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아줌마 감독들!

레인보우

레인보우, 혹은 '행인 3'

올해 5월 인디포럼 사전감독모임 자리에서 처음 <레인보우>를 연출한 신수원 감독과 만났다. 압도적으로 많은 20대의 새로운 감독들 사이에서, 그녀는 굉장히 뻘쭘해하며 자신을 ‘아줌마 감독’이라고 소개했다. 알고 보니 벌써 고등학교를 다니는 딸을 둔, 아줌마로서도 경력이 긴 감독이었다. <레인보우>가 첫 장편이라는 얘기에, 당연히 그녀의 이전 삶이 궁금했다. 충무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며 자신의 영화도 계속 준비하고 있었으나 매번 엎어졌다고 했다. 지치고 지친 끝에 “저질러버리자!”라고 결심을 하고선 자비를 들여 드디어 첫 장편을 완성했고, 그 영화가 인디포럼을 비롯해 각종 영화제에서 초청을 받고 있던 중이었다.


그녀의 영화가 전주영화제에도 초청됐단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영화를 곧 보겠노라 약속했다. 그리고 이후 몇 번이나 그녀와 마주쳤고, 명함과 전화번호와 짧은 인사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인디포럼에서도 전주영화제에서도, 심지어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에서 상영될 때도 나는 <레인보우>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날, <레인보우>가 극장서 개봉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선입견이 좀 있었다. 일단 ‘레인보우’라는 다소 ‘말랑한’ 제목에서부터 아줌마 감독의 좌충우돌 이야기라는 설정만으로 “대충 어떤 영화일지 감이 잡힌다”고, 감히 건방진 편견을 가졌다. 언론시사로 드디어 <레인보우>를 보러 갔던 날, 자리를 잡고 앉으면서 빌었다. 제발 이런 류의 영화들이 반복하는 그 상투적이고 허무맹랑한 거짓위로와 희망으로 끝나는 영화가 아니기를. 그런데 내 바람 그대로, <레인보우>는 그런 영화가 아니었다. 영화가 끝난 뒤, “소품이긴 해도 생각했던 것보다 참 귀여운 영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나는 한동안 <레인보우>를 봤던 바로 그 날, <레인보우>를 보기 직전에 본 어떤 영화의 강렬한 이미지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며칠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또 한 주가 지나는데, 언제부터인가 전혀 생각지도 않게 <레인보우>의 그 뚱한 고기주의자 아줌마 지완이 생각나기 시작한 것이다. 개미공포에 시달리며 비명을 지르던 모습, 사무실 바닥에 누워 쪽잠을 자던 모습, 독설을 날리던 프로듀서한테 화를 내다가 마지막 고기 한 점을 기어코 뺏어먹던 모습, 그리곤 깻잎에 그 고기를 싸서 그 프로듀서에게 휙하니 내밀던 모습. 인디밴드를 만난 첫 자리에서 대놓고 “너무 겉멋부리는 거 아니에요?”라고 직설법으로 묻던 모습. 후배감독의 촬영장에서 단역을 맡아 주연배우한테 계속 뺨을 맞다가 결국 울면서 폭발하던 모습. 그리고 퉁퉁 부은 뺨을 한 채, 그녀를 똑 닮아 뚱하기 짝이 없는 아들의 방에 슬며시 이펙터를 선물로 놓고 나가던 모습. 그런데 또 이상하다. 그런 장면들 때문에 입에선 계속 비실비실 웃음이 나는데, 눈은 자꾸 축축해지고 뜨거워지는 거다.


새삼 영화에서는 별로 보여주지 않았거나, 슬쩍 깔아두기만 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의 눈치 따위 안 보고 오로지 자신의 영화만을 생각하는 듯했던 그녀는, 사실 얼마나 보이지 않는 눈들과 힘겹게 싸우고 있었던 걸까. 설거지 따위 아무리 쌓여도 아무도 절대로 대신 해주지 않는 집에서, 실은 얼마나 틈틈이 집안일을 열심히 하고 또 얼마나 자주 “아줌마가 가족과 살림도 다 내팽개치고 밖으로 싸돌아다닌다”는 비난과 직면했던 걸까. 그러고보니 이 영화의 첫 시작장면도 그녀가 찌개를 끓이는 장면이 아니었던가. 무뚝뚝한 아들과 그렇게 친구처럼 지내기 위해서 그녀는 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던 걸까. 나는 고작 일곱 살 아래 막냇동생하고도 그렇게 친근하지 못한데 말이다. 게다가 그녀는, 요구된 시간 내에 요구된 수정본 시나리오를 착착 뽑아내는 참 성실하고 근면한 직업윤리를 가졌다.


레인보우

'개미공포'에 시달리는 지완. 본인은 괴로웠겠으나 보는 사람은 솔직히... 웃겼다.


