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리사 우에드라오고 감독 인터뷰 (2008. 5. 9)


2008년 전주영화제가 ‘디지털 삼인삼색’을 위해 고른 감독은 우리에게는 낯선 영화대륙, 아프리카 출신의 감독들이다. 혹자들은 아프리카에서도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생소하지만, 아프리카 역시 수많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거장들을 두루 배출해냈다. 2008년의 전주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은 바로 그 아프리카가 배출한 감독들 중 이드리사 우에드라오고(부르키나 파소), 마하마트 살레-하룬(차드), 나세르 하미르(이집트) 감독을 선정했다. 이중 이드리사 우에드라오고 감독은 아프리카가 배출한 거장 중 거장이지만 국내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이름이다. 감독은 다른 감독들보다 더 늦게 한국에 도착해 핸드프리팅과 기자회견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나는 자료들을 찾다가 이드리사 우에드라오고 감독이 우리가 몰랐을 뿐 전세계적으로 이름이 높은 감독인 걸 알고 깜짝 놀랐고, 기자회견에서 빠진 만큼 따로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뷰를 위해 준비를 하면서, 심지어 그의 영화는 국내에서 정식 개봉을 한 적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또 한 번 놀라기도 했다. (백두대간이 씨네큐브를 처음 개관하면서 선택한 개관작이 바로 우에드라오고 감독의 <야바>였다. 이 영화는 당시에 비디오로도 정식 출시된 바 있다.) 마침 내가 당시 전주영화제에서 번역한 영화 역시 우에드라오고 감독의 <키니와 아담스>였다. 인연이라면 인연이었던 셈이다. 인터뷰를 하고 나서 나는 그 감독이 풍기는 아우라에 한동안 뻑갔(…)고, 아프리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그가 이끌고 있는 아프리카 최대의 영화제, 페스파코를 꼭 방문하고 싶다. 그리고 아프리카 영화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고 싶다. 이 인터뷰는 원래 프레시안의 이 페이지에 실렸다.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감독인 이드리사 우에드라오고 감독은 우리에겐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베니스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는가 하면 미국의 9.11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 <2001년 9월 11일>에도 참여하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쌓고 있는 거장이다. 부르키나 파소 태생인 우에드라오고 감독은 1989년작 <야바>로 칸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이듬해 <틸라이>로 같은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으며, 1993년에는 <삼바 트라오레(Samba Traore)>로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 부르키나 파소에서 개최되는 아프리카 최대의 영화제로서 ‘제3세계의 칸영화제’라 불리는 페스파코(FESPACO : Festival of Pan-African Cinema in Ouagadougou)를 이끌고 있다.


올해 전주영화제의 <디지털 삼인삼색 2008 – 귀향>에 <생일>로 참가한 우에드라오고 감독은 동 섹션에서 상영될 자신의 장편영화로 97년작인 <키니와 아담스>를 선택했으며, 이 영화는 2일날 상영된 바 있다. 비행 일정 때문에 기자회견과 핸드프린팅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한 그를 프레시안이 따로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디지털 삼인삼색>에 참여한 만큼 우에드라오고 감독과의 대화는 ‘디지털’에 관한 것으로 시작됐고 그는 아주 열정적으로 질문에 답했다. 우에드라오고 감독은 폐쇄 직전의 극장 5곳의 운영권을 부르키나 파소 정부로부터 얻은 뒤 이 극장에서 상영할 영화들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그 자신은 물론 후배들과 주로 디지털로 작업을 했기 때문에 디지털 작업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또한 이런 경험 때문에 디지털에 대한 견해가 매우 뚜렷했다.


– 필름 작업과 비교했을 때 디지털 매체가 가지는 장단점은 무엇인가?


