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준식 | 어머니 Mother (2011)

이 글은 2012년 8월 28일 미디어스에 기고했던 글로, 원문은 여기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이곳에는 앞 부분 세 문단만 싣습니다. 글의 나머지 부분은 링크를 따라 원래 페이지에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어머니>를 본 날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 함께 보았다. <범죄와의 전쟁>이 한국의 어떤 아버지상을 그린다고 할 때, 두 영화는 완벽하게 대비를 이룬다. 한쪽에는 공무원으로 누구나 조금씩 손대는 뇌물을 받다가 희생양으로 명퇴를 당한 뒤 어둠의 세계의 제왕이 되는 아버지가 있다. 그가 그 길을 선택한 것은 그가 대는 말에 의하면 ‘자식 때문’이다. 또 한쪽에는 생떼 같은 자식이 (물리적으로) 자살을 한 뒤 그 자식과 비슷한 처지의 생면부지의 남들에게 기꺼이 어미가 돼준 어머니가 있다. 그가 그 길을 선택한 것 역시 죽은 자식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 어머니에게 ‘짐’으로 떠안기고 간 부탁이 그것이었다.

물론 모든 아버지와 모든 어머니가 이렇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대비는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는 한국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전형적인 어떤 상과 맞닿는 부분이 있다.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이지만 이 모든 것이 자식을 위해서라며 자식에게 공범의 죄책감을 덮어씌우거나 면책권을 요구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저지할 정도로 능력 있지는 못하지만 자식이 안쓰러워 자식이 맞을 때 대신 맞아주고 자식의 아픔을 쓰다듬는 어머니. 물론 우리의 인식 속에 이런 상만 절대유일인 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이를 ‘어머니’ 혹은 ‘엄마’라 부를 때 기대하는 것은 <어머니>의 그것에 가깝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할 때의 어머니, 그러나 가부장의 폭력에는 속절없이 당하고 피울음을 우는 어머니. 포근함과 억척스러움을 동시에 동반한 모습. 우리가 이소선 여사에게 기대하는 것도 어쩌면 그런 것이다. ‘노동자들의 어머니’라는 별명이 단적으로 드러내듯이. 

<어머니>가 처음 시작하는 장면에서 내가 당황했던 이유도 이와 연관이 있다. 아니 저분이 저렇게나 작고 가냘픈 분이셨던가. 그리고 저렇게나 늙으셨나.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쥐면 바스라질 듯한 어깨를 한 저 작디작은 여자가 그 이소선 선생이 맞다고? 나이를 따져보면 ‘저렇게 늙으신’ 게 논리적으로는 맞는데, 내 기억 속에 있던 이소선 선생은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의 듬직한 체구를 한, 정정하고 걸걸하고 억척스러운 검은 머리의 모습이다. 오래 전 매체의 사진에서 접한 어떤 이미지가 시간에 따른 업데이트를 거치지 못한 채 고정된 탓이 제일 크겠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닐 거다. 나는 이소선 여사를 기억 속에서 어느 한 모습으로만 박제시켜 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전태일의 어머니, 노동자들의 어머니, 그리하여 자식인 노동자들을 탄압할 때마다 나가 맨 앞에서 ‘맞장 뜨며’ 싸워주는 억척스러운 엄마, 그리하여 시간성 따위는 그냥 초월한 존재. 전태일이 70년대를 숨 쉬었던, 이제는 나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가 된 뜨겁고 평범한 청년이 아닌 ‘근로기준법 준수하라’를 외치고 불을 뒤집어쓴 ‘열사’로 고정돼 있듯. 이소선이라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람, 그러니까 나이를 먹고, 자식을 잃고, 남은 자식을 키우고, 담배를 좋아하고, 거동이 힘들어지면서부터는 다른 사람의 어깨에 기대서만 겨우 걸을 수 있는 작은 몸집의 ‘생활인’인 나이든 할머니-여자는 상상조차 하질 못했던 것이다. (이후 부분 보러 가기 : 클릭!)

ps. 벌써 2주기를 넘겼다. 시간 참 빨리 간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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