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 바람이 분다 風立ちぬ / The Wind Rises (2013)

The Wind Rises

나오코 씨로 하겠습니다

<바람이 분다>를 보러 가는 길에, 두려움이 없지 않았다. 설정만으로도 이미 군국주의를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었고, 실제로 상영관을 검색할 때 함께 검색된 감상문들은 하나같이 “역사 왜곡” “불편한” 등의 어구들을 제목에 달고 있었다. 하야오 월드를 잘 알지 못해도 불과 몇 작품만으로 이미 ‘존경하는 거장’인 사람인데, 우리 하야오 영감이 그럴 리 없다는 굳은 믿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그간 받았던 감동이나 위안이 이 (세 번째) 은퇴작 한 편으로 모두 망가질까 두려웠던 게 사실이다. 영화를 보는 환경이 썩 좋지는 않았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식의 비판에 대한 반박과 변명거리를 열심히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몇 가지 지점에서는 고민거리와 의문이 남는다. 아마도 이 글 역시 지나치게 편향된, 하야오 영감을 옹호하고 변명하는 글이 될 듯하다.

먼저 나는 이 영화가 군국주의를 ‘미화’했다는 평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영화는 꿈에서 비행기를 조종하던 소년 지로가 곧 위협적인 ‘폭격기’ 무리에 격추당해 추락하는 오프닝으로 시작한다. 이 오프닝은, 그저 ‘아름다운 비행기’에 대한 지로의 꿈과 열정이 어떻게 필연적으로 ‘전쟁’으로 참혹해지는지 분명하게 전제하고 보여주는 장면이라 생각한다. 이는 여러 평자들이 지적하듯, 어릴 적부터 군수공장 근처에 살면서 전투기와 탱크 등에 평생 매혹돼 있었으나 그 매혹 자체에 죄책감을 갖고 일종의 ‘길티 플레져’로서 그 매혹을 다뤄오던 감독 개인사와 겹친다. 지로의 멘토라 할 만한 카프로니 백작은 지로에게 “비행기는 아름다운 물체고 나는 이 비행기에 폭탄 대신 사람을 싣고 싶다”는 소망과, “비행기는 살육과 파괴의 도구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비극적 존재”라는 통찰을 동시에 들려준다. 침략전쟁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이 이 전쟁이 모두의 파멸로 귀결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필생의 꿈을 쫓기 위해 전쟁의 부역자가 되는 아이러니의 길을 지로는 꾸역꾸역 간다. 시대가 좀 더 좋았다면, 혹은 침략국의 공간이 아니었다면 그것은 경제적 곤궁을 동반할지언정 모험과 발명의 영광의 길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로는 이에 대해 변명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가난한 아이들에게 카스텔라를 건네려다 거절당한 뒤 친구인 혼조에게 이를 얘기하는 장면을 통해서 우회적으로 ‘가식과 위선’의 함정을 스스로 제어하고 있는 듯 보인다. 혼조와의 대화씬에서는 가난한 이들이 넘치는데도 침략전쟁에 골몰하느라 폭격기 전투기 기술을 사들이는 당시 침략전쟁의 양상에 대한 비판도 곁들여지는데, 이는 주인공 지로가 아니라 지로와 함께 폭격기전투기를 만드는 동료 혼조의 입을 통해 이뤄진다. 이 역시, 하야오가 스스로의 입장을 변명하거나 위선의 함정으로 빠지는 것을 경계한 결과라 믿고 싶다.

The Wind Rises

침략전쟁 시기에 전투기를 만든다는 것의 의미.

