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 | 주유소 습격사건 2 (2010)

주유소 습격사건 2

1편보다 재미가 덜한.


10년만에 나온 속편인 <주유소 습격사건 2>는 전편만큼 후련한 통쾌감이나 폭발적인 해방감을 주지 않는다. 주인공들에게도 공감을 크게 느끼기 어렵고, 네 명의 캐릭터나 존재감도 무척 약해보인다. 1편에서 노마크, 무대뽀, 딴따라, 뻬인트가 각각의 개성과 또렷한 존재감을 과시했던 것과는 정반대다. 물론 김상진 감독 특유의 액션-코미디 감각은 여전하구나 싶고, 전편과 마찬가지로 현실의 억눌린 괴로움을 풍자하며 웃음을 주기는 한다. 1편의 유머를 활용한 개그들도 그저 ‘반복’만은 아니어서 노력이 가상해 보인다. 그럼에도 활기와 해방감보다는 오히려 답답하고 어수선한 혼돈만 있다. 하지만 이것은 과연 영화의 실패인가. 아니면 영화 속에 반영된 현실의 실패인가.


주유소와 아무 상관도 없던 노마크 일당이 느닷없이 주유소에 들이닥쳤던 것과는 달리, 이번 편은 주유소의 직원들이 내부에서 주유소를 접수해 버리는 것이 영화의 전제다. 그러니 정확히 하면 주유소를 ‘습격’한 것이 아니라, ‘점거’한 것이다. 이 전제에서부터, 그저 전편의 영광에 기댄 안이하고 게으른 속편으로 만들지는 않겠다는 결의가 읽힌다.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 지금의 ‘비정규직, 혹은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할 수밖에 없는’ 20대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관점으로 영화를 보노라면, <주유소 습격사건 2>는 뜻밖에도 근래에 나온 영화들 중 가장 20대들의 처지를 깊숙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면서도, 이를 우울한 절망보다는 떠들썩한 소동극으로 그려내는 드문 영화다.


20대 필자로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확보해 나가고 있는 《뉴라이트 사용후기》의 저자 한윤형 씨는 지금의 20대들에 대해 “체제에 적극적으로 편입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낙오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라고 분석한다. 그렇기 때문에 8, 90년대의 20대들이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사회체제나 기성의 질서에 저항하는 ‘루저의 정서’를 지녔다면, IMF 이후의 20대들은 ‘잉여의 정서’를 지녔다고 지적한다. 이는 사회학자이자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의 저자 엄기호의 주제의식과도 맞닿는 부분이다.


<주유소 2>의 주인공들은 한윤형이나 엄기호가 지적한 바로 그 ’20대의 특징’을 고스란히 지녔다. 플래시백으로 삽입되는 이들의 과거를 보노라면, 이들은 사회적 모순에 반발심을 느끼고 부모와 기성세대에 저항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는 것처럼 보인다. ‘순간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했다가 주저앉게 된 자신의 현실을 그저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실 이런 점 때문에 관객들은 전편의 네 명과 달리 이번의 주인공들에게 크게 감정이입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좌충우돌과 시행착오를 할 수밖에 없는 20대들을 ‘단 한 번’의 실수로 영원히 탈락시켜 버리는 무시무시한 우리사회의 생존경쟁을 풍자하는 것이지 않는가. 네 명은 각자 나름의 능력과 장기를 지녔음에도, 주유소 아르바이트 직에 ‘면접까지 보면서’ 응시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정규직도 아니고, 심지어 비정규직도 못 되는 단기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전전해야 하는 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꿈이나 기대는 거의 없어 보인다.


