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세 미키오 | 부운 浮雲 Floating Clouds (1955)


浮雲 Floating Clouds

구글신이 찾아주심

나루세 미키오의 가장 유명한 영화, 그리고 나루세 미키오에 의해 대부분의 작품이 영화화된 소설가 하야시 후미코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은 (동명의) 소설. 그러니 나루세 미키오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다거나, 이번 서울아트시네마의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에서도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거나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번 관객수를 분석해보니 나루세 미키오 특별작 상영작으로는 유일하게 청소년관객도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흐트러지다>보다는 덜 좋은 작품이었는데, 주인공인 유키코(다카미네 히데코)와 도미오카(모리 마사유키)의 관계가 너무 짜증나기 때문이다. 작품의 완성도나 영화의 미적 성취도와는 전혀 상관없다. 더없이 뻔뻔하고 무능력한 주제에 찌질하기까지 한 남자와, 그런 남자에게 도통 미련을 못 버리고 끝까지 매달리는 여자 간의 끊어질 듯, 끊어질 듯하면서 계속 이어지는 연애 이야기라니, 보다가 진저리를 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 남자가 얼마나 한심하냐 하면, 아내를 놔두고 전쟁 중 파견지에서 젊은 여자랑 바람피운 주제에, 패전 후 집에 돌아와서는 마누라 눈치는 더럽게 보면서 여자를 내팽개친다. 아니 좋아, 그래도 조강지처 버리는 건 아니지. 문제는 그래놓고 잊을 만하면 찾아와서 자자고 하거나 돈을 꿔달라고 한다는 것. 나타나는 횟수가 반복될수록 행색은 점점 더 남루해지고 곤궁하기 짝이 없고, 추측컨대 돈도 여자가 다 쓰는 것 같다. (여자는 남자와 가정을 꾸릴 꿈이 깨진 후 미군현지처 노릇… 같은 걸로 생활비를 벌었다) 그러면서도 심지어 이 여자와 같이 여행을 가서는 여자가 보는 눈앞에서 여관집 주인 아내와 눈이 맞아 바람을 피우고는 여행에서 돌아와 소식을 딱 끊어버린다. 나중에 찾아가보니 그 여관집 여자와 살림까지 차렸다. (아니 마누라 버릴 수 없어서 이혼/결혼 못 한다며!) 무능하기 짝이 없는 주제에 또 ‘남자’라는 가오는 잡고싶…은 건가 하면, 글쎄 또 이 여자한테 와서 돈 어쩌고 하는 걸 보노라면 아주 그냥 콱. 심지어 제 마누라 죽었는데 장례비가 없다며 돈을 꾸러오는데, 그래도 죽어도 이 여자와 결혼하겠단 소리는 안 하고 잊어버리라는 둥, 각자 제 갈 길 가자는 둥, 그래놓고 또 저 아쉬우면 찾아오는 거다. 


그런데 이 여자는 번번이 이 남자 때문에 울고 상처받고 심지어 이 남자가 얼마나 찌질하고 한심한지 충분히 알고 그래서 앞에선 피식, 조소와 비웃음을 날리면서도, 그러면서도 결국은, 또 번번이, 바짓가랑이 잡고 매달리며 질질 끌려가는 거다. 더 화나는 건 이 여자를 연기하는 게 무려! 우리의! 다카미네 히데코 언니라는 거. 정말 이 상황은 한 마디로밖에 표현이 안 된다: “아샹~”


浮雲 Floating Clouds

거의 거지꼴 행색이 되어 길을 떠나는 두 사람. 남자놈 뒷통수를 빠악 치고싶은 마음과 별개로, 애틋하다.


그런데, 이 커플에 이렇게 짜증을 내며 진저리를 치면서도 극장을 박차고 나오지 못하고 그들의 여정에서 연민에 찬 눈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일단 영화가 너무나 아름다워서다. 나루세 미키오가 영화에서 인물을 다루는 방식, 그리고 인물들의 관계를 묘사하는 방식은 다분히 기능적으로 인물들을 ‘처리’하는 근래의 무수한 장르영화들과 달리 대단히 섬세하다. 나루세의 인물들은 영화 속 허구의 인물인데도 마치 내가 실제로 아는 사람마냥 독특한 개성과 존재감을 가질 수 있고, 그 안에서 문학적, 혹은 영화적 미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그려낸다. 


