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무어 | 오멘 Omen 2006

리메이크 티를 이렇게 내서야…

<The Omen 666>의 프랑스 포스터

오리지널 <오멘>이 개봉된지 딱 30년(오리지널 <오멘>이 개봉한 건 1976년 6월 6일이었습니다.), 영화사 폭스로서는 정확히 하루도 안 빠진 30년만에 리메이크를 개봉시킨다는 계획9그것도 2006년 6월 6일)에 꽤나 들떠있었을 게 틀림없습니다. 어쩌면 폭스의 간부들은 <엑소시스트>가 27년만에 디렉터스 컷으로 재개봉을 하고 성공을 거두어 마침내 시퀄을 다시 이어나가게 된 사례를 보며 아이디어를 얻었을지도 몰라요. 요즘같은 비-(혹은 반-)기독교 시대에 크리스찬 오컬트 영화를, 그것도 케케묵은 영화를 재개봉해서 전세계적인 화제를 낳았는데, 그 분야의 또다른 양대산맥 중 하나인 <오멘>을 리메이크하는 건 더 성공율이 높아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새끈하고 인기있는 배우들을 새로 배치하고, 좀더 감각적인 연출과 편집을 하고, 훌륭한 노장 배우들이 조연으로 든든히 받쳐준다… 심지어 데이빗 셀처의 각본을 그대로 가져온 듯하군요. 그러나 문제는 역시 감독이었어요. 물론 리브 슈라이버나 줄리아 스타일즈의 미스캐스팅도 빼먹을 순 없겠지만.

사실 전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라 종교적 트라우마가 좀 있습니다. 호러영화의 다른 서브 장르들을 절대 무서워하지 않으면서도 유독 크리스천 오컬트 영화들만큼은, 봤다 하면 정말로 공포와 패닉 상태에 빠져 덜덜 떨게 됩니다. 여러 번 기회가 있었음에도 리처드 도너가 연출한 76년의 원작을 여태껏 보지 않은 건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이후 원작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 본 2006년 버전의 각본에서 보이는 내용을 토대로 한 제 추측일 뿐입니다.) 하지만 제 예상이 어느 정도 맞았어요. 시간 맞는 유일한 영화라 고르면서, 저는 이게 리메이크인 이상 제게 별로 공포를 불러일으키진 않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영화도, 지나치게 늘어집니다.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던 덕택에 뜻밖의 배우들을 보며 즐거워하기는 했습니다만. 미아 패로우, 마이클 갬본, 피터 포슬스웨이트, 줄리아 스타일즈 같은 배우들 말이죠.

아마도 오리지널 <오멘>이 불러일으킨 끔찍한 공포는, 악마의 정체가 순진한 아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됐을 겁니다. 아예 외모가 끔찍하게 변하고 끔찍한 행동들을 여러 사람의 눈앞에서 공식적으로 해대는 리건(<엑소시스트>의 소녀)과 달리, 데미안이 악마라는 사실은 그저 쏜 부부가 감지하는 불길한 ‘느낌’과 완전한 타인들인 제3자들의 ‘말’에 의존하고 있는, 매우 주관적인 정보입니다. 게다가 뭔가 불길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긴 해도, 그것이 아이가 악마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증명해 주지는 못합니다. 아이는 그저 순진한 얼굴로 아무 말없이 묵묵히 있을 뿐입니다. 간혹 이상한 행동을 한다곤 해도, “미운 다섯 살, 때려죽이고픈 일곱살”이란 말이 떠돌 정도로 부모를 당황시키고 속을 썩이는 아이들의 존재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머리카락 속에 새겨진 666의 birth sign이 거의 유일할 텐데, 심지어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일 시간적 여유도 갖지 못하는걸요.

이러한 설정은 드라마를 크리스찬 오컬트의 호러로도 만들 수 있지만, 꽤나 심각하고 모호한 심리극으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히스테리증을 보이며 자식을 기피하는 상류층 여성과, 그런 아내를 잃은 뒤 정신이 훽 돌아버리고는 자식을 모든 불행의 원인으로 몰아 살해하려는 신경증적 강박의 남편. 이 얼마나 훌륭한 설정입니까. 게다가 그들 주변에선 도무지 알 수 없는, 불길한 사건들이 줄을 잇지요. 상류층 가정에 들어와 정작 친부모와 자식을 떼어놓는 외부인인 보모의 존재란, 커티스 핸슨이 <요람을 흔드는 손>에서도 아예 기본 설정으로 써먹은 바 있습니다. 요컨대 삶 자체가 허위의식의 연장일 수밖에 없는 상류층 가정의 정신적/정서적 불안과 폐쇄성, 그로 인한 붕괴, 라는 아주 훌륭한 공식이 만들어지겠죠.




