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2010)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본 포스터보다 멋진 티저 포스터.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조선시대 최초의 공화주의자로 평가되기도 하는 정여립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이후 그가 조직했던 대동계의 향방을 두고, 왜구의 침입이 가시화되고 있음에도 이에 전혀 대처할 수 없는 “썩어빠진 조정을 쓸어버리려는” 이몽학(차승원)과, “대동계를 이용해 자신이 왕이 되려는 이몽학을 저지”하기 위한 황정학(황정민)의 추격을 중심축으로 삼는다. 여기에 당대 최고의 권력가인 한신균을 아버지로 두었으나 서자라는 신분 때문에 좌절감을 느끼고 방황하던 견자(백성현)가 이몽학의 손에 아버지를 잃고 난 뒤 복수를 위해 황정학과 동행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기축옥사를 일으켰던 당시 극심했던 동인과 서인 간 정쟁이 영화에서도 (그저 정여립의 죽음을 설명하는 기능적 측면을 넘어서서) 매우 코믹하지만 결정적인 몇 장면으로 묘사된다. 다만 실존인물 정여립이 대동계를 조직하여 신분의 제약 없이 회원을 받고 정기적인 무술훈련도 병행했던 역사적 ‘사실’은 그대로 끌어오되, 실제로 정여립이나 대동계와는 별 관련이 없었던 이몽학을 정여립의 제자이자 대동계 회원으로 설정한 데에서 상상력이 발휘됐다. 이몽학이 정여립과 대동계로 연결되면서 이몽학의 난이 실제 역사보다 4년 정도 앞서서 임진왜란 직전에 일어난 것으로 설정된 것이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영화를 이끄는 두 주인공인 이몽학과 황정학의 대비에 있다. 한 치도 흐트러짐이 없는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는 이몽학이 주로 하얀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절도있는 말과 동작을 보여주는 ‘직선의 미’라면, 남루한 행색으로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는 소경 검객인 황정학은 걸죽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능청스러운 말과 행동으로 일관하는 ‘곡선의 미’다. 맹인 검객이라는 면에서 얼핏 ‘자토이치’의 인상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영화 속 황정학은 오히려 <스타워즈>의 장난기 많은 괴짜노인 요다나 <취권>의 사부 쪽에 가까운 성격을 드러내 보인다. 이몽학과 황정학이 마침내 결투를 벌이는 장면은 근래 액션영화들의 일반적인 경향과는 정반대로 ‘슬로우 모션’ 액션으로 표현돼 다른 종류의 시각적 쾌감을 준다. 길게 이은 중심컷을 슬로우로 표현하되 그 앞뒤에 짧고 빠른 연이은 컷들을 붙이는 식으로 동양 무협액션의 아름다운 곡선의 동선을 최대한 살리고 표현하는 것이다. 칼과 칼이 부딪히는 무협액션의 쾌감을 잘 살린 이 씬은 가히 영화의 클래이맥스라 할 만한 장면이다. 두 시간이 조금 안 되는 러닝타임 안에 사건과 이야기의 흐름을 안정적으로 쌓아가는 호흡 좋은 플롯 구성도 영화의 강점이다. 촬영과 편집, 연출의 호흡, 그리고 지나치게 과용하지 않으면서 영화의 분위기를 잘 살려주고 있는 음악도 나무랄 데가 없다.


<황산벌>과 <왕의 남자>에서도 드러났듯,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도 이준익 감독은 ‘권력’에 대해 기본적으로 회의적인 시선을 그대로 견지한 채, 권력다툼의 와중에 일어나는 ‘난’이 빚는 끔찍함과 허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것이 가장 적극적으로 투영된 인물이 바로 황정학이다. 그는 권력이나 대동계가 가진 ‘힘’에 초연한 채 반 거지행색을 하고 전국을 떠돌아다닌다. 생물학적 아버지를 잃은 견자에게는 이상적인 스승이자 실질적인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전 작품들과 달리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권력을 사유하는 인물, 혹은 권력의 유혹 앞에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의치가 너무 부담스러웠던. 혁명가이자 야심가이기도 했던 이몽학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야심만 도드라진다.


임진왜란을 피해 선조가 의주로 피란을 가버린 후 텅텅 비어버린 궁에 도착한 견자는 근정전 안의 왕좌에 앉아본다. 이 순간 관객들은 영화 초반, 서자라는 이유로 반항을 일삼던 견자에게 한신균(견자의 아버지)가 던져줬던 “지금 이 나라 왕도 서자 출신”이란 말을 떠올리게 된다. 영화에서는 별로 강조가 되지 않았으나 이몽학 역시 실제 서얼 출신이었고, 그는 영화의 초기부터 왕이 되려던 야심을 숨기지 않은 채 적극적으로 권력에의 의지를 드러내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 역시 ‘너무 쉽게 입성한’ 한양의 텅 빈 궁에 도착한 뒤, 허탈한 표정으로 근정전 앞마당에서 칼을 끈다. 그리고 견자는 이몽학을 맞아 “겨우 여기 앉으려고 그 많은 피를 흘렸냐”고 비난을 함으로써, 자신이 이몽학이 아닌 황정학의 길을 선택했음을 만천하에 공표한다. <왕의 남자>의 연산군조차 자신의 의지보다는 주변에 떠밀린 채 현실도피를 하는 듯한 인물로 그려졌고, ‘권력의 맛’을 알게 된 공길도 견자만큼 ‘적극적인 선택을 하는’ 인물은 아니었음을 떠올렸을 때,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의 인물들은 이전의 이준익 감독의 인물들과 일관되면서도 어딘가 달라진 면모가 있다.