이런 이들이 주유소를 ‘점거’하는 것은, 박사장(박영규)의 상습적인 임금 체불과 인격모독 때문이다. 이후 이들의 행보는 매우 흥미롭다. 한 명이 그만두자 모두들 연쇄적으로 그만둔 뒤, ‘받아야 할 돈은 받아야 한다’는 말에 금세 뜻을 모은다. 이것은 전편에서 ‘그냥’ 저질렀던 습격과 달리, 실은 ‘떼인 돈을 받기 위한’ 자기구제이자 점거투쟁이 된다. 결국 ‘생존권 투쟁’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하룻밤 반값세일로 벌어야 하는 총 목표액을 이들이 각자 받아야할 노동의 댓가의 합으로 설정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자 점거를 푼다. 그 와중 주유소 사무실에 ‘인질’로 잡혀있던 20대 내레이터 모델 여성들과도 연대를 이루는데, 이 여성들에게 반값세일 이벤트를 홍보하는 내레이터 모델로 협조를 요청한 뒤 그 노동의 댓가를 정확하게 배분하는 것이다. 그것도, 매니저가 아니라 그 여성들 각자에게 직접 돈봉투를 건넨다.


주유소 습격사건 2

네 명의 캐릭터가 균형을 이루었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조현선과 지현우에 포커스가 더 맞춰져 있다.


더욱이 이들의 관계는 전편보다 오히려 ‘민주적으로’ 발달한 양태를 보인다. 전편에서는 노마크가 리더쉽을 독점하고 딴따라가 이를 보좌하며, 무대뽀는 딴따라에게 툭하면 “꼴통같은 새끼”같은 말을 들으며 일당 내에서도 은근한 무시를 받았다. 뻬인트는 이들 모두와 떨어져서 ‘혼자 노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2편에서는 이런 수직적인 서열 대신 보다 수평적인 ‘네트워크’로서의 관계가 관찰된다. 원펀치와 하이킥(조한선)이 보다 전면으로 나서기는 하지만, 이들 네 명은 대체적으로 성격도 장기도 다른 만큼 각자 자신의 영역을 독립적으로 관할하며 수평적으로 연대하는 것이다.


에필로그는 더욱 의미심장하다. 하룻밤의 소동 이후 전편에서의 네 명이 각자 흩어진 채 미진하나마 나름의 방식으로 꿈을 이루거나 한을 풀었다면, 이번 편에서의 네 명은 어느 영화촬영 현장에 ‘함께 모여’ 단역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나마도 짤린 뒤에는 “이제는 뭐할까” 고민을 하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도 아르바이트를 전전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함께이다. 각자 성격도 장기도 다르지만, 적어도 이들은 자신들이 ‘뭉치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나면 원펀치가 내세우는 “재미있잖아”라는 말이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사실 1편에서 노마크의 “그냥”이라는 말은, 구구절절한 사회의 모순과 이들의 억울함과 한을 그저 쿨하게 압축시킨 한 단어였다. 2편의 “재미있잖아”는 그저 단순하고 순간적인 쾌락을 가리키기보다는, 꿈 없는 현실을 버티기 위한 단 하나의 수단이자, 그러한 현실의 ‘희생자’가 아닌, 오히려 그러한 현실을 ‘초월하는 자’의 덕목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재미’를 일정한 과정을 통해 승화시킨 결과물을 보통 ‘예술’이라고 부른다. 이들이 결국 주유소를 나온 뒤 다른 곳이 아닌 영화촬영 현장을 어슬렁거리는 것도 다 말이 되는 셈이다. 특히 대중문화/예술이 소위 순수 예술을 상당 부분 압도해버린 지금에는 더욱 그렇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주유소 2>는 20대들의 이상한 생존권 투쟁과 연대를 다루는 소동극이 된다. 그 와중 주유소를 들르는 ‘손님’으로 풍자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술에 취해 억지를 부리는 조중일보의 기자, 어린 여자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허세만 부리는 중년의 소위 ‘매니저’, 인근 주유소의 다른 사장, 법무부 직원으로 변장한 탈주범들(정확히 하자면 본질은 깡패이나 국가권력의 제복을 입고는 이상한 애국심을 강요하는 현재의 국가질서)이다. 전편에서의 풍자대상이 ‘천민 자본주의’ 하의 부르주아 및 그들의 자식들이었다면, 이번 편의 풍자대상은 오히려 국가와 언론 권력과 20대를 착취하는 기성세대다. 퇴행이 아니냐고? 그렇긴 하지만, 이 역시 영화의 퇴행이 아니라 현실의 퇴행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주유소 2>가 재미없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영화가 풍자하고 있는 지금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재미없고 암담하기 때문이다. 웃음이 그나마 유일한 탈출구가 될 수 있었던 시대도 못된 채, 웃음으로도 달랠 수 없는 공허감이 지배적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과연 영화의 실패라 말할 것인가. 오히려 <주유소 2>는 지금의 현실을 보다 세밀하고 정밀하게 영화 안에 담고자 그 어떤 영화보다도 치열하게 노력한다. 신자유주의의 광풍 앞에 적자생존을 펼쳐야 하는 20대들을 향해 ’88만원 세대’라고 협박하거나 ‘희망이 없다’며 무시하는 대신, 20대들의 현실을 애정으로 들여다보고 “너희 잘못이 아니야”라고 토닥인다. 이들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는 한편 이들의 현실을 만들어낸 ‘기성세대의 책임감’을 통렬하게 풍자하는 것이다. 이런 영화를 어찌 지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프레시안무비에 기사로 올렸던 글 (2010. 2. 6)

