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 리치 | 셜록 홈즈 Sherlock Holmes (2009)

Sherlock Holmes

역사상 가장 '팬시'한 홈즈가 아닐까 싶다.


가이 리치 감독이 돌아왔다.


데뷔작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를 내놓을 당시 ‘새로운 천재의 등장’이라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스내치>만 해도 호평을 받았지만, 당시 부인이었던 마돈나를 주연으로 만든 <스웹트 어웨이> 이후 순식간에 바닥으로 내팽겨쳤던 그다. 심지어 <스웹트 어웨이>는 한 해 최악의 영화에 상을 안기는 골든라즈베리 시상식에서 최악의 감독상을 받을 정도로 조롱을 당했다. 이후 비교적 저예산으로 <리볼버>, <록큰롤라>와 같은 영화를 만들었지만 한번 돌아선 관객과 평단의 마음을 되돌리기란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이 영화들은 국내에는 수입조차 되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셜록 홈즈>를 만든다면서 일반적인 이미지와 달리 주먹질에 육탄전을 즐기는 ‘액션 영웅’으로서의 셜록을 그린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 우려가 컸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반짝하고 등장했으나 금방 시들어버린 감독이 만드는 대형 프로젝트, 거기에 마구잡이 헐리웃식 액션영웅으로 변모할 것 같은 셜록 홈즈. 그럼에도 기대를 버리지 못한 것은, 역시나 그가 <록 스탁…>과 <스내치>를 내놓았던 감독이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셜록을 연기할 거란 점 때문이었다. 뻔한 슈퍼히어로 영웅의 운명을 지녔던 <아이언맨>에 독특한 뉘앙스를 덧입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라면, 셜록 홈즈를 그저 빤한 액션영웅으로 그리진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분명 있었다. 거기에 그저 홈즈의 조수가 아닌 동등한 협력자로서의 왓슨 캐릭터를 주드 로가 출연하며, 그 콧대높은 남성우월주의자 셜록 홈즈가 유일하게 무릎을 꿇은 여성 아이린 애들러가 적지 않은 비중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사실 역시 기대감을 높이는 데에 일조했다.


마침내 베일을 벗은 <셜록 홈즈>는 ‘절반의 성공’이라 할 만하다. 영화는 충분히 즐겁고 매력적이지만, 가이 리치에 건 일말의 기대는 결국 배반을 당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Sherlock Holmes

근육과 주먹질 자랑에 여념이 없으신 RDJ 버전의 홈즈. 낯설지만 익숙하다...


가이 리치가 야심차게 내놓은 이 영화는 기존에 우리가 머리에 그리고 있던 셜록 홈즈와는 사뭇 다른 성격의 셜록 홈즈를 성공적으로 그려낸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는 새로운 셜록 홈즈의 창조라기보다는, 오히려 원작에서 제시됐던 요소들을 재해석하고 복원한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훌륭하게 그려낸 새로운 셜록 홈즈는 우리가 익히 하는 그 사냥캡에 체크무늬 상의를 절대로 입지 않는다. 파이프 담배를 물기는 하지만 삽화 속 셜록 홈즈의 그것보다 단순한 직선형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상대의 급소를 어떻게 내리쳐야 그가 제압될지 잘 아는 무술의 달인이다. 특히 상대의 급소를 연달아 가격하는 장면에서의 고속 촬영 카메라 촬영은 홈즈의 정확한 계산과 판단을 그대로 드러내는 한편, 타격에 반응하는 신체의 움직임을 세세히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며 쾌감을 선사한다. ‘너무 빠른’ 액션에서 오히려 시각적 쾌감을 놓칠 수 있는 점을 배려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셜록 홈즈>가 묘사하는 홈즈의 일상적인 생활과 취미는 원작에서 제공한 것을 크게 거스르는 것이 없다. 일이 없을 때의 홈즈가 대단히 게으르다는 사실은 이미 원작에서 제시된 것이고, 잘난 척의 거만한 독설은 사실은 사회성과 사교성이 부족한 성격을 가리는 방어기제일지 모른다는 것 역시 셜록의 팬들이 어느 정도 짐작했던 사실이다. 나아가 원작에서의 홈즈 역시 수준급의 권투실력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었던 만큼, 영화가 제시하는 액티브한 성격의 홈즈 역시 충분히 낯설면서도 한편으로는 익숙하다. 한마디로 원작의 정수를 크게 훼손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Sherlock Holmes

가이 리치의 새로운 <셜록 홈즈>는 원작에서 분명 제시됐으나 그간 무시돼온 '액티브한' 셜록 홈즈를 그려낸다. 어찌 보면 이는 원래의 셜록 홈즈를 재해석하고 복원한 것에 가깝다.


