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싱어 | 슈퍼맨 리턴즈

난감한 “예쁜이” 슈퍼맨

며칠 안경을 안 끼고 다녔더니 그 뿌연 세상이 익숙해져버려서, 어이없게도 영화를 보러 가면서 안경을 안 챙겨갔습니다. 뿌연 시야를 눈을 찡그려가며 본 영화인데, 안타깝게도 다시 볼 생각이 별로 안 듭니다… 에효. 하여간, 그 ‘뿌연 시야’의 한계 안에서 쓸 수밖에 없는 감상문입니다.

슈퍼맨, 과연 돌아온 이유는?

<엑스맨 3: 최후의 전쟁>이 준 참담한 실망 때문에, 그리고 예고편에서 눈알에 튕겨나가는 총알 장면을 보고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고 난 소감은 한 마디로…

난감합니다.

브라이언 싱어가 얼마나 감각적인 화면과 편집을 할 수 있는가가 이 영화에서 여지없이 실력발휘됩니다. 게다가 그의 재치있는 유머감각도요. 아도니스님은 슈퍼맨 역을 맡은 브랜든 라우스가 전혀 섹시하지도 멋도 없다고 하셨지만, 제게 이 사람은 “너무나 잘 생기고 예쁜” 사람이었습니다. (아 물론, 제가 좀 느끼남 취향이라는 거를 염두에 두시고 읽어주세요.) 게다가 어디서 그렇게 크리스토퍼 리브를 똑 닮은 녀석을 찾아낸 건지 말이죠.

원래 슈퍼맨은 이후의 슈퍼히어로들과 달리 완벽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크립토나이트는 그의 능력에 영향을 줄 뿐, 그의 정신세계는 확고부동해요. 자신 안의 선과 악에 대해 갈등하지도 않고 소위 ‘인간적인 약점’으로 고뇌하거나 상실로 인해 고통을 받지도 않아요. 사랑하는 여인이 죽어버리자 시간을 되돌려놓고 죽은 이를 살려버리는 존재가 아니던가요. (물론 시리즈의 앞편에선 악한 슈퍼맨과 선한 슈퍼맨이 싸우기도 합니다만, 그건 악당의 음모에 불과했지요.) 게다가 슈퍼맨의 이런 성격, 더불어 그의 성장 배경 등등은, 닥두님도 지적하셨듯, 슈퍼맨을 더없이 보수적인 진영의 영웅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이 캐릭터는 그만큼 현대의 관객들에게는 다른 슈퍼히어로들보다 캐릭터적 매력이 덜하기 마련이죠. 어쩌면 그렇기에 이 캐릭터만큼 (신화화된, 고전적인) 예수의 이미지와 놀랍도록 부합하는 슈퍼히어로도 없을 겁니다.

아마도 브라이언 싱어가 슈퍼맨을 외모빨로 밀고 나가려고 작정한 것도 그 한계를 너무나 잘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선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 그리고 완벽한 능력, 이 모든 게 그 큼직큼직한 이목구비에 빤질한 외모(심지어 피부에 잡티 하나, 땀구멍 하나 안 보이더군요.)와도 잘 어울리죠. 게다가 전편들에서, 이 완벽한 영웅의 캐릭터에 인간적 매력을 부여해 주는 건 꺼벙한 클라크 켄트가 로이스에게 자신의 정체성도 감정도 알리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자기자신이기도 한 슈퍼맨과 삼각관계를 벌여야만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실 슈퍼맨 시리즈는 모든 수퍼히어로물들의 원형이기도 합니다. 변신, 감정 고백 불가, 자신의 또다른 정체성과의 삼각관계… 그렇기에 슈퍼맨 이후 각종 슈퍼히어로물에서 지겹도록 보아온 관객들에게 이걸 또다시 캐릭터의 중심적인 매력으로 밀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물론 이 녀석 정말 잘생기고 멋지고 죽이는데, 영화 러닝타임 내내 이 사람을 얼짱각도로만 360도 상하좌우 클로즈업으로 모델 사진 아니 모델 프로필용 동영상을 찍는 건,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심지어 슈퍼맨이 날아가는 장면에서도 클로즈업, 화면을 꽉 채운 롱샷, 다시 클로즈업, 클로즈업, 클로즈업… 스토리를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외모빨로 밀고나가는 건, 물론 눈은 매우 즐겁지만, 난감합니다, 정말 난감해요.