더욱이 지로가 선택한 이 길은, 나오코와의 사랑을 파멸의 길로 이끄는 길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영화의 초반 관동대지진의 처참한 풍경에 대해 조선인들에 대한 학살을 생략한 대신 고작 ‘로맨스의 공간’으로 써먹는다며, 나아가 이 영화가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이상적이라 비판하는 듯하다. 이 입장은 임근준 미술평론가와 유운성 영화평론가의 대담(프레시안, “’나쁜 땅’ 일본은 ‘꿈꾸는 소시민’의 책임 아니다?!”)에서 임근준 평론가도 일정 부분 동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비극적인 사랑의 낭만성’이, 물론 영화의 로맨스를 강조하거나 그 시대에 대한 낭만적 회고를 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볼 때 오히려 “지로의 선택에 대한 대가가 무엇이었는가”를 보여주는 장치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병든 연인-아내를 “별채에 눕혀놓고 자기는 일하러 나가는” 지로에 대한 비판과 원망은 그 여동생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발화된다. 꿈도 사랑도 포기하고 싶지 않고, 심지어 이를 위해 연인의 목숨을 도마 위에 올려놓는 그의 이기심은, 애초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던 나오코가 치료를 포기하고 달려오도록 요청하는  데에서도, 단적으로 결핵 환자인 그녀 옆에서 (아무리 그녀의 허락이 있었다고는 하나) 담배를 피우는 짧은 장면으로도 드러난다. 

그렇게 아내의 목숨까지 담보로 잡고 완성된 것이 바로 제로센 폭격기전투기, 바로 가미카제 특공대들이 타고 나갔던 – 그리고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던 – 폭격기전투기이다. 나오코는 이 폭격기전투기가 시험비행을 하는 날 지로의 곁을 떠나는데, 우리는 마지막 꿈 씬에서 그에게 “’당신은’ 살아야 해요”라 말하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그녀가 결국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낭만적인 비극의 사랑을 완성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실은 지로에게 그 상실과 죄책감의 무게를 끝까지 지고 가라는 무시무시한 요구이기도 하지 않을까? 더욱이 나오코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그의 곁을 지킴으로써 지로의 비행기 완성에 지지기반이 되는데, 그 사랑의 파멸, 그리고 그녀의 죽음은 결국 이 부역에 대한 ‘처벌’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몇 년이 지나서도 다시 만나 사랑을 꽃피우고, 그녀가 환자임에도 사랑을 고백하며 약혼을, 그리고 백년가약을 맺는 이 ‘운명적 사랑’을 처음 만난 배경이 바로 관동대지진이라는 사실은, 단순히 이들의 운명적 첫 만남을 비극적으로 치장해주는 기능, 혹은 지로의 선량한 품성을 드러내는 기능으로만 해석하기엔 그 재앙의 끔찍함을 묘사하는 수위가 높다. 왜 하필 그들이 서로 인연을 맺는 것은, 그저 달리는 기차에서의 짧은 눈인사만이 아니라, 2D의 화면으로도 무시무시한 위력을 전달하는 지진, 그리고 온 동네가 불타고 있는 대재앙의 현장인가. 끔찍한 이 자연재해가 역사적으로는 조선인을 비롯한 비-일본인에 대한 대규모 학살로 이어졌고, 이때 일본인들은 재난의 피해자가 아닌 학살의 가해자가 되었다. 이러한 공간에서 싹튼 사랑은 당연히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The Wind Rises

그냥 혼례복을 입은 건데 어쩐지 '유령'처럼도 느껴진 건, 저뿐인가요?

하야오 영감은 스크린 밖에서는 확고한 과거 일본의 전범으로서의 이력에 대해 확실하게 인정하며 책임을, 스크린 안에서는 전쟁 반대와 생태주의적 입장을 확연하게 드러내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한편으로 전쟁을 계기로 발전했던, 그리고 직접 전쟁의 도구로 사용됐던 비행기체에 대한 열망을 평생 품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이 딜레마와 비극은 하야오 감독이 언젠가는 스스로 직면하게 될, 아니 직면해야만 하는 주제였을 거라 생각한다. 위에 링크를 붙인 대담에서 유운성 평론가가 지적하듯, 그의 영화에는 언제나 ‘비행’에 대한 로망이 등장했었지 않은가. “군국주의를 미화한다”는 오해를 사기 쉽다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하야오 자신이 가장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은퇴작으로 이 주제를 꺼내들었고, 에둘러 피하는 대신 ‘돌직구’로, 바로 그 시대에 폭격기전투기, 심지어 가미카제 공격에 사용됐던 폭격기전투기를 만들던 남자의 이야기를 선택했다. 나는 이 영화가 그가 평생 품어온 딜레마에 대한 고백이라 생각한다. 그는 아마도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이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이 고백이 너무 수줍고도 담백한 나머지, ‘비겁하다’ 판단할 만한 여지(유운성 평론가, 위의 대담)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고백이 오히려, 자신의 죄책감 어린 욕망과 신념 사이에서 여전히 갈등하며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 못한 자신의 부족한 상태와 한계를 솔직하고 겸허하게 드러내며 시인하는 ‘용기’로 이해하고 싶다.

