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슨 리 | 플래닛 비보이 Planet B-Boy (2007)

Planet B-Boy

전세계 비보이들, 모이시지?


<플래닛 비보이>는 제목 그대로 전세계 비보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처음에는 뉴욕에서의 비보잉의 태동을 간략하게 다룬 뒤, 곧바로 2005년 전세계의 비보잉 팀들을 만난다. 90년대에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비보잉을 2000년대에 여전히 하고 있는 이들, 심지어 탄생지인 미국의 뉴욕, 브루클린보다 더한 열정과 기교를 보여주는 해외팀들이 영화의 전면에 등장한다. 주로는 매년 독일에서 열리는 비보잉계의 권위적인 대회인 ‘배틀 오브 더 이어’와 관련, 2005년 출전을 준비하고 있었던 다섯 팀(한국의 ‘갬블러즈’와 ‘라스트 포 원’, 일본의 ‘이치가케’, 프랑스의 ‘페이스-T’, 미국의 ‘너클헤드 주’)의 뒤를 좇는다. 이중 미국의 너클헤드 주 팀도 전통적인 브루클린의 팀이 아닌, 라스베가스 출신의 팀이다. 그렇기에 <플래닛 비보이>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언어와 문화는 달라도, ‘춤’으로 소통되는 전세계 20대 젊은이들의 열정과 에너지다. 그저 대회에 출전한 팀들의 실력이나 기교뿐 아니라, 팀에 속해있는 멤버들의 고민들에까지 카메라를 들이댄다. 구체적인 고민의 내용은 다르지만, 이들이 청춘을 불사르며 춤을 통해 자신의 꿈과 열정을 시험하고 물아지경의 황홀경에 한발짝씩 가까이 간다는 점만은 똑같다. 사막 위에서 춤을 추든, 기모노를 입은 여자들 앞에서 춤을 추든, 아니면 공동경비구역 JSA(의 세트)에서 춤을 추든 말이다.


벤슨 리 감독의 카메라 앞에 선 비보이들, 특히 초창기 비보이 문화를 이끌었던 선구자들은 하나같이 비보이는 랩과 상관이 없으며, 특히 폭력적인 갱스터 랩과는 전혀 별개의 영역임을 강조한다. 이들은 술이나 담배도 별로 하지 않으며, 마약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감독 역시 비보이의 예술성을 강조하며, 흔히 제니퍼 빌즈의 아름다운 몸매와 춤으로만 기억되는 <플래시댄스>의 인상적인 길거리 춤 장면을 인용한다. 비보이들에게는 <플래시 댄스>의 주인공이 제이퍼 빌즈가 아니라 바로 그 장면에서 춤을 추던 전설적인 브레이크 댄서, 크레이지 레그스(Crazy Legs)였다. 사실 <플래시댄스>의 그 장면이야말로 80년대를 지배하던 디스코 열풍을 한순간에 브레이크댄스 열풍으로 뒤바꾼 역사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벤슨 리 감독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고자 하는 것은 전세계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의 그 열정과 에너지다. 배틀오브더이어 대회의 장면들은 감각적인 앵글과 빠른 편집으로 박진감을 더해주는가 하면, 이들이 자신들의 고민과 꿈을 카메라에 대고 털어놓는 장면에서는 마치 카메라로 이들을 다독이는 듯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 사이에는 간간이 유머가 배어있다.


Flachdance

영화 <플래시댄스>에서 크레이지 레그스(Crazy Legs)가 브레이크댄스를 추는 장면.