또한 이 커플이 시간을 버텨내면서 지나가는 모습에 당시 일본사회의 변화상이 겹쳐 흐르면서, 우리는 이들의 ‘사적인 연애사’가 실은 당시 일본사회의 변화와 얼마나 긴밀한 관계를 맺고 서로 상응하는지 지켜볼 수 있다. 인도차이나에서 돌아온 유키코가 남자의 결별선언을 들은 이후, 아무데도 기댈 수 없고 취직도 할 수 없었던 그녀는 미군과 고정적인 연애(!)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데, 당시 연고 없는 도시 처녀가 – 그리고 전쟁으로 모든 것이 잿더미된 상황에서 그나마 돈을 벌러 도시로 흘러들어간 젊은 여성들이 – 어떤 식으로 자기 생계와 가족 부양을 책임졌는지 유추할 수 있다. 사실 나루세 미키오가 연출한 많은 ‘여성영화들’, 특히나 하야시 후미코의 원작을 영화화한 경우 이런 젊은 여성들은 부지기수로 나온다. 오히려 <부운>의 유키코는 다른 나루세의 여인들보다 훨씬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편이다. 


사실 <부운>의 인물들은 나루세 미키오의 다른 영화들 – 이번에 본 영화는 <부운>을 제외하면 네 편에 불과하지만 – 의 인물들과는 사뭇 다르다고 느껴진다. 나루세 영화의 남자들이 하나같이 한심한 민폐에 기생충 캐릭터라곤 해도 <부운>의 도미오카는 유독 그 정도가 심하다. 유키코 역시 다른 여성들처럼 진취적으로 자기 생을 꾸려나가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미군 장사를 접은 후엔 자신을 성폭행했던 사촌오빠가 창시한 사이비종교에의 교당에서 잡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한편 여전히 도미오카와의 관계를 이어가는데, 나루세 영화 중 이렇게 ‘남자한테 의존하는’ 캐릭터가 또 있을까 싶다. 그녀가 도미오카에게 집요하게 사랑을 요구하는 것 역시 그녀의 주체적인 의지라기보다 중심을 잡지 못하는 인간의 맹목적 집착으로 보인다. 그리고 두 인물이 공히 유지하고 있는 특별한 태도가 바로 ‘무기력’인데, 이는 분명 나루세 영화의 다른 남녀 등장인물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이다.


그렇다면 이 무기력과 뿌리깊은 좌절감은 대체 어디서 연유하는 걸까. 나는 이 영화가, 패전과 동시에 영혼이 죽어버린 일본인들의 피폐한 정신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키코의 도미오카에 대한 집착이, 한편으로는 전세가 기울기 전 대동아전쟁이 막 시작되며 풍요를 경험했던 짧은 시절을 ‘좋았던 시절’로 향수하며 회고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 변화된 현실에 적응하기는커녕 받아들이고 인정하지도 못한 채 과거에 매달리고 집착하며 어떻게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그러나 그럴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인간의 절망적인 몸짓. 도미오카에 대한 지속적인 구애와 실패가, 매번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다 매번 좌절을 겪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지젝에 의해 소개된 라캉식 용어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익숙한 단어들 몇 개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라캉 잘 모르므로 패스.)


浮雲 Floating Clouds

여행 가서 함께 목욕하는 씬. 이 씬 바로 뒤에, 남자놈이 여관집 주인여자 꼬셔서 똑같은 씬을 연출한다. 나쁜노무시키...


