때문에 파리에 가 있는 동안 예준의 실수로 재문과 지숙의 갓난아이가 죽고 만다. 지숙에겐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모든 죄를 덮어쓴 재문은 아이의 죽음과 사체 유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옥살이를 하게 되고, 지숙은 예준의 후원 하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마침내 재문이 출소하고 지숙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이들의 관계는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향해 치닫게 된다. <헨젤과 그레텔>, <세븐 데이즈> 등에 출연해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준 박희순이 재문 역을, 최근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뉴하트>에 출연한 장현성이 예준 역을 맡았고, <메디컬 기방 영화관>으로 주목받은 홍소희가 지숙 역을 맡았다. 2006년 제작되어 그 해 부산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고, 이후 홍콩영화제와 카를로비바리영화제 등 해외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됐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정식 개봉을 하지 못한 상태다.





– 영화 개봉이 왜 미뤄지고 있는가?
이 영화의 배급사인 프라임엔터테인먼트에서 작년에 투자 혹은 배급한 영화들 성적이 신통치가 않아서 내 작품을 비장의 무기로 너무 아끼는 것 같다.(웃음) 하지만 최근 <세븐 데이즈>와 <더 게임>의 성적이 괜찮았으니 상반기 개봉이 가능하지 않을까. 어쨌든 한국 영화계 사정이 그만큼 안좋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 이미 해외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안다.
2006년 부산영화제 이후 홍콩영화제를 비롯해 체코 카를로비바리영화제, 미국 시애틀과 시카고, 호주 멜버른 영화제 등에 초청됐다. 프랑스에는 판권도 팔린 상태다. 하지만 프랑스보다 국내에서 먼저 개봉됐으면 좋겠다.


– 2006년에 개봉됐던 <방문자>의 경우엔 DVD 출시가 늦고 있다. 못 본 사람이 적지 않다.
일본에 수출돼 아마도 국내보다 일본에서 먼저 출시가 될 것 같은데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에선 판권을 갖고 있는 회사의 여러 사정들이 얽혀 있는 것 같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 관객보다 DVD로 볼 관객들이 더 많을 것 같기에 빨리 출시됐으면 하고 있지만 상황이 풀리지 않고 있다. 아마도 늦어도 5월 초에는 나오지 않을까 싶다.


– <방문자>처럼 <나의 친구, 그의 아내>도 저예산 비상업영화 계열의 작품인가.
꼭 그렇지 않다. 제작비를 굳이 밝힌다면 정확히 11억 2천만원이 들었다. 다른 상업영화의 1/3 수준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나름대로는 그만큼의 영화적 비주얼을 만들어 냈다고 자부한다. (내 영화로서는 드물게) CG까지 사용한 영화다. 어쨌든 <방문자>의 예산이 1억 3천이었는데,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서 10배로 오른 셈이다.


– 영화가 상당히 ‘386스럽다.’ 주인공들이 386세대여서 그런가? 궁극적으로 386세대의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가?
영화속 주인공들은 사실 386이라기보다는 그 바로 다음 세대(X세대라 할지 N세대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에 해당하는 나이다. 하지만 굳이 386뿐 아니라 더 젊은 관객들, 그리고 결혼을 했거나 아이를 낳아본 부부 관객들 역시 이 영화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 영화속에 <철학에세이>같은 책을 굳이 보여준 것은 뭣때문인가?
이 작품을 구상한 게 97년말 IMF가 터진 직후 모티브를 얻은 것이고, 한국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했던 그 때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라 생각한다. 더욱더 공공연하게 신자유주의화된 세상이지 않는가. 주인공 예준이가 예전에 운동권이었다는 사실이 키워드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랬던 인물이 질주하는 자본주의의 가치에 종속되는 상징성으로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 그러나 이 영화의 인물들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묘사들은 전적으로 386들이 가지고 있던 정서와 특징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볼 관객들의 연령층은 매우 다양할 것이다. 이 영화에 설정된 맥락을 그렇게 볼 관객들도 있겠지만, 그것을 떠나 친구관계나 가족관계, 부부관계 부분을 유념해서 볼 관객들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고, 다층적인 해석이 존재할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꼭 그런 틀로만 이 영화를 볼 필요는 없다.


– 당신은 영화들이 386 영화로 굳어지는 것을 경계하지만, 전작부터 이번 영화까지 모두 386 먹물 지식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대립구도가 등장하는 것도 사실이다. 감독이 계속 붙잡고 있는 주제인 셈인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길 나도 바란다. 내 자신도 386, 먹물이다 보니 내 나이 또래나 비슷한 세대의 디테일을 묘사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내가 천착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지금, 여기’에 관한 이야기다. <방문자>는 바로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지나치게 홀대받고 억눌리고 있는 상황에 대한 저항을 표현한 영화였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역시 예준보다는 재문과 지숙 커플, 즉 민초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중심이고, 여기엔 나를 비롯한 지식인에 대한 자기비판의 성격이 담겨져 있다.