그렇다면,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에 그렇게 삐딱할 필요가 있을까.  나오코가 지로를 향해 “살아야 해요”라고 말할 때, 나는 그 말이 꼭 지로를, 혹은 3.11 이후 일본인만을 위한 건 아니라고 느꼈다. 오히려 세계의 종말을 겪고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한 위로라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생각한다. 침략전쟁에 부역했던 이에게도 ‘살아야 한다’는 정언명령이 부여된다. 이는 면죄부 혹은 희망의 메시지만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남아 슬픔과 죄책감과 책임을 견뎌야 하는 자들 모두와, 상처와 피해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삶을 이어가야 하는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바람’이 부는 한, 비록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나뭇잎의 흔들림을 통해 알 수 있는 그 바람이 부는 한, 살아야 하는 것이다.

The Wind Rises

'소년의 순박한 꿈'이 그냥 '순박'하기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세상 그리 쉽지 않다...

ps 1. 126분이 넘는 애니메이션은 아무리 전체관람가라 해도 애들 보라고 만든 작품은 아니지 말입니다. 애들도 힘들고 데려간 부모도 힘들고 그 주변 좌석서 영화를 보는 사람도 힘들지 말입니다. 어휴 내가 오늘 밤새고 아침 7시부터 움직여서 지하철 타고 8시에 시작하는 영화를 보러 간 건데! *&^%$#@#$%^&*

ps 2. 네, 안다구요, 알아요, 마음껏 욕하세요! 남들 다 까는데 나라도 하야오 영감 옹호해주고 싶은 걸 어떡하냐!! 게다가 난 일본이 사과해야 하는 문제, 일본이 잘못한 문제이고 천황이 전쟁 일으켰다고 일개 국민에게 책임이 없는 건 아니라는 입장을 몇 번이고 또렷이 밝히는 이에게 그래도 “야 이 쪽빠리 놈아 눈 안 깔아?”라고 계속 윽박지르는 피해자부심 부리는 태도도 별로 보고 싶진 않단 말이다. 

ps 3.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는 건 관객의 ‘읽고 감상하는’ 것이기도 한 바, 나는 이 영화를 보며 하야오에게 실망하기보다, 하야오의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3.11 이후 일본국민들 우쭈쭈해주는 것이라며 냉소하기보다, 이 종말의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어떤 요구이자 위로라고 읽어내는 게 훨씬 이롭다고 생각함미다… 또 한편으로는, 지로가 아닌 나오코의 입장에서 영화를 재해석하는 게 훨씬 더 이 영화를 잘 이해하는 태도가 아닌가, 라는 생각도 잠시. “영화의 틀을 크게 벗어나거나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때로 창조적 오독이 영화를 더 풍성하게 함미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16 Comments

  1. 중요한 건 아닐 수 있는데… 제로센은 기본적으로 폭격기가 아니라 전투기입니다..

    /ps 3. 타국을 침략하는 쪽에 성심을 다해 복무하면서 저런 메시지를 주면 이상하죠.

    • nishi님, 오랜만에 뵙는 듯하네요. 제가 그간 블로그를 워낙 방치를 해둬서… 반갑습니다. 추석 연휴는 잘 쇠셨지요?

      안 그래도 어제 제로센은 함상 전투기라고 제보를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ps3 부분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런 메시지를 준다기보다, 영화를 받는 쪽에서 그렇게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영화가 욕을 먹는 건 다소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는 부분이 있고 그 때문에 전쟁을 미화하는 것으로도, 오히려 그 반대로도 읽을 수 있는 여지가 동시에 발생하는데, 받는 쪽에서 굳이 최악으로만 받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죠. 물론 굳이 최선의 의도로만 해석할 필요도 없습니다만.

  2. 죄송합니다만 혹시 예전에 뵌 적이 있는지요? 여긴 바람이 분다로 검색해서 왔습니다만..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 아아. 워낙 익숙하고 낯익은 아이디라 이전에 저와 댓글교류하시던 분인 줄 알았습니다…만 막상 검색해 보니….(…) 죄송합니다.