필름과 디지털은 종류가 아주 다른 매체이기 때문에 비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차에 비유하자면 메르세데스와 벤츠는 기능과 가격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지 않은가. 다만 디지털이 필름에 비해 여전히 공간의 깊이감을 표현해내지 못한다는 점은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기술적으로 아직 해결이 안 된 것 같다. 그렇기에 디지털이 가진 고유 특성에 대해 주로 얘기해 보자면, 디지털은 매우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장치이다. 또한 필름 작업이 10배에서 20배의 제작비가 들고 조명과 배경 등 꾸며야 할 것이 많은 반면 디지털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필름과 디지털은 광학적인 면이나 기술적인 면에서 단순 비교를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 디지털이란 매체가 가진 고유의 속성을 어떻게 더 발전시킬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디지털이 필름에 비해 공간적 깊이감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고 해서 좋은 영화를 찍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디지털 작업을 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사실 카메라나 필름 혹은 디지털도 모두 유럽의 발명품이 아닌가? 아프리카처럼 햇빛이 강한 곳에서는 하얀 것은 모든 것을 반사하고 검은 것은 모든 것을 흡수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디지털로 영화를 찍으면 이렇게 강한 햇빛 하에서는 배경색이 거의 하얗게 뭉개져버리기 때문에 영화를 찍기 위해서는 아침에 해가 뜨기 전 혹은 햇빛이 강해지기 전 오전에만 찍을 수밖에 없으며, 햇빛을 차단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해야만 한다. 아프리카에서 아주 좋은 디지털 영화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그러나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디지털이 우리 일상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게 사실이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올 때 많은 제약이 있었지만 결국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것이 되지 않았는가?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오는 것 역시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모든 기술적 혁신에는 언제나 제약과 반발,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디지털 매체가 중요한 것은 이미지의 질이 아니라 시간의 지속성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건 필름보다 훨씬 자유롭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진 민주적인 매체라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경제적 이유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자기 자신의 이야기, 남의 눈이 아닌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할 수 있는 기회를 디지털이 조금 더 쉽게 열어줬다. 앞으로 5년에서 10년 후면 기술이 더욱 발전해서 지금의 제약도 줄어들 것이다.


결국 최종적인 건 같다. 어떤 매체를 사용하든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과 같은 인간의 감정이 아닌가. 물론 이것은 이미지를 통해 구현되지만. 디지털이든 필름이든 영화는 이미지다. 다만 도구가 달라지면 제약도 달라지며 작업 도중 얻게 되는 즐거움도 달라진다.”


– 영화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국가들도 있는 아프리카에서 디지털이 영화의 발전과 보급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은 시장의 논리를 고려해야 한다. 디지털로 많은 작업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제작을 해도 배급이 안 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나이지리아와 같은 큰 나라를 제외하면 아프리카에는 작은 규모의 국가들이 매우 많은데 이런 나라들은 인구수도 1,000만에서 1,500만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들 중 8, 90%에 해당하는 인구가 극장이 하나도 없는 외지나 시골에서 산다. 디지털로 쉽게 찍을 수 있고 없고를 떠나, 극장이 없어 배급이 안 되는 것이 더 문제다. 영화는 예술적 산물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산업적 산물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아시아는 시장이 있기 때문에 계속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우리는 8,90%의 인구가 영화를 볼 수 없는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다.


거기에, 세계적으로 봐도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계는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 그리 열려있는 사회가 아니다. 과연 한국에서 아프리카 영화가 얼마나 상영되는가? 이것이 오히려 더욱 본질적인 문제이다. 디지털로 아무리 영화를 찍어도 시장이 없고 극장이 없기 때문에 결국 TV에서 방영할 수밖에 없다.” (감독은 자신의 영화 <야바>가 한국에서 개봉 및 비디오 출시를 거쳤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Idrissa Ouedraogo

별도의 핸드프린팅 장에서. (JIFF제공)

– 당신이 이끌고 있는 아프리카 최대 영화제인 페스파코에 대해 설명해 달라.


부르키나 파소의 수도인 와가두구에서 열리는 경쟁영화제로, 아프리카 사람들이 만든 영화들만 상영한다. 여기에는 디아스포라(해외에 흩어져있는 아프리카인들)들의 영화도 포함된다. 물론 관객들은 해외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영화제로 규모가 아주 크다. 전주영화제는 페스파코에 비하면 ‘아가’에 불과하다. 영화제 기간 전체가 축제다.


–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아프리카에서 페스파코의 역할 혹은 취지와 의미를 설명해 달라.


