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매드슨 | 나는 전설이다

되돌아오신 잭 스패로우님 때문에 간만에 IMDB에서 조니 뎁의 필모를 뒤적거리다가 알게 된 <나는 전설이다>의 영화화 소식. 조니 뎁, 윌 스미스, 거기에 <콘스탄틴>의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 얼기설기하고 어설픈 연출 사이사이에서도 캠피하고 발랄하던 매력이 배어나오던 <콘스탄틴>을 생각해보면 일견 <나는 전설이다>와 어울릴 것도 같고, 아닐 것도 같고. 각색자 크레딧 중엔 어느 정도 안정적인 필모를 쌓아온 아키바 골즈먼(의뢰인, 뷰티풀 마인드, 신데렐라맨 등)이 껴있다. 그러나… 어쨌건 대단히 기묘한 조합.

새로운 인류는 이전 인류를 어떻게 대체하는가?

리처드 매드슨의 원작 [나는 전설이다]는 올해 4월쯤 읽은 듯. 1954년작인 이 책은 (그냥 일반적인 기대만 갖는다면) 당연히 지루하고 식상하다. 우리는 이미 너무나 익숙한 좀비상을 가지고 있고, 이 책은 그 모든 좀비 이미지의 원류이니까.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이 온갖 HR 공식에 익숙해진 현대 관객들에게 식상해 보이듯, 그러나 또다른 의미로 재발견되고 재해석되듯, [나는 전설이다]가 출판 당대에 좀비라는 새로운 존재 – 이물적 존재이면서도 모태는 인간인 – 의 매혹으로 어필했다면, 현대독자인 나는 이 소설의 엔딩의 혁명성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생존 그 자체를 위해 분투하는 존재임은 수가 얼마 남지 않은 인간이나 새로이 급증하고 있는 좀비나 마찬가지. 여기엔 선과 악이라는 윤리적 개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으며, 생존투쟁의 승리만이 유일한 선이 된다. 인간과 좀비 간 전쟁에서 마침내 좀비가 사회를 구성하고 살 방법을 찾기 시작했을 때 최후의 인간 생존자는 죽어서 전설의 영역으로 입장해야 할 운명만이 남는다. 아마도 호모 사피엔스가 그런 방식으로 살아남았을진데, 호모 좀비쿠스 같은 이름을 가진 새로운 존재가 호모 사피엔스를 대체한들. 그러고 보면 수많은 호러영화들이 당연한 듯 인간의 승리로 막을 내렸던 것은 그 모든 좀비물의 조상인 이 소설에 대한 반역적인 퇴행, 혹은 퇴행적 반역인 건지도 모른다. 많은 인간들이 자본주의적 인간을 중세적 인간보다, 혹은 자본주의적 냉혈인간을 온정주의적/윤리적 인간보다 진화한 것으로 믿고 있는 세상에서, 평균수명을 늘린 대신 면역결핍과 신종질병에 시달리는 현대 인류가 과거 인류보다 진화한 것이라면, 좀비가 인간보다 ‘진화한’ 존재라고 말한들 과연 언어도단이 될까. 아니, 우리들 중 대부분은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새에 이미 좀비가 됐는지도 모르는데. (이게 인간 특유의 자기합리화 방식 아니었던가.)

[나는 전설이다]의 엔딩은, 가상역사에서의 미래이자, 우리의 과거이기도 하다. 제우스가 새로운 신의 계보를 시작하며 신중의 신의 자리로 등극한 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아버지가 속한 타이탄 족을 멸망시킨 이후이다. [나는 전설이다]의 주인공 네빌은 결국 또다른 크로노스(제우스의 아버지, 타이탄족)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운명을 수긍하는 그의 모습은, ‘마지막 인간’으로서 전설의 주인공이 될 존재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

이송희일님, 나는 전설이다
IMDB 페이지 : http://imdb.com/title/tt0480249/

N.

극장에서 일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 글을 쓴다.

2 Comments

  1. ‘나는 전설이다’를 볼때 뒤에 단편이 있음을 알았어야 혔는디…
    엔딩임을 미처 대비하지 못혀서리…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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