아쉬운 것은, 그 ‘다른’ 면모가 제대로 입체성을 갖고 영화에서 발휘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인물들은 매우 단선적이고, 이 때문에 각기 정해진 방향으로 앞만 보고 내달린다. 이몽학은 고뇌를 지닌 혁명가라기보다는 그저 야심에 날뛰는 악당으로만 보이고, 그런 이몽학과 대척점을 이루는 황정학은 ‘너무 당연하게 옳기에’ 오히려 “이몽학을 견제하기 위해 어린 소년의 치기어린 복수심을 이용하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관객의 입장에서 가장 감정이입을 할 만한 인물이자 실질적인 화자는 응당 견자가 돼야겠지만, 이몽학과 황정학의 대립구도에 지나치게 눌리는 데다 무작정 분노와 반항기를 내보이며 ‘버럭대기만 하는’ 캐릭터가 되고 말았다. 이몽학과 견자의 연결점이 되는 인물인 백지 역시 존재감이 약한 편으로, 이몽학과 백지 사이의 멜로 역시 다소 성기게 표현된 편이다. 이 때문에 인물들이 전면적으로 충돌하는 영화의 말미는 아드레날린의 폭발은 있되 가슴벅찬 감동이나 카타르시스는 기대하기 어렵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멘토로서의 황정학은 황정민에 의해 아주 매력적으로 재현되기는 했으나, 정작 그의 명분과 철학엔 별 입체감도 깊이도 없다.


영화의 클래이맥스를 이루는 이몽학과 황정학의 칼싸움, 그리고 이것의 ‘변주’인 이몽학과 견자의 칼싸움은 서로 팽팽하게 대립했던 상대와의 갈등이 폭발하는 장면이자 동시에 그랬던 상대에 대한 이해와 인정, 그럼에도 각자의 ‘다른 선택’이 엇갈리는 중요한 장면이다. 그간 앞만 보고 달려왔던 인물들이 비로소 상대를 거울삼아 자신의 맨얼굴을 보는 장면이기도 하고, 그들이 시종일관 숨겨왔던 번민과 의심, 회한과 아이러니와 연민이 비로고 균열의 얇은 틈을 뚫고 새어나오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서들은 관객에게 채 도달할 새도 없이 곧바로 공중에 흩어져 버리고 만다. 각자 앞만 보고 달려온 인물들이 마침내 일생일대의 대결을 펼치며 장렬히 산화하는 동안, 관객들은 그저 이들의 싸움을 ‘구경’만 하는 입장이 되기 십상이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모처럼 꽉 짜이고 안정적인 이야기와 구성과 화면으로 두 시간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영화다. 그러나 이준익 감독의 전작들에서 언제나 이야기를 이기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사람’의 온기 – 그것이 다소 이상적인 방향으로 단순화된 면이 있었을지언정, 그리고 언제나 동의를 받지는 않았을지라도 – 가 이 영화에는 별로 남아있지 않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들은 언제나 특유의 소박한 아름다움과 힘, 무엇보다도 ‘사람’의 온기로 이런저런 소소한 단점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았다. 그런데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무수하고도 뛰어난 장점들 가운데 그리 많지 않은 단점이 유난히 도드라지게 눈에 와서 박힌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분명 긴장과 재미를 느꼈음에도 극장을 나오면서는 허탈감과 아쉬움, 답답함이 더 컸던 이유다.





+ 프레시안에 기사로 올렸던 글. (2010. 4. 20)

ps1. 원작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를 보면서도, 이 이야기는 틀림없이 견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배우며 그의 눈에 비친 이몽학과 황정학의 모습일 거라 짐작했고, 그게 맞게 이야기를 푸는 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는 이몽학과 황정학의 대립구도를 강조하다보니 견자를 어정쩡한 위치로 밀어넣는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안습이었던 주연급 인물은 아무래도 백지. 이준익 감독은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데에 여전히 서툰듯.

ps2. 조정의 신하들이 하나같이 우스꽝스럽고 얄팍하게 희화화되는 걸 보면서 어이없는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아주 소박하면서도 대중적인 이런 식의 냉소주의는 하나도 건강하지도 유익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솔직히 그 조정 신하들이 아니라 이 영화의 그런 태도야말로 가장 유치하고 우습게 느껴진다. 그런 태도는 내용없는 불신과 근거없는 무력감과 무관심만을 만들어낼 뿐, 정확한 비판이나 풍자나 조롱이 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순간적인 웃음에 머무를 뿐 진짜 쾌락을 만들어내지도 못한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에는 이처럼 깊이 없이 얄팍한 대중적 정서가 영화의 중심에 떡하니 자리잡고 앉아있는 경우가 많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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