로이스의 의미심장한 기사 제목, 즉 슈퍼맨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는 너무나도 명확할 뿐만 아니라 매혹적입니다. 물론 영웅은 고마운 존재이지만, 인간은 언제까지나 초인적인, 아니지 이미 초인이고 외계인인 신적인 존재 한 명에게 기대고 의존하여 역사를 만들어나갈 순 없습니다. 넘어지고 깨지고 다치고 죽을지언정, 우리는 삶 앞에서 고통을 직면하며 스스로를 구원하고 남을 구원합니다. 구원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은 언제나, 구원받는 자나 구원하는 자 모두 한계가 또렷하고 이기적인 인간이 그 한계를 벗어나 자발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면서 동시에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슈퍼맨에겐 그런 한계를 애초부터 벗어나있는 존재죠. 그런 슈퍼맨이 떠났을 때, 인간은 물론 그의 도움을, 그의 존재를 그리워하지만, 그가 준 교훈을 되씹고 그가 보여준 영웅적 행적을 인간의 삶 속에 실현시키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고통을 직면하고 극복하는 노력의 힘과 동기를 받게 되는 것이죠. 이것은 바로 예수가 우리에게 보여준 고결한 예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슈퍼맨이 돌아왔습니다. 로이스는 슈퍼맨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답을 내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심각한 질문을 던지곤 딴짓만 하며 “자, 이 아름다운 존재의 미를 즐겨라!”라고 능청을 떱니다. 그래서요? 우리에게 과연, 스파이더맨도 배트맨도 엑스맨도 아닌 슈퍼맨이 필요한 이유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요? <슈퍼맨> 시리즈의 새로운 부활이 필요한 이유는 과연 무엇이란 말입니까?

<슈퍼맨 리턴즈>의 영웅은 결국, 슈퍼맨이 아니라 리처드 화이트(제임스 마스덴)입니다. 그는 한계가 또렷한 인간임에도, 아내와 아들을 구하고, 슈퍼맨마저 구해냅니다. 그를 움직인 것은 사랑이었죠. 그는 아마도 자신의 아들이 슈퍼맨의 아들이라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초인적인 능력도 힘도 없고 질투쟁이이라 할지라도, 로이스를, 슈퍼맨을, 나아가 이 영화를 (다소 초라하게나마라도) 구원한 건 바로 리처드입니다.

안타깝게도, 다음 슈퍼맨 편에 대한 기대는 별로 생기질 않는군요. 아무리 브라이언 싱어라 해도요. (배신감이 좀 큽니다.) 리처드 번외편이라면 모를까…

ps1. 점점 좌초해가고 있는 경력의 케빈 스페이시가 지독한 악당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길 기대했습니다. (전 꽤 오랜 스페이시의 팬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렉스 루터는 캐릭터가 아예 없더군요. 첫 등장만큼은 근사했는데…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ps2. 케이트 보스워스, 처음엔 몰랐는데 볼수록 너무나 예쁘고 매력있네요. 개인적 취향으론 파커 포시가 더 좋긴 하지만요.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5 Comments

  1. 겨우 이걸 찍으려고 브라이언 싱어가 지금까지 끌어왔던 엑스맨 시리즈의 마지막 편을 포기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좀 안타까웠습니다. ㅠ_ㅠ

  2. 오늘 아침에 보고 출근할 생각이었는데 프로이트를 읽다가 그만 우울해져서 술을 마시고 자버렸습니다..ㅠ.ㅠ
    별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내일은 보러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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