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타이틀, 뮤지컬 <레미제라블> 영화화

추석 연휴 벽두부터 충격과 경악과 공포를 안겨준 소식은 다름 아닌 <레미제라블> 뮤지컬의 영화화 소식이다. (참고: 버라이어티의 영문기사) 사실 소설 원작의 영화화도 그리 만만한 프로젝트가 아니고, 높은 인기를 누린 원작이 다른 형태의 예술로 재창조될 때의 저항도 일정 부분 당연히 따라붙는 현상이지만, 내가 이토록 우려를 하는 건 단순히 ‘감히 이 걸작 뮤지컬을!’의 차원은 아니다. 일단 동영상 하나 본다.

이게 갈라콘서트라 두 사람이 서로 사이 두고 얌전히 서서 부르고 있지, 실제로는 가장 강력한 갈등을 형성하는 장 발장과 자베르가 서로 정면으로 충돌하며 몸싸움 직전으로 살기등등한 대결과 기 싸움을 펼치며 부르는, ‘The Confrontation’이라는 제목 그대로의 노래다. 자, 이젠 이걸 휴 잭맨과 러셀 크로가 부른다고 생각해 보시라. … orz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워낙에 한곡 한곡이 다 명곡이지만, 아예 노래를 같이 부르며 서로 상대 잡아먹겠다고 부르는 제목 그대로의 이 곡은 이 작품 통틀어서 가장 강력하고 손에 땀을 쥐는 긴장을 자아내는 장면으로 1막에서 클래이막스에 해당하는 장면을 형성한다. 팡틴의 임종을 지킨 장발장은 그녀의 유언 및 그녀에게 한 약속대로 코제트를 데리러 가려 하지만, ‘마들렌 시장’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된 자베르는 장 발장을 잡겠다며 그의 길을 막아선다. 가사만 봐도 “장 발장 널 잡고야 말겠다, 한번 범죄자는 범죄자, 사람은 도통 안 변하거든, 이 자베르를 물로 보지 마”라며 장 발장을 위협하고, 처음엔 제발 보내달라고 보내만 주면 코제트만 데려온 뒤 제발로 다시 나타나겠다고 애원하고 간청하던 장 발장이 나중엔 “자베르 너 내 길을 막았다간 내가 널 어떻게 할지 몰라”라며 협박한다.

참고로 위 동영상 속 장 발장은 오리지널 런던 캐스트였던 콤 윌킨슨, 자베르는 호주 캐스트 필립 퀘스트. 사실 여태까지도 장발장은 콤 윌킨슨이 진리…라는 설이 다수설. 물론 이런 식의 다수설은 원래 ‘초연’ ‘오리지널 캐스트’ 이런 거에 목매기 좋아하는 팬들의 보수적인 성향이 많이 반영된 것이긴 하다. 그러니 호주 캐스트였던 필립 퀘스트가 10주년 기념 무대에 오른 건 이 배우가 워낙 탁월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국내 발매된 CD 중 ‘인터내셔널 하이라이트 앨범’ 버전에도 필립 퀘스트의 목소리가 실려 있다.)

Les Miserables

혁명의 아이콘

휴 잭맨과 러셀 크로가 좋은 배우임엔 틀림 없고, 휴 잭맨이 왕년에 뮤지컬 무대 좀 뛰면서 토니상도 받고 한 관록있는 뮤지컬 배우이기도 하단 사실이나 러셀 크로가 락밴드질 좀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레미제라블>이 뮤지컬 중에서도 이례적으로 상당히 진중한 주제와 어두운 분위기를 갖고 있는 뮤지컬이라는 점, 그리고 각 캐릭터에게 요구되는 연기력이 깊이가 상당히 무겁다는 점, 특히 휴 잭맨이 장 발장이라는 인물의 무게와 고뇌를 표현하기엔 다소 라이트하고 아직 젊다는 점이나 러셀 크로가 락밴드 보컬로 활동하면서 종종 노래하는 모습을 선보이긴 해도 자베르가 부르는 노래들(‘Star’ 같은 솔로곡도 있다)과는 음역이 다르다는 점에서 기대<넘사벽<우려가 된다. (게다가 나의 자베르는 러셀 크로 같은 곰돌이가 아니란 말이다!!!) 물론 잘만 해내면 두 배우에겐 역대 최고의 배역이 되겠지만. 참고로 현재까지 발표된 캐스팅은 이 두 사람 외에 헬레나 본햄 카터가 있다. 이 작품에서 코미디를 담당하는 – 그러나 가난한 자가 더 가난하고 약한 자를 착취한다는 점에서 비애를 느끼게 하는 – 테나르디에 부부 중 부인 역을 맡았다. 헬레나 본햄 카터는 <스위니 토드>에서도 엽기적인 인육만두집 주인인 러빗 부인 역을 맡은 바 있…지만 역시나 노래 실력은 쏘쏘. 그나마 테나르디에 부부의 노래들이 ‘빼어난 가창실력’을 뽐내야 하는 건 아니라서 다행이라 해야 할까.

