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건영 전 네오이마주 편집장 사건 관련 (1)


1.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하여


애초의 성폭력 사건에 대하여,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다. 나는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존중한다. 검찰에선 나 같은 제3자는 접근할 수 없는 양쪽 모두의 증거자료와 진술을 자세히 검토했을 거고, 그에 따라 전문가다운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이런 사건에서 법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제3의 권위가, 당사자만이 알고 있는 진실을 제3자의 입장에서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 재구성은 때때로 진실과 상당히 동떨어질 때도 있고, 당사자들도 미처 깨닫지 못한 진실에 근접할 때도 있다. 법의 판단은 언제나 만인에게 만족스럽지 않다. 더욱이 성추행, 성폭력 사건에서는 법이 재단하기 힘든 – 혹은 재단할 수 없는 – 미묘한 성질의 부분들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법적으로 범죄가 되느냐 아니냐, 혹은 그로 인하여 기소를 하느냐 안 하느냐와는 별개로, 다른 차원에서, 특히나 페미니스트인 내 입장에서 비판할 만한 부분이 존재한다.


여기서 잠깐 성추행을 포함하여 성폭력 사건의 본질을 다시 상기해본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오해하고 있지만 성폭력은 ‘성’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폭력’에 관한 문제이며, 나아가 ‘권력’에 관한 문제다. 당시 일이 “설사 두 사람의 적극적인 합의에 의해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가해자가 비난 받아야 한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네오이마주라는 매체에서 당시 가해자는 편집장이었고, 피해자는 어린 나이의 신임 에디터였다. 여기서 피해자의 ‘어린 나이’라는 것은, 피해자가 이제 막 영화비평이라는 분야에 발을 내딛어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기 시작하려는 나이, 그리고 이제 막 학교 외 다른 조직 및 사회생활을 새로이 시작하려 하는 나이였다는 점에서 단순히 가해자에 비해 나이가 어리다는 표면적 사실을 뛰어넘는 중요성을 가진다. 피해자의 위치를 가해자에 비해 더욱 취약한 위치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분명한 권력적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만큼, 나는 법의 판단과 상관없이 도덕적, 윤리적 차원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의 약자의 위치를 약취한 것이라 생각한다.


2. 불기소 처분 이후


법과는 무관하게,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사후에 ‘성폭력’으로 정의하는 경우에 대해선 다소 민감한 논란거리가 남아있다. ‘당시엔 아니었다고 생각했으나 나중에 성폭력으로 규정하는’ 경우는 법적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이건, 다양하고 구체적인 온갖 사례들에 일관되게 적용을 해야 하는 보편적/선재적 법이라는 존재의 성격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법이 아닌 도덕과 윤리의 차원에서, 나는 대체적으로 이러한 ‘사후의 정의’가 어느 정도 유효하다고 보는 편이다. 사건 당시 설사 ‘합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합의’가 권력의 상위에 있는 자가 하위에 있는 자에게 ‘강요한 합의’, 그리하여 ‘마지못해 한 합의’인지, 혹은 피해자가 절대적인 권력의 하위의 위치에서 절대적 상위의 위치에 있던 가해자에게 심리적으로 위축된 나머지 ‘자신이 합의해줬다고 착각한 결과의’ 합의인지 애매하기 때문이고, 피해자가 사건 당시 당황해 제대로 행하지 못한 규정과 정의가, 이후에 시간을 들여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누가 봐도 성폭력인 경우에도 피해자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고 당연한 일인데, 이렇게 미묘한 결이 있는 경우는 더욱 피해자 스스로 그 상황에 대한 해석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뒤늦게 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사후적 규정과 정의’에는 다소 예민한 부분들이, 그리고 보다 신중히 접근해야 하는 면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3. 시간을 거슬러 : 처음 사건이 공개되었을 당시


내가 사건을 안 것은 인터넷에 공개가 된 후였고, 그 직전 네오이마주 에디터를 그만둔 상태였기 때문에 당연히 공식입장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활동했던 당시엔 네오이마주 모임에 거의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자에 대해서도 거의 몰랐다. 반면 가해자와는 몇 년에 걸친 우호적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내 위치는 대충 ‘가해자 주변’쯤으로 정리가 되는 것 같다. 나는 가해자의 입장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6월 중순경 그와 개인적인 만남의 자리에서 ‘가해자 버전’의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사건은 이미 검찰에 송치된 후인 만큼 검찰의 판단이 나온 후 최종적인 판단을 하자고 생각했는데, 저 위에 기술한 내 입장은 가해자를 만나기 전 이미 정리된 내용이자 가해자에게 그 자리에서 전달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지켜온 원칙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버전 이야기에 동요되기도 했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한편으로 사건을 알게 된 후 가해자에 대한 끝없는 의심과 피해망상에 시달렸다. 예컨대 “사건 공개 이전에 가해자가 내게 했던 (네오이마주와 관련한, 그리고 내가 거절한) 어떤 제안이 실은 이런 게 터질 것을 대비해 나를 일종의 무마용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 아닐까?” 따위. 온갖 혼란과 충격, 공포와 배신감, 그리고 인간에 대한 회의와 의심 속에서 종종 울컥하며 쏟아지는 감정적 폭풍을 겪었다. 원망은 때로 가해자를, 때로 인터넷에서 내 이름을 언급하며 입장을 밝히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을 향하며 폭발하곤 했는데, 그 와중 “감수해야 할 것들이 있는 법”이라는 조언과, “확인되지 않은 상상의 의심을 증폭시키는 건 쓸데없는 일”이라는 충고가 마음을 진정하는 데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내 입장에선 다소 억울한 부분들도 약간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 직전까지 네오이마주 에디터였다면, 내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최소한 신뢰할 수 있는 공식적 기구(이번 경우는 검찰)의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는 말을 아끼는 것이 옳다는 생각엔 여전히 변함이 없다.


한편 이번 사건으로 내가 새삼 들춰보게 된 것은, 소위 ‘가해자 주변인’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이렇든 저렇든 ‘대충’ 가해자 주변인으로 몰린 상황은 분명 내게는 새롭고도 충격적인 일이었고, 그만큼 당황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이에 관해 내가 도움을 받았던 글 두 개를 링크한다:


http://www.sisters.or.kr/index.php/subpage/feminism/33
http://stoprape.or.kr/266


그러나, 가해자 주변을 향해 쏟아졌던 어떤 ‘요구’들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아무래도 나 역시 그런 ‘요구’를 들었던 당사자이니만큼 감정이 앞서 글이 간결하게 정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다음 글에서 계속하고자 한다. 일단은, 여기까지.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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