  3. 제가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아 플롯이나 장면을 가지고는 뭔가 말할 수가 없네요.

    제로센 ‘폭격기’가 눈에 밟히는 건 저도 마찬가지군요. ㅎㅎ 제로센 ‘전투기’가 더 참혹한 건, 선회성능 등 기동성을 지나치게 추구하였기 때문에 장갑을 극단적으로 제거할 수밖에 없었고 꼭 카미가제가 아니더라도 조종사의 피탄시 치사율이 그만큼 놓았다는 점에도 있습니다. 단지 아름다운 비행기를 추구한다고만 하기엔 좀 많이 비극적인 기체죠.

    링크한 프레시안 기사 중 유운성 씨가 말한 “군국주의에 대한 반응적이고 수동적인, 소시민적인 태도”는 ‘양심적’ 일본시민들이나 리버럴 지식인들, 창작자들에게 자주 보이는 태도이긴 합니다. 군국주의는 나쁘다, 라고 명시적으로 지적하지만 “당시 상황을 우리가 피하기는 어려웠다”는 식. 역사적 책임의 문제를 마치 재해처럼 인식하는, 다시말해 역사를 자연화하는 태도는 소위 ‘천황제라는 구조’와도 관련해 저도 늘 인식하던 문제였기 때문에 과연 ‘바람이 분다’도 그러한 냄새가 묻어나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긴 합니다.

    암튼 기존의 비판들과는 좀 다른 시각의 비평이라 더 재미있게 읽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 가독성을 위해서라도(…) ‘폭격기’를 ‘전투기’로 일괄 수정해야겠군요. ^^

      제로센이나 실존인물의 실제 행적에 대한 자료는 이것저것 찾아읽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공학적 부분에 대해선 잘 이해하긴 쉽지 않았어요. 다만 당시 일본의 기술적 한계 내에서 어떻게든 ‘전투기’로서 기능을 최대화하고자 그걸 탄 ‘사람’의 안전을 위한 부분은 다 날려버렸다, 정도로만… 아마도 영화를 보신다면, 영화에 나오는 지로의 어떤 대사에 흠칫하실지도. 정확한 워딩은 아니나 “최대한 얇게, 가벼워지도록 최대한 깎자~!” 뭐 이런 류의…

      많은 분들이 “실제 결함 많은 전투기였는데 이상적 전투기인 양 묘사해 놓았다”며 화를 내시는데, 글쎄, 영화에서는 당시 일본의 기술이 너무 형편없었다, 라는 맥락이 굉장히 자세히 소개/강조됩니다. 지로를 포함해 미쓰비시의 설계자들이 독일 융커스 사에 기술견학하러 갔다 구박당하는 장면도 꽤 길게 나오거든요. ‘이상적이고 완벽한 기체를 만들었다’보다는, 어쨌든 당시 일본 기술 한계 내에서 일본 해군이 “오오 이 정도면 그래도…?” 할 만한 걸 만들어냈단 뉘앙스가 더 크다고 보고요.

      말씀하신 그 ‘수동적인, 소시민적 태도’는… 아마 영화를 보시면 “역시…”하며 실망하실듯요. 이 부분에 대해선 언젠가 직접 뵈었을 때 얘기를 좀 더 듣고 싶네요.

      어쨌든 지금은 영화가 거의 떨어져 나가고 있는 추세라, 극장서 보시려면 서두르셔야 할듯요. 지금 남아있는 서너 군데도 이번 주 내로 상영이 마무리되지 않을까 싶어요.

  4. 여러 제보에 힘입어, 글 안에 제로센을 가리키는 ‘폭격기’를 ‘전투기’로 수정하였습니다. ‘폭격기’를 ‘비행기체’ 로 수정한 곳도 한 곳 있습니다.

  5. – ‘나오코’ 라는 이름이 워낙 흔하고 익숙해서인지 ‘나오코’ 로 오기된 글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 작품의 여주인공 이름은 ‘나호코’ 입니다.
    (이 영화 주인공의 또 한 명의 모델인
    ‘호리 타츠오’의 또 다른 소설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 제로센이 폭격기가 아니라 전투기인 것 이전에,
    이 영화에서 제작 과정이 나오는 그 기체는 제로센 자체가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 만드는 비행기는 ‘9식 단좌 전투기’ 고요.
    (후일 정식 채용된 ’96식 함상 전투기’ 의 프로토타입)
    제로센은 끄트머리에만 잠깐 나옵니다.