반면 도미오카의 무기력은 조금 달리 보이는 측면이 있는데, 나는 도미오카의 모습이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자신의 죽음을 경험한 이의 ‘시체로서의 삶’을 견디는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유키코가 전쟁이 끝났고 화려한 과거 역시 끝났다는 사실을 아예 받아들이지 못하는 반면, 도미오카는 이를 잘 알고 인지하며 과거에의 절연을 소망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의 모습에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전쟁에 복무했으나 그 전쟁이 끝난 뒤, 더욱이 원자폭탄과 함께 ‘패전’으로 끝난 뒤 방향을 잃은, 다시 일어서서 살아갈 의지를 송두리째 잃어버린 전형적인 인텔리의 무기력을 본다. 두 사람 모두 농림성 직원이었다는 사실, 그러니까 대동아전쟁 당시 전쟁에 복무했던 ‘공무원’이었다는 사실에서 더욱. 영화의 초반, 유키코의 회상에 등장하는 전쟁 당시 인도차이나에 처음 온 유키코에게 “여긴 말그대로 낙원”이라 소개하던 도미오카의 동료의 대사도 의미심장하지만, 당시 유키코와 도미오카가 근무하던 인도차이나의 본부가 더없이 화려한 유럽풍의 대저택 응접실처럼 꾸며져 있던 것도 이러한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어쩌면 해외에서 이 <부운>에 그토록 열광했던 것 역시, 유럽인들이 산업혁명 직후 전쟁 발발 전 짧았던 황금시대를, 혹은 미국인들이 그 화려했던 재즈시대를 향수 속에서 그리워하던 그 정서와 기묘할 정도로 닮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두 사람의 여정은 의사도 전기도 없는 섬마을 야쿠시마에 이르러서야 끝이 난다. (이곳은 하야시 후미코가 3년간 머물며 원작소설 <부운>을 집필한 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야쿠시마로 향하는 배 안에서야 도미오카는 그간 그토록 밀쳐냈던 유키코를 비로소 받아들이는데, 유키코는 이미 병색이 완연해 죽음을 앞에 둔 상태다. 어떤 굴욕과 모멸 하에서도 삶을 간신히 이어가던 유키코를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그녀에게 죽음이 깃들기 시작하고서야 그녀를 받아들였다는 사실, 그리고 그곳이 돈도 역사도 사회적인 그 무엇과도 다 상관없게 된, 현대의 문명과 동떨어진 곳을 향하는 길이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뒤늦은 회환과 슬픔의 눈물이, 유키코의 시신 앞에서 떨어진다. 그리고서야 이 영화(및 원작소설)의 제목, ‘부운’이란 단어의 의미가 또렷해진다. 현실에 발을 붙이지도, 뿌리를 내리지도 못한 채 떠도는 인생들을 많은 작가들은 ‘부초’로 표현하곤 했다. 그러나 이들의 운명은, 땅도 물도 아닌 저 하늘 위를 떠돌며 또렷한 물질적 형상도 가질 수 없었던, 풀도 되지 못한 뜬구름과 같은 것이었다.






ps. 서울아트시네마, 나루세 미키오 회고전(2011. 7. 15- 7. 24)에서, 2011년 7월 22일(금) 17:00에 보다.


ps2. 도미오카 역으로 출연해 이 글에서만도 나한테 줄창 욕을 먹는 모리 마사유키는 나루세 미키오의 다른 영화,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에서도 다카미네 히데코를 ‘갖고 노는’ 비겁하기 짝이 없는 남자로 나온다…만,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에서 줄창 주연을 맡으신 엄청난 배우이심. 어딘가 우리나라 배우 정성모와 비슷한 느낌이 좀 있다. (사실 정성모도 참 좋은 배우인데 어째 주로 야비하고 비열한 역을 많이 맡으셔서…)


ps3. 다카미네 히데코가 첫 등장하는 씬이, 필리핀에서 돌아오는 배에서 내리는 씬. 몸에 큰 남자 군복을 대충 입은 모양새인데, 그래도 멋이 나더란…


ps4. 극 중 유키코는 처음 농림성에 취직하게 위해 도쿄에 올라왔다가 사촌오빠한테 강간을 당한다. 영화에서 이 씬은 짧게 휙 묘사되고 마는데, 아마도 소설에서는 그 사건이 두고두고 유키코에게 트라우마로 남지 않았을까 싶다. 나중에 그 사촌오빠놈(…)이 바로 사이비종교 교주가 되고 유키코가 몸을 의탁하게 되는 그놈인데, 유키코더러 교단에 오라고 하면서 “너한테 나는 첫 남자잖아” 따위의 정말 뺨을 연타로 갈겨주고 싶은 대사를 우리 다카미네 언니한테 날린다. 써글넘 같으니.


ps5. 근데 정말, 나루세 미키오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왜 이리 하나같이 못돼처먹었거나 비열하거나 무능력하거나 찌질하거나 그 모두 다인 걸까.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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