주드 로가 그려낸 왓슨 역시 기존의 홈즈 영화에서와는 달리 홈즈 못지않은 무게감과 존재감을 갖고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사실 왓슨은 그간 홈즈의 믿음직한 파트너라기보다 홈즈의 천재성을 돋보이게 해주기 위해 어수룩하고 때로는 맹하기까지 한 인물로 격하되는 경향이 종종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왓슨은 원작에서도 군인 출신으로 반듯하고 정돈된 생활을 하며, 발이 묶인 홈즈 대신 활약을 하기도 하는 등 홈즈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존재다. 영화는 특히나 결혼을 앞둔 왓슨에 대해 불평을 하는 홈즈의 에피소드를 충실히 살려낸다. 홈즈는 영화 내내 왓슨의 결혼을 못마땅해 하며 훼방을 놓지 못해 안달한다. 홈즈 팬들 사이에서 기정사실화 되다시피 한 홈즈와 왓슨의 특별한 관계에 대한 의심을 영화 내내 살려놓고 있는 것. 여기서 발생하는 두 사람의 투닥거림이 영화에 큰 활력을 주는 코미디로 작용한다.


액션 어드벤처 영화로서 <셜록 홈즈>는 분명 아주 새롭지는 않아도 적지 않은 즐거움과 쾌감을 제공하는 영화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홈즈와 주드 로의 왓슨 콤비는 분명 ‘올해 최고의 커플’ 순위에 올릴 만하며, 은비학과 마법의 트릭 때문에 길을 잃을 뻔한 셜록이 결국 과학적 논리와 추리로 사건을 풀어나가며 활약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즐겁다. 풍성한 드레스와 남성용 정장을 오가며 기계에도 능하고, 그 대단한 홈즈마저도 어린아이처럼 갖고 노는 아이린 애들러도 영화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다. 홈즈의 숙적인 모리아티 교수가 짧게 등장하며 속편을 예고하는 것 역시 기대를 불러일으킬 만하다. 속편에서는 홈즈의 형인 마이크로프트 경도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을 품게 될 정도다.


그럼에도 아쉬운 건, <록스탁…>과 <스내치>에서 보여줬던 가이 리치의 독특한 매력이 <셜록 홈즈>에선 별로 보이지 않다는 점이다. 인물들은 순해졌고 정해진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며 스토리 역시 단선적이다. 전세계 만인이 즐길 수 있는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 필수적인 변화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배트맨> 프렌차이즈 안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자신의 족적을 선명히 새겨놨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가이 리치가 <셜록 홈즈>를 통해 증명한 것은 결국 그가 대형 상업영화를 매끈하게 잘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의 의미는 자명하다. 가이 리치 감독의 앞으로의 경력은 별 막힘없이 순탄하게 풀릴 것이며 앞으로도 여러 편의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를 연출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초기작들을 사랑했던 관객들은 결국 ‘블록버스터를 무난하게 만드는 평범한 감독’을 얻는 대신 걸출하고 독창적인 영화 악동을 영영 잃어버린 셈이 됐다. 결국 가이 리치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아니었던 셈이다.