    – 워낙 쉽게 눈치채기는 어렵게 만들어져 있기는 하고,
    지금 제대로 읽어내는 사람이 거의 없는 상황인데…
    이 영화의 로맨스 파트를 아름답고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로 보는 것 자체가 거대한 착각이죠(…)
    N. 님이 방향을 제대로 잡고 계시다 생각하는데,
    자잘한 디테일까지 다 포착해 보면 아마 지금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안좋은 얘기가 될 겁니다.
    (나중에 블루레이라도 나오면 언제 한 번 따로 포스팅해볼까 합니다만)

    – 작품 내의 디테일은 일단 제쳐 놓고 큰 틀에서 하나 적어 보자면,
    지로가 나호코를 대하는 저런 태도 같은 건
    ‘뭔가를 만드는 사람’ (비행기 혹은 애니메이션) 으로서의
    본인이 투영된 자조 같은 면이 클 겁니다.
    당장 본인부터가 애니메이션 만든다고 가정을 소홀히 했던 사람이니까요(…)

    – 위의 장갑 문제라든가도 그렇고 제로센의 곡선 자체가
    양산에 적합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든가 하는 면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호리코시 지로에게 애초부터 ‘전쟁에 한몫하겠다’ 라는
    목적의식은 없었다고 해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한국에선 주로 미야자키 영화를 즐겨 왔던 팬층조차
    “미화가 어쩌고는 둘째 치고 영화 자체가
    재미가 없다, 지루했다,” 라는 평이 대체로 중평인데
    (그 의견의 이면에 역사 문제가 정말로 개입하고
    있지 않는 것일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을 포함한)
    크리에이터라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것도 포함해서
    꽤나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요.
    애초에 미야자키 영화는 후기로 오면 올수록 전통적인 기승전결이 모호해지고
    해석의 여지가 커지는 쪽으로 변화하는 경향을 계속해서 보여 왔었죠.
    (저 같은 경우는 애초에 전기 영화들보다 하울 이후부터 좋아진 경우이기도 하니)

    • 우왓 충격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제가 밀리터리 쪽은 영 문외한인데다 실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도 자세히 알지는 못하는데, 충격님의 댓글을 받고 막 의기양양해지고 있습니다. 내가 역시 영화를 잘못 본 게 아니구나 하는 위안과 자신감이…… ^^

      일본어에 워낙 약해서 일본어 관련해서는 더더욱 제 기억을 믿지 못하거든요. 극장에선 ‘나호코’로 본 것 같았는데, 혹시나 해서 나중에 imdb를 찾아보았더니 Naoko로 돼 있더군요. 해서 일괄 나오코로 표기했던 것인데… (망했다;;)

      저도 굳이 전투기 만드는 남자의 이야기로 은퇴작을 삼은 것이, 하야오의 밀덕(…) 취향이나 딜레마뿐 아니라, 크리에이터로서의 정체성이 많이 반영된 이야기라 생각해요. 창작자가 때로 얼마나 이기적이고 뱀파이어(…)가 되는지… 아마도 지금의 “역시 쪽바리/아니다” 뭐 이따위 논란을 넘어선, 제대로 이 영화가 평가되는 날이 머지 않아 오리라 생각합니다. 충격님의 글도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몇 번이고 은퇴와 번복을 반복했지만, < 바람이 분다>는 그런 의미에서 진짜 은퇴작이 아닐까 싶은…

      후기 영화에 대한 취향 말씀해 주셨는데, 흐;;;; 전 특히 < 포뇨>를 너무 좋아해서…… 뭐라 해야 하나 “형식 따위 이제 뭐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런데 요소들이 알아서 붙고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듯한 그… 이건 인간이 아닌 신선의 경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근데 저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린 지로가 “전쟁에 한몫하겠다”는 매우 적극적인 목적의식은 없었다 해도, 자신이 만든 비행기가 결국 전쟁에 이용될 것이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도 분명 알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게 하야오가 이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서의 자세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결과적으로’ (침략전쟁에 대한) 변명의 영화가 된다 하더라도, 할 수 없어, 난 지금 이걸 고백하고 만들어야만 해…”랄까요.

