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단평

올 겨울 대작들의 치열한 흥행접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가 가장 먼저 공식적으로 첫 선을 보였다. <아바타>의 배급사인 20세기폭스는 11일 낮 2시 영등포CGV에서 언론시사를 갖고 전세계적인 관심과 기대를 불러모으고 있는 <아바타>를 드디어 국내에 공개했다. <아바타>는 <터미네이터> 1, 2와 <에일리언 2>, <트루 라이즈>의 흥행작들은 물론, 전세계 흥행 1위작인 <타이타닉>을 연출한 제임스 카메론이 12년만에 선을 보이는 영화라는 점에서 전세계 영화팬들의 기대를 모아왔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만을 위해 신기술을 전격 개발, 도입하여 구현한 영화의 장면 중 20분 가량의 동영상을 일찌감치 공개하면서 전세계의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Avatar


드디어 베일을 벗은 <아바타>는 과연 모든 점에서 관객들을 놀래키며 새로운 레벨의 시각적 쾌감과 충격을 안겨줄 만하다. 그토록 자신만만하게 자랑했던 이모션 캡처 및 가상 카메라의 위력은 놀라움을 넘어서 경이로운 수준이며, 전반적인 CG 기술 역시 놀랍다. (가상의) 판도라 행성을 수놓고 있는 자연과 기기괴괴한 생명체들은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드러내며, 파란 피부에 긴 꼬리와 날카로운 귀를 가진 3미터 장신의 나비 종족 및 이들과 인간의 DNA로 만든 생명체인 아바타(그와 DNA가 맞는 인간이 의식으로 조종한다)의 동작과 표정도 매우 자연스럽게 구현됐다. 주인공 제이크 설리반(샘 워딩턴)의 아바타가 나비종족의 네이티리(조이 살다나)와 함께 거대한 새 이크란을 타고 날아다니는 장면, 숲에서 거대한 생명체에 쫓기는 장면 등도 박진감이 넘치거니와, <에일리언 2>와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장면들을 뛰어넘는 전투씬들도 관객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다. 2시간 42분의 다소 긴 러닝타임이지만 단 한 순간도 지루해할 틈이 없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에서 벌이는 대규모 전투씬은 그 어떤 이전의 전쟁영화보다도 화려하고 큰 스케일을 자랑한다. 거기에 <타이타닉>에서 다소 실소를 자아냈던 로맨스도 이 영화에서는 아주 매끄럽고 자연스러우며 설득력있다. 액션과 모험, 로맨스,그리고 전쟁영화 등 모든 장르가 한 영화 안에 들어있지만 이 모든 것들이 만족스럽다. 한마디로 <아바타>는 속이 꽉 찬 종합선물세트다.


그러나 <아바타>의 놀라움이 단순히 새로운 테크널러지나 화려한 볼거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바타>는 단순히 낯선 행성에서의 모험과 상투적인 두 문명의 충돌 및 전쟁만을 다루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바타>는 인류가 ‘문명화, 근대화’의 이름으로 침략과 전쟁을 자행했던 이른바 ‘식민지 근대’의 역사를 혹독하게 비판하며 자연 속에서의 공존을 강조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판도라 행성 도처에 깔려있는 값비싼 언옵타늄이라는 광물을 채취하기 위해 판도라 행성에 기지를 설치하고 채굴을 하는 인간의 탐욕은 곧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남아메리카를 침략해 식민지화했던 근대 유럽의 식민전쟁을 연상시킨다. 자연과 완전히 동화되어 자연과의 교감을 중시하며 살아가고, 필요한 만큼만 사냥하며 죽은 동물들의 영혼을 존중하는 나바족들의 생활풍습은 우리가 흔히 ‘인디언’이라 불러왔던 아메리칸 네이티브들의 풍습과 닮았다. 쿼리치 대령의 지휘 하에 이들의 정착지가 무자비한 공중폭격을 당하는 장면은 곧 신대륙 발견 이후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서 벌어졌던 네이티브 학살 및 착취를 연상시킬 뿐만 아니라, <지옥의 묵시록>에서의 그 유명한 폭격 장면을 연상시키며 베트남 전의 이미지까지 끌어들인다. (이 장면에서 쿼리치 대령이 사용하는 작전 이름도 ‘발키리 1-6’이다.) 때문에 영화 중반, 나비 종족들의 거주지가 폭격당하는 장면은 그 엄청난 스케일과 스펙터클 때문에 더욱 참혹하고 경악스러운 학살과 파괴의 공포를 전달한다.


<타이타닉>에서도 제임스 카메론은 거대한 재난영화의 틀 안에 계급사회의 폭력과 휴머니즘을 담으려 시도한 바 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도 그는 일차적으로 눈을 유혹하는 뛰어난 시각효과와 놀라운 상상력 아래에 ‘기계조차도 배우게 되는’ 휴머니즘을 심어놓았다. 하지만 전작들에서 카메론 감독이 시도했던 이러한 ‘메시지’들은 언제나 화려한 볼거리 앞에서 상대적으로 초라하고 앙상하게 그 얕음을 드러내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아바타>는 공백의 12년 동안 카메론이 그저 영화의 테크놀로지만 고민한 것이 아니라, 영화가 담아야 할 메시지와 철학을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드러내는 영화이기도 하다. <아바타>는 감히 ‘영상 혁명’을 자처하는 데에 토를 달고 싶지 않을 만큼 혁명적인 기술을 선보이기도 하지만, 카메론의 전작의 어떤 영화들도 도달하지 못했던 깊이있는 근대문명에 대한 성찰과 비판을 수행한다.