7일에서 10일 정도의 단기적인 축제라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극장이 없는 곳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오히려 텔레비전이 영화를 만나는 데에 더 큰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페스파코는 원래 처음에는 영화제 형태가 아니었고, 흩어져있는 사람들을 끌어모아 그들이 각자 겪었던 제작과 배급에 관한 문제들을 함께 이야기해보자는 단순한 만남에서 시작했다. 아프리카에서도 시장이나 배급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영화를 만들기 힘들지만 감독의 수도 계속 증가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영화제라는 축제 형태가 된 것이다.


처음에 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영화가 아프리카의 문제를 아프리카 사람의 눈으로 다룰 수 있는 우리의 무기로 삼을 수 있을 거라는 인식을 가졌다. 그러나 그런 이상은 곧바로 현실적인 논리 앞에서 깨져버렸다. 영화가 창조적인 예술인 건 사실이지만 자본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 오히려 그 어떤 다른 매체보다 더욱 자본의 구속을 크게 받는 매체라는 사실을 곧바로 깨달아버린 것이다. 그렇게 곧바로 인식 전환이 왔다. 사실 아프리카는 작은 국가들이 많은데 그런 나라들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수단이나 방법을 갖고 있지 못하며 아프리카의 영화들은 90%가 해외의 지원을 받으며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외부의 지원을 받으며 영화를 만들 수만은 없지 않은가? 내부적 기반이 만들어져야 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아직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치품이다.


–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작품은 <야바>와 <틸라이>인데 굳이 <키니와 아담스>를 전주영화제 상영작으로 고른 이유는 무엇인가?


<야바>와 <틸라이>는 아프리카의 자연과 인간, 그리고 아프리카 내부의 고유의 문제를 성찰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인 반면 <키니와 아담스>는 짐바브웨라는 또 다른 아프리카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것은 실제 아프리카의 또 다른 모습이다. 끊임없이 부자가 되려하고 이것을 ‘차’라는 현대적인 문명의 이기를 통해 추구하는 것이다. 사실 서양인들은 아프리카에 대해 보는 눈이나 요구하는 것이 항상 똑같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으며, 아프리카인들 역시 외관상 문화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인간이라는 본질적 모습은 서양인이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다.


– 서양인이 요구하는 한 가지 모습이란 어떤 걸 가리키는가?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이 식민지 경험을 했고 그 때문에 다른 언어를 배울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프랑스어를 배울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는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의 고유의 문화가 있으면서 제국주의의 시대에 다른 문화를 타의에 의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말하자면 두 개의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식민지 경험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두 문화가 대화를 하고 내가 다른 문화와 민족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기 문화밖에 모른다. 자기의 시선만을 가진 채 다른 이로부터 배우려는 마음이 없는 매우 어리석은 시선이다.


영화 역시 문화적인 산물인데 다양한 교류를 통해 서로 배우려는 노력이 유럽인들에겐 없다.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문제다. 그러나 다행이고 긍정적인 것은 아프리카의 많은 젊은이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많이 유학을 하면서 이것이 서로 다른 시각과 사고를 교환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 식민지 경험을 한 국가의 출신으로 제국인 프랑스에서 유학한 최고의 지식인이자 예술가인 만큼 당신은 프란츠 파농을 연상시킨다. 당신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프리카에 대해 당신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가?


식민지 시대는 이미 끝났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식민지였다는 사실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을 알아가며 서로 교류하는 것이다. 식민지 경험은 나의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통해 다른 문화를 접하고 배울 수 있었으므로 오히려 내가 가진 힘이다. 독립은 1960년대에 됐는데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는가? 아니다, 지금은 옛날의 노예문제보다 더 해결하기 힘든 세계화라는 싸움의 대상이 있지 않은가. 이제는 프랑스라는 나라가 문제가 아니라 세계화라는 현존하는 괴물이 더욱 문제이며 이것은 훨씬 복잡하고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석유값은 나날이 폭등하고 아프리카가 아무리 빈곤에 허덕이고 있어도 아시아는 쌀 생산을 무기로 수출을 안 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문제이지, 식민지는 문제가 안 된다. 나는 내 몸 안에서 두 문화를 하나로 만들 수 있으며, 이를 배워 힘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사실 식민지 시대에도 아프리카의 많은 학생들과 지식인들이 파리에서 공부했다. 레오폴드 생고르와 에메 세제르가 죽었을 때엔 프랑스에서 대통령이 헌사를 하기도 했다. (편집자 주 – 레오폴드 세다르 생고르와 에메 세제르는 모두 아프리카인으로서 프랑스에서 공부했으며 유명한 시인이자 동시에 정치가이다. 둘 다 흑인정체성 회복운동인 네그리튀드를 이끌었다. 레오폴드 세다르 생고르는 프랑스령이었던 세네갈이 독립하자 최초의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1936년에 이 유학생들은 프랑스에서 ‘흑인학생들’이라는 잡지를 만들기도 했는데 그 서문은 “우리들은 자본주의 부르주아의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들이 고국을 떠나 프랑스에 가서 느꼈던 지적인 갈증은 바로 자유롭고자 하는 갈증이었다. 이는 단순히 자기가 흑인이고 식민지 출신이니 쟁취해야 하는 그런 1차적인 자유가 아니라 이를 뛰어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자유를 뜻한다. 그러니 식민지 출신 지식인의 정체성 같은 건 내 관심사가 아니며, 그런 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