뮤지컬 버전의 영화화란 여러 가지 위험요소가 골고루 존재한다. 1985년 초연된 이후 25년이 넘도록 여전히 세계 3대 뮤지컬이니 어쩌니 하는 말이 여전히 유효한 뮤지컬계의 걸작, 게다가 1995년 로열알버트홀에서 열린 10주년 기념 갈라콘서트의 전설적인 명성. <에비타> 혹은 <스위니 토드>의 예에서 보았듯, 그 아무리 걸출한 가수와 배우와 감독이 자신의 재능을 쏟아부어도,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인 클로즈업과 다양한 앵글과 숏으로 이루어진 편집의 묘를 아무리 발휘해도 ‘잘해야 본전’이 되기 십상인 게 유명 뮤지컬의 영화화 프로젝트다. 무대 위에서의 공연을 전제로 만들어진 장면과 노래들은 영화의 ‘편집’ 앞에서 고유의 힘과 매력을 잃기 일쑤다. 노래로 서사가 진행되곤 하는 뮤지컬 특유의 내레이션은 영화라는 매체로 오면 때때로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민망함을 느끼게 한다. 그나마 이런 우려를 조금이나마 상쇄시켜주는 점이 있다면 제작사가 관록의 워킹타이틀이라는 점. (근데 워킹타이틀이 뮤지컬 영화를 제작한 적이… 있었던가?) 감독은 <킹스 스피치>의 톰 후퍼 감독이 맡았는데, 솔직히 <킹스 스피치>가 재밌는 영화긴 하지만 대단한 연출력을 보여준다고 하기엔 좀…

이제 남은 것은 2부에서 극적인 멜러라인을 담당해 주는 에포닌과, 마리우스보다 비중은 낮되 혁명씬에서 탁월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며 여러 합창곡들을 중저음으로 이끄는 앙졸라, 그리고 1부에서 생을 마감하지만 여공에 창녀임에도 고귀한 인간의 품위를 드러내는 팡틴의 역을 누가 맡느냐 하는 것. (사실 뮤지컬 버전에선 성인 코제트의 경우 에포닌에게 존재감이 밀리는 캐릭터다.) 이런 배역들은 극의 중요한 포인트를 만들어내는 캐릭터들인 만큼, 다소 얼굴은 덜 알려졌어도 실력있는 배우들이 맡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참고로 여기서 다시, 10주년 알버트홀 공연에서 에포닌을 맡았던 레아 살롱가가 부르는 ‘On My Own’ 동영상을 붙인다. 과연 레아 살롱가의 이 전설적 버전을 능가…까진 못 해도 대략 흉내까지는 낼 만한 에포닌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그 밑에 붙인 건, 러셀 크로의 노래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동영상.

ps. 러셀 크로의 목소리는 사실 굉장히 맑고 좋은 편. 하지만 자베르한텐 안 어울려…

ps2. 사실 영화화 한다고 했을 때 장 발장으로 스타급 배우 중 휴 잭맨 말고 대안이 거의 없지 싶기도 하지만…

ps3. 원래 뮤지컬 프로듀서였던 캐머론 매킨토시가 영화 제작에도 참여한다고. 미국개봉은 2012년 12월 7일.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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