– 인물들마다에 계급성을 부각시켰다.
그렇다. 일단 예준은 그 가족을 위해 보상을 하는 방법이라고는 금전적인 것밖에 모르는 냉혈한이다. 예준이 건네준 통장에 과연 얼마가 들어있었는지는 감독인 나도 모르겠지만, 어쨌건 지숙은 사정을 모른 채 예준이 준 돈을 기반으로 성공적인 비즈니스 우먼이 됐다. 미용실 계단에서 지숙과 공사하러 온 한국인 노동자, 이주노동자가 나란히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지숙이 과거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는 일종의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지숙이 한국인 인부나 이주노동자와 일종의 동질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주노동자의 경우 역을 맡은 배우가 이전에 연기 경험이 없는 분이라 결국 한 컷을 뺐기 때문에 약간 비약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약간 묘하면서 느낌이 있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 전작과 이번 작품 모두에서 칼 맑스가 언급된다. 칼 맑스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내 단편영화인 <신성가족>도 맑스와 엥겔스의 논문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대학 들어가고 나서 대부분이 그렇듯 광주 학살 등에 대해 알게 되면서 맑스를 접하게 됐는데, 맑스는 내가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된 데에 지적, 정서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 존경스러운 사람이다. 워낙 매도도 많이 당하긴 했지만 아주 인간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아이가 둘이나 굶어죽는 등 비극적인 개인사를 갖고 있기에 존경심뿐 아니라 연민이 함께 있다. 얼마 전 영국에서 한 여론조사에서 세상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로 맑스가 꼽히기도 했지만, 맑스가 던졌던 문제의식은 요즘에 와서 더 유효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모두들 한물 갔다고, 철지난 이야기라고 얘기하지만 오히려 그 정신, 다르게 보는 시선은 여전히 필요하고 가치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의도적으로 넣은 건 아닌데 하다보니 맑스에 대한 언급이 계속 들어간다. 이런 얘기를 하면 나더러 빨갱이라 할 사람들도 있겠기에 조금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다른 인터뷰에서도 얘기한 적이 있는데 2018년에 <칼>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 200주년이니 의미가 있지 않을까. 국제적인 프로젝트로 해서 한 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때까지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점이다. (웃음) 인물 감정이입이나 어떤 이익을 배제하고 일방적인 미화를 하기보다는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맑스의 인간적인 결함이나 희극성 같은 걸 다루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 각각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 특별히 중점을 두었던 점들은 무엇인가.
영어로 표현을 해보자면 예준이가 changed, 즉 변질된 인물이라면 재문이는 not-changing한 인물, 즉 일관되고 우직하며 안전 지향적인 인물이고, 지숙이는 changing, 스스로 변화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런 식으로 범주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현대사회의 정치와도 관련되지 않나. 재문은 현상유지파고 예준은 타락한 인물이라면 지숙은 이런 걸 깨려는 인물이다.


– 화면에 불러오는 인물은 과거의 인물이지만 사건이 벌어지는 건 현재이면서 항상 아이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미래가 함께 있다.
아무래도 에필로그에서 지숙이 임신하고 있는 장면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낀 것 같다. 진정 인간다운 사회가 도래하는 건 우리 세대에는 불가능하다 해도 다음 세대에서는 이뤄야 한다는 염원을 갖고 있다. 나도 한때 80년대 후반 학번으로서 이상을 외치기도 했지만 그것이 불과 몇 년 새에 이루어지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람시가 얘기했듯 “지성으로는 비관적이지만 의지로 낙관하는” 것이 중요하고, 바로 이것이 내 작품세계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한국 감독들 중에서 나만의 차별성이기도 하고.


– 굳이 아이가 죽는다는 설정을 넣은 이유는 뭔가?
그냥 그런 상상을 했다. 잔혹한 상상인 것도 사실이고 약간 변태적이라 할 수도 있고. 나도 우디 앨런처럼 일 주일에 한번씩 정신분석을 받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웃음) 97년말에서 98년에 그 작품을 처음 구상할 때 이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다 싶어 2, 3년 그냥 묵혔던 아이디어다. 언제나 현실이 가장 센 것이고 현실은 상상을 압도하는 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2002년에 다시 그 아이디어를 꺼내면서 영화에 사용했다.


– 노골적인 출산 장면이 나온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기술적으로 편집 등을 이용해서 컷을 나누거나 해서 속이지 않나. 그런 식으로 눈속임을 하고 싶지 않았다. 지숙이 출산하는 장면이 있어야 이후에 드라마 전개나 인물의 심리 등이 설득력있게 다가올 거라 여겼다. 다소 비호감스러운 장면이긴 하지만 그것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데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촬영하기도 힘들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지숙이 애를 잃고 나서야 아픔 등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을 테니까. 이 영화가 상당히 관찰자적 시선을 갖고있기 때문에 일반 관객에게 불친절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데, 초현실적인 장면들도 있기는 하지만 출산 장면에서 사실적이었으면 했다. 실제로 내 딸이 태어났을 때 내가 직접 아이의 탯줄을 잘랐다. 출산 장면이나 목욕 장면, 모두 내 실제 경험에서 나온 디테일들이다. 솔직히 아내가 출산하는 순간 자궁을 직접 보진 못했다, 무서웠으니까. 그런데 영화는 그렇게 찍어버렸다.