ps 1. <주유소 1>을 만들었을 당시 김상진 감독에게 당시의 사회상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이 선행했다고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유소 2>에서는 분명히 보인다. 설사 그것이 어떤 학적인, 일관된 구조 위에 서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어쩌면 그 자신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지라도, <주유소 2>에서는 그가 지금의 20대들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매우 강력한 일관성 하에 매우 윤리적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 어쩌면 그게 오히려 이 영화의 실패의 원인일 거라고도 짐작한다. 그러나 영화에 분명하게 일관성을 이루며 드러나고 있는 감독의 이 시선을 읽어주는 게, 영화글 쓰는 이의 나름의 예의이자 의무라고 생각했다.

ps 2.  물론 동의하지 못하거나, “해석에 영화를 뜯어맞췄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리고 이런 비난을 굳이 부정하거나 수용하지 못할 바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유소 2>에 대한 반응을 보려고 검색하다가, 듀나 게시판에 누군가 이 글을 링크해놓고 반응을 묻자 또 다른 누군가가 댓글에 “맙소사, 기자가 너무 이빨을 깠어요”라고 써놓은 것을 보니 이게 두고두고 마음에 남더라. 차라리 내 글이 후지다거나 글을 못 썼다고 비난했다면 이렇게 거슬리지는 않았을텐데, 이런 멘트는 ‘글쓰기의 윤리’를 함부로 취급하는 것으로 느껴져 모욕감까지 느껴지더란. 내게는 “너 글 좆같애”보단 저런 게 더 ‘저질 악플’로 느껴진다. 이빨을 까다니, 사람을 무슨 홍보 알바로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ps 3. 그래도 조한선은 영화에서 안성기와 투톱을 해본 적도 있는 배우인데, TV에서 주로 활동했던 지현우가 비중이 더 큰 캐릭터를 맡았다는 게 살짝 의외였다. 그리고 비록 연기 테크닉은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지현우에게 쇼맨십이나 스타로서의 아우라가 보이는 것도 조금 놀라웠고. 지현우가 그리 뛰어난 가창력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뮤지컬 <그리스>의 대니 역으로 데뷔하게 된 것도 워낙 오디션 장에서부터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스타로서의 자질’ 때문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이 영화를 보니 그 에피소드가 대충 수긍이 가더라. (난 한번도 지현우한테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는데. <골드미스 다이어리>에서도 별 깊은 인상은 못 받았었는데. 음.)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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