<타이타닉>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며 제임스 카메론은 “나는 세상의 왕이다!”라고 외친 바 있다. <아바타>를 내놓은 뒤의 제임스 카메론은 “나는 영화의 신이다”라고 자처해도 그 누구도 감히 반박을 할 수 없는 존재가 될 듯하다. 아마도 <아바타>의 흥행 역시, 단순히 다른 영화들에 비해 얼마나 흥행할 것인가보다 이제 그 자신이 세운 <타이타닉>의 기록을 과연 깰 수 있을 것인가가 더욱 화제가 될 것이다.



ps1. 영화가 끝난 시간이 5시. 지하철 타고 사무실 오면서 지하철 안에서 쓴 기사. 일단은 단평, 제대로 된 리뷰는 다시 쓸 예정. 어쩌면 두어 번 더 볼지도.


ps2.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 영화 후반부의 전투씬들에 열광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름다운 판도라 행성에서 제이크가 네이티리로부터 나비종족이 문화와 풍습을 익혀나가는 전반부가 훨씬 좋았다. 약육강식이 지배하고 있지만 ‘순리대로’ 살아가며 균형을 지키는 아름다운 자연과, 그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자연과 교감하며 사는 나비족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후반부 전투씬은, 오히려 전투기가 불덩이가 돼서 떨어지며 나무들을 태울 때마다 보는 게 고통스럽더라. 내게는 ‘신나고 박진감 넘치는 전투씬’이 아니라 저 아름다운 곳이 다 망가지고 파괴되는 상실과 아픔의 전투씬이었다. 사실 그 전, 발키리 1.6 장면에서 아미 나비족의 거주지가 다 파괴돼버리는 바람에… 그 공중폭격씬에서 계속 울고 있었다는.


ps3. 사실 한번도 제임스 카메론을 좋아해본 적이 없다. <에이리언> 시리즈는 여전히 리들리 스콧의 1편을 더 좋아하며, <터미네이터> 시리즈도 그렇게까지 열광하며 좋아하진 않았고, <타이타닉>은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아바타>를 보고나서 든 생각은, “야 그냥 너 짱먹어라” 뭐 이런 느낌. 그리고 헐리웃에서 로버트 저멕키스와 함께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기술오타쿠인 그의 그 집념의 장인정신은 인정해줄 만하다는 거.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7 Comments

  1. 단평이 아닌데요?^^ 잘 읽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이렇게 빨리, 그것도 지하철 안에서 이토록 깔끔하게 정리를 하다니, 존경스럽습니다. 전 그냥 어리둥절할 뿐이던데요.

    • 아무래도 온라인 매체의 무기가 신속성이다 보니… 다시 읽어보니 오타도 많고 주인공 이름도 틀리고, 막 그렇네요 ^^;;

      ‘식민지 근대’란 주제에 원래 관심이 많았는데, 전세계 가장 일반적인 팬들을 대상으로 한 헐리웃 블록버스터에서 이 주제를 그렇게까지 다룬 게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카메론 아저씨도 이제 어르신이구나, 뭐 그런 생각도 들었고요.

  2. 보고 싶었던 영화인데 영화평 정말 잘봤습니다.
    정말 간결하고 깔끔한 영화평이네요~~(마치 영화를 보고난 느낌까지^^ 그래도 꼭 보고 싶네요)
    카메론 아저씨는 어르신일 뿐 아니라 “거대자본”으로 “자본논리”를 반성하는 참 인물이신 듯 합니다.^^

    • 에고, 제가 지나치게 스포일링을 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되는군요. 그러나 < 바타>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셔야 그 진가를 아실 겁니다. 사실 백마디 영화평이 필요없는 참 드문 영화이기도 합니다. :)

  3. 안녕하세요:-) 홍은화입니다.
    아이들 데리고 가서 보려고 했는데 김숙현님의 단평을 읽으니 조금 걱정도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저는 제임스 카메론 좋아한적 딱 한번 있습니다. 터미네이터1편! 리쓰가 사라의 사진을 들여다 본 만큼 그 영화를 들여다 보았더랬죠. ^^

    아쉽게도 26일에 가족모임이 생겨 세미나 참석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참석 해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죄송해요. 다음 세미나를 기약하며 메리 크리스마스!

    • < 미네이터> 1편은 저도 재밌게 보고 좋아하는 영화이지만 감독을 좋아하진 않았어요. 사실 카메론의 세계는 심지어 지금 < 바타>에서도 지적인 자극이나 감성적인 감동을 준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나이브하거나 너무 건조하지요. 제가 좋아하는 방향에서의 자극이나 감동, 경이를 주는 쪽은 아니라서… 예컨대 데이빗 핀처한텐 ‘형님’, 이스트우드한텐 ‘오라버니’, 마티, 우디 같은 분들껜 ‘영감님’ 트뤼포나 봉옵빠한텐 ‘오빠(옵빠)’같은 애칭이 절로 나와도 카메론한텐 (저 혼자의 건방이지만) “너 짱 먹어라” 같은 소리가 나오는 건 그 때문이지요;;

      비밀글님께서도 연말 연시 행복하게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조만간 뵐 자리가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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