    • 그런 것이겠죠.
      다만 에피소드를 하나 보태 보자면,
      본인이 막 적극적으로 ‘난 지금 이걸 해야겠어!’ 라는 것은 아니었고,
      처음엔 안 한다는 걸 프로듀서인 스즈키 토시오가
      “반전주의자이면서 동시에 밀리터리 매니아인 스스로의 모순에 대해
      이제 대답할 때가 된 게 아닌가” 하고 설득했다고 합니다.

      국내에선 미야자키 하야오만 유명하고
      스즈키 토시오 P를 인지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만,
      사실 스즈키 P야말로 지브리의 진정한 실세이자 흑막이죠(…)
      제아무리 미야자키 하야오라도 스즈키 토시오의
      GO싸인을 받아야만 작품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 “반전주의자이면서 동시에 밀리터리 매니아인 스스로의 모순에 대해 이제 대답할 때가 된 게 아닌가” 라니, 아… 센세…
      어쨌든 영화를 보며 제가 어림짐작한 것이 그래도 반 정도는 맞았군요. 전 그렇다면 더더욱, 이 거장의 겸손한 고백을, 그리고 그 고백을 이끌어낸 장인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충격 님이 알려주신 덕분에 감독이 더욱 배가되네요.

    • 여기서 포뇨에 대해 덧글 주고 받은 적이 있었던가
      아래 링크할 제 글 본 적이 있으셨던가 긴가 민가 한데…
      지금 대화의 흐름으로 봐선 아마 없었던 듯 하고
      포뇨 좋아하신다니 링크 하나 투척하겠습니다.
      http://shougeki.egloos.com/2638375
      다른 작품 얘기하다가 굳이 이런 거 투척하는 것도
      뭔가 오바하는 것 같아서 달까 말까 하다가,
      지금 대화의 흐름으로 볼 때 흥미 있게
      읽으실 것 같아서 남겨 봅니다(…)

    • 맨 첫머리부터 아는 체해 놓고선… 여주인공 이름은
      외려 제가 착각했던 것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저는 한자 표기를 먼저 확인했어서
      그 기준으로는 기본적으로 나호코라고 생각했고,
      감상하면서도 나호코로 들린다고 생각했었는데……
      저 이름이 원래 나오코로도 흔히 쓰인다고 하고
      (좀 깊게 들어가면 하행전호음 같은 법칙과도 관련이 있고,
      애초에 일본 이름에선 한자와 다른 독음을 지정하는 것도 가능하고요)
      제대로 알아 보니 제가 위에서 언급했던 호리 타츠오의
      소설도 공식적인 독음이 나오코인 듯하네요.
      말씀하신대로 IMDB 등 영미권에서도
      기본적으로 naoko 로 표기하는 것 같고…
      지브리에서 딱히 ‘나호코가 아니라 나오코다’ 라고
      명시한 적은 없지만 이런 저런 것들을 종합해 볼 때
      일단은 나오코가 맞는 걸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합니다;;;
      (본편에서 어떻게 들리고 있는지는 일단 2차 매체가
      나오면 다시 주의깊게 들어 봐야겠다 싶지만요;;)

    • 그런데 다시 가만 생각해 보니…
      히어링 위주로 생각을 하다 보니 극장 다녀오고 시간이 지나면서
      잠시 존재 자채를 잊고 있었는데, 극장 한글자막에서도
      분명 나호코로 나왔던 걸로 기억이 나네요(…)
      그렇다면 지브리에서 나호코인 것으로 싸인이 있었던 것일 수도 있겠고요.
      원 소스인 소설판 독음이 나오코라고 해서 혼란했었는데,
      정확히 하려면 좀 더 확인이 필요할 듯싶습니다(…)

    • 제가 할머니 상을 치르느라 이제야 답글을 답니다.

      저도 국내 극장의 한글자막으로 ‘나호코’라고 봤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본 것을 못 믿고 나중에 다시 확인을 하다 오히려 틀린 케이스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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