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테일러 우드 | 존 레논 비긴즈 – 노웨어 보이 Nowhere Boy (2009)

Nowhere Boy우리말 제목에서도 충분히 짐작 가능하듯, <노웨어 보이>는 위대한 뮤지션이었던 존 레넌의 소년 시절을 그린다. 영화는 조지(존을 키워준 이모부)가 죽음을 맞는 무렵부터, 그와 친구들의 밴드인 쿼리맨-대충 ‘비틀즈’의 전신-이 함부르크로 떠나기 직전까지를 다룬다. 평범하지만 학교에선 ‘껌도 좀 씹었던’ 레넌이 음악에 빠져들면서 폴 매커트니, 조지 해리슨 등과 만나게 되는 과정이 펼쳐지지만, <노웨어 보이>가 무엇보다 집중하는 건 그의 가족관계다. 5살 때부터 클래식 음악과 독서를 즐기던 엄격한 미미 이모의 손에서 자란 존은 조지 이모부가 세상을 떠난 직후에야 어릴 적 자신을 떠난 어머니를 만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보다 나중에야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사연과 자신이 부모 어느 한 쪽이 아닌 미미이모네 가족에서 자라게 된 이유를 알게 된다.


존과 미미의 관계가 전형적인 ‘반항하는 아들-엄격한 어머니’의 관계로 그려진다면, 존과 생모였던 줄리아의 관계는 많은 이들이 이미 지적하고 있듯 거의 준-연인처럼 보인다. 영화에 다소 뜬금없이 삽입됐던 여자친구와의 섹스씬도 실은 어머니에 대한 존의 강렬한 욕망을 설명하는 씬처럼 삽입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 글이 자세히 언급하고 있으니 넘어가기로 하자. 사실 존 레넌의 어린 시절에 대해 자세히 알려지기 전에도, 혹은 청소년 시절의 존에 대한 전기작가들의 책이나 이런저런 증언들이 다소 엇갈리는 와중에도 한결같이 공통적으로 지적됐던 것은, 생모인 줄리아의 죽음이 당시 17세였던 존 레넌에 얼마나 큰 충격을 끼쳤느냐 하는 것이다. 존은 엄마의 죽음 이후 더욱 ‘삐뚤어’졌다고 하며, 성인이 된 이후에도 어머니에 관한 곡을 여러 곡 작곡했다. 자신의 큰 딸에게는 어머니의 이름을 따 ‘줄리아’라는 이름을 주기도 했다. 5살 이후 떨어져 살며 항상 그리워했던 엄마, 자신을 버린 후 남편과 아이들과 잘 살고 있던 엄마, 그리고 자신을 버리게 된 이유를 알게 된 후 실컷 미워할 새도 없이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버린 엄마에 대한 애증과 욕망이 존 레넌의 정신세계와 음악세계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게, 이 영화의 주장이기도 한 셈이다.


기실 이 영화는 존의 이부동생(어머니는 같고 아버지는 다른 동생)인 줄리아 베어드가 존 레넌에 대해 쓴 책에 기반하고 있는 만큼, 존의 어머니 줄리아에 대한 묘사가 매우 생생하다. 게다가 줄리아를 연기한 앤-마리 더프(제임스 맥어보이의 부인이기도 한)의 연기가 너무도 생기발랄하고 아름다워서, 영화의 주인공인 존 레넌보다도 줄리아 레넌에게 더 시선이 쏠릴 정도. 사실 부모가 헤어져 친척 손에서 자라며 사무치도록 어머니를 그리워했던 존의 성장환경이란 게 평범하다곤 할 수 없지만 그렇게까지 드문 일도 아닌 만큼, 소년 존이 아무리 어머니 때문에 괴로워한다고 해도 이것이 그렇게까지 비극적으로 느껴지는 건 아니다. 그러나 줄리아의 인생은 영화에서 대체로 간접적으로 드러나고 제시되기 때문에 결이 다르게 느껴진다. 오히려 이렇게 간접적으로 드러난 줄리아의 인생이 존의 결핍된 성장시절보다 훨씬 비극적으로 느껴지며 강렬한 관심을 끈다.


