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 보티커 특별전 상영작 8편에 대한 메모 @서울아트시네마

Budd Boetticher Special @ Seoul Art Cinema

폴 슈레이더가 ‘시네마’ 지에 게재한 버드 보티커에 대한 비평 연구 글, 「비평에서의 사례 연구 : 버드 보티커의 경우 Budd Boetticher: A Case Study in Criticism」의 번역문은 4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최된 버드 보티커 특별전와 관련하여 서울아트시네마가 발행하는 소식지인 CINEMATHEQUE 2014년 4월호에 실렸고 이후 서울아트시네마 공식블로그에도 실렸다. 이곳을 누르면 새창에서 그 글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이곳에 다시 옮겨오지는 않는다. 최대한 한글로 쭉쭉 읽히는 번역을 지향했지만, 한정된 시간 내에 번역하면서 글에서 언급되는 영화들을 미리 보지 못한 까닭에 특정 장면의 묘사나 대사의 인용을 번역한 데서 오류가 발생하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이 글은 버드 보티커의 영화를 탐험하는 데에 좋은 가이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폴 슈레이더의 관점이 버드 보티커의 영화를 이해하는 유일한 열쇠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풍부한 하나의 관점을 제공해 주는 것은 사실이다. 작가주의와는 반대의 관점에서, 폴 슈레이더는 버드 보티커의 ‘원형’해석으로 접근할 때 더 풍부해진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더불어, 적어도 이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버드 보티커 특별전에서 상영된 영화 8편에 대해서만큼은, 적어도 버드 보티커가 그리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심층적 분석 없이 그 영화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보티커의 서부극에서 여성은 기존의 서부극들에서의 여성의 기능을 외양상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남성들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투쟁해야 할 계기를 제공하거나, 혹은 그 투쟁으로 이뤄낸 성과, 즉 트로피로 보이는 면이 있다. 그러나 나는 보티커 영화의 여성들이 여기에서 더 나간다고 생각한다. 즉, 오히려, 보티커의 여성들이야말로 남성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내야 할 목적 그자체이며, 최종심급이다. 보티커의 여성들은 그저 그 남자 주인공들의 보호의 대상, 혹은 그들을 기다리는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랜돌프의 보호를 받되 랜돌프의 선함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주며, 나아가 그의 가치를 온당하게 드러내고 평가해주는 이들이다. 악당들은 이 여성들의 평가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혹은, 보티커의 여성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서 남성을 구원해 주기도 한다. 말하자면 나는, 보티커의 영화들에서 남자 주인공이 폴 슈레이더가 해석한 바 ‘원형’이라면, 여성 캐릭터들은 그 원형을 원형으로 만들어 주는 ‘신’이라고 주장하려고 한다.

이것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선다운의 결전>이다. 이 영화는 랜돌프 스콧과 보티커 콤비의 일련의 서부극에서도 아주 이상하고 예외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즉, 랜돌프 스콧이 목적을 달성하고 표표히 떠나는 다른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에서 그의 목적은 좌절될 뿐 아니라 그는 추락한 상태로 떠난다. 이 영화의 전반부에서 랜돌프의 ‘선함’을 입증해 주는 존재로서 카렌 스틸이 큰 역할을 한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결혼식을 중단할 뿐 아니라, 진실을 알기 위해 제 스스로 위험을 무릅쓰고 랜돌프를 찾아간다. 그런데 최종 장면에서 랜돌프 스콧의 복수에 ‘난입’하여 그 복수를 중단시키고 상황을 끝내버리는 것은 이 영화의 다른 여주인공, 즉 발레리 프렌치이다. 언제나 랜돌프의 선함을 증명하며 그의 편에 서주었던 신이, 이 영화에서만큼은 랜돌프의 복수의 대상, 악당인 존 캐럴을 선택하고 구원한다. 랜돌프가 신으로부터 당한 ‘배반’은 그러므로,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그런가 하면 <코만치 스테이션>은 랜돌프 스콧이 한 여인을 구하여 남편에게 데려다 주는 과정에서 겪는 일종의 ‘시험’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여주인공, 낸시 게이츠는 영화 내내 평범한 서부극들의 여주인공처럼 보인다. 그녀는 랜돌프 스콧에게 가까스로 구출되어 그의 보호 하에 집으로 향하게 된다. 영화는 낸시 게이츠에게 걸려 있던 어마어마한 현상금을 탐내며 이들의 여정에 함께하게 된 클로드 애킨스가 영화 내내 낸시 게이츠를 시험에 들게 하며 랜돌프 스콧을 의심하도록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간 이 영화의 모든 의미를 완전히 뒤바꾸어버리는 엄청난 반전이 된다. 사실은 낸시 게이츠야말로 랜돌프 스콧을 시험하는 신의 위치였던 것이며, 최종적으로 그의 선함과 순수함을 승인해 주는 존재가 된다. 

3 Boetticher films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 , .

<투우사와 숙녀>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를 끌어가는 주인공은 당연히 투우에 매력을 느끼고 투우사가 되려 하는 로버트 스택이고, 그가 사랑에 빠지는 조이 페이지는 무수한 남성-영화들의 흔한 ‘그녀’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그가 자신의 스승인 마놀로, 즉 길버트 롤랜드를 자신의 잘못으로 잃은 뒤 그녀를 멀리하고, 굳은 표정으로 ‘죽음을 향해’ 마놀로의 분신이 되기를 준비하는 과정은 “그가 투우를 위해 사랑조차 접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 과연 그러한가? 애초 87분의 개봉판에서 124분으로 복원된 감독판은 “주로 멕시코 문화를 드러내는 부분들”이 복원됐다고 평가됐지만, 사실은 그에 못지 않게 로버트 스택과 조이 페이지 간 멜로가 더 촘촘해지도록 복원됐다. 이 영화에서 조이 페이지는 로버트 스택이 투우와 멕시코의 습성에 대한 존중을 제대로 보이지 않았을 때 그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외면하며, 로버트 스택이 마침내 ‘진정한 투우사’로 거듭났을 때 이를 최종 승인해 주는 존재이다. 그리고 로버트 스택이 마놀로의 진정한 적자임을 공개적으로 승인받는 것 역시, 마놀로의 부인인 첼로, 즉 케이티 주라도의 몸짓을 통해서다.

나는 앞으로 틈틈이 쓸 상영작 8편에 대한 감상문을 주로 이 관점에서 기록할 것이다. 내게 보티커는 서부극이라는 남성 장르, 특히나 여성 캐릭터가 그저 트로피로 존재하기 쉬운 이 장르에서 여성 캐릭터들에게 ‘존중심’을 가지고 접근한 감독이며, 주체적이고 현대적인 여성상을 넘어서 신의 위치에 여성을 아로새긴 감독이다. 그게, 이번 버드 보티커 특별전에서 8편을 모두 챙겨 보며 이 감독에게 가장 놀랍고도 흥미로웠던 점이다.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