하지만 <플래닛 비보이>란 영화 자체가 주는 매력 이상으로, 이 영화가 영화 밖 현실과 만나는 접점 역시 흥미로운 고찰을 제공한다. 모든 하류문화란 처음부터 그것이 의도했던 아니던 주류의 가치와 문화에 도전하고 저항하는 측면이 있다. 대체로 하류문화란 그것을 생산하고 즐기는 이들이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있건, 이런저런 폄하를 비롯해 심한 경우 모욕과 왜곡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비보잉’만 해도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같은 연극이나 숙명여대 가야금 연주단과 함께 한 광고로 알려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이전, 소위 가출한 ‘불량’ 청소년들이 새벽의 지하철 역에서 몰입해 추는 괴상한 춤이 ‘비보잉’에 대해 사람들이 알게 된 첫 이미지였다. 비보잉은 말하자면 신문에서 문화나 예술 면이 아닌, 사회 면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다. 청소년들을 위한 놀이문화나 놀이공간은 거의 없다시피한 채 아이들을 획일적인 교육제도 하에 내몰고 약육강식과 경쟁을 어릴 적부터 체화하게 만드는 사회현실은, 슬쩍 지워지거나 마지못해 동정적 시선과 함께 ‘구색’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이 추는 춤과 누리는 문화는 손쉽게 ‘불량’한 것으로 낙인찍힌다.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서의 춤과 문화라기보다는 ‘미국 슬럼가 흑인들의 불량한 몸짓을 흉내내는 것’으로 폄하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류문화들의 아이러니한 점은, 그것이 ‘인정’받기 시작할 때 더 이상 하류문화가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모욕과 가치폄하를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고유의 예술성을 인정받기 위해 초기 거장들의 노력이 계속되면서, 하류문화는 하나의 예술로, 분야로 고유의 독립성과 가치를 인정받으며 주류에 편입한다. 대신 애초 가졌던 가치전복적 저항성은 탈색되기 마련이다. 사실 그렇기에 ‘하류’문화이기도 하다.


Planet B-Boy

<플래닛 비보이>의 한 장면. 전해 '배틀오브더이어' 대회의 우승자 자격으로 2005년 출전했던 한국의 갬블러즈(Gamblerz) 팀의 연습장면.


80년대에 뉴욕 브록클린에서 퍼져나가 전세계적인 인기를 누렸고 90년대 국내에 도입된 비보잉은 사실 태생부터 사회의 소외된 약자들의 문화이긴 했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처음 비보잉을 했던 이들 역시 사회와 학교로부터 소외된 청소년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사회가 강요하는 주류 이데올로기에서 소외되거나 이를 거부한 청소년들이었다. 그리고 비보잉이 마침내 주류에 편입한 순간은, 한국 팀이 종주국(!)인 미국과 예술의 나라 프랑스, 심지어 집착적인 경쟁의 대상인 일본의 팀마저 제치고 우승을 거머쥔 순간이다. 이제 비보잉은 한국에서 전세계 ‘아티스트’들을 초청해 문화제를 열 정도로 인정받는 예술이 됐다. 하지만 이것은 하류문화가 특히 한국이란 공간에서 주류에 편입하는 과정을 매우 상징적으로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여전히 그들은 좋아하는 춤을 추되 군대와 생계를 걱정하며, 그렇기에 이들의 춤은 예술보다도 ‘상품’으로만 포지셔닝되는 경향이 짙다. 감독이 영화의 기획 당시부터 의도한 것은 결코 아니었겠지만, 이 영화의 대회(2005년)에서 우승을 거머쥔 ‘라스트 포 원’ 팀이 1년 뒤 숙명여대 가야금 팀과 함께 CF를 촬영했다는 에필로그에서도 확인되는 대목이다.


그렇기에 서로 다른 환경과 문화에서 자란 이들이 전세계 보편적으로 ‘비보잉’을 통해 꿈과 도전을 발견한다는 사실을 담은 <플래닛 비보이>는, 역설적으로 과거 한국에서 하류문화였던 비보잉이 어떻게 주류에 안착하고 마침내 독립된 예술성을 인정받게 되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딜레마와 아이러니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는가를 포착한 흔치 않은 다큐멘터리가 됐다. 영화가 끝을 맺은 그 다음의 이야기야말로, <플래닛 비보이>가 문화상품 소비자인 우리에게든 비보이들에게든 정말로 던져준 숙제가 되는 셈이다.


ps. 10월 20일(2009년) 프레시안 기사로 나간 글.


ps2. 미국의 소니에서 이 영화의 판권을 사서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로 리메이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감독은 벤슨 리, 하지만 아직 프리-프리덕션 단계라는 듯.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One Comment

  1. Pingback: 고프로오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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