중요한 것은 타 존재가 있고 그와 교류하고 무언가를 배우며 경험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것처럼 느끼고 울 수 있다는 건 배우고 경험하면서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경험과 배워서 아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나 자신의 정체성을 강하게 아는 것을 전제로 한다. 나는 아프리카 사람이며 부르키나 파소 사람이다. 내가 한국에서 생활한다면 또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지 않겠는가.


– <키니와 아담스>로 다시 돌아가서, 이 영화를 영어 영화로 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새로운 것에 언제나 관심이 많으며, 다른 언어로 영화를 제작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사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같은 아프리카에 있음에도 서부 아프리카와는 또 다른, 잘 알지 못하는 아프리카다. 남아공화국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영화 자본이나 시장을 가질 만한 잠재력을 품고 있다. 그런 걸 고려하면서 나도 잘 몰랐던, 서부 아프리카인들이 잘 몰랐던 또 다른 아프리카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영화가 두 아프리카 사이의 통로와 교각의 의미가 되기를 기대한다.


– <키니와 아담스>에서 도시를 동경하던 두 남자가 결국 관계의 파국을 맞는데 이는 결국 자본주의와 물질 때문인데, 이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무엇인가? 아프리카를 잠식해가는 자본주의에 대한 당신의 입장은 무엇인가?


자본주의가 미쳐가고 있는 것 같다. 일상적으로 필요한 것들, 예컨대 의료나 교육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소수의 몇몇에 의해 자본의 투기화가 진행돼가고 있다. 이것이 전 지구를 미친 자본주의로 몰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것을 ‘야만적 자본주의’라 부른다. 아프리카가 가난한 건 사실이지만 의료나 가난, 빈곤 등의 문제는 아프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유한 나라에도 그 내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가? 결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본래적으로 추구하려던 것들, 예컨대 사랑이나 연대 같은 것을 언젠가는 다시 찾으려고 들 거다.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될 순간이 오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때엔 굶어죽나 아파서 죽나 총 맞아 죽나 어차피 상관없는 때가 되기 때문에 결국 반란이나 혁명까지도 일어나게 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사람들은 아프리카가 됐건 어디가 됐든 똑같은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 이 미친 자본주의는 어떤 방식으로든 조절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불행하게 될 것이다.


– <키니와 아담스>에서 두 사람의 우정 관계에서는 아담스가 키니를 동경하고 질투하는 것뿐 아니라 동성애적인 집착도 보이는 듯하다. 감독의 의도인가?


동성애적인 사랑을 의도한 건 아니다. 우정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만 그건 플라토닉한 정신적인 사랑이다. 아담스는 떠나려 하지만 결국 떠날 수 없게 되자 자살하고 만다. 우정이 너무 강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 당신은 어떤 감독들을 좋아하며 누구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는가?


너무 많아서 다 얘기할 수는 없고, 오손 웰즈, 빔 벤더스 등을 들 수 있겠다. 빔 벤더스 감독의 <파리, 텍사스>는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영화이다. 스필버그의 <칼라 퍼플>도 무척 좋아한다. 사실 나는 휴머니티나 사랑, 즐거움 등 인간에 대한 얘기를 하는 영화들을 두루 좋아한다. 때문에 어떤 특정한 영화를 꼽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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