리브 슈라이버와 데이빗 튤리스

하지만 2006년 버전에서 제가 본 것은, 전혀 긴장과 공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나이브함만 있었을 뿐입니다. 부모들의 죄책감과 폭발 직전의 스트레스와 공포가 뒤섞인 혼란이나 심리적 갈등같은 건 거의 보이지 않더군요. 오히려, 정말로 저 70년대의 부모 세대는 새로 태어나는 자식 세대를 때려 죽이고 싶을 정도로 무서워하고 미워했구나, 란 확증만 들더군요. 하긴, 왜 안 그렇겠어요. 고생고생해서 겨우 얻은 편안한 환경에서 기껏 공들여 키워놨더니 고생이라곤 모르고 자란 것들이 베트남 전쟁을 반대한다네 어쩌네 하면서 머리 기르고 수염 기르고 마약에 절고 로큰롤이나 들으면서 섹스에 미쳐 돌아다니는 히피인지 뭔지를 하겠다고 날뛰는데 말이죠. 아마 정말로 세상 말세라고 한탄하며 한편으로 자식들에게 공포를 느꼈을 거고, 그런 무의식이 반영된 게 <오멘>과 같은 줄거리 아닐까, 란 생각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배경도 그때가 아니란 말이죠. 그러니 이 영화는, 도대체가 이해해줄 건덕지도 없이 그저 모든 불행을, 아무 것도 모르는 다섯 살짜리 애한테 너무 쉽게 뒤집어 씌워놓고는 그 애를 갑자기 죽이겠다고 날뛰는 정말 철딱써니 없고 정신나간 모럴 헤저드의 여피의 소동으로밖에 안 보이더군요. 결국 이 스토리는, 아들한테 밀려나는 게 너무 두려운 아버지들이 애초에 아들내미를 죽여 싹을 잘라버리고자 시도하는, 말하자면 라이오스 왕(외디푸스의 아버지)의 이야기일텐데, 그나마도 제대로 했으면… 그 아버지의 공포와 혼란과 살고자 하는 욕망도, 별로 와닿지가 않게 연출돼 버렸으니. 앗싸리 그 방향으로 밀고 나갔더라면 영화가 훨씬 더 재밌어졌을텐데. 오죽하면 중간에 잠깐 졸 뻔했습니다. ;;

리브 슈라이버한테선 고뇌하는 아버지의 상이 별로 보이질 않아요. 추하더라도 인간적이라 부를 수 있는 은밀한 죄의식도, 사명감 투철한, 살짝 맛이 간 광기도, 슬픔도… 전혀. 뭐, 이 배우만 보면 <스크림>을 떠올려 버리는 데다, 이 배우의 얼굴과 목소리의 부조화를 ‘코믹하다’고 여기고 있는 제 편견 때문이겠지만요. 줄리아 스타일즈는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배우입니다만, 도무지 이 캐릭터에 맞지가 않습니다. 불과 5, 6년 전에 여고딩 역할을 맡아하던 이 아가씨가 벌써 상류층 여성 특유의 “겉늙은”, 다섯 살 아이의 엄마로 나오는 건 감정적으로 수긍이 안 되는 데다가, 히스테리 및 망상(으로 오인되지만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육감과 통찰력)을 보이는 날카로운 신경을 가지고 무너져 가다가 마침내 살해당하는 캐릭터를 하기엔 지나치게 강직하고 당차고 도도해 보이지 않습니까. 이 배우에겐 좀더 활동적인 캐릭터가 가야 한다고요.


미아 패로우와 시머스-다비 피츠패트릭

하지만 미아 패로우와 데이빗 튤리스는 정말 좋았습니다. 너무나 선량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뭔가 불길하고 뭔가 숨기는 듯한 보모 역할을 어쩜 그렇게 여유롭고 우아하게 해주시는지. 그러고 보니 요즘 영화에서 나이든 미아 패로우를 본 건 근래 처음이지 싶어요. 데이빗 튤리스는 예전에도 그랬듯 참으로 섹시하고요. 껌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빼딱하게 사진을 찍어대는 첫 등장씬에서 저도 모르게 그저 입이 벌어지더군요. (데이빗 튤리스를 좀더 자주 보여달라!!) 피터 포슬스웨이트 씨는 너무 간만이라 그저 반가웠습니다.

결론은… 용기 내서 오리지널을 봐야겠다, 네요. “세련된 리메이크” 어쩌고 저쩌고 한 씨네21의 평은 영화를 안 보고 쓴 preview임에 분명합니다. -.-;;

ps. 사실 <엑소시스트>도 생각났습니다. 디렉터스컷 말고 76년 개봉판이요. 이제까지 제가 본 가장 무서운 영화였어요… 뭐 2006년 <오멘>은 흉내도 못낼 공포죠. 근데 오리지널 <오멘>도 그리 무서우려나요.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2 Comments

  1. 난 미아 패로우 보고 너무 불쌍하더라. 분명한 존재감인데 막판에 뒤에서 목 몇 번 조르다가 차에 치어 뎅그락 죽어버리다니.

    • 으으 사실 그만한 존재감도 미아 패로우라 만들어낸 듯, 죽을 때 나도 어이가 없어서리… 캐릭터 배우 모두 다 낭비됐단 생각이 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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