새삼 우리 사회에서 3, 40대 아줌마들이 꿈을 꾸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 생각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한 발 한 발에는 또 얼마나 무시무시한 투쟁들이 필요한가. 20대들에게는 ‘88만원 세대’라며 좌절된 꿈에 대한 뻔한 립서비스의 위로라도 몇 마디 건네지지만, 3, 40대 아줌마들에겐 마치 그런 꿈조차 대단한 사치라는 듯, 아예 꿈 자체를 부정당하기 일쑤고, 그녀의 노력보다는 가족의 특별한 지지와 ‘허락’에 더 관심이 집중되기도 한다. 게다가 아내/엄마의 꿈을 지지한다던 가족들은 또 얼마나 쉽게 지쳐 나가떨어지는가. 예컨대 가사노동을 분담하기도 싫고 가사노동의 혜택도 포기하기 싫어하며 ‘엄마의 이기심’을 탓하기 십상 아니던가. 그렇다고 꿈과 소망이 순조롭게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도 지완은 용케도, 그리고 ‘감히’ 꿈을 꾸며 또 계속 그 꿈을 위해 ‘감히’ 노력하고 있었다. 사실은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었던 거다.


세상의 모든 아줌마 감독들을 위하여


며칠 전 서독제 사전감독모임에 갔다가 박정숙 감독을 만나 <동백꽃 아가씨>가 극장에서 개봉할 무렵 겪어야 했던 마음고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는 흐르고 흘러, 아줌마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외로운 일인지에 대한 고백에 이르렀다. 너무나 힘들어서 한때 영화를 접을까도 생각했었다는 얘기, 부산영화제의 어느 술자리에서 류미례 감독과 손을 맞잡고 “우리 아줌마 감독들은 특별히 더 힘을 내야 한다”며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 그리고 ‘밖으로 도는’ 엄마를 섭섭해하는, 아직은 어려 엄마를 이해하지는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얘기 등등. 박정숙 감독에게서, <레인보우>의 지완의 모습이 보였다. 고통이나 고생이나 힘든 것도 그렇지만, 단연코 ‘외로움’이 참 짙어보였다.


“꼭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어” 카메라를 놓지 못하는 것은 지완이나, 지완을 만들어낸 신수원 감독이나, 박정숙 감독이나 다르지 않다. 박정숙 감독이 <동백꽃 아가씨>를 만든 것도 이제껏 한센인과 그들의 투쟁에 대해 몰랐다는 사실이 너무도 부끄러워서였다고 했다. 그 부끄러움 때문에 카메라를 들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꼭 하고싶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가슴에 품은, 꼭 하고 싶은 이야기” 때문에 카메라를 놓지 못하는 건 6년만에야 신작 <아이들>을 내놓을 수 있었던 류미례 감독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뜨문뜨문 작품들을 내놓는, 다른 여성감독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첫사랑-수미다-아이들

〈첫사랑 1989 - 수미다의 기억〉 중 한 장면(왼쪽)과 류미례 감독의 〈아이들〉 포스터.


내게 이 ‘아줌마 감독’들이 소중한 건, 무엇보다도 나 역시 나이를 먹으며 아줌마가 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 경우는 아직 부양할 가족도, 키워야 할 아이들도 없어 요구받는 의무가 훨씬 적기에 그네들만큼 힘든 여건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 2010년대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줌마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꾸는 꿈이 나의 꿈이기도 하고, 그들의 현재가 나의 현재이자 미래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아줌마 감독들에게 내가 느끼는 동지감과 연대의식의 정체다. 그네들이 카메라를 든다면 나는 키보드를 두드린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일까.


게다가 그네들은 언제나 다양한 소외된 이들에게, 참 못나고 평범하고 스스로 세상의 먼지 한 조각처럼 느껴지는 바로 우리에게, 이 세상이 떠들썩하게 주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냥 감독이 아닌 ‘여성감독’으로서 연대의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자신의 아름다움과 즐거움과 슬픔, 외로움과 상처, 때로는 부끄러움과 수치까지도 정직하게 보여줬다. 많은 남자감독들도 그렇지만 여자감독들, 더 좁히면 아줌마 감독들, 더더욱 좁히면 독립영화를 만드는 아줌마 감독들이 더욱 그랬다.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고, 한 번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들고, 한 번 더 부끄럽게 만드는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그래서 그저 한 명의 영화관객에 불과한 나는, 우리시대 여성 독립영화 감독들, 아줌마 감독들에게 내 진심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탈탈탈 끌어모아 이 연서를 쓸 수밖에 없다. 당신들이 아니면 접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 당신들이 아니면 절대로 보지 못했을 영화들 덕분에 나는 여전히 살아있고,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세상을 좀더 맑은 눈으로 더 열심히 보고, 더 열심히 생각하며, 한 번 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고. 그러니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럽고 외롭겠지만, 참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부탁인 건 알지만, 제발 다른 감독들보다도 더욱 힘을 내서 계속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할 수 있는 데까지 온 힘과 마음을 다해 그 영화들을 사랑하겠노라는 조금 민망하고 부끄러운 약속과 함께 말이다.


 


ps. 네오이마주에 ‘서독제 특집 1탄’으로 올라간 글. 원문은 여기.


ps2. 손발이 살짝 오글거리지만, ‘연서’는 원래 고백의 편지고, 고백에는 언제나 용기가 필요하다.


ps3. 원래는 <레인보우> 리뷰로 시작했으나… 사전감독모임에서 박정숙 감독님 이야기가 인상깊게 남아서, 쓰다보니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글이 길어졌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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