영화에서 묘사된 바에 따르면 그녀는 모든 뮤지션과 모든 노래를 알았고(당시 영국에는 제대로 소개되지도 않았던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조차도), 그 어떤 젊은 아들 또래의 아이들보다도 열정적으로 로큰롤과 춤을 즐겼으며, 자유분방하고 삶의 유머와 즐거움을 사랑하는 낙천적이고 쾌활하며 사랑스러운 매력이 철철 넘치는 사람이다. 게다가 밴조도 잘 연주했고(존은 엄마에게서 밴조를 배웠다) 노래 솜씨도 뛰어나서, 존의 천재적인 음악성은 바로 줄리아의 유전자로부터 비롯됐다고 여겨질 정도다. 그러나 자유분방하면서도 언제나 사랑에 목말랐고, 그래이 대중적인 스타 뮤지션이 되었다면 차라리 행복했을 그녀는 자신의 음악적인 재능을 펼칠 기회를 갖지는 거의 못했던 것 같다. 매사 단정하고 엄격하며 고상한 미미와 그런 미미를 대하는 줄리아의 모습을 볼 때, 어릴 적부터 언니에게 위축감을 느꼈으며 언니에게 주로 가는 부모의 관심을 붙잡기 위해 끝없이 재롱을 떨거나 사고를 치는 캐릭터였을 거라는 짐작도 가능하다. 영화에선 그녀가 종종 심각한 수준의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암시되는데, 아마도 음악적 재능과 함께 자유분방하고 쾌활하며 열정적인 성격 양쪽이 모두 심각하게 억압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생기발랄하고 쾌활하며 남의 눈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 모습과, 그 뒤로 얼핏얼핏 비치는 어두움이라는 양면성, 그 양면성을 매우 흥미롭고도 매력적으로 그려낸 앤-마리 더프의 연기 덕에 사춘기를 통과하며 마음고생하는 존 레넌보다 줄리아 레넌이 훨씬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러한 그녀가 음주운전 중이었던 비번 순경의 차에 치여 때이르게 세상을 떠났던 건 그 자신에게나 평생의 결핍감을 안겨받게 될 존 레넌에게나 공히 불행한 일이다. 다만 다행인 건, 죽기 전 그녀가 결국 엄격하고 그녀에 대해 ‘우월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던 미미의 사과를 받고 화해를 했다는 것 정도.


Nowhere Boy


전세계에 ‘비틀즈식 헤어스타일과 패션’을 전파했던 이 비틀즈 우두머리의 리더인 존 레넌이 ‘앨비스 프레슬리식 머리와 버디 홀리식 안경’을 하고 아직 소년과 청년의 과도기를 헤매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전설’로 남은 천재 뮤지션이 아직은 어리고 연약하며 미숙하고 반항하는 평범한 10대 청소년의 모습으로 제시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참으로 매력적이고 흥미롭다. 그러나 그보다 내가 이 영화에서 얻은 가장 큰 즐거움과 감동은, 세상에 그 천재 뮤지션을 내보낸 너무나 매력적인 여자, 어쩌면 존 레넌보다도 더 천재였을지 모르나 제대로 기회를 받지는 못한 채 평생 굴절된 삶을 살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줄리아 레넌과, 이름조차 변변히 알려지지 않았던 그녀에게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어 비로소 ‘줄리아 레넌’이라는 인물로 존재하게 만든 앤-마리 더프라는 탁월하고도 매력적인 배우의 발견이다.  따라서 내게는 이 영화가 원래 의도와는 상관없이, ‘노웨어 보이’가 아닌 ‘노웨어 걸’에 대한 영화로 남게 될 것 같다.


 


ps. 앤-마리 더프는 제임스 맥어보이의 9살 연상 부인. 맥어보이는 인터뷰에서 “배역 선택에 있어 아내가 항상 큰 도움을 준다”고 밝힌 적이 있다. 제임스 맥어보이의 영리하면서도 인상적인 캐릭터 선택의 많은 부분이 앤-마리 더프의 식견으로 보인다. 곧 개봉할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이 매우 기대되는 건, 이 매력적이고 연기 잘 하는 부부가 나란히 동반출연하는 첫 영화이기 때문.


ps2. <킥애스> 때만 해도 어벙하고 귀여운 소년이었던 아론 존슨이 이 영화에선 장성한 청년이 됐다. 외모나 연기나 매력은 분명 있는데, 캐릭터 자체가 아직은 미숙하고 어린 청소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옆에 앤-마리 더프나 크리스틴 스콧-토마스 같은 후덜덜한 연기를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좀 짜쳐 보인다. 하여간 이 영화를 만들면서 아론 존슨은 23살 연상의 감독과 눈이 맞고…


ps3. 솔직히 영화가 그렇게 맘에 든 건 아니었다. 뭐 그 정도 굴절된 사춘기와 성장환경이야 세상에 쎄고 쎈 사연인데, 그 사연을 엮는 영화의 방식이란 게 좀 나이브하다. 게다가 줄리아 레넌이 저렇게 부각됐다는 건, 워낙 앤-마리 더프가 잘해서이기도 하지만 감독이 영화의 방향을 뚝심있게 끌고가지 못했다는 얘기기도 하다. 존 레논의 성장시절과 줄리아 레넌의 숨겨진 역사가 다소 따로 노는 느낌.


ps4. 그러나 역시, 귀는 즐겁다. 50년대 로큰롤 명곡들이 줄줄이, 배경음악으로 혹은 존과 그 무리들이 카피하는 연주곡으로 나온다.


ps5. 레코드 가게에서 훔쳐온 음반들이 다 재즈라고 강바닥에 버리는 장면을 보며 “아니 이것들이? -_-+”라며 쌍심지를 키우려던 찰나, 지나가던 미국인 단역의 주옥같은 말씀에 마음이 풀어졌다. “어떤 음악이든지 강바닥에 버려지기에 마땅한 레코드는 없다.” 하긴 존 레넌에게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의 음악을 알려준 귀인이 아닌가. 이 사람도 알고보면 유명한 사람이라던가… 아니면 감독의 친한 배우 누가 카메오를 해줬다던가… 하는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은데.


ps6. 10대 폴 매카트니로 토마스 생스터가 나온다. <러브 액츄얼리>에서 꼬마 천사였던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컸다니… 왜 이런 모습으로 컸다니… 흑.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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