+ 프레시안무비에 기사로 올렸던 글. (2009. 12. 23)


ps 1. 개봉 직후부터 당연히 모라이어티 교수가 등장하는 속편 얘기로 분분했는데, 영화 나온 직후만 해도 브래드 피트가 관심있다는 소문이더니 요즘은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대세인 듯. 몇몇 해외 매체에서는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캐스팅 확정됐다고 보도도 나왔으나, 8월 2일자 다른 뉴스에서는 대니얼의 매니저가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했다는 설도 있다. (IMDB의 관련페이지를 참조하시라.) 브래드 피트의 모라이어티라니 좀 뜨악스러웠는데, 정말 대니얼 데이 루이스라면 좋겠다. 문제는 대니얼 님이 해주시느냐 마느냐…  어쨌든 <셜록 홈즈 2>는 이미 내년 12월로 개봉일도 정해진 모양이다. 촬영은 올해 가을부터 들어간다고. 감독은 여전히 가이 리치.


ps2. 근데 사회성 제로 잘난척쟁이 홈즈도 꼼짝 못하는 막강 카리스마 미중년 마이크로프트 경이 속편에 등장해주시길 바라는 건 저 뿐인가요.


ps3. 영화를 처음 보고 이 글을 썼던 당시를 회상해보니, RDJ가 셜록 홈즈로 딱이었다기보다는(그게 기존 이미지와 다른 셜록이라 하더라도), ‘고전적인’ 영국풍의 액션활극의 주인공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이다.  말하자면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가 19세기 런던에서 탐정질로 놀고먹었던 ‘전생’ 버전을 즐기는 기분이었던. 블록버스터의 당의정으로 어느 정도 중화된 느낌은 있지만 역시 <셜록 홈즈>는 괴작이었다는 결론. 상당히 즐거운 괴작.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2 Comments

  1. 사실 원작훼손이 가장 큰 부분은 역시 아일린 애들러인 것 같더군요. 원래는 우아하게 지혜 대결로 홈즈를 거꾸러뜨리는 캐릭터이고 홈즈도 이사람을 존경하긴 하지만 ‘애정’이라 부를만한 감정까지는 가지 않는데, 여기선 완전 루팡3세와 미네 후지코같은 분위기로 개조를 해 놓아서 OTL

    뱃맨 비긴즈나 스파이더맨 1도 감독들의 히트작들에 비해 ‘좀 개성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걸 생각해 보면 2편 이후에는 리치 감독의 본색(?)이 드러날지도 모르죠. 영화사의 결단을 기다릴 따름입니다.

    마이크로프트는 원작의 묘사로는 윈스턴 처칠에 가까운 체형이었으니 미중년으로 나오기는 좀 어렵지 않을는지…(근데 이 시리즈가 그런거까지 신경쓸리는 없으니 뭐 나올수도 있겠군요 OTL)

    • “나의 아이린은 이러치아나!”라 절규하시는 분들께는 그저 “닥치고 애도”를 할 수밖에 없겠더군요. 뭐 워낙에 비중에 비해 워낙 폭발적인 인기와 존재감을 누리셨던 캐릭터인지라, 영화 버전의 다소 얄팍하기까지 한 천방지축 왈가닥 캐릭터에 기함하는 팬들이 많으셨을듯요.

      근데 마이크로프트 경은… 원작에서 뭐라고 묘사했든 -_- 저한테는 일관되게 “홈즈보다도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몸에 차분하고 지적이며 좀더 점잖고 사회성 넘치는 이미지”거든요. 셜록이 고개를 지나치게 빳빳이 세우고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이미지라면, 이 사람은 꼿꼿하긴 해도 과도하게 턱을 치켜드는 타입은 아니면서, 내려다 볼 수밖에 없는 키임에도 좀더 멀찍이서 응시함으로써 오히려 눈높이를 맞춰서 바라보는 느낌이랄까요. (대체 어쩌다가 마이크로프트 경한테 이런 식의 판타지를 가지게 된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

      가이 리치에 대해서는… < 트맨 비긴즈>나 < 파이더맨>은 감독들이 자기색을 조금 자제한다는 느낌이었는데, < 록 홈즈>는 아, 이 사람은 옛날 자신의 그 빛나던 재기를 잃어버렸구나, 하는 느낌이었어요. 어릴 땐 똘망했으나 나이먹고서 지극히 평범해져버린 중년 아저씨의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속편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하고 있진 않습니다. 다만 1편의 그 즐겁고 다소 괴상한, RDJ와의 쿵쿵짝만 잘 보여주면 됐지 하는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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