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진 | 달리는 꿈의 상자, 모모 (2012)

2010년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야 이봉우 대표와 2008년 폐관한 명동의 CQN(씨네콰논) 극장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게 되었다. 일본의 뉴스를 전문으로 전달하는 포털사이트의 기사를 통해서였다. 지금의 한류를 있게 한 선구자이자 주역이었을 뿐 아니라 한국에 좋은 일본영화를 계속해서 소개했고 나아가 한-일 간 주목할 만한 공동합작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그의 이름은, 일본영화에 관심이 없더라도 익숙할 수밖에 없는 이름이었다. 결국 명동 CQN극장을 철수하고 일본으로 돌아간 그가 소위 ‘이봉우 부활제’, 즉 ‘이화회’를 통해 재기를 선언하고 이동영화관의 구상을 내놓았다는 내용의 그 기사를 보며 그저 마음으로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소식은 한동안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2012년 서독제에서 소개된 뒤 이후 간간이 한정된 기회를 통해서만 상영되었던 영화 <달리는 꿈의 상자, 모모>를 통해 그의 근황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이화회 행사에서 발표했던 이동영화관의 꿈을 구체적으로 현실화시키는 중이었다. <달리는 꿈의 상자, 모모>는 이봉우 대표와 그와 뜻을 함께 하는 동료들이 어떻게 이동식 영화관, 즉 ‘모모’를 마침내 설립하였는지, 2011년 오프닝 행사와 제1회 토호쿠영화제를 개최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는 이봉우 대표의 약력과 과거를 간단하게 전달하되 그가 어떤 인물인지 소개하는 차원에서 그칠 뿐, 그가 한국에서 거머쥐었던 영광과 어이없게 고초를 겪으며 추락한 사연을 길게 늘어놓지 않는다. 대신 마침내 ‘모모’를 선보이기까지 그의 정성, 그리고 이 ‘모모’를 통해 그가 도달하고 싶었던 꿈과 영화에의 신념을 보여준다. 이는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나 “좋은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를 넘어서서, “좋은 영화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프랑스에서 10여 년 전 처음 이동식 영화관을 보며 느꼈던 그의 감회, 그리고 그가 달리는 영화관을 만들게 된 계기를 얘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영화’라는 것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탄생 때부터 영화는 ‘신기한 구경거리’이자 ‘놀라운 이야기를 담는 그릇’일 뿐 아니라, 다수의 사람이 한곳에 모여 함께 보는 미디어였다. ‘영화 보기’는 그렇기 때문에, 영화 초반 이봉우 대표가 지적하듯 소위 ‘예술성 있는’, 혹은 유수의 권위를 지닌 영화제에서 수상함으로써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은 영화들을 보며 개인의 교양과 안목을 함양시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보고 공감대를 나누며 서로에게 연대감과 소속감을 느낌으로써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누는 행위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칫 열혈 영화광과 예술영화 애호가들이 손쉽게 빠지기 쉬운 함정, 즉 개인으로 파편화되어 각자의 골방에 틀어박히는 ‘고독한 마니아’의 길이 아닌,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 하는’ 행위로서의 영화 보기를 강조한다. 

그가 이런 신념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영화가 가진 본질적인 힘을 믿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에서 인터뷰 내내 “영화가 얼마나 사람들을 크게 위로할 수 있는지, 얼마나 큰 힘을 갖고 있는지” 강조한다. 또한 인간이 빵만으로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극한 상황에서도 빵뿐 아니라 ‘장미’를 갖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그는 산업 논리에 따라 오히려 극장이 없어지고 영화를 볼 수 없게 된 이들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권리, 그것도 좋은 시설이 갖춰진 극장에서 제대로 된 소스로 제대로 상영되는 영화를 볼 수 있는 권리, 그리하여 영화가 공공성을 갖고 커뮤니티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역할을 증명하려 한다. 그 노력의 산물이 바로 ‘모모’다. 그가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그래서, 3.11 지진 쓰나미로 폐허가 된 미쓰시마 현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매일 보고 즐기는 영화를 도무지 볼 수 없게 된 곳. 

현재 극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내겐 이 영화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처음 영화와 사랑에 빠졌을 때의 기억뿐 아니라,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기로 하면서, 더욱이 산업 현장이 아닌 보다 ‘활동’에 가까운 공간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품었던 꿈과 이상을 상당히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현실의 장벽 앞에 주저앉아 한숨을 뿌리며 눈물을 훔치던 와중, 이 영화가 나직하게 어깨를 두드려주는 듯한 느낌이다. 

ps. 2013년 5월 28일, 영상자료원에서 열린 ‘독립영화 쇼케이스’에서 상영된 영화의 자료로 쓴 리뷰. Dropbox 안에 둔 글을 무심코 발견…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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