– 배우들의 연기에 어느 정도 만족을 하는가?
박희순의 경우 내가 상상하고 기대했던 것의 거의 전부를 표현해 내더라.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내가 손쉽게 오케이를 할 수 있었고, 내가 다른 걸 주문하면 그걸 그대로 해보이는 매우 흡수력이 강한 배우였다. 홍소희는 연기 경험과 절대적인 인생 경험이 적은 신인이라 촬영하기 전부터 처음부터 많은 대화를 했는데 그럼에도 매우 헌신적으로 열심히 해주어 좋은 결과를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방문자>로 강지환을 발굴한 것처럼 <나의 친구, 그의 아내>로 홍소희를 발굴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장현성의 경우는 처음에는 내가 기대했던 것과 연기 톤이 많이 달라 당황도 하고 놀라기도 했다. 그런데 하다보니 장현성의 연기가 예준을 훨씬 더 인간적인 결점이 있는, 더욱 인간적인 캐릭터로 만들더라. 결국 장현성이 만드는 예준에 내가 수긍하게 됐다.


– 무명 내지 조연이었던 강지환과 박희순, 장현성, 홍소희 모두 주연급으로 성장하고 유명해졌다. 배우 발굴에 비법이라도 있는 것인가?
비법이 있다기보다는, 좀 쑥스럽기는 하지만 나한테 그런 안목이 좀 있는 것 같다. 이창동 감독님도 송강호나 설경구, 문소리 같은 배우들을 발굴하지 않았는가. 나 역시 앞으로 적어도 주인공 중 한 명은 반드시 신인으로 가겠다는 원칙을 지키고 싶다. 스타배우에게만 의존하지 말고, 신인 중에 좋은 배우를 발굴하는 것 역시 감독인 나의 책임 내지 의무라 생각한다.


– 당신 영화는 규정하기 어렵다. 어떤 장르, 어떤 스타일의 영화인가?
<방문자>에 코미디적 요소가 있고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는 스릴러 혹은 누아르적 요소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내가 그걸 풀어나가는 방식은 다 일상적인 드라마 형식이다. 인생 자체가 하루는 코미디 같기도 하고, 하루는 신파 드라마 같고 하루는 미스테리하지 않은가. 인생 자체가 장르를 벗어나는데 하나의 장르로 승부를 보는 건 좀 아니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이것도 너무 경직된 사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번쯤은 장르영화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제 두 작품을 했으니 좀 더 다양하게 해보고 싶은 게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스케일이 크건 작건 내 작품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고 존중해줄 수 있는 든든한 제작자와 지속적인 파트너쉽을 맺는 것이다. 이안 감독이 그렇게 성장한 것도 데뷔작에서부터 지금까지 예산이 어떻게 되든 책임져주는 제임스 샤무스라는 프로듀서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 그 이안 감독이야말로 대중에게 친절한 장르영화의 틀을 사용한 영화를 만든다.
그래서 나도 장르에 대해 생각이 많은데… 다만 내가 장르영화를 만든다 해도 내 색깔은 충분히 묻어날 것 같다. “신동일은 어떤 장르를 만들든 고유의 색깔이 있고, 이슈 지향적인 소재를 다루더라도 캐릭터 중심적으로 엔터테인먼트를 만들어나가는 재능이 있다.”는 얘기를 다른 평론가가 해준 적이 있다. 나만의 전복적인 시선이나 특유의 꼬기 같은 걸 보장해 준다면 얼마든지 상업적인 장르영화를 만들어 볼 의향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들 중 코엔형제는 장르를 잘 활용하면서도 장르를 뛰어넘고 장르의 법칙을 변형시킨다. 그런 식이라면 나 역시 장르영화를 해보고 싶다. 문제는 내게 제임스 샤무스 같은 존재가 없다는 것이지만.


– 요즘과 같은 시대에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참 본질적이라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글쎄? 영화는 나한테 애증의 대상이다. 영화가 너무 좋아서 학교 졸업하자마자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서 영화를 시작했는가 하면 영화 때문에 인생에 환멸을 느껴서 영화를 포기한 적도 있다. 애증의 대상이고 극복대상이자 위기의 대상이고, 내가 모르는 존재이기 때문에 파고들고 싶은 존재다. 아직, 잘 모르겠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2 Comments

  1. 잘 지내시죠?

    전에 뵜을때도 말했지만, 더 아름다워지셨어요.

    인터뷰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근데 궁금해 졌습니다. 그렇다면 본인에게 ‘요즘과 같은 시대’란 무엇을, 어떤것을 뜻하나요 ? 정치적으로? 아니면 문화적으로?

    질문이 너무 도발적인 것 같지만, 달리 표현방법을 찾기 어렵네요. :)

    참. 블로그 이사중입니다. 네이버에서 텍스트큐브로.

    • 저한테 물어보시는 거라면.
      별 생각없이 곧바로 떠오른 답은 ‘희망없는 시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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